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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박근혜 7시간 경내에 있었다?' 아니라는 정황

청와대 있었다면, 증거할 수 있는 사진- 동영상도 공개 못하나

오주르디 칼럼 | 기사입력 2014/08/18 [17:50]

세월호 침몰, '박근혜 7시간 경내에 있었다?' 아니라는 정황

청와대 있었다면, 증거할 수 있는 사진- 동영상도 공개 못하나

오주르디 칼럼 | 입력 : 2014/08/18 [17:50]

 

[플러스코리아타임즈 오주르디] 세월호 참사 4개월. 밝혀진 게 거의 없다. 구조하지 않고 구경만 했다는 사실과 검찰에 쫓기던 유병언이 죽었다는 것, 이게 전부다. 반면 의혹과 의문만 켜켜이 쌓일 뿐이다.

의혹과 의문투성이, 백미는 ‘7시간 미스터리’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구경만 한 이유가 뭘까. 국민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할 대통령이건만 대참사를 지켜보면서도 사고 당일 회의 한번 주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세월호에서 건져 올린 청해진 직원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나왔다. 국정원이 세월호 운항에 직접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다. ‘휴가계획서 작성 제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등 국정원 지시사항이 적시돼 있었을 뿐 아니라, 세월호 개보수작업과 객실 증설공사를 실시한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고 볼 만한 정황도 발견됐다. 하지만 소명된 건 없다. 국정원과 세월호, 무슨 관계일까?
 
많은 의혹 가운데 백미는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다. 오전 10시에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다는 박 대통령이 중대본을 찾은 시각은 오후 5시 10분 경. 7시간 동안 대면보고나 대책회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원 개입 정황이 나온 청해진 직원의 노트북. 침몰한 세월호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상황 파악도 못한 채 중대본 찾았을까
 
박 대통령은 중대본에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든가”라며 질책한 것이다. 수 백명의 학생들과 탑승객들이 컴컴한 배 안에 갇혀 죽어가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저런 말을 하다니.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사고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중대본을 찾았을까. 일본 산케이 신문 등 해외 언론에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명확한 증거 하나 제시하지 못한 채 “경내에 있었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알리바이 입증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증거로 하는 거다.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자 청와대가 움직였다. 직접 해명하지 않고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을 통해서 했다. 조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공개한 ‘세월호 보고일지(4.16)’에 의하면 당일 21차례 보고가 이뤄진다. 모두 서면·유선보고다.



의혹 커지자 여당의원 통해 내놓은 ‘당일 보고일지’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서면·유선 보고를 통해)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면서 “구조활동이 회의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 별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위기관리센터를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방문할 경우 의전 등의 이유로 신속한 상황 파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득력이 없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 없게 하라”는 대통령의 첫 지시가 이뤄진 시각은 10시 15분. 단원고 학생들이 카톡으로 “배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라는 문자를 보내며 발을 동동 구를 때였다. 왜 일찍 지시하지 못했을까.

해경청장에게 유선으로 첫 지시를 내린 건 10시30분. 해경이 승무원들만 구출한 채 살려달라고 외치는 단원고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때였다. 해경에 첫 유선지시를 내린 지 48분만에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완전 침몰 전까지 대통령의 구조지시는 단 두 번뿐이었다.


현장 ‘엉망’ 그래도 대통령은 서면·유선보고만
 
이후 중대본 방문(17시10분)까지 ‘보고’만 있었을 뿐 ‘지시’는 없었다. ‘구명조끼 입은 학생들 왜 발견 못하나’며 중대본에서 구조를 채근한 것이 비로소 3번째 ‘지시’다.

<이렇게 사고 현장상황 엉망인데도 대통령은 서면-유선보고만 받았다.>


구조활동에 매진하도록 대면보고도 받지 않고 회의도 주재하지 않았으며, 위기관리센터조차 찾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부추긴다. ‘단원고 전원구조’ 오보가 나간 11시~11시30분 경 대통령은 세 차례 서면보고를 받았다. 중대본이 ‘전원구조’는 오보라며 ‘161명 구조’ 사실을 발표한 건 11시30분 경. 이렇듯 현장지휘가 엉망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시각에 대통령은 뭘 했을까.

 

여전했다. 배안에 있는 탑승객이 죽어 가는데도 서면·유선 보고뿐이었다. 그러나 이 서면·유선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진 게 아닐 수 있다는 정황이 있다. 보고는 올라왔지만 박 대통령이 이를 ‘즉각 직접’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올라온 보고 ‘직접 즉각’ 보지 않았다는 정황 있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치자. 청와대가 세종로에 있는 중대본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해도 대통령의 이동에는 경호 문제도 있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보고일지’에는 17시11분에 비서실이 대통령에게 8번째 서면보고를 올린 것으로 돼 있다. 반면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도착해 구조를 채근한 시각은 7시15분. 불과 4분 만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올라온 보고를 ‘직접 즉각’ 보지 않았다 건가. 그렇다면 청와대 경내에 있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자 김기춘 비서실장이 17일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7시간 부재’ 의혹을 해명하기 위한 인터뷰였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당일 줄곧 청와대 경내에 계셨다”며 “유선보고와 문서보고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국가안보실장과는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위치와 동선은 비밀로 돼 있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인사를 만나기위 해 ‘안가’에 있었다는 세간의 의혹제기에 대해 “안가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설령 안다 해도 경호 비밀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황당한 변명 그만, 국민의 물음에 답해야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당일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최대 과제는 탑승객 구조였다. 구조작업이 완전 실패로 끝났는데도 목적 달성이라니 황당할 뿐이다. 탑승 인원도 파악 못하고 오보를 내는 등 현장은 사실상 마비상태였다. 그런데도 한가하게 서면-유선 보고만 받았다. 이러니 수백 명의 목숨이 수장된 것이다.

 

경내에 있었지만 경호 비밀 때문에 동선과 위치를 밝힐 수 없다는 주장도 코미디다. 외부 출입를 했다면 어디를 다녀왔는지 밝히는 건 경호상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한 장소인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하나 공개하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은 패장이다. 유선·문서보고를 통한 지휘방식이 전혀 먹혀들지 않아 수백 명의 국민이 죽어갔기 때문이다. 대패한 패장이라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왜 졌느냐”고 물을 때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대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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