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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주문제,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어느것이 진짜인가?

우리역사의 진실

유우찬 한국상고사연구회장 | 기사입력 2018/10/31 [10:20]

제16주문제,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어느것이 진짜인가?

우리역사의 진실

유우찬 한국상고사연구회장 | 입력 : 2018/10/31 [10:20]

 

16주문제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 중의 역사기록대로 하면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필자의 저서 여러 권에서 몇 개씩을 골라 간단하게 살펴본다.

 

1). 고조선의 건국개요:

 

1. 기록발췌

사기권6 본기12.

기록에 이르기를 조의 반절음은 조()이고, 선의 음은 선()이다.

(朝鮮)(正義) : 曁其記反朝音潮 鮮音仙

 

사기 권69 열전2

조선(朝鮮)조수(潮水)와 선수(仙水) 두 강의 이름에서 된 것이다.

 

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6권 평안도평양부 郡名 .

조선(朝鮮):

사기 주() 색은(索隱)에 조()는 음이 조()이고, ()은 음이 선()이니 선수(鮮水)가 있음으로 이렇게(조선이라고) 부른 것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록

왕검이 불함산(不咸山)밝달나무에 내려왔다. 서울을 아사달(阿斯達)이 설치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했다.

 

무진년 제요도당 때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 단목터에 이르러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개천 1565년 상월 3일에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단목터에 자리잡았다. --- 백성들이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고 했다.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조선이라 했다.

 

14세에 웅씨왕이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을 다스리게 했다.

67년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을 만나게 했다. 나라의 경계를 정하여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우리 땅에 속하게 했다.

 

태백산(太白山)에 단을 쌓고 사자를 보내 제를 올리게 했다.

청해(靑海)욕살우착이 궁성을 침범하여 단제가 상춘(常春)으로 피하고 새 궁궐을 구월산(九月山) 남쪽 기슭에 창건했다.

 

15세 대음단군 10(BC.1652) 단제가 서쪽 약수(弱水)로 가서 우속에게 금철 및 고유(膏油: 식물 즙의 일종)를 채취하게 했다.

2). 중국서북고조선

 

1. 조수와 선수:

조수(朝水, 潮水): 감숙성 경수

조수.는 기록에 없으며 중국 고지도에서 감숙성 단국의 도읍인 단나(檀那), 고조선의 도읍인 조나(朝那: 고구려 국내성지역)의 남쪽 현재의 경수(涇水).

 

선수(鮮水): 청해성 청해호

청해(靑海)(중국고금지명대사전 P.571): 청해성청해호

하나라 우임금 족속인 서융 땅이다., , 3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러 서강이라 했다. 동진 이후에는 토곡혼 땅이고, 당나라 초에는 토번 땅이다. 17(1927) 국민정부에서 성으로 했는데 치소는 서녕이다. 옛 날의 선수(鮮水), 또 서해(西海), 선해(仙海)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비슷하여 상통한다. 북위 때 처음으로 청해라고 했는데 토번말로 고고락이이어서 청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禹貢西戎地. 歷三代至漢爲西羌. 東晋以後爲吐谷渾. 唐初入於吐藩. 十七年國民政府爲省. 省治西寧. 古曰鮮水. 又曰西海, 仙海音近相通也. 北魏始名靑海. 番名卽曰庫庫諾爾靑海之名有此.---)”

(해설)견족(犬族)-견융(犬戎)- 융족(戎族)- 융적(戎狄)- 흉노(凶奴)로 불린 흉노족의 이름들이다. 고지도에서 조수는 현재의 감숙성 경수(涇水)이고, 기록에서 선수는 청해성 청해호이므로 고조선의 중심무대가 감숙성과 청해성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된다.

 

2. 지명위치

중국이 역사조작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발행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지명위치를 찾아보면 고조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조수 : 현재 감숙성 경천(涇川)

선수 : 현재 청해성 청해호

불함산: 원래는 감숙성 고구려 환도산인데 후세에 내몽고 태백산으로 이동했다.

아사달: 기록 없음.

도산 :

감숙성 서쪽 약수지역의 주천(酒泉)인데 감숙성 회원현(懷遠縣)으로 이동조 작한 후에 다시 안휘성 회원현(懷遠縣)으로 이동 조작했다.

회계(會稽)라고도 하는데 순임금 때 우사공부인 都山氏(塗山氏)의 고향이다.

돈황에서 알타이 산 까지는 요임금과 나라로 이어지는 흉노족의 역사무대 다.

중국은 최초의 유매(幽昧) 땅이라고 했고 고조선43세 몰리선군36(BC.426)

융안(隆安)의 우화충이 36군을 함락하고 도성을 공격했다고 하여 융안지방이라 고도 한다. 이 지방은 나라와 나라도 점령한바 있다.

