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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202]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5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8 [12:08]

[홍익인간 7만년 -202]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5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8 [12:08]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3-

 

5) 견족(견이)

 

[홍익인간 7만년 -202]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5]  견족(畎族)은 황족(黃族)의 분파로서 주로 삼위산(三危山)을 중심으로 서방에 살았는데, 서기전3897년경 한웅천왕의 개천(開天) 때에 반고(盤固)라는 인물이 삼위산(三危山)으로 10간(干) 12지(支)의 신장(神將:道術을 부리는 將帥)들을 이끌고 가서 제견(諸畎)의 가한(可汗)이 되었는 바, 이때의 제견이 곧 모든 견족(畎族)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후대에 견족은 단군조선 말기에 세력이 팽창하여 흉노족과 선비족 등과 더불어 역사상에 등장하는 돌궐족(突厥族)이 된다. 즉 돌궐족이 곧 견족의 후예인 것이다. 지금의 터키가 돌궐족의 후예이며 결국 견이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견족은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사이(四夷) 중에서 서쪽에 위치하여 백이(白夷)의 일파인 서이(西夷)와 더불어 일부 서이(西夷)에 속하는 것이 된다.

 

6) 현족(현이)

 

현족(玄族)은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시에 남방의 인도지역으로 이주한 흑소씨(黑巢氏)의 일파로 추정되는데, 황궁씨를 따라 동북으로 이동하여 멀리 흑수지역까지 가서 정착한 것이 된다.

 

현족은 주로 흑수(黑水) 즉 지금의 흑룡강 유역에 자리잡고 살았으며, 서기전6000년경에 12한국의 하나로서 바이칼호 동쪽에 있었던 비리국(卑離國)의 주인공이 된다.

 

비리국은 고구려 광개토호태황(廣開土好太皇) 비문에 나오는 비려(裨麗) 또는 패려(稗麗)로 보이기도 한다. 광개토태황은 한국시대의 12한국(桓國)에 해당하는 구다천국(句茶川國), 매구여국(賣句餘國), 구모액국(句牟額國), 객현한국(客賢韓國), 구막한국(寇莫韓國) 등을 정벌하였다라고 광개토태황 비문에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구다천국, 매구여국, 구모액국, 객현한국, 구만한국 등은 지금의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에 결쳐 주로 그 서쪽에 존재한 나라가 되는데, 비리국은 대흥안령산맥의 북서쪽 멀리에 지금의 바이칼호 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한편, 구막한국은 단순히 거리상으로만 계산하면 바이칼호의 북서쪽으로 우랄산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는데, 광개토태황이 대흥안령산맥을 넘어서서 지금의 몽골 땅과 서시베리아 평원까지 휘젓고 다닌 것이 아닌가 한다.

 

비리국 자리는 지금은 러시아 연방의 하나인 브리야트공화국 자리가 되는데, 지금의 브리야트공화국 국민들이 흑룡강 유역에 살았던 현족(玄族)과 후대의 말갈족(靺鞨族)의 후예가 될 것이다.

 

7) 백족(백이)

 

백족(白族)은 서기전8000년경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마고성(麻姑城)에서의 오미(五味)의 난(亂)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부끄러워하여 먼저 동쪽으로 일족을 이끌고 나가 선착하여 형성된 족속으로서, 즉 지소씨의 후예가 되며 주로 사막지대에 살아 아시아 백인종이 된다.

 

서기전7197년경에 사방분거시에 황궁씨(黃穹氏)의 일파가 천산몽골 지역에서 남쪽으로 백족(白族)의 땅인 황하유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때 선착민(先着民)이 되는 지소씨족인 백족의 텃세로 인하여 충돌이 일어나 서로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약3,000년 후대가 되는 서기전3900년경에 발생한 소위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난(亂)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즉, 서기전3897년경 이전에 황하 상중류 지역에 살던 황족(黃族)의 일파인 웅족(熊族)이, 부근에 살던 백족(白族)의 땅에 들어가 살려고 이주를 하다가, 백족이 텃세를 부리면서 웅족을 해하고 심지어 쫓아가서 죽이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곧 한국말기에 벌어진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전쟁인 것이다.

 

이때 한국(桓國)의 서자부(庶子部) 대인(大人)이었던 한웅(桓雄)이 홍익인간(弘益人間) 하려는 큰 뜻을 품고 있던 것을, 제7대 지위리(智爲利) 한인(桓因) 천제(天帝)께서 그 마음을 읽고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傳授)하고 명을 내려 천하를 다스리라 하였던 것이며, 이에 한웅이 삼사오가(三師五加)와 무리 3,000을 이끌고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전쟁이 벌어진 황하(黃河) 중상류(中上流) 지역으로 가서 태백산(太白山) 아래 신시(神市)라는 수도를 정하고 하늘나라의 도(道)를 실현하는 개천(開天)을 하였던 것이다. 이에 한웅천왕(桓雄天王)이 되어 호족과 웅족에게 하늘나라의 가르침을 주었는데, 웅족은 잘 따라 백성이 되었고, 호족은 끝내 따르지 않아 사방 밖으로 추방당하였던 것이다.

