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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수필] 정 하나 준 것은 인간만사 새옹지마(6)

평도 총각을 짝사랑해 시집 간 누님과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

리복재 시인 | 기사입력 2012/11/30 [17:56]

[소산 수필] 정 하나 준 것은 인간만사 새옹지마(6)

평도 총각을 짝사랑해 시집 간 누님과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

리복재 시인 | 입력 : 2012/11/30 [17:56]

 

▲ 평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三山面) 손죽리(巽竹里)에 딸린 섬. 면적 0.41㎢, 여수항에서 남서쪽으로 83.7㎞, 손죽도(巽竹島)에서 남동쪽으로 10㎞ 거리에 위치하며 부근에 소평도(小平島)·소거문도(小巨文島)·거문도(巨文島)·동도(東島)·초도(草島) 등이 있다  ©소산
▲ 절벽 아래서 본 별장     © 소산
▲     © 소산
[문학=플러스코리아]= 전편에 이어 이번엔 ‘하늘 길 별자리’로 정 하나를 드리면서 아름다운 섬 '평도'의 사연을 소개해 드리지요. 사진 상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박 9일간 혼자 묵었던 평도 섬의 별장. 그런데 별장 위로 가면 바위 절벽에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측간(廁間)이지요. 바위 위에 네모난 판자를 덮고 그 가운데 사각으로 구멍을 뚫어 바위에 고정을 시켜놓았습니다. 옛날 길쭉한 나무 세 개를 엮어 세워 짚 등으로 둘러쳐진 화장실인데, 여긴 아예 펑 뚫려있어 절벽에서 볼 일 보면서 시원함과 스릴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지요.
▲ 여기가 볼 일 보는 곳입니다. 바위 위에 네모난 판자를 덮고 그 가운데 사각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습니다.     © 소산
 
▲ 별장을 둘러싼 숲.     © 소산
거추장스런 아랫도리를 벗고 볼 일 보자니 저 밑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하체를 통해 목구멍까지 쳐들어오는데, 무서움 보다는 무척 시원한 감을 느꼈습니다. 뒤로 자빠지거나 판자가 폭삭 주저앉으면 곧바로 벼랑으로 떨어지는데, 그 만큼 목숨을 걸고 볼 일을 보는 위험을 감수했지만, 그런데도 건물 안에서 답답하게 볼일 보는 것 보단 만 번은 더 좋았지요. 그런데 그 네모진 판자 안을 보니 제가 처음으로 볼일을 본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요. 참 뭐라 할까요? 태극기 꽂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전편에서 보여드린 햇무리 사진을 올려 드립니다. 또한 평도의 사연을 소개해 드리기 전, 필자의 시 인용하겠습니다.
▲ 검등여를 비추는 해     © 소산
 
▲ 검등여 사진. 가까이서 보면 바위가 검습니다.     © 소산
▲ 30여분간이나 연출된 장엄한 햇무리     © 소산
 
▲ 하나 였다가 둘로 비치는 햇무리     © 소산
▲ 셋으로 바뀐 장면    © 소산

 
▲ 검등여를 기준으로 세군데에 햇무리가 찬연히 비추우고 있습니다.     © 소산
 

▲ 평도서 만난 수현군이 방을 따뜻하게 해줄 마른 장작을 진 모습.     © 소산

▲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난  약초.     © 소산
▲ 갈대 군락지     © 소산
▲ 털머위. 꽃대궁이 보인다.     © 소산

하늘길 별자리

소산(笑山)
태양과 달이 부서져 바닷길 내고

북두칠성에서 온 억 겁의 인연은

타는 듯 하늘을 빨아들여

털머위 대궐에 평도를 열었다



임의 사랑받던 하늘담

북산 비석바위 감고 돌아

불타오른 구절초 자궁은

밤바다 유영하는 양가린여를 낳고



봄의 별인 각수를 이루는 별자리

남두육성은 불로장생이 아니던가

여름엔 견우별 직녀별이 뜨는 곳

천황 지황 인황의 *북극성 자미궁으로

하늘 길이 열리는 평도
▲ 양가린여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 소산

*북극성: 어렸을 적 할머니는 '너는 북두칠성에 왔느니라'고 말씀 하셨는데, 흔히들 마음의 휴식처 또는 영혼의 안식처라고들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지요. 특히 국을 뜰때 사용하는 국자를 아실 겁니다. 국자의 머리부터 차례로 천추(天樞)·천선(天璇)·천기(天璣)·천권(天權)·옥형(玉衡)·개양(開陽)·요광(搖光)으로 불렀으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북극성을 말하며, 나아가 이 세상을 하직하면 관에 칠성판을 깔아 북두칠성으로 가는 동안 평안 하라는 의미이지요.

총 7개의 별이지만 즉, 칠성은 우리 인간의 몸과도 오묘한 밀접함이 있지요. 눈에 안 보이는 구멍이 두 개가 더 있는데, 바로 결혼 시에 연지곤지를 찍는 자리인 얼굴 광대뼈 바로 밑에 구멍을 말합니다. 결혼 시 나쁜 기운을 막는 의미로 연지곤지를 찍지요. 이는 7000년 이전부터 행하여 온 삼신 칠성 문화의 후예라는 증거이며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지요.