단군의 단국을 멸하고 古朝鮮(BC.1285)을 건국한 백인족 색부루의 근거지다.

유주 :

유매의 땅: 최초위치는 감숙성 서쪽 弱水以西의 흉노 땅이다.

순임금이 (하북성)에 유주, (산동성)에 영주를 설치했다고 조작했다.

후에 , 나라는 요동서북의 탁(涿)으로 이동했는데 탁현도 원래는 감숙성인데

하북성으로 이동 조작했다.

영주 :

원래위치는 유주동쪽이며 감숙성 약수무위(武威)간이다.

순임금이 산동성 태산북쪽에 둔 것으로 조작되었다. 후세기록은 감숙성 요동

서북의 유주 땅으로 이동하고 유주는 더 동쪽으로 이동했다.

청해욕살: 청해성의 제후

상춘 :

예맥국의 중심으로서 최초의 長春이다. 고조선의 東京이고 구월산에 삼성사

(三聖祠)가 있다. 감숙성 동쪽 경계지역인 지금의 경성(慶城)이다.

고려 때의 구월산 합수(合水)지역이며 , 씨의 본향이다.

경성서쪽에 고구려와 고려의 慶州인 경양(慶陽)이 있다. 개성동쪽으로서 항복한

신라 경순왕을 우대하여 좋은 곳을 골라준 봉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구월산 :

예맥족의 성산이며 에맥국의 중심지이고 전통적인 풍요의 고장이다.

발해 건국지인 동모산으로 추정되며 동모산은 동개마산과 같은 말이다.

약수 :

중앙아시아 기련산과 주천지역에서 북쪽 고비사막의 거연호로 들어가는 강이고

원래 흉노족과 동이족의 경계로서 단국 초기의 요수(遼水)였다.

후단국(고조선 전기) 초기에 흉노족으로 추정되는 요임금을 다시 고향 땅인 약수 서쪽으로 몰아냈고, 청해성의 동부의 열양제후였던 백인흉노족 섹정(索靖)이 딴 마음을 품으니 위험하여 다시 흉노의 고향 땅으로 보내서 나오지 못하게 한 유 배지다. 후세에 단군의 단국을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백인흉노족 색부루의 고향 땅이다. 고조선은 백인족의 나라다.

 

3). 중국 동북고조선

 

1. 조수와 선수의 위치 검토:

조하(潮河)(1179): 朝水(중국고금지명대사전)

경조 고북구 밖에서 나온다. 엣 밀운에서 순의현에 이르러 우란산과 백하가 만난다. 지금 밀운현 동남에서 백하로 들어간다.(源出京兆古北口外. 舊自密雲至順義縣牛欄山與白河合. 今自密雲縣東南卽入白河)“

(해설)중국 동북의 하북성으로 이동 조작된 가짜문장이다. 지금 산서성 북쪽 장가구 동북의 고북구에서 서남쪽으로 밀운을 지나 우란산 동남쪽에서 백하로 들어가는 강을 조하라고 했다. 중국지리지 지명사전에 조수에 대한 직접기록은 없고, 고지도에 감숙성 국내성평양의 남쪽에 있는 지금의 경수(涇水)를 조수(朝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조주(朝州: P.903)기록에 당나라가 설치한 조주는 당시에 감숙성 구녕하부경계라고 했는데 고구려 국내성은 녕하자치구 남부경계지역이며, 조나의 남쪽에 있으니 현재의 경수가 조수이다.

 

-1.이 문장의 조하 위치를 알려면 포구수를 검토해야 한다.

포구수(鮑丘水)(중국고금지명대사전 P. 1256)

하북성에 잇다. 옛날 상류가 지금의 조하다. 하류는 지금의 포구하, 고두하, 계운하인데 북쪽에 운하와 계{운하가 함께 있다. 각기 옛날에는 반독수(크고 물리 험한 강)인데 지금의 포구하다. 삼하와 보저 사이에 있고 남쪽 고두하에 합휴하는데 계운하로 들어간다. 평시에는 물이 없다가 비만오면 물이 급하게 들어와서 속칭 토해내는 강이라고 한다.(在河北. 古時上遊今潮河. 下遊爲今之鮑丘河, 窩頭河, 薊運河. 北運河與薊運河. 各據其故瀆之半. 今之鮑丘河. 在三河寶坻之間. 南流合窩頭河. 入薊運河. 平時常涸. 雨卽奔注. 俗稱瀉吐河

(:움집, . :도랑, 하수도. : 모래섬, 작은 섬, 토대.

