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 너무 아픈 역사, 박근혜정부는 사죄하라

'1960년대 GDP의 1/4을 미군에게 몸 팔게 해 벌어들인 박정희'

경정 칼럼 | 기사입력 2014/07/18 [11:29]

'미군 위안부' 너무 아픈 역사, 박근혜정부는 사죄하라

'1960년대 GDP의 1/4을 미군에게 몸 팔게 해 벌어들인 박정희'

경정 칼럼 | 입력 : 2014/07/18 [11:29]
[플러스코리아 타임즈-경정] 오늘은 제헌절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조항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 한국 헌법, 전자책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그러나 우리는 위정자들을 잘못 뽑거나 또는 군사 반란이 일어나는 등해서 우리는 헌법조차 유명무실하게 된 일들을 참혹하게 경험하여 왔다.

현재에 이르러 이런 일들이 과거에 너무도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참혹한 과거의 현실들이 하나하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014년 6월 25일은 한국 내 이른바 ‘산업의 역군‘, ’양공주‘, ’양색시‘ 등으로 불리던 소위 미군위안부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는 날이었다.
 
▲ 1960년대 미군 기지촌 광경     ©경정 칼럼니스트
 
우리는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위안부만 존재했으리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 군사정권 스스로 외화벌이를 위해 꽃다운 소녀, 여성들을 미군의 성노예로 팔아 달러를 벌어들였던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 미군 기지촌 위안부 국가 손배소 기자회견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이날 한국내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로 살았던 여성 122명이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그들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기지촌 위안부로 종사하는 과정에서 숱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우리 사회로부터 기지촌 위안부라는 낙인에 의한 배제와 차별을 겪어오며 사회로 복귀하지 못했으며, 가족과 지인에게조차 기지촌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말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어 그들의 대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로 최소한 1인당 1천만원을 국가에 청구한다는 내용의 소였다.

미군 기지촌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 미군 기지촌 정책 연혁 도표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정부는 전시에 군 위안소를 설치한 이래 위안소, 미군시설을 직접 설치하거나(기지촌의 전신), ‘특정 윤락지역’을 지정하고(기지촌 형성), ‘기지촌 정화대책’ (기지촌의 정비와 발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군기지 주변 지역의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했다.

이는 국내법, 국제법 모두에 위배된다.

또한 강제 성병 관리, 성병 관리소 수용까지 했으며, 미군 성매매가 애국이라는 애국교육을 실시하거나 자매회에 강제가입시킴으로써 그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또한 그들에게 성병 검진을 강제하고, 성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원고들에게 강제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낙검자 수용소’에 실질적으로 감금까지 했다.

▲ 1960년대 미군 기지촌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몸을 팔아 달러를 버는 기계로 전락시켰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이날 대표발의한 ‘주한미군기지촌 성매매 피해 진상규명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 1960년대 서울 개발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그는 이런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으로 1960년대에는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국민총생산(GDP)의 2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했으며,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안보와 한국경제에 실질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이들에 대한 지원위원회 설치 및 피해자 와 유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64살인 김정자씨의 증언이다.

‘거기(음부)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긴밤, 짧은밤(성매매 시간 단위)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긴밤은 제방에서 밤새 자고 아침에 일찍 가는 거고 10달러 받아여. 짧은 밤은 제방에서 30분에서 1시간 있다 가는 거에요. 돈은 모두 아줌마가 가져가 버려요. 제가 직접 못 받아요. 아줌마는 한달 계산해 준다면서 다 뺏었어요. 1~2개월이면 빛 다 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되요.’

‘도망 갈 수가 없었어요. 일하러 갈 때 늘 남자(포주집에서 일하는 건달)들을 붙여 감시해요. 목욕을 가면 자기네(포주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년, 주인한테 아부하는 년이랑 같이 목욕을 보내요.’

