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우리 유태인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홀로코스트는 날조'- (1) (2)편

이성민 기자 | 기사입력 2018/04/20 [02:27]

[영상] "우리 유태인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홀로코스트는 날조'- (1) (2)편

이성민 기자 | 입력 : 2018/04/20 [02:27]

 

▲ 1933년 미국에서 "우리 유태인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었다.   © 이성민 기자

 

▲ 유대인 대량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 한 장면. 가스실에서 죽였을까? 이스라엘은 매년 독일 등 세계각지에서 1000억달러 정도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영화 등으로 제작해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홍보하고 있다.     © 이성민 기자

 

 [이성민 기자] '당신이 아는 나치의 아우슈비츠는 가짜다. 홀로코스트는 날조되었다.'는 명제 아래 독일의 유태인학살 관련 2차대전의 진실을 담은 새로운 영상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발진티프스를 막기위해서 머리를 삭발한 여성 수감자들     © 이성민 기자

 

▲ 아우슈비치에 수용된 유대인 실제사진     © 이성민 기자

 

토빈 박사 측은 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6년 전인 1933년, 유태인과 시온주의자들이 "우리 유태인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고 선전포고를 했다는 사실이며, 영국이 먼저 독일을 공격했다.

 

특히 2차대전 발발 전, 폴란드에서 독일인을 강제수용하며 잔혹하게 학살하자, 독일이 강력항의 하며 폴란드로 진격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즉각 전쟁을 선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영상은 프레드릭 토빈 박사(Dr. Fredrick Töben)가 호주에서 30년이상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토빈 박사는 이 비디오를 만들어 '혐오'를 선동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 되기도 했다.하지만, 토빈박사는 유태 패권 세력의 부당한 탄압에 절대로 굴하지 않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토빈 박사 홈페이지 : http://www.toben.biz/) (원본 비디오 : https://www.youtube.com/watch?v=4Atso...)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시골 오슈비엥침의 독일식 발음이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이지역 출신이다. 아우슈비츠에 한 번 들어갔던 정치인, 종교인, 유대인이 다 죽었다고 세뇌시켜 왔지만, 젊은 시절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멀쩡히 풀려나왔다는 사실이다.

 

▲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 비루게네프. 사진=오동석 작가     © 편집부

 

아우슈비츠 등 2차대전 독일의 형무소를 50번이상 탐사한 오동석 작가는 "아우슈비츠 형무소에 가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는 것과, 필자처럼 50번 이상 가서 뒤져보고 알고 있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전제하며 아래와 같이 사실을 적고 있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둘러볼 때 가지는 의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은 잘 만들어 졌다. 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생지옥 같은 곳에서 중노동을 시키다 죽던지 말던지 할 사람들에게 저렇게 좋은 시설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숙소동 뒷 쪽에 가면 지금도 수영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장이 왜 있어야 하나?


한번에 3,000명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쏟아 부어 죽였다는 장소는 너무 비좁아 300명만 들어가도 사람들로 인해 질식사 할 지경이다. 그런 가스실과 소각로가 있는 건물에서 장교 숙소가 15m 정도도 안 떨어져 있다.

장교숙소 옆에 가스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가스실이라는 곳의 바닥엔 칸막이가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가스실 이전에 용도가 뭐였을까?

바로 장교들 식당이었다. 그래서 칸막이 흔적이 있는 것이다.

소각로도 급조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소각로 벽돌은 붉은 색이며 그으름이 거의 없다.

그 곳에 대한 동영상이 나돌자 최근엔 접근을 할 수 없게 조치를 취했다.

소각로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벽도 역시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 이 가스실 바닥을 촬영한 동영상이 돌아 다니자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와서 간단하게 보고 나가게 만들었다. 즉,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내부에 희미한 불빛만 보이게 만들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시키고 있다.

진짜 아우슈비츠에서 600만이 죽었다고?

다양한 조사를 한 결과 600만이라는 숫자가 거짓임에 드러나자 100만까지 내려갔다.

유대인 우파와 좌파간의 갈등에서 나오는 대화 중 "불과 몇 천명 죽은걸 가지고 왜 떠드냐?"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만 죽었나? 러시아는 1,500만명이 죽었다.

독일의 드레스텐은 피난민과 현지 민간인만 있었고 군대가 없었음에도 하룻밤의 공습으로 40만명이 죽었다.