물론 환단고기에도 이 칠성 문화가 나옵니다. 북쪽하늘에 있는 큰곰자리를 이루고 있는 별들 중, α(알파)별, β(베타)별, γ(감마)별, δ(델타)별, ε(입실론)별, ζ(제타)별, η(이타)별을 이루는 별자리를 특별히 '북두칠성'이라고 합니다. 3원 28수로 하늘을 나누고 300개가 넘는 별자리를 포함 하였습니다. 수성, 목성, 화성, 토성, 금성, 다섯 행성에 해와 달을 합해 칠정 또는 칠요성이라 불렀습니다.
▲ 평도 마을 전경입니다. 이 어디쯤 누님의 집이 있습니다.     © 소산
 
▲ 마을을 지키고  있는 성황당 나무지요.     © 소산
그럼 평도의 사연 중에서 먼저 누님과 매형으로 맺었던 분을 소개하지요. 매형 연세가 60대 중반이니 누님 나이는 어림잡으실 테지요. 마을 어촌계장이 두 분의 사랑 비사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접근해 작전 상 손님인지라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워 보기도 하고, 생선회 달라, 생선구이 달라고 했지요. 매형은 농주를 따라주고 누님은 장두감을 저장해 만든 귀한 홍시를 내놓았지요. 자녀분들이 다 자수성가해서 두 분은 이 섬에서 소꿉장난하시듯 잘 사시고 계십니다. 호박, 무우, 마늘 등과 텃밭에는 상추며 치커리 등이 잘 자라고 있었지요.

매형은 젊었을 때 직업상 다쳐서 왼쪽 팔을 쓰지 못하지만 힘과 남성미가 펄펄 넘치는 분이셨고, 이런 분을 짝사랑해서 결혼한 누님이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매형이 뭐라고 하면 낭자처럼 “네”하고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박씨 누님.

▲ 평도항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시는 박씨누님.     © 소산
▲ 학 꽁치. 회는 감칠맛과 시원함 등...특히 김치에 버무린 학꽁치회 무침은 입안에 살살 녹는 것은 둘째로 치고 뇌를 자극해 감동이 막 밀려 옵니다.     © 소산
 
▲ 학꽁치회     © 소산
한번은 두 분이 조그만 항구 옆 방파제에서 학꽁치 낚시 하실 때 옆에서 있었는데요, 어쩐일인지 누님이 꽁치를 더 잘 낚으시는 겁니다. 누님이 5마리 잡으면 매형은 1마리 정도를 잡는 거였어요. 이런 매형은 자꾸 누님이 낚아 올리는 학꽁치를 흘겨보더니, "그만 잡자"하고 일어서고 말았지요.

그런데 누님은 학꽁치 몇 마리(70마리 정도 잡으심, 매형은 열댓마리였고) 더 낚으실 심산인지 미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매형이 "어이~ 그만 잡자니까 그러네 참. 시방 여기서 빠져 볼티여?"하고 언성을 높이자, 누님이 저에게 살짝 "아고, 삐졌는갑다" 하고 투덜거리며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매형, 학꽁치는 여자를 좋아 하는 가 봐요"라고 말하자, 매형이 " 아니, 내가 잡을라치면 자기가 낚아 채가네, 그랴?"하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누님은 아무 말도 안하고 낚시가방을 제게 주더군요. 음~ 속으론 웃음이 나왔지만 매형을 생각해 참아야 했지요.

두 분이 낚으신 학꽁치가 담긴 가방을 양 어깨에 메고서, 총각 선생님이란 노래를 불러 드렸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열아홉 점순이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사람은 총각 호철이····" 이렇게 이름을 넣어서 불러드렸더니 두 분은 기분이 좋아 졌는지 함께 흥얼거리시지 뭡니까.

학꽁치는 등은 푸르스름하고 몸은 속 내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합니다. 그래서 회로 설면 살색이 하얗고 거기에 약간 신김치를 넣고 각종 양념을 넣어서 회무침으로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아 언제 목구멍으로 넘어 갔는지 모를 정도 입니다. 그날 밤 누님이 학꽁치를 손수 손질해 썬 학꽁치회를 원 없이 먹었고, 특히 회는 그렇다 쳐도 각종 양념과 조금은 신김치로 버무린 회무침은 밥에 비벼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과 사그락 거리는 회 살이 합쳐져 고소함과 바다내음이 입안을 가득 차게 만들었지요. 거기에 누님이 담근 농주를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이 맛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섬에서의 생활이 다 그렇듯 육지와의 관계 정립이 잘 안 되는 고로 항시 뭍으로의 향수가 있고, 육지 쪽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겠지요. 제가 여수로 나올 때 아들과의 결혼 약속을 한 예비며느리의 집안 사돈 간 상견례 하신다고 저와 함께 배를 타고 여수로 오셨습니다. 아들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아리따운 낭자를 만나 결혼 전 양가 어른들의 만남을 가진 것입니다. 딸들도 모두 잘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 소평도 입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직접가서 보면....     © 소산
▲ 아름다운 해변가     © 소산

노익장을 과시하는 평도 어르신

마을 어느 분이 필자에게 이 동네 어르신이 정력이 좋으신데, 함께 사시는 할머니가 여수로 피신(?) 가셔서 평도에 안 들어 오신다는 겁니다. 주민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나도 나이 먹어서 어르신처럼 강한 남자여야 한다고 마음먹고 그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지요.