‘경찰한테도 신고할 수도 없어요. 주인집에 경찰이 낮에 놀러 와요. 주인아줌마한테 누나라 그러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줌마는 담배도 싸서 주고 그래요. 처음에 저는 아줌마 남동생인 줄 알았는데 옆의 언니들이 형사라고 귓속말해주는 거에요. 주인이 다 돈 먹이는 거리고. ’경찰에 신고해도 내가 못 나가는구나‘ 그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참 안타깝고 우리에게 어찌 이런 역사가 왜 반복되는지 알 수 없다.

▲ 원나라 공녀 몸검사 광경 (한 TV드라마 캡쳐)     © 경정 칼럼니스트
 
고려말 원나라에 의해 공녀로 고려 처녀들이 결혼했던지 안했던지 팔려간 역사가 있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 종군위안부로 오히려 친일파의 국내 동원 독려조직까지 있었던(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으로 현 조선일보사장 방상훈의 증조부 방응모, 현 동아일보 사장 김병관의 조부 김성수(동아일보 설립자) 등이 있다.) 참혹한 현실이 1960대에 미군위안부로 되풀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힘이 없었던 때의 역사라고 덮어두어야 할까?

사람은 할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과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특수업태부, 양공주 등으로 불려왔다. 정부는 위안부와 특수업태부를 혼용해 사용해왔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고 한다.

▲ 위안부 소녀상과 위안부 할머니 광경     © 경정 칼럼니스트
 
일본의 우익이 어떻건 말건 우리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어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한다. 바른 것이란 적에게 이용당한다고 하여 내부의 잘못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실이 박정희정권때 대표적으로 기승을 부렸는데, 국가 산업을 일으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느니 하는 말들이 망발로 여겨진다. 1960년대만 해도 국가 GDP의 4분의 1이 이 힘 없고, 안타까운 여성들의 몸을 팔아 달러로 나왔벌었으니 말이다.

사실 주요 언론사가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에게는추상같이 책임을 묻고 자신의 잘못에 관해서는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는 '미군 위안부'를 관리하고 있었다고 하는 경악스런 사실의 비밀이 폭로된 것이다.

▲ 친일파 수괴,독재자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경상도 우매한 민초들     ©경정 칼럼니스트
 
국회에서 드러났다. 작년 11월 6일에 열린 국회의 여성 가족 위원회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유승희 의원이 질의에 나서,「미군 위안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여성 가족부의 조윤선 장관에게 묻자,「여기에, “기지촌” 의 성 매매가 합법적인 차원을 넘어 대단히 조직적으로 국가가 주도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국가 기록원에서 가져왔다는 문서를 공개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기지촌 정화 대책”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 말하는 매춘 방지법인 “윤락 행위등 방지법”으로 성 매매는 금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군 상대의 매춘부의 경우, 정부에게 암묵적인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1977년에 작성된 그 문서에는, 전국 62개소의 “기지촌”에 9935명의 매춘부가 생활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그녀들의 성병 대책이나 전용 거주시설의 건설 등 주변 정비에 대한 방침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그 문서에 서명한 것이 박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박정희는 [18년의 긴 세월에 걸쳐 독재 정권을 이끈 전 대통령이며,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는 매춘굴의 두목이라고도 해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의원이 공개한 문서에 대해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어째서 일까.]
 
한국에서는「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슬쩍 언급한 정도일 뿐이다. 일본 수상은 전 위안부에게 땅에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고까지 대대적으로 써대는 최대기업언론인「조선일보」 등은, 일본이라는 적을 이롭게 할 수 있기때문인지, 일체 기사화하지 않았던가. 또한 정치계에서도 반일에 관한한 여야당이 찰떡 궁합으로 뭉쳤있는데, 다만 유의원이 소속된 민주당에는 인권 활동가나 feminist가 적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인권문제로서 이 사건을 파악해 이것을 다루고 공개한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명성황후를 시해하여 유명한 일본 낭인두목,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에서 조센징 냄새가 난다면서 다시 창씨개명한 이름)의 딸은 이에 대해 사과해야 옳지 않을까?

그러나 국내 주요 언론들의 뉴스에서는 이런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썩어문드러진 언론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와 멸절해야한다. 

제헌절이다. 태극기를 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들이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냐?' 라고 한다면 과연 한마디라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시인, 칼럼니스트,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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