 

이때 추방당한 호족(虎族)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서기전2698년에 헌원(軒轅)이 유웅국(有熊國)의 왕이 된 때, 황토고원(黃土高原)에 살던 토착민이 바로 호족(虎族)의 후손들이 되며, 이리하여 황제헌원이 다스린 나라의 백성이 곧 호전적(好戰的)인 족속으로서 백족(白族)의 일파인 호족(虎族)인 것이 된다.

 

후대에 은(殷)나라 제후국이던 서쪽의 주(周)나라가 서이(西夷)의 영향하에서 세력을 키웠던 것인데, 이로써 주문왕과 주무왕을 서이(西夷) 출신이라 하는 것이며, 주(周)나라의 주축세력이 바로 서이(西夷)였는데, 이 서이가 곧 백족(白族, 白夷)의 일파인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는 나중에 스스로 중화(中華)라 높이고 서이(西夷)를 서융(西戎)이라 싸잡아 야만족으로 비하하여 버렸던 것이다.

 

서이(西夷)라는 말은 지역적으로 서쪽의 이족으로서 넓게는 백족(白族)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좁게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서쪽에 있던 백족(白族), 주(周)나라의 서쪽에 있던 서이(西夷)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물론, 서이(西夷) 땅에 들어와 살던 견이(犬夷, 犬戎), 흉노(匈奴, 北戎) 등을 싸잡아 서융(西戎)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8) 남족(남이)

 

남족(藍族)은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시에 동쪽으로 이주한 청궁씨(靑穹氏)의 후예로서 적족과는 같은 씨족에서 출발한 것이 되며, 주로 황하 하류의 남쪽으로 산동지역에서 양자강 하류의 북쪽에 걸쳐 살았다.

 

후대에 서기전3528년경에는 태호복희가 산동지역의 진(陳) 땅에 세운 진제국(震帝國)의 백성이 되기도 하였고, 이후 서기전3218년경에 염제신농씨가 태호복희의 나라를 접수하여 세운 염제국(炎帝國)의 백성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서기전2706년경 배달나라 제14대 치우천왕이 수도를 산동지역의 청구(靑邱)로 옮기면서 중심백성이 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남이(藍夷)를 치우천왕의 후손이라고도 부르며, 태호복희의 후손이 되는 풍이(風夷)를 남이(藍夷)라고도 하게 되는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치우천왕의 후손인 치두남(蚩頭男)이 남국(藍國)에 봉해졌고, 서기전1236년에는 남국(藍國)이 강성하여 청구(靑邱), 구려(句麗), 몽고리(蒙古里)의 연합군과 함게 은(殷)나라를 정벌하고서 엄국(淹國,淹夷), 서국(徐國,徐夷), 회국(淮國,淮夷)을 봉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남족(藍族) 즉 남이(藍夷) 계통에 속하는 것이 된다.

 

이후 남이와 엄이가 언제 소멸되었는지 분명한 기록이 없으며, 서이(徐夷)는 서기전512년에 오(吳)나라에 망하였고, 회이(淮夷)와 사이(泗夷)가 서기전221년에 진시황에 망함으로써 진나라에 흡수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9) 적족(적이)

 

적족(赤族)은 남족(藍族)과 더불어 청궁씨(靑穹氏)의 분파인데, 주로 양자강 남쪽으로 해안가에 걸쳐 살았으며, 배달나라 시대에 축융(祝融)이 남방의 최고 임금인 적제(赤帝)로 봉해져 다스렸던 것이 되고, 단군조선 시대에는 특별히 봉해진 나라로서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자치세습국으로 내려온 것이 되는데, 주(周)나라 때 초(楚)나라, 월(越)나라, 오(吳)나라의 주된 백성이 된 것으로 된다.

 

적족은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남이(南夷)로서,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주나라 주변의 동서남북에 존재하던 이족(夷族)들을 나누어 부를 때, 남만(南蠻)이라고 비하하여 불렀던 것이다.

 

특히 남만에 해당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월(越)나라는 후대에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남쪽의 월(越)나라라는 글자로서 지금의 베트남(越南)이 되었다. 베트남의 선대역사는 염제신농씨 나라의 역사에 이르는데, 염제신농씨의 나라가 지금의 산동지역 남방에 자리하였으므로 그 백성들이 적족(赤族) 즉 적이(赤夷)와 혈연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되고, 이러한 역사로 인하여 베트남의 역사는 염제신농씨의 역사와 당연히 연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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