이스라엘은 매년 1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피해보상금을 독일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받고 있다.

천문학 적인 금액 때문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우슈비츠 신화를 더욱 다지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세계 수 백 개의 사이트와 100종류의 책들이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그런 책을 만들거나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을

‘재평가론자’ (Revisionist 리비져니스트) 또는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재평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정주의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유대인 시오니스트에게 얻어맞아 중상을 입고 있고 체포되어 감옥에 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대량학살에 대한서 분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즉, 언론의 자유가 절대 허용이 안되는 부분이다.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무기징역이다.(살인은 13-17년형을 사는데...)

 

▲ 폴 라시너     © 이성민 기자

 

'홀로코스트는 날조다'라는 의혹제기는 그동안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다. 홀로코스트가 유대인이 날조한 허구이거나 과장이라는 주장은 1960년대 초부터 프랑스인 폴 라시너( Paul Rassinier , 1906~1967) 등에 의해 제기돼왔다. 라시너는 나치의 수용소 가스실(샤워실)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 나다니엘 신부(Brother Nathanael)는 유태인으로서, 나중에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하여 유태 금융/언론 패권세력의 세계 전복 음모를 폭로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 이성민 기자

 

참조: 홀로코스트는 날조 입니다 (2편) "유태인인 나도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uI-I1k_6Jns)

 

다음은 오동석 작가가 그동안 공개한 자료이다.

 

관련 서적 : 홀로코스트 산업(원재 :The Holocaust Industry -2003 출간). 저자 노르만 핀켈슈타인. 신현승 (옮긴이) 한겨레출판

아래 자료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오래전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한  40개의 질문에 대한 영문을 번역한 것이다. 
8년 정도 공개되었던 내용이며 한 동안 닫았다가 다시 공개한다.


1. 나치가 대량학살 또는 유대인 6백만을 죽였다는 증거가 존재 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남은 개인들의 서로 상반된 증언이 있고, 죽은 자들을 보면서 어떤 가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만 있다.

 결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사체를 소각해서) 쌓여 있는 재도 없었고, 모아놓은 옷도 없었고, 화장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고, 인간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도 없고, 사람의 피부로 만든 램프 갓도 없고, 어떠한 기록도, 사람에 대한 통계도 없다.

반면에 과학적 변론과, 인구학적인 분석, 기록물들, 수많은 일화등 엄청난 양의 증거가 있다. 600만 이라는 숫자의 유태인들이 죽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명백한 증거가 되는 비교 사실은 이런 과장된 내용이 1000% 거짓임을 보여준다.

 

2.독일의 집단 수용소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일본인들과 독일계 미국인들을 의도적으로 격리 수용한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명칭 이외에 단지 다른 것이라면 독일의 수용소 용도는 독일의 전쟁집중에 위협할 요소가 있거나 위협적인 인물들을 강제수용 시킨 것이다. 반면 미국은 민족과 국가가 어디냐를 근거로 해서 사람들을 강제 격리 수용시켰다.

3. 왜 독일 당국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시켰나?

 이유는 독일이 보기에 유대인은 독일의 종주권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으며 명백한 사실로도 드러났다. 유대인들은 압도적으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대표했으며 공산주의 전복을 주장했다.

유대인 개인 개인들은 정부, 사회, 미디어의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의 안전에 위험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자 강제 격리 되었던 것이다.

1933년 3월24일 국제 유대사회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 걸쳐 독일 물건 불매할 것을 정했다. 이런 운동의 이유는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을 끌어내리고 그 권력을 독일인들에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불매운동 전개와 유대가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세계 신문들이 보도했고 방송이 되었다.

사실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는 2차 세게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돌아다니던 말이다. 따라서 독일이 유대인들을 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은 지극히 정당화 된 것이었다 보여 진다.

 

4. 시몬 비젠탈은(SIMON WIESENTHAL) 독일 땅에 죽음의 캠프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1975년 4월에 출판된 *Books and Bookmen* 에서 그는 폴란드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가스로 죽였다고 했다.

 

5. 다카우DACHAU(주: 독일 Munchen뮨션에 있는 수용소)는 독일에 있다. 시몬비텐탈은 지금은 비록 다카우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었다라고 하는데 왜 수 천명의 미국 재향군인들은 다카우를 죽음의 캠프라 말하나?

