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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르고 혼인했던 하늘자손의 기원과 유래

임금님 옷을 입고 연지곤지를 찍어 첫날밤 보낸 건 6천년 전

리복재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12/08/10 [02:44]

서로 모르고 혼인했던 하늘자손의 기원과 유래

임금님 옷을 입고 연지곤지를 찍어 첫날밤 보낸 건 6천년 전

리복재 역사칼럼 | 입력 : 2012/08/10 [02:44]
 

[민족/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 리복재] 우리 민족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 남성과 여성이 혼인 전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유래를 찾아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서와 중국 역사서인 고기(古記) 등을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6천년전 배달조선 환웅천왕(桓雄天王)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결혼 풍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수 만년이나 이어져 온 한국의 지위리(智爲利) 한인천제(桓仁天帝)께서는 문무를 겸한 한웅(桓雄)에게 ‘홍익인간, 제세이화, 리화세계’로 나라를 다스리라 명했다. 그 분이 바로 거발한(居發桓) 한웅천왕이시다.

한웅임금님이 태백산(太白山. 현 중국 삼서성 서안)아래 신시(神市)를 정하고 배달국이라고 나라 이름을 반포하였는데, 당시 그 주변 민족에게 삼신(三神)을 믿도록 가르치고 인간이 온전해지는 전(佺)을 계율로 정하고, 이를 기본으로 세워 선(善)을 권하고 악(惡)을 징계하는 법을 만들어 맹세를 하게 하였다.

그런데 원주민 호족(虎族)과 새로 이주해 온 웅족(熊族)이 있었는데, 호족은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반면, 웅족은 성질이 우둔하여 고십이 센 민족이었다. 이때 웅족과 호족의 우두머리가 한웅임금님에게 “원하옵건데 교화되어 신시의 계율을 따르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청하여, 한웅천왕은 인간의 본성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련과 수행을 하라고 하여 웅족과 호족에게 쑥과 마늘을 100일동안 주 음식으로 먹으라고 지시하고 세 가지 금기사항을 내렸다.

금기사항의 첫째는 비린생선과 육식을 피하고, 둘째는 남녀의 접촉과 살 섞음을 피하고, 셋째는 서로 싸움과 살생을 금지 하였다. 그리고 일주일을 주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일을 계속하며 수행하게 하였는데, 맨 첫날은 제신(諸神-하느님), 다음날은 월신(月), 다음날은 수신(水), 다음날은 화신(火), 다음날은 목신(木), 다음날은 금신(金), 다음은 토신(土)에게 기도하며 수련케 했다.

즉,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배우고 수행을 통하여 성품을 닦아 인간의 본성인 가치와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고 실천케 한 것이다. 그러나 호족은 교만하고 나태하여 임금님의 명을 따르지 않고 수련 기간에 도망하였다.
 
(이러한데도, '단군 어미가 짐승 곰 이었다고 위기와 고기에 나오더라'고 기술한 고려시대 일연(본명 김견명)이란 승려가 중국 역사서 위기와 고기를 읽고 왜곡해서 삼국유사를 지었는데, 사대모화자요 스키타이족속답게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삼국유사에 적어 놓았다. 그러데 일제가 이 잡서를 보고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다'라고 왜곡해 조선사 35권을 지어 우리 민족 역사서로 만들어 놓고 삼국유사를 남겨놓은 것이다.)

반면, 웅족은 100일 간 수련을 거쳐 신시의 백성이 됨은 물론 인간의 본성을 되찾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웅족의 여성들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어느 남성들과 혼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즉 지금으로 말하면 대학원까지 나와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 일자무식인 남성한테 시집을 가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웅족 여성들은 임금님께, 수련을 거치고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공부한 남성들이 없으니 임금님과 혼인하자고 신단(神檀)아래 무리지어 간청하게 된 것이다.

