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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민중혁명의 도화선은 고종황제의 독살

기록과 의학적으로 명백한 독살설을 인정않는 식민사학계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3/02 [11:37]

3.1 민중혁명의 도화선은 고종황제의 독살

기록과 의학적으로 명백한 독살설을 인정않는 식민사학계

편집부 | 입력 : 2015/03/02 [11:37]
고종황제는 독살 당했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에 경운궁(덕수궁)에서 갑자기 뭔가를 마시고는 사망했는데, 뇌일혈 또는 심장마비가 사인이라는 자연사설이 있는 반면, 그날 아침 한약, 식혜, 또는 커피 등을 마신 뒤 이들 음료에 들어 있던 독 때문에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다.

고종의 시신을 염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시신이 사후 1~2일밖에 안되었을 때도 심하게 부풀어져 있었고 이가 이미 다 빠져있는 등 부패가 정상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무관 출신 한진창은 고종이 독살되었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한진창은 자신의 누나 한진숙의 시조카 윤치호에게 고종이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19년 초까지만 해도 윤치호는 고종 독살설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사실은 1919년 1월26일자 윤치호 일기에서 볼 수 있다.

“이태왕(고종)이 왕세자 이은(영친왕)과 나시모토 공주(이방자)의 결혼식을 꼭 나흘 앞두고 승하하는 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정말이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1907년 황제 자리를 빼앗기고, 3년 후 나라마저 빼앗긴 굴욕을 감수한 이태왕이 이제 와서 하찮은 일에 억장이 무너져 자살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구나 어린 왕세자와 일본 공주의 결혼이야말로 왕실의 입장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 결혼을 통해 두 왕실 간의 우호관계가 증진될 것이고, 왕세자는 조선의 어떤 여성보다 우아하고 재기 넘치는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만약 이태왕이 ‘병합’ 이전에 승하했더라면, 조선인들의 무관심 속에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인들은 복받치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옷소매를 적셔 가며 이태왕을 위해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한진창의 증언을 듣고 얼마 뒤 윤치호는 입장을 선회하게 된다. 윤치호는 1883년(18세)부터 1943년까지 60년 동안 일기를 썼는데, 20대 때인 1889년 12월7일 이후로는 영어로만 일기를 적었다.윤치호는 자신이 한진창에게 들은 내용을 1920년 10월 13일자 일기에 기록해 놓았다.  윤치호와 한진창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1. 이상적이라 할 만큼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갔다.

2. 고종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3.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가, 황제의 이가 모두 구강 안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 30cm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5. 고종황제가 승하한 직후에 2명의 궁녀가 의문사했다.


윤치호는 한진창 역시 고종독살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는데, 민영휘, 나세환, 강석호(내관) 등과 함께 시신의 염을 한 민영달이 한진창에게 이 내용들을 말해주었다고 했다. 고종황제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는 김규식의 편지서신과 함께 3·1 민중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고종황제 독살 상황도     © 편집부

친일 지식인으로 알려진 윤치호(1865~1945)의 영문일기를 보면 고종황제의 독살설에 대한 의학적 개연성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돼 있다.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김상태 교수는 1일 "윤치호의 친일파 여부를 떠나 이 일기 속에는 의학사적 가치가 높은 내용이 상당수 들어있다"면서 "친일파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가 폄하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상태 교수는 "윤치호가 적은 5가지 독살근거에 대해서는 일부 법의학자들도 상당 부분 독살의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일기가 가지는 역사적 사료가치 여부를 떠나 일제에 의한 고종황제의 독살 가능성이 상당히 자세히 설명된 만큼 지금부터라도 이 부분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의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는 "조선의 왕이 갑자기 사망하면 항상 독살설이 나왔었고, 고종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근거는 늘 부족했다"면서 "윤치호의 일기에 몇가지 의혹이 언급돼 있지만, 당시 시신을 검시한 게 아니었고, 이런 관찰의 시점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때문에 아쉽게도 이를 후대에서 검증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말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이 저지른 엄청난 만행 중 가장 큰 만행이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황제 독살이다. 이를 모른 척하고 고개를 돌리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 친일파들은 당장 일본으로 귀화하라!

원본 기사 보기: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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