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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8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6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4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18 [06:35]

[홍익인간 7만년-18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6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4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18 [06:35]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단군조선의 삼한관경 내의 땅은 천하가 되는 밖에서 보면 천상(天上)의 나라 즉 천국(天國=중앙=하늘)이 되며, 삼한관경 내에서도 다시 땅을 나누어 봉하니 각 제후국은 단군조선 중앙조정에 대하여 지방 즉 천하가 되는 바, 각 천군국(天君國),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삼한관경은 천군(天君) 이상 천왕격(天王格)에 해당하는 천상(天上)의 왕인 삼한(三韓)이 다스리는 땅이므로, 삼한(三韓)은 단순한 천하의 왕인 천자(天子)와는 달리 제천권(祭天權) 즉 직접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한을 가진다. 여기서 제천권이란 천신(天神)에게 제사(祭祀)를 올리는 권한을 가리키며, 천자가 올리는 제사는 원칙적으로 천신(天神)이 아니라 천신(天神)의 대리(代理)이자 화신(化身) 또는 인격신(人格神)인 천제(天帝), 상제(上帝)에게 보고하는 의식(儀式)이 되는 점에서, 천제, 천왕, 천군이 천신(天神, 三神)에게 올리는 제사와 천후(天侯)가 되는 천자(天子)가 상제(上帝) 또는 천제(天帝)에게 올리는 제사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에 태백산(백두산)의 제천단(祭天壇)과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 제천단에서는 단군 천왕(天王)이 직접 천제(天祭)를 지내고, 마한(馬韓)의 마리산(摩離山) 참성단(塹城壇)에서는 마한(馬韓)이 단군 천왕을 대리하여 천제를 지내며, 번한(番韓)의 태산(泰山)이나 번한의 다섯 수도인 오덕지(五德地)에 둔 제천단(祭天壇)에서는 번한(番韓)이 천왕을 대리하여 천제(天祭)를 지낸 것이 된다. 특히 서기전1285년 3월 16일에는 색불루 천왕이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을 시켜 삼한대백두산(三韓大白頭山)인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에서 천신(天神)에게 제를 올리게 하였다.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개최시에 태자부루가 번한(番韓) 낭야(琅耶)로 하여금 산동지역의 대종(岱宗)인 태산(泰山)에서 제천(祭天)을 행하게 한 이후 태산에서는 줄곧 제천행사가 벌어졌 왔던 것이며, 서기전1122년 이후 태산이 주(周)나라 땅이 된 후에는 주나라 왕인 천자(天子)가 태산의 제천행사의 유습을 이어 봉선(封禪)이라는 제도로서 천제(天祭)를 지냈던 것이 된다.

 

봉선(封禪)은 천국(天國)의 제후인 천하왕(天下王) 천자(天子)가 상제(上帝)인 천제(天帝)에게 보고(報告)하는 제사의식(祭祀儀式)이다. 즉 봉선(封禪)이라는 글자는 선양(禪讓)에 의하여 천자(天子)로 봉(封)해지는 것을 나타내는데, 특히 왕조가 바뀌어 시조가 된 왕이 봉선이라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천제(天帝)로부터 사후윤허(事後允許)를 받는 식으로 정식으로 천자로 봉해지는 것으로 여기는 절차인 것이다.

 

원래 천자(天子)는 상국(上國) 즉 천국(天國)의 임금인 천제(天帝)나 천왕(天王)으로부터 봉함을 받는 작위인데, 세습되는 작위이므로 대를 이을 때마다 봉해지는 절차가 필요치 아니하나, 특히 왕조가 바뀔 때는 사후윤허를 받는다는 뜻으로 봉선(封禪)이라는 절차로서 행한 것이 된다. 봉선을 한번 치른 천자(天子)가 다시 봉선을 행하는 때는 천자자리에 올랐다는 봉선이 아니라 천제(天帝)에게 국정(國政)을 보고하고 은혜(恩惠)에 감사를 올리는 의식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하늘은 원래 경계가 없으므로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이 되는 단군조선은 경계가 없으며, 군후국(君侯國)들은 지방의 왕으로서 서로 간에 각 영역이 있는 것이 된다. 즉, 지방의 왕인 군후(君侯)들의 나라는 경계가 있는 국(國)이라 하는 것이며, 군후국들이 있는 곳이 천하(天下)이고, 천하(天下) 전체를 다스리는 나라가 천상(天上)의 나라로서 천국(天國) 즉 중앙조정(中央朝廷)이 있는 상국(上國)이 된다.