이때 한웅임금님께서는 묘안을 짜냈는데, 결혼할 적령기에 있는 남자들을 모아 수련을 시키고 임금님의 품행과 언행을 가르쳐 임금님의 옷을 입혀서 웅족의 연인들과 혼인케 하였더니, 웅족의 여성들은 한웅천왕을 모시게 됨을 기쁘게 여겨 얼굴 볼에 있는 *연지곤지에 빨간 꽃잎으로 덮고 신랑으로 맞았다고 한다.

이는 수련한 남성들이 비록 환웅천왕의 명을 받아 임금님 옷으로 변장을 하고 장가를 가게 되었지만, 여성들은 환웅천왕이신 임금님과 혼인을 한 셈이니 우리 조상들 모두는 시집장가 가는 날이 한웅천왕과 합치되는 날이나 마찬가지다.

이후 남성과 여성은 결혼의 윤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전통적인 혼인의 관습이 이루어져 지금도 신랑은 장가가는 날, 임금님의 옷을 예복으로 혼인식을 치루고 겸양지덕(謙讓之德)과 현모양처(賢母良妻)을 두루 갖춘 신부를 맞아 살게 된 연유인 것이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인의 풍속은 오랜 세월동안 예복의 변화는 있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7천년전 한웅천왕 시대의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하늘자손으로 살고 있음이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 민족은 한웅천왕 시대의 정신문화와 전통풍습 속에 지금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연지곤지: 우리 민족은 양쪽 볼 속(광대뼈)에 구멍(한반도 남쪽인구 중 75%정도)이 있는데, 결혼식 때 새색시의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다. 연지곤지의 붉은색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화장술의 하나로 여성의 순결과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서 새색시의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위와 비슷한 유례로는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여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간장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두르는 것과 잔치 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등이 연지곤지와 더불어 음양오행사실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 플러스코리아


[참조: 사서 <고기(古記)>에 나온 내용 =
 
초대임금이신 거발한 한웅이 태백산 아래에 신시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
이때 이웃에 강한 족속이 있었는데 한웅께서는 사람이 온전해지는 '전'을 계율로 정해 이를 기본으로 세워 백성들에게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범을 만들어 잘못하면 벌하여도 달게 받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엄밀한 맹세를 하게 하였다.
 
그 시절에는 이웃하고 있는 종족들의 이름이 하나도 같지 않았고 또한 종족에 따라 풍속도 달랐다. 그리하여 원래부터 그지역에 살던 원주민을 호족이라하고, 새로 이주해와 살아온 종족을 웅족이라 하였다.
 
그런데 호족은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오로지 약탈만을 일삼았고, 웅족은 성질이 우둔하여 고집이 세고 자부심이 많아 다른 종족과는 서로 어울리지 몫하였으니, 같은 지역에 살면도 오래도록 서로 도와주지도 않고 한번도 뜻을 같이하지 않았다.
 
이때 웅족과 호족의 족장이 신시의 신단아래에 나아와 한웅에게 청하기를 "원하옵건데 교화되어 신시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하므로 "가히 인륜도덕을 가르칠만 하구나"하고 환골이신(煥骨移神) 즉, 육신 위주의 저급한 차원의 본능적 사람들을 정신위주의 문화적 차원의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시킬수 있도록 밝은 정신을 전수 받고 영적 체험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해탈하는 방법으로,
 
곧 쑥 한 묶음과 마늘 20매를 주면서 이에 주의할 바를 말하니 "너희들이 쑥을 넣어 끓인 물에 목욕을 하고 마늘을 구워 먹으면서 100일동안 다른 활동을 금하고 오로지 수행하면 이로 인하여 자유로이 참을 이루고 평등함을 이루어 만물도 구제하는 참 사람으로 교화되어 예와 의를 실천하는 큰 사람인 즉, 신시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말씀 하시었다. 그리고 세 가지 금기사항과 수련 방법을 제시해 주시었다.
 
이에 웅족과 호족은 쑥을 넣어 끓인 물에 목욕재계하고 마늘을 구워 먹으면서 세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면서 수련하여 신시의 백성이 되려고 하였다.
 
세가지 금기사항
1. 비린생선과 육식을 피한다.
2. 남녀의 접촉과 살 섞음을 피한다.
3. 싸움과 살생을 금한다.
 