왜냐하면 연합군이 다카우를 접수하고 나서 (그리고 고의적으로 다카우 전임자 수십명들을 법적인 절차도 안 거치고 죽였다), 미국 하사관들이 캠프를 보여 주었고 가스실이라 의심되는 건물을 보여 주었다.

공식적인 홀로코스트 일화에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조용히 삭제되었다. 이유는 연합군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지역인 이곳에 접근하는 것이 너무 쉽고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곳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앙 파상(En passant)의 ‘다카우 죽음의 캠프’ 라는 간략한 내용의 책이 처음으로 철저한 조사를 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신화에 대해 역사가와 몇몇 연합군 재향군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봤던 수용소와 읽었던 공식적인 기록이 상반되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지금과 같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이 교정되어서 힘을 얻기 한참 전의 일이다.

 

6.독일이 아닌 폴란드에 있는 아유슈비츠에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가스실이 존재 한다는 증거가 있나?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가스실은 가스를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곳이다. 공간이 너무 비좁고 공기가 차단된 곳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인 전문가 프레드 로흐터(Fred Leuchter)가 미국 패널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화학적인 조사를 위해서 아우슈비츠 가스실 벽을 긁어서 가져갔다. 미국인 패널들인 조사위원들은 아무런 청산가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거짓이고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단순하고 얄팍한 속임수다.
 
7. 만약 아우슈비츠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라면 이곳의 진짜 사용 목적은 무엇이었나?

 이곳은 대규모 제조 공장이었다. 화학 합성 고무(Buna)를 만들었고 노동인력은 수감자들이었다. 같은 논리로 미국에서도 현재 수감 인력들이 점점 늘어나면 교정 또는 징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같다.
 (참고- 중국은 현재 수 천만 명의 수감자가 무임금 유노동을 하고 있다)


8. 악명 높은 지클론-비(Zyklon-B) 가스는 뭐냐?

 지클론 비는 상업적인 만들어진 시안화수소 가스 합성체다. 수 많은 공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가스를 옷에 훈증해서 기생충이나 해충들을 박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사용되었다. 지클론 비는 아직까지 제조되는 물질이며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지금도 구매 할 수 있다.

 

9. 만약 아우슈비츠가 살인 캠프가 아니라면, 수용소 소장 이었던 루돌프 회스

(RUDOLF HOESS)는 왜 살인 가스로 유대인들을 죽였다고 자백했나? 

회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에게 붙잡혔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회스는 600만 유대인들을 죽였다는 단 하나의 사항에 자백했고 (문서에)싸인 했지만 문서는 회스가 읽지 못하는 영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오리지날 문서들의 몇몇 페이지에는 글자 그대로 ‘회스의 혈흔’이 남아 있다. 회스는 간단하게 처형되었다. 연합군에 의한 시각에서 또는 다를 각도로 신문을 받아 보지 못했다.

 

10. 지클론-비가 사용된 공간을 환기시켜서 사람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약 20시간이 걸린다. 전체 과정은 극도로 조심스런 기술을 요한다. 가스 마스크를 사용해야 되고 숙달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

 

11. 루돌프 회스는 그의 자백에서 가스를 사용한 뒤 10분 만에 처리요원들이 방에 들어가서 죽음 유대인들의 사체를 끌어냈다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설명이 불가능 하다. 이유는 그런 식의 일은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독일군들이 그렇게 행동 했다면 근거 없는 주장으로 죽음을 맞이 했다는 유대인들처럼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이 되어 똑같이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12. 회스는 그의 자백 기록에서 그의 요원들은 가스실에서 시체를 끌어내면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가스가 가득한 방에 10분 뒤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 지클로-비는 폭발하는 걸로 아는데?

폭발위험이 매우 크다. 회스의 자백은 명백히 조작된 것이고 6백만이라는 사항 역시 마찬가지다.

 

13. 어떻게 그런 집단 살인에 대한 계획내용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조차 비밀로 유지되어 오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바티칸 교황청, 국제 적십자 그리고 연합군의 정보기관에서 그런 사실들을 모를 수 있었을까?

미국의 OSS (註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 사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 의 침투와 영국의 첨보기관 MI5, 소련의 VKVD(비밀경찰)들이 ‘제3국’(독일을 지칭)에 침투하여 이것이 비밀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을 멸망시키려고 싸웠던 어떠한 연합군의 개인도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파워있는 잠제적인 선전의 무기로써 전쟁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당시 어떤 증거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용 할 수 없었다.

