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7만년 -194]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7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5- 2) 강역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0 [20:49]

[홍익인간 7만년 -194]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7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5- 2) 강역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0 [20:49]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황제헌원의 나라인 황제국(黃帝國)은 유웅국(有熊國) 또는 웅국(熊國)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유웅국은 태백산 부근의 강수(姜水) 지역이 되어 서안(西安)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가 되고, 웅국은 탁록(涿鹿)을 수도로 하여 서안과 탁록 사이의 황토고원(黃土高原) 땅이 될 것이다.

 

탁록은 탁수(涿水)와 관련된 지역이라고 보이는데, 탁수는 지금의 천진(天津) 부근을 흐르는 강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탁록은 북경의 남서쪽에 위치한 것이 되어 웅국의 중심은 서안(西安)과 북경(北京) 사이에 황토고원)黃土高原)이 되는 지역으로서 태원(太原) 부근이 될 것이다. 즉 황제헌원의 나라인 웅국은 소위 황토고원으로서 중원 땅의 북쪽이 되는 황하 건너 북부 지역이 된다. 천진(天津) 부근을 흐르는 강으로 유수(濡水)가 있었는데 지금의 탁수(涿水)가 된다.

 

황제헌원의 나라 웅국은 태원(太原)을 중심으로 하여 배달나라의 동서남북중 중에서 중부(中部)로서 황부(黃部)가 되고, 서안(西安)을 중심으로 하는 서쪽 지역은 서부(西部)로서 백부(白部)가 되며, 산동지역은 동부(東部)로서 청부(靑部)가 되고, 웅국의 북쪽은 북부(北部)로서 현부(玄部) 또는 흑부(黑部)가 되며, 한수(漢水) 이남으로 양자강 이남은 남부(南部)로서 적부(赤部)가 된다.

 

황부는 황제(黃帝)인 헌원(軒轅), 백부는 소호(少昊), 청부(靑部)는 창힐(蒼詰), 현부(玄部)는 대요(大撓), 적부(赤部)는 축융(祝融)이 각각 다스렸으며, 이들 오부(五部)를 통할한 임금이 당시의 한웅(桓雄)인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으로서 치우천왕(蚩尤天王)인 것이다.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는 수도를 박(亳)으로 옮겼는데, 박은 은(殷)나라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며 지금의 안양(安陽)에 해당한다.

 

요(堯)임금은 수도를 평양(平陽)으로 삼아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 하였는데, 평양은 안양의 서쪽으로 태원의 남쪽으로 하여 거의 만나는 분수(汾水) 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요임금은 서기전2357년에 제지(帝摯)를 멸하고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하였으며, 마음대로 구주(九州)를 설치하였는데, 그 땅은 서쪽으로 화산(華山), 북쪽으로 항산(恒山), 동쪽으로 태산(泰山), 남쪽으로 형산(衡山)에 걸치는 지역이 된다.

 

즉, 요임금은 구주(九州)로서, 북쪽에 기주(冀州), 북동쪽에 연주(兗州), 동쪽에 청주(靑州), 남동쪽에 서주(徐州), 남쪽에 양주(揚州), 남서쪽에 형주(荊州), 서쪽에 양주(梁州), 북서쪽에 옹주(雍州), 중앙에 예주(豫州)를 두었다.

 

순(舜)임금은 요임금의 구주(九州)에 다시 기주(冀州)에서 분리하여 병주(幷州)와 유주(幽州)를 설치하고, 청주(靑州)에서 분리하여 영주(營州)를 설치하여 12주를 두었는 바,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 때 단군조선이 병주는 그대로 두고 유주와 영주를 단군조선 직할영역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단군조선은 유주(幽州)의 땅에 고죽국(孤竹國)을 봉한 것이 되고, 영주(營州)는 남국(藍國)에 편입시킨 것이 된다.

 

하(夏)나라는 초기에 우(禹)임금이 수도를 처음 도산(塗山)에 두었다가 모산(茅山, 회계산)으로 옮겼고,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有戶氏)가 하나라와의 토벌전쟁을 포기하고 감(甘)에서 군사를 물리자 우의 아들 계(啓)가 수도를 안읍(安邑)으로 옮긴 것이 된다. 안읍은 황하 동류의 남쪽에 위치한 하남성에 소재한 것이 된다.

 

3) 역사

 

[황제헌원(黃帝軒轅)]

 

황제헌원(黃帝軒轅)은 서기전2698년 계해년(癸亥年)에 유웅국(有熊國)의 왕이 되어 치우천왕에게 10여년간 100여회를 도전(挑戰)하였다가, 결국 서기전2688년경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 전수한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읽고 도(道)를 얻어 굴복하여 진정한 신하가 됨으로써, 배달나라 황부(黃部) 즉 중부(中部)의 최고 천자인 황제(黃帝)로 인정되었던 것이며, 서기전2599년까지 100년을 다스렸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이에 치우천왕의 장수로 황제헌원을 쳤던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아들이 또한 소호금천씨로서 서기전2598년에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천자(天子)가 되었다.

