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7만년 -204]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7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22 [06:44]

[홍익인간 7만년 -204]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7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22 [06:44]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5-

 

5) 북이(北夷, 북적(北狄), 북융(北戎), 황이(黃夷))

 

[홍익 통일 역사= 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북이는 곧 황이(黃夷)이다. 주(周)나라의 북쪽에 있던 황이를 북적(北狄) 또는 북융(北戎)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 북이에는 황이에 속하는 서북쪽의 견이(畎夷)를 제외한 황이(黃夷)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 된다. 즉 북이에는 주나라 가까이에 위치하여 북적, 북융이라 불리던 흉노(匈奴), 선비(鮮卑)는 물론 산융이라 불리던 구려(句麗)와, 기후국(箕侯國), 고죽국(孤竹國), 번한(番韓) 등을 포함하여 멀리 떨어진 몽고리(蒙古里), 부여(夫餘), 숙신(肅愼), 옥저(沃沮) 등의 진한(眞韓) 관경(管境)까지 해당된다.

 

다만, 산동지역에 위치하였던 청구(靑邱)는 황이(黃夷)에 속하지만, 주(周)나라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므로 남이(藍夷)와 함께 특히 동이(東夷)라고 부르는 것이 된다. 물론 동이(東夷)를 구이(九夷)의 종주(宗主)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을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북이(北夷)가 포함되는 것이 된다.

 

고대중국을 형성한 북이(北夷)는 황이(黃夷)의 일부가 되며, 넓게는 구이(九夷) 중에서 단군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에 해당하는 동이(東夷)에 속하면서, 더 넓게는 동이(東夷)라 불리는 배달나라 구족(九族), 구려(九黎)에 속하는 황이(黃夷)가 된다. 즉 황이(黃夷)>동이(東夷)>북이(北夷)가 되며, 또는 경우에 따라 동이(東夷:九黎)>황이(黃夷)>북이(北夷)가 된다.

 

고대중국의 역사에 기록된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이하의 제왕들이 모두 황이(黃夷)의 일부인 북이(北夷) 출신이며, 배달나라를 동이(東夷)라 할 때는 모두 동이 사람이 된다.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인 황제헌원은 황이(黃夷)의 일족인 웅족(熊族) 출신으로서 곧 북이(北夷) 출신이 되고, 특히 요(堯)임금을 북적(北狄) 출신이라고 하며 또한 태호복희의 후손인 풍이(風夷) 출신이라고도 하고, 순(舜)임금 또한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동이(東夷) 출신으로서 북이(北夷) 출신이 되는 것이다.

 

하(夏)나라 시조 우(禹)는 단군조선 본국을 가리키는 동이(東夷) 출신인 순(舜)임금과는 대조적으로 요(堯)임금의 무리로서 중국 내륙의 동이(東夷)가 되는 남이(藍夷)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 남이는 곧 풍이(風夷)이므로 풍이 출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임금의 성씨는 사(姒)인데 이 사성(姒姓)은 태호복희 후손의 성씨이기도 하다. 즉, 우임금은 원래 부계(父系)는 황제헌원의 후손이면서 그 모계(母系)가 태호복희 후손이 되고, 성씨를 모계성(母系姓)으로 삼은 것이 된다.

 

하은주 시대에 북이(北夷) 즉 북적(北狄)의 나라로는, 그들의 북쪽에 위치하였던 흉노(匈奴), 선비(鮮卑), 돌궐의 선대인 견이(畎夷, 犬戎), 몽골(蒙古里), 고죽(孤竹), 구려(句麗), 기후국(箕侯國, 須臾國) 등이 있었다. 하(夏)나라와 은(殷)나라 시대에는 그냥 황이(黃夷)라 불렀던 것인데 이는 단군조선 구족(九族)의 하나가 되며, 서기전403년 이후 주나라 전국(戰國)시대에 접어들어 북쪽의 황이(黃夷)를 특히 북적(北狄), 북융(北戎)이라 부른 것이 된다.

 

역사상 주(周)나라 전국(戰國) 시대와 진한(秦漢) 시대 이후에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돌궐(突厥), 구려(句麗), 고죽국(孤竹國)과 기후국(箕侯國)이 망하면서 동쪽으로 이주한 땅이 되는 번조선(番朝鮮, 番韓) 땅에 살던 북이(北夷) 또는 동이(東夷)를, 북적(北狄), 흉노(匈奴), 동호(東胡)로 때로는 나누어 부르고 때로는 통칭하는 등 하였던 것이 된다.