: 마르다. : 달리다, 패주하다. : 쏟을, 흐를)

조하는 산서성 북쪽 장가구 동북의 고북구지역과 하북성 북경동쪽 계현, 삼하현, 보저현 지역 두 곳을 설명하고 있는데 고북구지역과 계현 사이에는 백하로 연결되어 있다. 고지도에는 고조선 조나(朝那)남쪽 강이 朝水인데 현재의 涇水. 이것을 백하로 옮기고 역사무대를 이동조작 한 것이다.

 

2. 지명위치

조수 : 하북성 고북구(古北口: 장가구) 밖에서 나와 동남쪽 백하로 들어간다.

선수 : 산서성에서 하북성 천진으로 흐르는 영정하 혹은 북경북쪽의 호수.

도산 : 안휘성 회원현(懷遠縣)

유주 :

순임금 때: 북경에서 하북성 남부까지

주나라 때: 산동성 등주, 래주지역

나라 때: 한북성 탁현으로 이동했다가 산동성 익도현으로 옮김

전연 때 : 열하성 조양현(朝陽縣: 현재 요녕성 서부 조양)

영주 :

순임금 때: 산동성 태산북쪽에서 하북성 남부까지

나라 때: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하북성-요녕성-조선(한반도)이 된다.

후위 때: 열하성 조양현(요녕서부 조양)

()나라 때: 하북성 창려

 

3. 관경위치기록:

은 대황(大荒)에 이르고, 西는 알류를 포함하고, 海岱, 동은 창해(滄海).”(규원사화)

북쪽은 시베리아, 서쪽은 내몽고장백산맥 서쪽, 남쪽은 안휘성 회수지역, 동쪽은 현재의 발해라고 기록하여 광대한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중국이 동북쪽으로 이동 조작한 위치를 그대로 수용했다.

상고시대는 주로 인접지역에서 전쟁했다. 그런데 상고시대의 환경, 인구, 생활수준, 도로사정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면 상고시대 공격최대거리는 2천여리다. 그런데 청해성에서 북경지역은 대략 5000여리로서 불가능하다.  반대로 7000여리나 되는 약수지역까지 임금이 순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북고조선은 이동조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창해(滄海):

중국사기의 북해동해외에는 전부 호수나 강으로 해석한다.

(유우찬저 한국상고사의 쟁점 3장 참고)

이 해석의 잘못으로 우리역사가 엉터리가 된 것이다. 발해는 唐書를 조작하여 북해를 현재의 발해로 꾸민 것이며 실제로는 1911년 이후에 역사조작으로 만든 현대용어이니 현대사만 발해로 해석한다.

창해의 원래 위치는 북부여가 일어나니 한나라가 진번군과 임둔군을 폐하고 진번군을 동쪽에 이동했다가 그 자리에 창해군을 설치했고, 후에는 그 자리에 요동군을 설치했다. 창해란 감숙성 창려와 창평 그리고 해성을 상징으로 지은 지명이다. 이 지역에서 창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서황하(요수) 두만강, 압록강, 동북의 발해호, 섬서성 중앙황하가 대상인데 국경의 동쪽이므로 발해호나 중앙황하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동쪽으로 밀어낸다 해도 고조선은 섬서성을 넘어올 수 없다. 그런데 고조선을 동북으로 이동시키고 현재의 발해를 창해로 꾸민 전형적인 역사조작이다.

북쪽 대황은 몽고지역, 서쪽은 흉노, 남쪽은 안휘성 회수지역으로 대단히 큰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규원사화 당초의 원본은 서북고조선을 기록했는데 중국이 동북쪽으로 이동 조작한 위치를 수용하도록 후세에 조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장은 해석에 따라 서북고조선도 되고, 동북고조선도 된다.

 

4. “청해(靑海)욕살 우착이 궁성침입:

상고시대는 주로 인접지역에서 전쟁했다. 그런데 상고시대의 환경, 인구, 생활수준, 도로사정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면 상고시대 공격최대거리는 2천여리다. 청해성에서 북경지역은 대략 5000여리로서 기습적 침공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동북고조선은 이동조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동북의 고조선 땅(찰합이성지역)1911년 이후 역사조작 때 구만주에서 봉천성, 길림성, 요녕성을 만들어 신만주로 이동시키면서 거치는 정류장이다.

 

4). 신만주와 한반도의 고조선

 

1. 지명위치:

신만주와 한반도에는 고조선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앞의 건국초기시대의 지명들이 없다.  지명이 없다는 것은 고조선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신만주와 한반도의 지명들은 19111928년까지 약 18년간 손문정부에서 역사조작하면서 중국의 지명을 이동 조작한 가짜이므로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으며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환단고기가 우리역사라고 했다.