수련방법
100일 간 일주일을 주기적으로 조상님과
제일먼저 날은 제신(諸神-한님), 월신, 수신, 화신, 목신, 금신, 토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단이란 수련을 하고 경건히 자연스럽게 천경신고(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배우고, 가부좌 등 수행을 통하여 성품을 갈고 닦는 수련을 해나갔다.
 
이에 웅족은 어려운 수련과 수행을 잘 지켜내고 신시의 백성으로 참여해 신시의 계율을 준수하게 되고 예의바른 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였지만, 호족은 교만하고 태만하여 세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지 않았고 수련과 수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시의 백성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웅족의 여성들은 백일간의 수련과 수행을 통하여 높은 의식을 같게 되는데(눈이 높아진다는 뜻), 자존심과 고집이 세고 강하여 보통의 남자들 중 누구와도 쉽게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단아래 무리지어 모여서 장막을 치고 한웅천왕께만 잉태하기를 원하다면 혼인하여 줄 것을 빌고 농성을 하였다.
 
이에 한웅께서는 결혼할 적령기의 남자들을 뽑아서 신랑이 되는 교육 즉, 한웅의 말과 행동을 교육시키고 또  다시 높은 수련과 수행을 시켜 한웅천왕의 왕복을 입히고 변장시켜 저녁때에 혼인 날자를 잡은 웅족의 여성들과 혼인하게 하였다. 따라서 웅씨의 여성들은 모두가 비록 변장은 하였으나 한웅천왕과 혼인을 한 셈이었다.
 
따라서 남자들은 장가 가는 날이 한웅천왕이 되는 것이고, 여자들은 한웅천왕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민족사 바로 세우기 12/08/26 [03:03] 수정 삭제  
  신시씨(=커발환 환웅천황)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미 백두산에 있으면서 점차 서남쪽으로 옮기고, 다시 패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니 삼씨(三氏)의 겨레들은 각자 더욱더 사방으로 옮겨갔다. 또한 태백이 이미 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옛날에는 짐승들이 모두 신의 교화에 젖어 그 산에 편안히 깃들여 살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 또한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등의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감히 하지 않았으니, 만대에 걸쳐 항상 받들고 보호하는 지표가 되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 뒷 날 비록 여러 씨(氏)의 구별이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단군 선조께서 똑같이 어여삐 여기는 신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예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규원사화 단군기 중에서


神市氏(之)降, 旣在[白頭於山](於白頭山), 乃漸(徒)[徙]西南, 復沿浿水而南來, 三氏之族, 又各四遷也. (耳)[且]太白旣爲東方靈地, 祭天大儀必始於其山, 則自古, 東民之崇敬是山也, 不尋常. (耳)[且]古(者)昔, 禽獸悉沾神化, 安捿於其山而未曾傷人, 人亦不敢上山 溺而瀆神, 恒爲萬代敬護之表矣. 夫我先民, 皆出於神市所率三千團部之裔. 後世, 雖有諸氏之別, 實不外於檀祖同仁之神孫. 因 雄 儉.三神之, 開創肇定之功德, 常傳誦而不忘, 則古民指其靈山曰三神山者, 亦必矣.


태평양 무대륙문명을 계승한 마고성은 서남해 중심의 3천리 금수강산 한반도/마고성을 떠나 만주 천산으로 들어 간 황궁씨 문명이 요하 홍산문명/황궁씨 후손 유인씨 샤먼문화는 몽골초원 무당문화/유인씨 후손 환인씨의 12환국연방의 중심지는 천해(바이칼호)동쪽 대홍안령(파나루산) 아래 북만주 지역=흑룡강.시베리아 지역/환인의 후손 환웅의 신시배달국은 백두산이다. 백두산은 세계 흑요석 집산지이며 백두산에서 흐르는 압록강지역은 세계 피라미드 원형의 최다 집산지다. 신시란 피라미드 도시라는 의미다./마고가 다스렸던 서남해 고인돌 양식이 바로 피라미드(석관.적석)와 초원지역의 적석 목곽분 양식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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