 

14. 독일 집단 수용소용서에서 실제로 몇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나?

약 삼십만(300,000)명이다.

 

15.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대부분 전염병인 발진티프스 발병으로 죽었다. 발진티프스는 전쟁으로 상처가 난 유럽에 유행 했었다. 발진티프스는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발병한다. 전염매체는 기생충들인데 머리와 옷에 서식을 한다.

 만약 독일이 더 많은 지클로-B를 살균의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더 많은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 유대인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의료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죽었다. 연합군들의 폭격으로 인해서 도로와 철도가 끊어지면서 도움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6. 숫자상에서 6백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와 삼십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의 차이는 얼마인가?

질문의 요지는 제3국(독일)이 의도적고 계획적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을 근절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었냐 아니냐다. 증거들은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의 관심은 ‘집단 학살’이 있었다 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의 정체성과 그런 행동들 그리고 그들의 재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들 쪽으로 옮겨져야 된다. 악마인 그들은 지난 60년간 괴상한 중상모략으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거짓으로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17. 살아남은 많은 유대인들은 구덩이에 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는 걸 보았고 불을 태웠다고 했다. 그렇게 불태우는데 얼마나 많은 개솔린을 사용했나?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을 했거나 소모시킬 수 있었다. 확실하다

(주- 질문과 답이 엉뚱한 이 부분은 작성자가 실수로 다른 말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임).

 

18. (노천)구덩이에서 시체들을 불 태울 수 있는가?

없다!

화염이 충분하지 않고, 열이 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구덩이에서 사람의 사체를 완전히 소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Harold Covington의 기록 : 군대를 가진 공산주의자들과 미국인들의 잔악행위를 관찰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가솔린이나 네이팜으로 한 집단의 사람들의 사체들은 한 구덩이 속에 넣어서 완전히 소각시키거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대량학살 전문가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귀찮아하는 증거 사실들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앵무새가 말하듯이 조잘대는 것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 홀로코스트 저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나찌들은 시체들은 소각시켜 재로 만드는데 10분 걸렸다고 했는데 화장 장례 전문가에 따르면 시체를 재로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나?
약 2시간 걸린다. (당시기술로)

 

20. 왜 집단 수용소엔 소각로가 있나? 
발진티프스나 다른 병으로 죽은 사체들을 효율적이면서 위생적인 처리를 위한 것이다.

 

21. 독일이 통제하던 영역에 있던 모든 수용소에서 존재 했다고 알려진 모든 소각로를 100%가동해서 수용소가 존재하던 기간 동안 쉬지 않고(하루 24시간) 시체들을 소각한다면 총 몇 구의 시체를 처리 할 수 있나?

약 430,600구의 사체다.

 

22. 소각로들은 당시 100% 가용을 했었나?

당시에 있던 것을 최대한 많이 잡아도 50%만 사용 했었거나 하루에 12시간만 사용했다. 소각로들를 험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철저히 청소할 수 밖에 없었다.

 

23. 사체를 소각하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은 재가 남나?

소각 후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뼈를 완전히 가루로 만든 다음 모으면 신발 한 켤레 박스 정도가 된다.

 

24. 만약 나찌가 6백만 명을 태워서 재로 만들었다면 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게 남았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설명이 되는 것이다. 6백만 명의 사체가 만든 재라면 글자 그대로 엄청난 톤수의 재들이 모인 ‘재의 산’이 된다. 아직까지 거대한 양의 재가 아우슈비츠 주변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고 다른 유럽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다.

 

25. 연합군 공군이 찍은 아우슈비츠 항공사진에 소각로에서 연기나 나오는 어떤 모습이라도 있나?

없다. 계속해서 수용소를 감시하면서 날아 다녔지만 그 사진들 속에는 많은 양의 연기가 올라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채를 태웠다고 하는 노천 구덩이라고 추정되는 곳도 발견되지 않았다.

 

26. 국제 적십자에선 모든 홀로코스트의 결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나?