환웅시대의 만주는 바다로 둘러싸인 완전한 섬이었고 산악뿐이었으므로 건국할 땅이 없었다. 또 환웅이 배타고 건너와서 개국했다는 기록도 없다. 지금까지 검증하고 고증한 일이 없었으므로 역사책이 맞다고 보고 무조건 패거리를 지어 주장하는 역사다.

무슨 근거로 또는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를 필자는 모른다.

 

2. 관경위치기록

동쪽이 창해(滄海), 서쪽은 요서(遼西), 남쪽은 남해(南海), 북쪽은 서비로(西非路)에 이른다.”(단기고사 1편 전단군조선 2세 부루 조)

-1.이 문장의 창해를 만주 송화호나 압록강상류로 보면 신만주고조선이 된다. 한국인들이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생각하는 범위에 있다.

-2. 창해를 현재의 발해로 보면 중국 호북성 이남과 신강성만 뺀 광대한 땅인데 고조선 시대로는 통치가 불가능하다.

-3. 창해를 중앙황하로 보면 서북고조선에 합당하다.

발해의 초기도성은 고조선 땅에 있었기 때문에 대야발은 비교적 정확하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후세에 원본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3. 4300년 전의 신만주는 섬이었다.

4300년 전에는 해수면이 높아서 현재의 요하는 510배나 넓은 바다였고 만주는 섬과 같은 땅인데 단군이 배를 타고 와서 개국했다는 기록이 없다.

고조선은 직할이 사방 2천여리이고, 예맥국과 몽고리를 포함하면 사방 3천여리의 땅이다. 그런데 신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포함하면 사방 2천 여리의 땅은 되지만 호수와 습지 등을 빼면 사람이 주거와 농사를 지을 평야지가 거의 없고 산악뿐이며, 사방 3천 여리의 땅이 못된다.

원래 위치에서는 몽고리가 북쪽에 붙어있는데 신만주에서는 바다건너 서쪽이 된다.

 

4 “청해(靑海)욕살 우착이 궁성침입“:

당시거리로 청해성에서 신만주는 대략 9천 여리나 된다. 그러므로 혁명을 일으켜 기습침략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반대로 1만리가  넘는 약수지역까지  임금이 순행할 수 없다.   따라서 고조선이 우리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상을 의심받을 수 있다.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에 대한 충고:

고조선- 북부여-고구려- 발해- 고려의 도읍지는 같은 땅에 있었다.따라서 이중에 1개국가의 위치만 올바르게 찾으면 한국사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환단고기는 단군교 경전 속의 역사인데 이것을 따로 분리시켜 일제의 대륙사로 만든 것이지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군은 일제의 조상으로 세운 인물이지 우리직계조상이 아니다. 또 고조선 전기는 동이족인 단군이 건국한 단국이고, 후기는 백인흉노족 색부루가 단국을 멸하고 세운 조선이다. 그러므로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백인족을 조상으로 섬기는 환부역조자들이 된다는 것도 모른다.

일제가 역사책 20여만권을 수거한 것은 중국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가지고온 삼성기, 단군세기, 태백일사 등의 많은 역사책들이 이 땅의 토박이 역사가 아니고 중국의 역사여서 없애지 않으면 역사조작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처럼 종교인들이 경전 속의 역사로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우리나라 역사라고 하면 일본의 비자금을 받아먹는 일제의 하수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이제 고조선이 우리역사라고 세뇌된 고정관념을 깨부수지 않으면 우리민족이 아니라 일제의 신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한국 지식인들은 대오각성해야 된다.

 

참고서적: 유우찬 저

고조선, 고구려, 발해위치연구

한국사의 쟁점

요동요서와 한4

한서지리지 검토서

기자조선 위만조선

 

1. 문제: 고조선은 3개가 있다. 이중에 진짜는 하나뿐인데 어느 것이라고 보는가?

고조선은 중국 서북지방이다.( )

고조선은 중국 동북지방이다.( )

고조선은 신만주와 한반도 역사다.( )

 

2. 문제: 개천절과 단기연호는 계속 써야 하는가?

일제의 잔재가 확실하므로 청산해야 한다. ( )

어차피 한국의 역사문화는 다 일제 품이니 써도 된다.( )

각성없는 민족에게 영광은 없다. 이제 국민적 논의에 부쳐야 한다.( )

                                                                                   2018. 10. 30

                                                      한국상고사연구회   

30년만에 세계최초로 우주순환론을 밝혀셔 21세기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로서 시대변화에 따른 인간의 의식혁명의 필요성을 중점적으로 외치는 기자. 역사연구자로서 한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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