 

(1) 구려(句麗)

 

1) 시조 및 연혁

 

구려국(句麗國)의 시조는 부소(扶蘇)이다. 즉,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둘째 아들 부소(扶蘇)가 봉해진 나라로서 천군국(天君國)에 해당한다.

 

부소는 구가(狗加)에 해당하는 응가(鷹加)를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단군조선의 제후국 중에서 응(鷹)이라는 제후국이 있었을 법하다. 실제로 응국(鷹國)이 고대중국의 역사적 유물에 등장하기도 하며, 특히 역사적 유물에 매의 일종인 솔개처럼 다듬은 옥돌에 솔개를 나타내는 상형-표음식 글자와 역사적 사실을 상형문자로 새긴 것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구가(狗加) 또는 응가는 형벌담당으로서 치안을 담당한 관청으로서 지금의 내무부와 법무부에 해당하게 된다.

 

구려는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30년경에 봉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전1285년경부터는 고씨(高氏) 천왕(天王)의 종실(宗室)이 봉해진 것이 되고, 서기전240년경 해모수(解慕漱) 이전까지 존속한 것으로 약2,0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 된다. 고두막한이 서기전108년 의병을 일으켜 구려하(九黎河)를 건너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렀는데 서안평이 옛 고리국(藁離國) 땅이라 하는 바, 서기전108년경 고두막한 시대에는 구려라는 나라는 없어진 것이 된다.

 

구려(句麗)는 단군조선과 고대중국과 그 외 땅을 놓고 볼 때 단군조선의 동서(東西)를 기준으로 중간쯤에 위치하는 나라로서 가운데 땅 즉 중국(中國)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구려(句麗)는 거우리 또는 가우리라고 읽히는 글자로서 가우는 가운데, 중(中)이라는 뜻이고, 리는 땅, 나라라는 뜻으로서 구려(句麗)가 가운데 땅, 즉 중국(中國)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기전37년에 세워진 고주몽의 고구려(高句麗)라는 국명에서 구려(句麗)라는 말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국(中國)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2) 강역

 

구려(句麗)는 소요수(小遼水)와 패수(浿水)의 상류지역과 지금의 적봉시(赤峰市) 등 구려하(九黎河)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서남단에 대동(大同)이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진번(眞番)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선비(鮮卑)와 흉노(匈奴)에 접하며, 북쪽으로는 몽고리(몽골)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낙랑(樂浪)과 발해만 유역의 번한(番韓) 직할지와 고죽국(孤竹國)에 접한다. 즉 구려는 주로 지금의 내몽골 남부지역이 된다.

 

소유수(小遼水)는 지금의 청수하(淸水河)로서 대요수(大遼水)인 영정하(永定河)의 중류 유역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며 합류하는 강이다.

 