 

흉노와 선비는 서기500년경까지 북중국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선비족 계통의 나라인 수(隋)나라와 당(唐)나라를 이으면서 중국화 하였던 것이 되며, 돌궐은 당나라 시대에 북쪽으로 몽골지역까지  통할하던 대제국으로서 고구려(高句麗)와 고구려의 후계국인 대진국(大震國)과는 동맹을 맺은 형제국이었다.

 

구려(句麗) 땅은 후대에 거란(契丹)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서기907년에 시작된 요(遼:거란)의 왕족인 야율씨(耶律氏)가 또한 원래 고구려 출신의 고씨(高氏)이기도 하다.

 

번조선(番朝鮮) 땅은 서기전108년에 위씨조선(衛氏朝鮮)이 망하면서 북부여 이후 고구려 시대까지, 고대한국(古代韓國)과 한(漢)나라, 단군조선의 후예인 북중국(北中國)의 선비, 흉노 등 여러 나라가 서로 밀고 밀리면서 영토(領土)를 다투던 격전지가 되었다가, 서기313년 고구려의 미천제(美川帝)가 마지막으로 패수(浿水)라 불리던 난하(灤河) 유역에 걸쳐 있던 낙랑군(樂浪郡)과 서기204년에 공손강이 낙랑군의 남쪽을 분할하여 설치한 대방군(帶方郡)을 완전히 축출하고 현도군(玄菟郡)을 정벌함으로써 소위 한사군(漢四郡)에서 시작된 군(郡)의 명칭이 사라지게 된다.

 

6) 사이(四夷)와 고대중국의 도(道)의 뿌리

 

고대중국의 기록은 "중국이 예의를 잃으면 사이(四夷)에서 예의를 구했다“하거나, ”천자(天子)가 자리를 잃으면 사이(四夷)에서 배웠다" 하는 등 하면서 사이(四夷)를 칭송하다가, 갑자기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격하시키거나, 배반이니 반란이니 도적질이니 하는 등 하면서 도덕군자(道德君子)를 하루아침에 도적반역자(盜賊反逆者)로 모는 이율배반적인 기록을 하고 있다.

 

서기전2698년에 배달나라 제후국인 유웅국(有熊國)의 왕이 되어 배달나라 치우천왕과 100여회의 전쟁 끝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의 가르침으로 진정한 신하가 되었던 황제헌원은, 자부선인이 전수(傳授)한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의 가르침으로 도(道)를 얻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사이(四夷)를 통할하였던 단군조선(檀君朝鮮)은, 반란이나 반역을 하지 아니하면 원칙적으로 자치를 인정해 주었는데, 하은주(夏殷周)의 고대중국은 수시로 전쟁(戰爭)을 일으키거나 폭정(暴政)을 하거나 음란(淫亂)을 일삼거나 하는 등 예의(禮義)와 도(道)를 잃고 천자(天子) 자리를 욕보이는 소행을 자주 저질렀던 것이 된다.

 

서기전2698년경부터 100여회에 걸친 황제헌원의 치우천왕에 대한 도전(挑戰)은 약10여년 동안 잠시나마 예의(禮義)와 도(道)를 잃었던 소행이었고, 이후 서기전2357년에 당(唐)을 세운 요(堯)의 제왕주창(帝王主唱)과 오행망설(五行妄說)과 타국침탈(他國侵奪)이 특히 그러하였으며, 서기전2284년에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강압적으로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한 순(舜)의 소행이 또한 그러하였고, 더우기 서기전2247년 이후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산동지역의 내륙 동이(東夷)와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던 소행이 그러하였다.

 

또, 서기전2224년에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왕(王)이라 참칭하며 하(夏)나라를 세워, 마음대로 제후를 봉하여 조공(朝貢)을 받으면서 피난하던 백성들이 피하지 못하도록 국경을 봉쇄하였던 우(禹)와, 그 아비 우(禹)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죽기로써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외면하였던 계(啓), 그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던 하나라 말왕인 걸왕(桀王)이 특히 그러하였고, 은나라 시대 전쟁을 일삼은 몇몇 왕과 폭정을 일삼으며 또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던 말왕인 주왕(紂王)이 특히 그러하였다.

 

또, 서기전770년 이후 주나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약300년간 패권(覇權)을 다투면서 종주(宗周)의 천자(天子)를 무시하였던 제후들과, 서기전403년 이후 약200년간 무참히도 전쟁을 벌여 백성들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였던 소위 전국시대 칠웅(七雄)인 왕(王)들이, 모두 진정한 왕도(王道)를 벗어난 폭군(暴君)과 다름없거나 폭군(暴君)으로서, 그 소행들이 특히 그러하였던 것이다.

