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사(106)- 대동단결선언에 대한 반응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9/12/24 [08:42]

대한정통사(106)- 대동단결선언에 대한 반응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9/12/24 [08:42]

대동단결선언』은 1917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 등 14인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 소집을 제의한 문서이다. 이 선언의 작성자는 조소앙인데, 자전(自傳)에서 대동단결선언을 수초(手草)하였다고 하므로 그가 기초한 것이다.-----국가지정기록물 - 국가기록원

 

▲ 조소앙 선생     © 편집부

 



선언 당시 미주의 교포들이 결성한 국민회의 중앙총회장이던 안창호는 그 때 미주에 있으면서, 선언에 가담했던 박용만(국민회의 부회장)조성환이일 등의 설득 활동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언서의 원문만 보관하면서 호응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측이 가능하지만 미주의 국민회 조직이 이미 다져지고 있는 상황 하에서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거나, 당시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던 이승만과 박용만의 관계 등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민회 지도급 인사들은 대체로 안창호와 같은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선언에 가장 깊이 관련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조소앙 자신도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각자 영웅으로 할거한 각 단체는 하나도 여기에 호응해 오지 않았다.”

고 했으니, 많은 애국지사들이 대체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태도들을 취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선언 중에 아일랜드리비아모로코인도서장고려 등은이라고 하여 국명을 고려라고 임의로 표현함으로써, 당시 동포들이 대한국인임을 자부하고 있던 민족 정서에 부응하지 못한 면도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보황(保皇)의식이 강했던 대부분 동포들의 입장을 조금만 고려했더라도, 국체를 마음대로 고치려 기도하면서 국명마저 임의대로 표현하는 선언주창자들에게 큰 호응이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반응이야 여하간에 선언은 일단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던져 본 정도의 의의는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비록 보황주의를 광복운동의 절대적 이념으로 강력하게 견지했던 유인석과 이상설 두 선구자들이 서거했다 하더라도, 선언이 나온 같은 해인 4250(1917)에도 광복운동에 있어서 또 한 명의 보황주의적 선구자였던 이회영에 의해서 광무황제를 옹립하는 망명정부가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었던 점을 보면, 일부 소장 민족운동가들이 갑자기 제시한 선언은 별로(또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 선언은 대한국인들의 정서에 거의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창호의 경우 선언이 나온 지 2년 후에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곧 이어서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결성된 후에도, 의왕의 상해임정으로의 망명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임시정부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만주노령에서 풍찬노숙하며 광복투쟁에 전념하고 있던 대부분의 의병출신 애국지사들에게 이 선언이 어떻게 평가받았을지는 불문가지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외교노선에 매달리던 선언자들과는 달리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항일무력투쟁 속에서 오로지 문자 그대로의 광복만을 염원하며 자신들의 소중한 생명을 초개처럼 화선(火線)에 내던지고 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선언자들은 다만 탁상공론을 좋아하는 문약한 기회주의자정도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유인석이상설 등 선구자들에 의하여 세워졌던 보황주의 대원칙을 파괴하는 분열분자들로 비쳐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한 이념상의 분열은 결국 차후에 대동단결선언의 주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상해임정이 수립된 후에도, 광복투쟁전선이 그들이 선언한 바와 같이 대동단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분열을 거듭하며 파행으로 치닫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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