1944년 9월 IRC(국제 적십자사) 방문단의 아우슈비츠 방문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수감자들은 소포를 받을 수 있었으며 가스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때 국제적십자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소위 홀로코스트와 광범위한 알려진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에 대한 조사 기록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흥미 있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1996년 미국과 유럽의 자유 매체들은 “나찌를 동조하는 국제 적십자”라고 주장하는 연속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날조다. 사실에 입각한 조사와 철저한 분석들이 빛을 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홀로코스트의 신화가 점차 무너져가자 다시 부추기기 위한 선동이었다.

 

27. 안나 프랑크의 일기는 사실인가?

아니다.

출판된 내용과는 다르다.

스웨덴의 디츨리에브 펠데레 (Dietlieb Felderer) 와 프랑스의 호베르 파이숑(Robert Faurisson) 박사가 조사해서 밝혀내서 발간한 자료 증거에 의하면 출판된 유명한 일기는 철저히 날조된 것이다. 안나 프랑크(Anna Frank)라는 소녀의 이름과 일기의 일부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레즈비언 동성연애를 경험했었던 장소의 이름도 진짜였다. 동성연애 사실은 출판되면서 삭제되었다.

1950년 안나 프랑크의 아버지는 책에 대한 사용료에 대해 안내의 일기를 쓴 작가 메이러 레빈(Meyer Levin)을 고소했다.

뉴욕의 유대인 판사는 책을 100년간 볼 수 없도록 봉하는 명령을 내렸다.

몇 년 뒤 일기 원본이 전시 되었을 때 책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서 볼펜을 이용해서 필사본을 위조해서 끼워 넣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볼포인트 펜은 1950년 이전에는 있지도 않았던 필기구다. (유럽은 1951년에 보급시작) 전시되어 있던 원본 일기는 갑자기 횡 하니 사라져 버렸다. 

메이러 레빈은 3번째 안네의 일기를 작성했고 마지막으로 완성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첫번째 안네의 일기를 작성한 사람은 Otto Frank이 두번째는오토의 친구인 Meip Geis라는 여자에 의해서 였다.

 

그녀가 두번째 버전을 오토에게 주었다.

 

안네의 일가기 가짜라고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는 기사.

http://northerntruthseeker.blogspot.kr/2011/11/more-exposure-of-real-history-ann-frank.html

 

28.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비쩍 마른 사체들과 아주 여윈 사람들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기록영화와 같은 필름과 수많은 사진들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조작인가?

 몇 개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막이나 설명은 조작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공습으로 인한 독일인 시체들의 사진에 죽은 유대인이라고 쓰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들고 있는데 총살하는 장면이 담겨진 유명하면서도 자주 재 인쇄가 되는 사진의 설명에는 "Nazi SS man"이라고 쓰여 있다.

이 흐릿한 인쇄물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군대 역사가들은 사진에서 보는 제복과 총을 잘 알고 있다.사진 속의 살인자는 붉은 군대 병사로 러시아제 카빈총을 들고 있다. 이 것은 러시아의 스탈린이 악행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 3대 도살자하면 스탈린, 이반뇌제, 피터대제이다. 스탈린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수많은 독일 포로들을 폴란드에서 학살시킨 사실이 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군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굶어 죽였다. 당시 독일에서 피신해간 유태인들도 다수 포함 되어 있을 거라 추정됨)

 

29. 600만 유대인들이 죽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전쟁 당시 바티칸은 어떤 역할을 했나?

 만약 폴란드와 같이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들인 나라에서 말살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티칸은 분명히 이것을 알려고 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살 계획이 당초에 없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다.</FONT>

(주-폴란드는 공산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도 전체인구의 90% 이상이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30.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는 어떤 증거가 있나?

없다.

나찌의 어떤 부서에서 고의적인 의도에서 말살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문서도 드러나 있지 않다. 히틀러가 사인했거나 SS-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또는 다른 어떤 제3국(독일)의 기관에서 명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근절시켜야 된다는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나찌는 매우 신중하게 기록을 보관하는 사람들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연합군들은 엄청나게 분량의 문서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기록보관인들과 학자들이 몇 년씩 고용되어서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전혀 없다. Nothing. Zip. Nada.

 

31. 전쟁 이전과 전쟁 동안에 독일인들과 시오니스트(유대인 시온니즘 숭배자들)이 협력했나?

당연하다. 두 그룹들은 유대인들을 유럽으로부터 이주 시키려는 것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가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 간에는 전쟁 동안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해 나갔다.

유대인들을 배에 싫고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이주(이스라엘 수상을 역임했던 ‘메나헴 배긴’-Menachem Begin을 포함해서)시키는 책임을 맡은 독일 장교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다.