 

또한, 서기전221년 전국(戰國) 시대를 마감시키고 폭정(暴政)을 펼치면서 스스로는 불사신선(不死神仙)이 되고자 하였던 진시황(秦始皇)과 서기전108년 정복전쟁으로 위씨조선(衛氏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후대에 전쟁의 불씨가 되도록 만들면서 스스로는 불사신선(不死神仙)이 되고자 하였던 한무제(漢武帝)가 또한 그러하였던 것이다. 

 

역사상 폭군(暴君)은 왕(王)이라 하지 않고 한 단계 강등시켜 군(君)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는데, 고대중국 역사상 전쟁을 일삼은 왕들은 진정한 왕도(王道)를 실천한 왕이 아니라 그냥 폭군(暴君)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은(殷)나라 시대에 제(帝)라고 기록되는 경우 거의 폭압적인 정치를 펼치고 전쟁을 일삼은 자로서 폭군(暴君)에 해당한다. 즉 제(帝)의 진정한 의미로서 진정한 왕도(王道)를 펼치는 절대권력의 임금이 아닌, 전쟁이나 폭정을 펼친 폭군(暴君)의 의미로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고대중국 내의 폭정 등 정치상황이 벌어지는 시기에는, 그들 주변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자치제후국인 구이(九夷)들이 견제하고 간섭하고 정벌하여 홍익인간 세상을 회복하려는 행위를 하였던 것인데, 이러한 구이들의 도(道)에 따른 역사적 행위를 후대의 중화주의자들이 배반이니 반란이니 도적질이니 하며 와전(訛傳)시키고 격하(格下)시키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군사부(君師父)의 나라인 단군조선(檀君朝鮮) 즉 구이(九夷)의 나라를 야만(野蠻)의 오랑캐 나라, 도적(盜賊)의 나라로 몰아, 충의(忠義)와 신의(信義)를 배반하고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을 거역(拒逆)하는 패륜행위(悖倫行爲)로서, 우매(愚昧)하게도 진정한 조상과 진정한 스승과 진정한 임금을 알지 못하고, 무시(無視)하고, 부정(否定)하고, 심지어 환부역조(換父逆祖)까지 서슴지 않는 소행인 바, 인간역사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족속, 인간말종(人間末種)의 망령(妄靈)된 악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중국역사상 역대 왕조들이 그들의 뿌리를 망각하고 전쟁에 몰입하여 정복욕을 실행함으로써 백성들을 혹사한 행위는 제족자치(諸族自治), 자유개물(自由開物), 평등평화(平等平和)를 실현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에 역행하는 악행으로서, 이들의 침략전쟁과 정복욕을 진압하려 소진한 북부여(北夫餘), 고구려(高句麗), 대진국(大震國)의 정기(精氣)는 실로 아까운 것이며, 종주(宗主)인 한국(韓國)의 역사를 침탈하려는 그들의 행위자체가 역사적 오류인 것이다.

 

지금의 중국이, 신라와 고구려와 대진국의 역사적 산물인 금(金)의 후예인 후금(後金) 즉 청(淸)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다가, 이제 와서 그들 자체의 역사로 윤색날조하고 그 영토내의 역사를 지방의 역사로 만드는 행태는 실로 역사의 앞뒤를 뒤집는 환부역조(換父逆祖)의 작태이며, 결론적으로 역사상 한(漢)나라의 왕족, 지배층을 중심으로 하는 한족(漢族)이라는 족속의 정체성은 없는 것이 된다.

 

지금의 중국은 영토를 넓혀준 청나라의 역사에 감사하고 받드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이며, 역사도둑질에 눈독을 들이지 말고, 여기서 나아가 청나라의 뿌리인 한국(韓國)의 역사를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정통성의 역사와 영토상의 역사는 다를 수 있다. 즉 영토상 이동이나 축소의 역사를 가지는 경우에, 원래의 영토상의 역사도 당연히 역사인 것인 반면, 후대에 그 영토를 차지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들의 정통역사가 아니라 한때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 그대로 존재하여야 하는데, 후대에 땅을 차지한 자들이 과거의 역사를 그들의 정통역사로 꿰매는 작태는 역사를 탈취하는 것이며, 심지어 역사강탈인 것이다. 역사도둑질은 조상을 능멸하고 하늘을 부정하는 인간말종의 행태로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가들에 의하여 반드시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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