새로 선출된 어촌계장과 함께 그 어르신 집을 방문했습니다. 어르신은 낮에 낚시로 잡아 온 횟감과 말릴 생선을 손질하고 계셨습니다. 필자와 어촌계장이 인사하자 어르신이 일어나 반갑게 맞았습니다.
 "아이고~ 귀한 선상님께서 누추한 집엘 다 오시고, 이거 대접할게 없어서 어쩐다요, 잉?"하고 말씀을 하시지 뭡니까? 필자 또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어서, "어르신! 그렇게 부르시면 다신 안 옵니다. 절 동생으로 불러주세요. 횟감이 아주 좋습니다."하고 정중히 재인사를 드렸더니 "으메~ 그랑께랍, 쬠만 기다리시오 잉! 금방 조져 올 것인 게"라며 투박한 전라도 말씨를 써서 그런지 마치 내 고향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르신은 감성돔과 놀래미 회와 직접 담근 농주를 내 놓으시며 한 사발을 권했습니다. 입에서 사르르 녹으며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그 향기는 더욱 좋았지요. 한 사발을 들이킨 후 주워들은 정력 이야기를 살살 풀어 놓기 시작했지요.

"어르신만 계시네요. 할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그러자 올해 70세가 넘은 연세의 어르신은 할머니가 왜 없냐 라는 퉁명스런 질문에,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떨떠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마시는 여수로 갔제요. 간지 일주일도 넘었을 것이구만."

그래서 논픽션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어르신! 거시기요~ 살살 거~..."

"으~응?"

"거~있지요? 어르신 정력이 대단하시다던데, 할머니께서 저어해서 가신게 아니구요?"

그러자 어르신께서 눈치를 채고는 갑자기 입술이 떨리시며 마른 헛기침과 함께 웃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남사 그러던지 말 던지. 허허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어촌계장이 잠시의 침묵을 깨고 "종씨일텐데, 두분이~" 하고 말해서, 어르신과 필자가 본과 파를 따져보니 한 학렬 이더군요. 그래서 ‘형님, 아우님’으로 즉, 급전직하(急轉直下)로 가기 전 같은 집안으로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래서 어르신께 "형님, 밤에 거~있지요? 기름칠 좀 하고 하세요. 연세가 있으신데..."라고 말씀드리자, 형님께서 속이 메스껍기라도 하듯 "그런당가? 나사 몰랐제 잉!"하고 간신히 말을 뱉으시더군요.

다음에 갈 때는 어르신들의 생활이 즐겁기 하기 위해 거시기용품을 좀 사다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르신들의 생활은 소중한 것으로, 좀 더 아는 젊은 세대들이 말씀도 드리고 챙겨야 할 것입니다.

후에 여수로 나와서 평도 옆 광도 섬 출신 방씨 부부, 그리고 평도 박씨 부부, 초도 출신 최씨 부부와 정담을 나누다가 평도 어촌계장이 떠나오기 전 평도 어르신에 관한 운을 떼는 거예요. 그날 필자와 어르신의 대화를 반추해 내서 말이지요.

"우리 회장님이 한방에 KO시켜 버렸어요! 하하하"

그러자 광도 출신의 방씨 부인께서 남편을 가리키며 말씀 하셨습니다.

"이 사람도 그 나이되면 그럴 것 같다!"

이 말에 한동안 방안은 방바닥을 치는 분 등 혼란의 도가니와 웃음의 극치를 보였답니다. 방씨 형님은 흥이 나셨는지 '천년을 빌려준다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시며 답례를 해 주셨지요. 또 맥주를 박스로 주문해 노래와 정담으로 맛나게 마시며 이어갔습니다.

사회 여러 구석에서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는 볼 수 없는 진기한 일들을 많이도 보아왔습니다. 미래는 우리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만, 잠시의 희망과 잠시의 절망의 사이에서 해매이며 우리 앞에 놓여 진 길들에 대한 회한과 상념으로 젖어든 허망한 어깨를 흔들며 진한 술에 취하여 거리를 떠도는 영혼을 덧없이 바라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평도에서의 머무름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많은 걸 예시적으로 알게 되었고 아름답고 평온한 섬, 평도에 다시 가고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 집니다.
▲ 해안 바로 위에는 편백나무가 바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 소산
▲ 90도로 쓰러져 세찬 바람을 맞아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이걸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소산
 
▲ 떠나 올 때 수현군이 손을 흔들고 있다.     © 소산
▲ 평도를 떠나 배에 올랐을 때.     © 소산
▲ 평도서 잡은 횟감으로 여수로 와서 먹을 때.     © 소산
▲     © 소산
아래 영상은 우기수 칼럼니스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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