홀로코스트 공장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입장에선 아이히만을 통해서 비밀이 세어 나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에 전쟁 이후 이스라엘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하룻밤에 이스라엘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뒤에 입막음을 위해 사형시켰다.

 

32.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차지했던 지역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나?

4백만이 좀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33.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나찌를 피해 소련 깊숙이 도망갔나?

 2백만 명이 넘는다. 독일인들은 접근해서 죽일 수 없었다.

 

34. 만약 유럽의 유대인들이 나찌에 의해서 근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전쟁 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그리고 영국으로 이주해 갔다.

약 3십만 명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의 숫자가 나온다.

 

35.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유대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나?

 홀로코스트 신화는 그들이 행동하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행동으로 인한 어떤 비난도 차폐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독일 정부로부터 죄의 대가에 대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여러 가지 재원으로부터 매년 약 100억 달러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이 부여 된다.

 

이스라엘은 여러 종류의 홀로코스트 보상금으로 매년 약 1,000억불을 받고 있고 배당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이익 때문에 계속해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36. ‘홀로코스트’"HOLOCAUST",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그리고 ‘전쟁의 폭풍’THE WINDS OF WAR",같은 영화는 다큐멘터리 인가?

헐리우드 영화는 역사도 아니고 그런 목적도 아니다. 만들어진 드라마다. 등장 인들은 배우들이고 실존 인물들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인물이 되어서 연기하고 많은 돈을 받는다. 배우들은 영화사가 고용한 전문 작가의 쓴 장면에 따라 움직인다. 헐리우드는 유대인들이 자금과 촬영장들이 있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막강한 입김을 작용한다.

헐리우드는 이처럼 극도로 믿을 수 없는 역사의 자료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최근엔 주류의 비평 잡지나 방송해설자들도 영화에 대해서 의혹과 의심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리암 니센’(Liam Neeson)‘ 배역을 한’오스카 쉰들러’는 알 수 없는 부분에 삭제시켰다. 쉰들러를 거의 성인으로 묘사를 하고 아직까지 당시인물들이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는데도 그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있다.

 

진짜 쉰들러는 사기 예술가에다 도둑에다 난봉꾼이었으며 지저분한 도박꾼이었다. 그는 수용소의 젊은 여자들과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집중한 인물이다. 나중에 큰 돈을 횡령한 다음 그의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애인과 브라질로 도망간 인물이다.

 올리버 스톤 같은 거장들도 닉슨(Nixon)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과 JFK의 암살 사건을 아주 괴상망측하게 좌익주의자들의 음모이론과 편집증을 보이게 묘사했기 때문에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37. 일반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반박하는 책은 몇 권이나 출판 되었나?

Over 100, with more in the works.

100권이 넘는다.

 

38.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식적인 출판물에 대해서 반론하는 역사가들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

여러 가지 불쾌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항상 공개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사실에 대해서 논쟁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라 보여지는 Nizkor라 불리는 한 인터넷 그룹은 실제로 수정주의자(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수정하려는 사람들)들과 논쟁을 피하고 히스테리칼한 운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정통 홀로코스트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반대하는 어떤 의견을 가진 자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공격을 한다.

 

Nizkor인터넷 놀이그룹은 등재되고 지위를 부여한 많을 사람들을 보면 확실해진다. 그들이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지만 가끔 좌파 성향의 상류층도 있는데 그들은 강한 인종적 편협과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데올로기 혐오가들에 의해서 동기를 부여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매우 심각한 분열 증세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에도 유대인들은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혐오, 폭력과 귀찮게하게 만들거나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에 대한 폭로하는 반증인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치적으로 부정확하다거나 뭘 알아보려는 질문에 대해서 체포하고, 고문하고, 감방에 집어넣었다.

 
프랑스인인 호베르 파루리숑 박사(Dr. Robert Faurisson-안내의 일기 파해친) 는 유대인 갱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인신공격으로 거의 불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중요한 수정주의자의 책을 판매하는 직원은 불에 타 죽었다.

