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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 비문, '與倭 新' 일제가 고의로 지워
 
김민수 칼럼니스트
[역사=플러스코리아]김민수 역사칼럼=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의 입비(立碑) 목적은 於(是:山陵)立碑 銘記勳積 以示後世 어시(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입비 명기훈적 이시후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에 비석을 세워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훈적을 새겨 이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 올초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광개토대왕비문을 압축한 고구려비가 발견돼 국내 고고학계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해 기록한 ‘수묘비(守墓碑)’라고 보고, 광개토대왕비문을 압축해놓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편집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 능비문(陵碑文)의 주어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고구려(高句麗)가 배반한 백제를 적대시하여 낮춰 부르는 백잔(百殘)의 비칭(卑稱))에서 고구려의 백제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高句麗)에 속하는 옛 백성이었으나 배반하여 조공(朝貢)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고 고구려의 향후 대 백제 강경정책을 예상할 수 있다.
 
  백제(百濟)의 국력이 강성해져 고구려(高句麗)에 조공하지 않고 강성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왜(倭:일본)를 제후국으로 삼았고 고구려는 배반한 백제를 괘씸죄를 적용해 응징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고구려 국왕 즉위 후 백잔(百殘:백제)의 제후국 왜(倭:일본)가 백제(百濟)에 조공(朝貢)하러 신묘년(辛卯年:391년)에 바다를 건너오자 왕(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기다렸다는 듯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백잔(百殘:백제)과 백제(百濟)에 조공(朝貢)하러 바다를 건너온 왜(倭:일본)를 격파(고구려를 배반한 백제 응징이 목적)하여 응징하고 신라는 다시 신민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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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22 [20:17]  최종편집: ⓒ 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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