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사(91) 헤이그파견 정사(正使) 이상설!

사라져간 밀사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9/04/21 [21:47]

대한정통사(91) 헤이그파견 정사(正使) 이상설!

사라져간 밀사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9/04/21 [21:47]

대한정통사(91) 헤이그파견 정사(正使) 이상설!

 

 

 

[플러스코리아타이즈 안재세] 일찍이 고종 7년인 단기4203(1870)에 충청북도 진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출생하여 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적 유학을 배우고, 고종 25년인 4221(1888)에는 서양으로부터 전래되어 온 신학문도 깊이 익혀 고금동서의 학문에 두루 통달하여, ‘당의통략(黨義通略)’을 저술한 당대의 석학 이 건창으로부터 율곡선생을 이을 인재라는 평을 받은 대학자! 을미사변이 발생한 그의 26세 되던 해에 비서감(승정원) 비서랑에 임명되어 관직생활에 들어 선 그는, 대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이준 열사 등 당대의 쟁쟁한 애국지사들과 대한협동회 등을 이끌면서, 단 한번도 자신의 출세나 관직에 연연해하지 않고 구국항쟁의 선두에 섰다.

 

매국노 간신배들이 우글거리는 조정에서 신변의 위험에도 개의치 않고 시정개혁을 위한 직언을 서슴지 않는 그의 구국열정을 너무나 잘 알던 광무황제는, 이상설을 깊이 신임함은 물론 그를 해외독립운동의 선봉장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과 이위종 등을 이끌고 참석토록 하는 한편, 간도와 연해주와 미주 등에 해외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토록 많은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광무황제와 완전히 한 마음으로 통했던 이상설은 여러 가지 난관들에 부딪치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항상 상황에 알맞독립광복운동의 방안을 고안해 내고 많은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상설은 젊을 때부터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수차례에 걸쳐 요양생활을 한 적도 있었으며, 특히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이후 10여 년간 광무황제의 밀지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건강을 돌아 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자 그대로 동분서주하던 그는, 이윽고 자신의 건강을 크게 해치고 말았다. 특히 최후의 있는 힘을 다 쏟아 결사적으로 추진하던 신한혁명당 계획이 좌절된 후 울분이 쌓인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47세 되던 4249(1916)에는 피를 토하는 중병(폐결핵인 듯함)으로 완전히 앓아눕고야 말았다.

 

이상설의 건강을 염려한 동지들은 그를 좀 더 기후가 온화한 소항령(蘇亢嶺)에 있는 동지의 거처로 옮겨 요양토록 했지만, 한 번 심해진 그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이 확실해 지자, 동지들은 비밀리에 본토에 사람을 보내어 아들과 부인을 모셔 왔고, 이상설은 고국을 떠난 지 10여 년 만에 처음 만나게 된 가족들에게 극진한 간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지칠 대로 지치고 깊이 병든 육신을 치유할 수 없게 되었음을 직감한 이상설은, 다음 해인 4250(1917) 32일에 요양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니콜리스크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처지에 이 세상에 그 무슨 흔적을 남기겠는가? 나에 관한 모든 기록과 문헌들을 모두 모아서 불태워 버리고, 내 몸도 화장한 후에 그 재를 바다에 뿌리라.”

는 추상같은 유언을 남기고, 48세를 일기로 마침내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마쳤다.

 

그의 임종을 지킨 이동녕 등 동지들은 유언에 따라 수이푼(綬芬) 강가에서 장작을 쌓아 놓고 시신을 화장한 후 그 재를 연해주 앞바다에 날리며, 위대한 동지의 광복정신을 더욱 굳게 이어, 먼저 간 동지의 한을 풀어줄 것을 맹세했다.

 

민족자주독립을 위하여 자신에게 보장되어 있던 출세나 신변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노력하면서도, 항상 다른 사람들을 높이 추대하고 스스로는 낮은 직책에 만족하며 오로지 광복운동의 성공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던, 위대한 애국자이기에 앞서서 위대한 인격자였던 이상설! 특히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은 후 황제와 한 마음이 되어 광복을 이룩하는 길에 몽매에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던 이상설은, 못다 이룬 헤이그밀사의 꿈을 간직한 채 한 줌의 재로 화하여 영원한 조국의 수호신으로서 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 수이푼강 ; 북간도에서 동쪽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앞 바다로 흐르는 강.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음. 수이푼 강의 원래 이름은 슬픈 강이었다고도 하며, 우리 민족이 북간도와 연해주로 진출하면서 지은 지명들이 곳곳에 있음.(: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 가는 도중에 있는 삐딴 산은 비단을 두른 듯하다는 뜻에서 지은 비단산에서 유래) ; 사진 참조

 

* 민족사학자 위당 정 인보 선생은 위대한 광복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흔적이 모두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음을 다음의 시로서 한탄함.

임종에 큰 탄식 여러 차례

외로운 충신의 못 푼 한

가슴에 어리어

유언하노니

자기 몸을 화장하고 난 후

그 재마저 바다에 뿌리라고

문집의 초고를 꺼내어 불태우니

생전의 행적을 남겨 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리라

자기의 그림자마저 남기지 말게 하고

아울러 뒷날 그 이름도 없애려는 것이리라.”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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