 

토론토 수정주의자 작가인 어네스크 준델(Ernst Zundel)이라는 작가의 집은 방화범의 공격으로 거의 부서져 버렸다. 그는 일련의 기괴한 사건으로 10년이 넘게 재판에 연루되었다가 결국 무죄로 판명이 되었고 캐나다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아직까지도 독일에서 당한 고문과 그를 추방해서 감옥에 집어 보낸 것에 대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는 미국시민인 게하르드 라우크(Gerhard Lauck)는 독일 정부에 납치 되어서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내용인데도, 국가 사회주의자를 옹호한 논평의 글이 독일에서 유죄가 된다는 이유로 장기 복역 형을 선고 받았다.

 

또 다른 미국시민인 플로리다의 ‘한스 슈미츠’(Hans Schmidt)씨도 역시 독일에서 납치되어 1년간 복역을 했고, 국제적인 구호 운동으로 인해서 풀려났다. 슈미트씨의 죄명은 수정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신문 기사를 영국에서 썼고 미국에 배포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 민족주의자인 ‘만프레드 뢰더’(Manfred Roeder)씨는 옥살이를 너무 많이 해서 몇 번을 들어갔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수정주의자들은 직업과 학계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대학에서 재복직을 잃어왔다. 그리고 혹독한 소송에 시달림을 당해야 하고 폭탄이 담긴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마르크스 주의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살인 위협을 받아야만 한다.

죄 없는 사람들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순진하고 죄없는 사람들, 범죄나 사기로 고발당해도 고발한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거나 구속시키려거나 또는 강제적으로 조용하게 만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가 가짜라는 강력한 증거에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과 정부들의 행동이다. 만약 홀로코스트가 사실이라면 유대인들이나 어떤 정부도 폭력을 행사해서 시민들을 조용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덜 필요하다. 체포와 감금, 기습 폭행, 고문등을 자행 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완벽히 사기꾼들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가장 무겁고 사악한 날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날조된 내용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나라를 빼앗고 그 나라의 오리지날 민족들을 도살하고 있다. .

 

39. 이런 흉악한 방법으로 수정주의자들을 조용하게 하는데 성공했나?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수정주의자들만 만들어서 어느 때보다 더욱 굳은 결의로 사실을 밝혀야 된다는 확신을 서게 한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국가들이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거짓말 해왔고 사기 행각을 해왔고, 지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홀로코스트가 거짓말로 그들을 갈취해 왔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다음 세대들이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서 홀로코스트를 받아들일 것이고 일반에게 널리 알려질 것이고, 정치적으로 날조를 받아들여서 사용 할 것이다.

 

<관련 자료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와 사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49943&sca=&sfl=mb_id%2C0&stx=sf1856

 

(정말로 600만명이나 죽었는가)라는 책을 쓰고 투옥된 독일계 캐나다인 에른스트 즌텔에 관한 글: 

http://www.adl.org/learn/Ext_US/zundel.asp?xpicked=2&item=zundel

 

(즌텔 체포에 관한 기사):

http://www.zundelsite.org/zundel_persecuted/feb25-05_media.html

 

 (대략 학살 검증): 

http://www.nationalvanguard.org/story.php?id=6910"

 

 (안내의 일기가 허위라는 자료): 

http://northerntruthseeker.blogspot.kr/2011/11/more-exposure-of-real-history-ann-frank.html

http://www.vho.org/aaargh/fran/livres4/RFAnneFrank.pdf

http://www.thetruthseeker.co.uk/?p=4297

 

(안내의 일기에 관한 기사):

http://www.vho.org/GB/c/SV/120900.html

http://www.rense.com/general65/aan.htm

http://www.mathaba.net/news/?x=614599

http://www.heretical.com/sheppard/frank.html

http://www.ihr.org/jhr/v03/v03p147_Faurisson.html

http://www.campbellmgold.com/archive_general/anne_frank_diary_fraud.pdf

 

(히틀러가 유태인의 멸종을 명했다고 하는 정설은 잘못된것이다 라는 기사): 

http://www.guardian.co.uk/secondworldwar/story/0,14058,1645049,00.html

 

(불과)"몇천명의 유태인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건"을 미국 유명 유대인 잡지 포워드에 게제된 내용에 대한 시오니스트 우파들의 공방): 

http://globalfire.tv/nj/05en/persecution/bg_di_gr_sv_ez.htm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이라는 사람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공개편지

http://unitypress.com/index.php?mid=free_board&page=1864&document_srl=100534

 

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로 이를 잡았을 뿐

http://kk1234ang.egloos.com/2547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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