 

소호금천씨는 황제헌원의 친아들이 아니며 치우천왕이 염제신농국을 칠 때 염제국의 장수로서 사로잡혔다가 염제국을 평정할 때 선두에 섰던 치우천왕의 장수였던 것이고, 이후 천자 황제헌원이 훙하자 소호금천씨의 아들이 또한 소호금천씨로서 대를 이었던 것이며, 이후 서기전2514년에 황제헌원의 손자 전욱고양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서쪽의 백제국(白帝國)의 고향으로 되돌아 갔던 인물이다. 소호금천씨는 서기전2598년부터 서기전2514년까지 85년을 다스렸다.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는 창의(昌意)의 아들로서 황제헌원의 손자가 되며, 서기전2514년에 소호금천씨의 뒤를 이어 천자(天子)에 올랐는데, 전욱고양씨가 도를 어겨 배달나라 조정에서 한번 토벌한 적이 있었다. 전욱고양씨는 서기전2436년까지 79년을 다스렸다.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는 청양(靑陽)이라 불리는 현효(玄囂)의 손자이자 교극(蟜極)의 아들로서 황제헌원의 증손자가 되며, 서기전2436년부터 서기전2366년까지 71년을 다스렸다. 제곡고신씨는 수도를 박(亳)으로 옮겼는데, 박은 은나라의 수도이던 안양(安陽)이 된다.

 

[제지(帝摯)]

 

제지(帝摯)는 제곡고신씨의 아들이며 서기전2366년부터 서기전2357년 이복동생인 요(堯)의 침공으로 망할 때까지 9년을  다스렸다.

 

[제요(帝堯)]

 

제요(帝堯)는 서기전2401년생으로 20세이던 서기전2382년경에 제곡고신씨에 의하여 도(陶)에 봉해졌으며, 45세이던 서기전2357년에 이복형이던 제지(帝摯)를 멸하여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하였고, 수도를 당(唐)의 평양(平陽)으로 옮기고 잘못된 오행(五行)사상으로 제왕(帝王)을 참칭하였으며, 배달나라의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을 폐지하여 명협(蓂莢)이라는 풀의 잎이 피고 지는 모습에 따른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였고, 줄곧 전쟁을 하여 이웃 나라를 침공하고 마음대로 구주(九州)를 설치하는 등 배달나라의 법질서를 위반하는 반역자가 되었다.

 

서기전2349년에 당(唐)의 제요(帝堯)가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의 아들인 천군(天君)이자 단웅국의 비왕(裨王)인 성제(聖帝)로서 섭정하던 단웅국(檀熊國:염제신농국 후계)을 1차 침공하였다가 패퇴되었고, 서기전2335년에 2차 침입을 하였으며, 서기전2334년에 3차 기습침공을 하였는 바, 이때 단군왕검은 왕성(王城)을 나가 순방정치를 펼치던 중이었으며, 이에 단웅국은 왕성을 잃었고 결국 단웅국의 천자이던 홍제(洪帝)가 요(堯)의 군사들에게 시해당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왕성을 잃은 단군왕검은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이전에 배달나라 방방곡곡을 순방하면서 도읍지로 보아 두었던, 동북으로 3,000리 떨어진 송화강 아사달로 향하여 서둘러 떠나 요(堯)의 전란을 피하였던 것이며, 이때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가고자 하였으나 너무나 서둘러 떠나는 바람에 뒤따라 가지 못하였던 백성들도 많았다.

 

당시 큰 고개(嶺)와 큰 강(江,水, 河) 등을 넘으며 뒤따라 가다가 결국 따라 가지 못하여 뒤에 쳐졌던 백성들 중 누군가가 큰 고개를 넘던 중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아리랑(阿里嶺)이라는 노래의 시원(始原)이 되는 것이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전해지면서 시원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된다.

 

약 1년후인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은 요임금의 나라를 뺀 배달나라의 구족(九族)의 추대에 응하여, 천왕(天王)의 아들인 천군(天君)으로서 배달나라 정통성(正統性)을 계승하고, 단웅국(檀熊國) 성제(聖帝)로서 단웅국을 계승함으로써, 구족의 나라인 조선(朝鮮)을 개국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324년에 제요(帝堯)는 단군조선의 사자(使者) 유호씨(有戶氏)가 환부(鰥夫), 권사(權士) 등 간부 100여명과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러 오자, 나라를 보존하기 위하여 토벌 직전에 하빈(河濱) 즉 황하 물가에서 영접하여 굴복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요임금은 자칭 제왕이 아닌 단군조선의 정식 천자(天子)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요임금으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단군왕검 천제(天帝)께 조공하도록 장당경(藏唐京)에 안치(安置)하였다. 이에 따라 요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인 천자(天子)로서 장당경에 정기적으로 들러서 단군왕검 천제(天帝)께 예(禮)를 갖추었던 것이다.

 

이후 평화시대가 지속되었는데, 요임금은 다른 뜻이 있어 유호씨의 장자로서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하던 순(舜)의 됨됨이를 살피다가 접근하여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순은 서기전2343년생으로 20세였다. 유호씨는 순(舜)에게 요(堯)를 경계하라고 경고를 하였으나, 순은 이후 듣지 않아 부자(父子) 사이가 나빠져 이로 인하여 순은 중국역사에서 불효자(不孝子)로 기록되게 된다.

 

이후 10년간을 순에게 접근하던 요임금은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었고 이에 서기전2314년 순의 나이 30세에 등용하였다.

 

서기전2294년에 순의 나이 50세에 요임금은 순에게 섭정을 맡겼다.

 

서기전2288년에 대홍수가 발발하였다. 이에 요임금의 섭정이던 순은 곤(鯤)에게 치수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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