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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 역사문화이야기(29)- ‘고조선 편’

김정룡 | 기사입력 2019/09/22 [23:27]

김정룡 역사문화이야기(29)- ‘고조선 편’

김정룡 | 입력 : 2019/09/22 [23:27]

 

▲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삼국유사배달민족 최초국가 고조선 건국기사

불교중심신화 전설 민속 주내용 야사취급

 

단군의 근거 삼국유사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제단 이 아닌 박달나무 을 쓰고 있어 의아

 

 

육담 최남선 선생이 처음으로 조명

 

배달민족 최초 국가였던 고조선의 건국 기사가삼국유사기이권제일(紀異卷第一) 고조선 편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보다 140여 년 앞선삼국사기에는 단군조선건국 기사가 없다.삼국사기의 저자는 사가이자 정치가인 김부식이고삼국유사의 저자는 스님인 김일연이다.

▲ 김일연의삼국유사는 왕조 중심 아니고 스님답게 불교 중심 내용이고 나머지 신화, 전설, 속설, 민속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서 후학들은 김일연의삼국유사를 야사로 취급한다    

 

김부식은삼국사기를 써내기 위해 송나라에 가서 3년 동안 연수했다. 스님 김일연은삼국유사를 쓰기 위해 중국에 갔다는 이야기가 없다. 김부식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사마천의사기를 모델로삼국사기를 지었다.

 

이에 비해 김일연은삼국사기처럼 틀에 박힌 형식과 내용을 벗어나 색다르게 자유자재로 펼쳐냈다. 김부식의삼국사기는 왕조 중심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고 신화, 전설, 속설 등 비검증 사료들을 모두 제거하고 이른바 정설로 가득 채웠다.

 

그래서 후학들은 김부식의삼국사기를 정사로 취급하고 받든다. 김일연의삼국유사는 왕조 중심 아니고 스님답게 불교 중심 내용이고 나머지 신화, 전설, 속설, 민속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서 후학들은 김일연의삼국유사를 야사로 취급한다.

 

김일연의삼국유사는 야사이기 때문에 학계의 중시를 받지 못하고 찬밥신세였다가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신 고양이 절실히 필요한 그때 육담 최남선(1890~1957) 선생이 처음으로삼국유사를 조명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영향 받은 학자들이삼국유사에 귀를 기울었다. 1943년 이병도 선생이 번역을 시도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당시 학자들이 왜삼국유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었다. 단군조선건국신화때문이다. 사가였던 김부식이 단군이야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부식은 정식으로 검증된 역사사실이 아닌 신화전설을 자신의 정사인삼국사기에 기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연은 자신의삼국유사를 정사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애받지 않고 단군조선건국신화를 앞쪽에 다뤘다.

 

▲ 김일연은 자신의삼국유사를 정사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애받지 않고 단군조선건국신화를 앞쪽에 다뤘다   

 

 

왜 단군(壇君)을 단군(檀君)으로 표기하는지?

 

만약 김일연이 단군조선건국신화삼국유사에 싣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한국학계의 중시를 받았을까? 답은 빤하다. 어찌 되었든 배달민족 조상과 그 조상이 세운 최초 국가 이야기가 처음으로 실린삼국유사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 기념행사 때삼국유사에 단군조선건국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삼국유사를 연구하면서 고조선 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석연치 않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현재 배달민족 후예들이 왜 단군(壇君)을 단군(檀君)으로 표기하는지?

 

둘째 천부인 세 개가 무엇을 뜻하는지? 셋째 왜 구름과 비에는 사()를 붙여 운사, 우사(雲師, 雨師)라 부르는데 비해 바람에는 백()을 붙여 풍백(風伯)이라 표기하는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의 자는 한문으로 제단 이다. 즉 단군은 壇君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전체적으로 단군을 壇君으로 쓰지 않고 檀君으로 표기하고 있다.

 

제단 이 아닌 박달나무 을 쓰고 있다. 단군을 檀君이라 적은 사서가 있다.삼국유사보다 7년 뒤인 1287년 출간된 이승휴(1224~1300)제왕운기에는 檀君으로 되어 있다.

 

壇君檀君의 차이는 무엇인가? 壇君은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의미가 크다. 샤머니즘시대의 왕은 정치와 제사를 겸했다. 이런 통치체제를 신정일치(神政一致)’라 부른다.

 

檀君은 토템신앙과 자연숭배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시시대 초기 인류는 자연적응과 생존본능이 동물에 비해 훨씬 떨어졌다. 그래서 동물을 숭배하게 되었고 이로서 토템문화가 생겨났다. 당시 인류는 동물뿐만 아니라 생명이 순환되는 식물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가운데 박달나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  김일연의삼국유사는 야사이기 때문에 학계의 중시를 받지 못하고 찬밥신세였다가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신 고양이 절실히 필요한 그때 육담 최남선(1890~1957) 선생이 처음으로삼국유사를 조명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영향 받은 학자들이삼국유사에 귀를 기울었다.   

 

박달나무는 단단한데다 쉽게 썩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시골에서 소달구지 채, 도끼자루를 비롯해 각종 자루에도 많이 사용한다. 박달나무는 또 종교적으로 악귀를 막는 진사(鎭邪)의 기능도 있어 방토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새집에 들 때 방 네 모퉁이에 박달나무 말뚝을 박아둔다. 신수(神樹)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달민족은 여러모로 박달나무를 중시하고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시조를 신수인 박달나무 을 붙여 檀君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서에 최초로 등장한 단군은 檀君이 아니라 壇君이다. 이는 박달나무 숭배보다 제사로서의 의미가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단군의 근거를삼국유사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삼국유사에 등장한 壇君을 따르지 않고 檀君이라 쓰는데 필자는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왜 壇君檀君으로 표기하는지? 그 이유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누가 이 이유를 알고 있다면 필자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아무 이유 없이 壇君檀君이라고 표기하는 것은삼국유사에 대한 왜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천부인 세 개! 여러 설과 주장만 난무

 

다음 환웅이 지상의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아버지 환인이 천부인 세 개를 주었다는 그 천부인 세 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과 주장이 난무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도 설득력이 있는 통일적인 학설이 없는 실정이다.