패수(浿水)는 지금의 난하(灤河)이며, 구려하(九黎河)는 지금의 서요하(西遼河)의 최상류 지역에 있는 여러 갈래의 강이 된다. 구려하 지역에 지금의 적봉시(赤峰市)가 있다. 옛 구려하 지역은 소위 요하문명(遼河文明)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선비(鮮卑)는 흉노(匈奴)의 북쪽에 위치하며 지금의 내몽골 지역에 해당하고, 흉노는 오르도스 지역이 그 원래의 근거지가 된다. 오르도스 지역에 흉노의 근거지인 약수(弱水)라는 강이 있으며 이 부근에 소금(鹵)이나는 지역도 있는 것이 된다. 소위 흉노도(匈奴刀)라는 첨수도(尖首刀) 화폐에 소금밭을 나타낸 글자 로(鹵)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낙랑(樂浪)은 패수 즉 지금의 난하 중류 지역의 동서에 걸치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에 해당한다. 후대의 소위 한사군에 속하는 낙랑군은 이 난하의 중류지역에서 강의 동쪽보다는 서쪽으로 땅이 훨씬 더 많이 편입되어 있는 것이 된다. 즉 낙랑군의 땅은 난하의 서쪽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고죽국(孤竹國)은 번한(番韓)의 서쪽에 위치하고 구려(句麗)의 남쪽에 위치하며 낙랑의 남서쪽에 위치하는 것이 되는데, 지금의 북경(北京)과 천진(天津)을 중심으로 한 군국(君國)이 된다. 서기전2267년경 이전에 고죽국의 땅은, 단군조선 번한(番韓)이 요중(遼中)이라 불리는 패수인 난하와 대요수인 영정하 사이의 지역에 축조하였던 12성 중의 하나인 영지성(永支城)의 남쪽 일대에, 요임금이 설치하였던 기주(冀州)에서 분리하여 순(舜)임금이 임의로 설치하였던 유주(幽州)가 되며, 서기전2267년에 도산회의에서 단군조선이 이 유주를 폐지하고 단군조선의 직할영역에 편입시키면서 고죽국(孤竹國)을 봉했던 것으로 된다.

 

3) 활동

 

서기전1236년에 구려국은 남국(藍國), 청구국(靑邱國), 몽고리국(蒙古里國)의 군사와 합공(合攻)으로 은(殷)나라를 정벌하여 회대(淮岱)지역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엄(淹), 서(徐), 회(淮)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춘추시대인 서기전651년에 제(齊)나라가 정벌하였다는 산융(山戎)은 위치상으로 고죽국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로서 단군조선 조정이 있는 백악산아사달의 북부여 지역이 아니라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때 제나라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은 산융의 벌목(伐木)작전과 모랫바람 때문에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후퇴하였던 것이 된다. 모랫바람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산융(山戎)은 지금의 내몽골지역에 있었음이 타당한 것으로 된다.

 

4) 구려는 일명 고리국(高離國)

 

구려는 고리국(高離國)이라고도 불리는데, 해모수(解慕漱)의 선조가 살던 나라라고 하며, 해모수가 북부여 시조가 되니 또한 고구려(高句麗)라 불렸다고 기록된다. 이는 해모수의 원래 성씨가 고씨(高氏)로서 고모수(高慕漱)이며, 구려 출신이므로 고씨의 구려 즉 고구려가 되는 것이다. 고주몽의 고구려와 국명(國名)에서 일치하게 된다. 그래서 고구려의 역사는 해모수가 북부여 시조가 된 서기전239년부터 서기668년까지 907년간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해모수가 단군조선을 접수한 서기전232년을 기준으로 하면 고구려의 역사는 900년이 된다.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진(高辰)은 서기전120년에 고리군왕(高離郡王) 즉 고구려후(高句麗侯)가 되었다. 제후는 지방의 왕이므로, 고구려후를 고리군왕이라 하는 것이 된다. 군(郡)이라는 말 또한 군(君)이 다스리는 땅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고주몽이 고구려(高句麗)라 한 것은 해모수의 고구려를 그대로 이은 것이며, 구려(句麗)라는 나라 이름에 높을 고(高)를 붙인 이름이다. 고(高)는 해(解)를 의미하며, 고구려는 곧 하늘의 태양이 높이 비치는 가운데 나라 즉 “태양의 나라 중국(中國)”이라는 뜻이다.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으로서 주위에 수많은 행성을 거느린 중심별인 것과 같다. 고구려는 수(隋)나라나 당(唐)나라를 서토(西土)의 나라라 불렀으니 스스로 중국(中國)이라 칭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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