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사(79) -일장기 거부투쟁과 해상시위투쟁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7/02 [11:00]

대한정통사(79) -일장기 거부투쟁과 해상시위투쟁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7/02 [11:00]

 

▲ 가짜 고종과 가짜 순종. 서구와 일본의 역사조작 일환으로 등장한 인물     © 편집부

 

[플러스코리아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융희황제의 순행이 알려지자 대한매일신보는 융희황제를 일본으로 납치하려는 음모일 가능성을 지적하여 대한국인들의 경계심을 촉구했다. 그와 함께 일제가 강요한 한일 양국 국기게양에 대해서 대한국인들은 극렬히 반대하였고, 특히 서북지방인 황해도평안도 지방에서는 대대적인 일장기 거부사태가 일어났다. 대한매일신보에 의하면,

 

  “금번 황제폐하의 서쪽지방 순행에 연로의 지방관리가 순검(巡檢)을 많이 동원해서 만든 일본기 수만 개를 가지고 시(市府)와 길거리에 횡행하며 태극기 옆에 일본기를 교차하라고 요란하게 공갈하였으나, 일반 인민이 모두 우리 머리 위에는 사천년 창창한 역사 이래 변치 않는 대한제국의 하늘을 이고 있고, 우리 발아래에는 삼천리의 대한제국 땅을 밟고, 두 눈에는 대한제국의 해와 달을 우러러보며, 몸에는 대한제국의 비와 이슬을 맞는 세세생생(世世生生)의 대한국민으로, 금일 우리 대황제폐하께서 우리 지방을 순행하사 우리 민정을 두루 살피시는 이때에 우리 민중이 당당한 우리 대한국기만 달지니, 아무리 관찰사의 명령이 엄하며 아무리 순검의 공갈이 심해도 우리 대한국기 옆에 다른 국기를 함께 달지 못하게 하리라

 

하여, 만구(萬口)가 같은 소리요, 만강(萬腔)이 같은 마음이 되어 필경에는 순행연로에 수만 개의 일장기는 물러버리고 태극팔괘장 대한국기만 황황독립(煌煌獨立)하였는데, 대한제국만세의 외침이 대황제폐하만세의 외침과 함께 길게 울려 퍼지니, 단군 유도(檀君遺都;평양)에 하늘의 해가 다시 밝고, 동명 고사(東明故祠;동명성제의 사당)에 초목이 다시 봄을 맞음이니, 장하도다 동포의 국가적 정신이여! 개성에서 시작하여 의주에서 그치니 무릇 천여 리 사이에 일반 인민이 의논하지 않았으되 한 뜻을 이루어 자국 정신이 전화와 같이 서로 통하며, 철길과 같이 서로 길며(長互), 허다한 관리들의 시험이 일체 무효로 돌아갔으니

라고 보도하였다.

 

   실례로 의주군에서는 일반국민과 학교 등지에서 일장기를 달지 않기로 결사항거하였고, 관찰사와 부윤 등이 한일순사(韓日巡査)들을 사방으로 보내어 위협하기도 하고 칙명을 사칭하기도 하면서 일장기 수만 개를 만들어 인민과 학생들에게 억지로 내걸게 하였으나 큰 저항에 부딪쳤다. 일장기 게양에 앞장서서 반대한 비현면의 극명학교 교사인 이정근, 박형권 두 사람은 신의주경찰서에 잡혀가서 무수한 악형을 당하여 사경에 이르렀으며, 다른 학교의 임원들도 취조를 받는 등 일제는 크게 긴장했던 것이다.

 

   일장기 게양거부사태에 크게 당황한 일제는 서울의 각 신문사들을 매수해서 4242(1909) 227일 하오 7시에 소위 국기문제에 관한 정담연설회(政談演說會)’를 열었고, 각 신문사를 대표하는 기자들은 제각기 일장기거부사태에 대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대한국을 금치산자무능력자등 극단적 폭언을 써가며 매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순행에 직접 수행했던 경무국장 송정(松井:마쓰이)는 서북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였다.

 

  “행행(行幸)에 대한 평안남북도 한인들의 의향을 종합하면 일반적으로 배일사상이 크며, 오늘의 일한관계를 환영하는 자가 거의 없고, 일청 및 일로 두 전쟁에서 보여준 일본군의 위세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서 무모하고 경솔한 거사를 일으키지 않고 있는 데 지나지 않다..”

 

   또한 융희황제가 남순할 때 부산사람들은 대황제폐하를 일본으로 납치하려는 것으로 의심하여 약 4천 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융희황제께서 부산에 당도하신 날에는 여러 사람들이 부두에서 노숙하며 밤을 지새웠고, 다음 날 황제께서 일본군함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과연 일본으로 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며 여러 사람들이 각기 의복을 도로에 깔아서 길을 막으므로 여러 대신들이 그들을 설득시키느라 애썼으나, 인민들은 예비해 두었던 60여 척의 목선에 일제히 탑승하여 황제를 따라 가서 황제가 탄 군함을 포위하였다. 이에 대신들이 이유를 묻자,

 

  “황상폐하께옵서 만일 도일하실진대 우리 여러 사람들은 이 바다 속에 차라리 빠져 죽을지언정 폐하께서 일본으로 건너가시는 것을 볼 수가 없노라!”

 

하고 강경하게 버티었으므로 대신들이 거듭 설득한 후에야 비로소 납득하였다. 또한 마산에서도 백성들이 이등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농후했으므로 그는 그의 장기인 연설을 중도에서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매국노 송병준이 서쪽 순행 시에 대취하여 어전에서 어담에게 칼을 뽑아 든 사건이 벌어지자 송병준과 일진회에 대한 성토가 중앙과 지방에서 맹렬히 일어나는 등, 황제의 순행결과는 대한국민중의 반일감정을 더욱 북돋아 주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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