 

. 청동 검, 청동 거울, 청동 방울

3가지 물건으로 추측하는 설인데, 이는 육담 최남선의 학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남선은 신화의 시기가 청동기시대라고 보고 천부인이 동북아시아 공통의 샤머니즘 문화의 산물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단군 신화를 무속적으로 해석하여 천부인을 무당의 주요 무구인 칼, 거울, 방울을 가리킨다고 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천부인은 세 개가 아니라 청동 검, 청동거울, 청동 칼 3가지 외에 곡옥(曲玉)과 깃털 부채를 포함한 5가지라는 설도 있다.

 

. 하늘과 땅 그리고 저승을 지배하는 신기(神器)

고 유동식 교수는 그의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에서 천부인 세 개는 곧 하늘과 땅 그리고 저승을 지배하는 신기라고 주장하였다.

 

. 천부인이 곧 국새

일부에서는 천부인의 인()자가 도장을 뜻하므로 최초의 국새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 풍백, 우사, 운사

농경문화의 특징에 따라 천부인 세 개는 그 어떤 물건이 아니라 직책이었다는 주장에 따라 천부인 세 개가 곧 풍백, 운사, 우사라고 주장하는데 이 설이 옳다고 동조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편이다.

 

. 천지인삼재

삼재(, , → ○, , )를 조합한 세 가지 또는 여러 가지의 도형들이 곧 천부인 세 개라는 주장이다. 이것도 설득력이 별로이다.

 

.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너무 조잡한 주장이다.

 

. 천경, 신고와 근원이 같은 만다라의 일종

추측이 너무 지나친 주장이다.

 

. 삼태극(三太極)

마구 지어낸 억측에 불과한 주장이다.

 

. 태양, 태극, ()

이것도 역시 억측이긴 마찬가지이다.

이외 장덕순의 신·대자연·인간의 삼계를 말한다는 설도 있다.

 

▲ 풍백 운사 우사의 언급이 결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이라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거꾸로 마땅히 한민족의 고유 신앙에서 비롯된 산물이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까지 천부인 세 개가 도대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다음 풍백, 운사, 우사에 대해 설명해보자.

 

주례·천관편에 바람·구름·비에 관한 내용이 많은 것을 미루어 보아 주대(周代)에 이르러 바람·구름·비를 관장하는 전문 관직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구름과 비에는 ()’를 붙인데 비해 바람에는 ()’을 붙였을까?

 

는 군대의 한 개 직급을 지칭하는 말인데 대개 3천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를 사장(師長)이라 부른다. ‘는 또 이끌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대표적 사례로서 기독교에서 설교를 담당하는 자를 목사(牧師)’라 부른다는 것이다.

 

()’()’에서 유래되었으며 또 ()’()’와 같은 글자이다. 이에 관해선설문에 해석되어 있다. ‘는 모든 것을 독점하다, 제패하다, 관장하다, 지배하다, 주재하다 등등의 뜻으로 쓰인다.

 

구름과 비에 를 붙이고 바람에 를 붙인 것은 고대사회에서 구름이 생기고 또 구름이 비를 내리게 하는 근원은 바람에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사회에 있어서 세상만물의 움직임은 전부 바람이 조화를 부린 결과라 보고 바람은 우주의 본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주대에 이르러 바람을 구체화하고 또 바람을 고상하게 표현한 ()’란 개념이 전반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동양에서는 모든 사물을 의 현상으로 풀이하려고 애썼다.

 

중국에서는 ()’를 우주의 본체라 인식했는데, ‘는 곧 라고 해석한다. ‘는 곧 바람이며 바람이 곧 이다. 그러므로 풍백을 단순히 고대사회에 있었던 하나의 관직에 불과했던 것으로만 보지 말고 세상만물을 주재하고 인간사회의 만사를 주재하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존재로 인식해야 마땅할 것이다.

 

풍백 운사 우사라는 개념이 도교에 많이 등장하는 것만은 사실이나 그렇다 해서 민속연구가인 임동권 선생처럼 단군신화 가운데서 삼위태백,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린다든가, 천부인을 갖고 왔다는 것은 도교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오류라 생각한다.

 

만약 임동권 선생처럼 한국의 적지 않은 학자들의 이 면에 대한 관점에 따라 한민족의 역사, 종교, 문화를 풀이한다면 그 뿌리는 전부 중국에 귀속될 것이다.

 

예하면 중국도교경전에 신선이란 말이 헤아릴 수 없이 등장하고 또 도교가 추구하는 최고 경지가 바로 득도성선(得道成仙)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신선도가 도교에서 유래된 것일까? 아니다! 신선도는 본래 동이족사회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지 결코 중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황제(黃帝)가 중원의 패자로 있을 때 동쪽을 유람하였는데 화서국(華胥國)이 신선국이다.”라는헌원본기(軒轅本紀)의 기록이 말해주듯이 신선도는 동이족사회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다.

 

동이족사회에 이미 신선도가 널리 유전되어 있었다면 동이족사회에 이미 바람숭배신앙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이족이 자연을 관찰함에 있어서 당연히 구름과 비의 산생근원이 필연적으로 바람과 그 어떠한 내재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풍백 운사 우사의 언급이 결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이라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마땅히 한민족의 고유 신앙에서 비롯된 산물이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김정룡 프로필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멋 맛 판> 2015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천국의 그늘> 2015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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