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사(87)-의병장의 세계관

십삼도 의군(十三道義軍)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9/02/09 [09:53]

대한정통사(87)-의병장의 세계관

십삼도 의군(十三道義軍)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9/02/09 [09:53]

 

대한정통사(87)-의병장의 세계관

 

▲ 홍범도, 안중근, 최재형    

 

[플러스코리타임즈=안재세]대한국 본토 이외(해외)에서 가장 실질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했던 곳은 해삼위의 서북쪽에 있던 신한촌(新韓村)이었다. 신한촌에는 을사늑약과 국치를 전후해서 의병들 및 국내외의 저명한 애국지사들이 집결해서 ‘독립전쟁론’의 구현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유인석․이범윤․홍범도․이범석․엄인석․안중근 등의 의병장들과 의병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장지연․정 순만 등 항일언론인들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민족운동가들이 활발한 애국계몽운동을 추진하였다. 그 중에서도 일찍이 헤이그 밀사로 활동한 후 구미 각국을 순방하다가 미국에서 국민회를 발족시킨 후 연해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할 임무를 띠고 신한촌에 파견되어 온 이상설은 본격적인 독립군 양성을 추진하는 데 혼신의 정열을 쏟았다.


  일찍이 4235년(서1902)이래 간도관리사를 지내다가 노일전쟁 때부터 항일투쟁을 표방하고 의병항쟁을 전개했던 이범윤은, 연해주의 유지이며 부호인 최재형과 합동해서 두만강을 건너 온 의병 등 삼사천 명의 장정들을 모아 연추(煙秋:노우키에프스크)를 중심으로 국외 의병을 편성하여, 그들을 국내에 밀파해서 왜구들을 축출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4240년(서1907)이래 삼수갑산과 장백부등지를 중심으로 혁혁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홍범도 의병장도, 경술국치를 전후해서 휘하 의병들과 함께 해삼위 지역으로 몰려와 구국의병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범윤과 홍범도 두 의병장들이 생사를 돌보지 않고 의병항쟁을 주도한 것은 물론 그들의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광무황제로부터 국경판무관에 임명된 이범윤의 당당한 충군보국적(忠君報國的) 명분의식이 큰 작용을 했던 것임을 다음의 격문에서 엿볼 수 있다.. (148-2-305)참조.

 

 “황제폐하께서 나를 국경 판무관에 임명하셨다. 따라서 나는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와 연계를 갖고 곳곳에 대한국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의서(倡義署)라는 단체를 조직해 놓았다. 연해주지방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고하노니 조국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라. 우리 조상들이 대한국의 산하에 잠들어 계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 대한국 출신임을 잊지 마라.  나는 홍범도를 대한국 의병대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그에게 자금과 무기를 모을 것을 지시했다. 모든 대한국인들은 그가 무기와 탄약을 구하는 일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연해주지방의 모든 대한국인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합해야 한다. 조국을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우는 자는 대한국으로 돌아가는 대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즉, 이범윤은 광무황제로부터 광복운동을 총지휘하라는 밀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의병투쟁의 선구자였던 유인석 의병장도 주요한 동지들 및 간부들을 이끌고 망명한 후 국내외의 의병들을 통합해서 단일 군단을 이루어 일제와 겨룰 포부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유인석 또한 일찍이 4240년(서1907) 봄에 이미 의병을 일으키라는 광무황제의 밀지와 밀부(密符)를 받은 바도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자신이 의병에 나설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는 이유로 사양했었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정세가 급박해짐에 따라서 노환을 무릅쓰고 다시 그 밀지를 봉행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상설과 유인석과 이범윤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였던 그러한 모든 노력들은 마침내 4243년(서1910) 5월에 ‘13도 의군’을 결성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13도 의군은 유인석을 도총재(都總裁), 이범윤을 창의(倡義)총재, 함경도의병장 이 기남을 장의(壯義)총재, 그밖에 홍범도를 동의원(同義員) 등으로 편성하였으며, 국내에도 전국 각지에 전투능력을 갖춘 장정은 모두 의병으로 편성한다는 계획 하에 각지의 임원들을 편성코자 하였다. 그리하여 곧 13도 의군 도총재의 명의로 국내에 ‘13도 대소(大小)동포에게 고함’이라는 포고문을 보내고 의병규칙도 만들었다. 그리고 4243년(서1910) 7월 28일에는 유인석과 이상설이 연금상태에 있던 광무황제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어 두 사람이 연명한 상소를 올렸으니,

 

그 첫째는 이미 러시아 측과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갔으니 부족한 군비를 확충하기 위해서 광무황제께서 내탕금을 하사해 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광무황제께서 친히 시베리아로 망명하시어 독립운동을 영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밀서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49-52)참조.

 

   “…의병을 모아 해삼위에 있는 러시아 관리에게 주선한 결과 일의 가망이 있고 계획도 점차 성취되어 가고 있으나 군비가 결핍되어 시기가 지연될까 두렵습니다… 지금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 폐하께서 한 번 다른 나라에 파천하여 계신다면 밖으로 세계만방의 공론도 제창시킬 수 있을 것이며, 안으로 우리나라의 민심도 고동시킬 수 있으므로 천하의 일을 단연코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저 해삼위에 있는 러시아영사관으로 파천하시도록 빨리 결정을 내리시옵소서. 신등이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오나 폐하를 보호하고 중흥할 계획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파천의 결정을 신등에게 밀지로서 내려 주시옵소서. 국경을 떠나 파천하시는 동안의 모든 절차는 신등이 다시 아뢰어 결정하겠사오나, 만약 몇 달이 지연된다면 다른 염려가 있을 듯하오니 빨리 서두르셔야 할 것입니다. 또 만일 중간에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있다면, 신등에게 알릴 것도 없이 직접 행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국가가 엎어지고 황통이 끊어지며 백성들은 벌써 추잡한 왜놈에게 예속되었으므로, 신등의 말이 여기에까지 미치오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며 뼈가 떨리고 기가 막혀 목숨이 끊어지는 듯합니다. 폐하께서는 이 일을 행하시려 하신다 해도 진실로 해 낼 수 없는 터이옵니다… 만일 이 일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다음날에 한량없는 욕을 당하게 될 것이니 신등은 이것을 차마 말씀드릴 수도 없고 또한 말씀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계획을 빨리 결정하시옵소서…”


  일제의 물샐틈없는 감시망이 집중되고 있는 광무황제가 망명할 수 있는 가망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광복투쟁의 총사령탑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13도 의군의 지도자들은 이처럼 광무황제를 신임하였고 광무황제의 복위와 국권의 회복을 함께 기약하며 힘차게 광복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던 것이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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