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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도 당일 ‘천안함 파공으로 침몰’로 보고받았다”

증언 “첫날 청와대까지 올라온 보고는 좌초…조치도 사고로 대응”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3/28 [22:14]

“이명박도 당일 ‘천안함 파공으로 침몰’로 보고받았다”

증언 “첫날 청와대까지 올라온 보고는 좌초…조치도 사고로 대응”

편집부 | 입력 : 2015/03/28 [22:14]


“이명박도 당일 ‘천안함 파공으로 침몰’로 보고받았다”
이종헌 청천안함TF 행정관 증언 “첫날 청와대까지 올라온 보고는 좌초…조치도 사고로 대응” 
(미디어오늘 / 조현호 기자 / 2015-03-28)


천안함이 침몰 직후 해군과 해경, 국방부 뿐 아니라 청와대에까지 좌초로 보고가 이뤄졌으며, 당시 구조 및 후속조치 역시 사고로 판단해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최원일 천안함장과 일부 생존자가 어뢰에 맞은 것 같다는 보고를 했으나 이는 사고당일엔 합참까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조차 파공으로 인한 침몰로 보고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27일 천안함 침몰 이후 1년 여 간 청와대에서 천안함 TF 실무를 맡았던 이종헌 전 행정관이 최근 집필한 ‘스모킹 건(SMOKING GUN)-천안함 전쟁실록’을 보면, 사고 순간의 상황이 잘 그려져있다.

이 전 행정관은 “21시51분 청와대 위기상황센터상황 담당이었던 공군 김아무개 중령은 합참 지휘통실 담당 장교에게 상황을 문의했으나 이때까지 해작사로부터 합참으로 초도 보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며 “김 중령은 다시 해작사 지휘통제실 상황장교에게 전화를 걸어 ‘천안함이 파공되고 침몰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잠시 후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는 합참 지휘통제실로부터 ‘21시45분 서풍1 발령, 천안함 선저 파공으로 침수 중’이라는 2차 보고를 접수했다”고 이 행정관은 밝혔다.

특히 그는 사고직후 합동참모본부에 전해진 최초 보고에 대해 “파공으로 인한 좌초였다”고 썼다. 21시28분(2010년 4월 7일 공개된 그의 휴대폰 통신기록 상엔 21시26분~28분-기자 주) 피격 직후 외부 갑판으로 올라온 포술장 김광보 대위(진)는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해군 2함대 상황장교 박모 대위(진)에게 최초 구조 요청을 했다. “천안인데 침몰됐다. 좌초다”

또한 천안함 전투정보관 정다운 중위도 2함대 당직사관 김 대위에게 휴대폰으로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조난당했으니 대청도 235편대를 긴급 출항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2함대 당직사관은 조난을 ‘좌초’로 잘못 알아듣고 좌초로 보고했고, 또 전파했다고 이 전 행정관은 해석했다. 그는 또 포술장의 좌초 보고에 대해 “포술장의 경우 이후 진술에서 상황이 급해 구조를 빨리 받고 싶어서 경황이 없는 중에 ‘좌초’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0년 3월 30일 오후 천안함 사고현장인 백령도에 있는 독도함에서 상황보고를 받았다. @연합뉴스 

 

21시32분 2함대 지휘통제실장 김모 중령은 인천 해경에 핫라인으로 전화해 “현재 백령도 서방에서 우리 함정이 ‘좌초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일단 급한 상황이니 인근에 있는 해경 501함과 1002함을 현장으로 빨리 보내달고 긴급 요청했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또한 같은 시각 2함대 연락장교 한모 대위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옹진군청 어업지도선 214호 선장에게 전화해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에서 침몰 중이니 구조하는데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그는 책에 기재했다.

이어 21시45분 합참의 지휘통제반장은 2함대사령부로부터 ‘원인 미상 선저 파공으로 침수중’이라는 상황 보고를 접수한 뒤 상황 파악을 더 하다가 합참의장에게는 22시11분, 국방부장과에게는 22시14분에 휴대폰으로 보고하는 등 지연된 보고를 했다고 이 전 행정관은 평가했다.

21시50분 청와대 국방비서관실 김아무개 대령은 합참 해상 작전과 NLL 담당으로부터 ‘침수’ 보고를 듣고 상부로 즉시 보고했으며, 동시에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는 해작사 지통실 상황장교로부터 ‘천안함이 파공되고 침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이 전 행정관은 밝혔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는 파공으로 침몰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갔다고 한다. 이 전 행정관은 “군 최고 지휘부에 대한 최초 보고는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에게는 ‘파공으로 침몰’로, 대통령에게는 1차 ‘서해에서 초계함이 침수’, 2분 뒤 2차 보고에는 ‘천안함, 파공으로 침몰 중’이란 내용으로 각각 보고됐다”고 전했다. 더구나 21시53분엔 공군작전사령부가 해군 연락장교를 통해 ‘해군함정이 백령도 부근에서 파공으로 좌초됐으며, 승조원 구조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즉시 탐색구조헬기 2대(HH-47, HH-60)와 조명기 출동을 지시했다는 것.

향후 이들의 초기 보고의 착오를 번복했다 해도 문제는 이처럼 모든 시스템이 좌초 또는 파공에 의한 침수라는 ‘사고’로 보고가 이뤄졌으며, 이에 따른 후속대응 조치도 ‘사고’에 맞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 전 행정관은 “이런 천안함 포술장과 2함대 당직사관의 ‘좌초’ 판단 보고는 해작사를 거쳐 합참까지 보고됐다(21시45분)”며 “전투상황으로 판단했다면, 민간에 대한 지원 요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합참은 교전 등 북과의 전투 상황이 없고 외부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한 ‘사고’로 본 것”이라며 “합참은 최초 보고에 근거해 자체 회의를 통해 한미가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연합 위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우리 군 단독으로 위기관리에 나서기로 했다”고 썼다.

이 전 행정관은 청와대에 전달된 보고에 대해서도 “이즈음 청와대로 전해진 참모 보고 역시 ‘천안함 파공 침수’였으며, 청와대의 위기 대응 역시 이런 판단에 따라 조치되고 있었다.(21시51분)”며 “이런 판단으로 ‘서풍-1’ 발령 20분 지난 22시5분에야 한미연합사에 상황이 통보됐다”고 설명했다. 합참 역시 21시45분 2함대사로부터 ‘파공으로 인한 침수’라는 보고를 받은데다 NLL 이북의 수상과 공중 및 육상에서 북한군의 특이 사항이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외부의 공격 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한 침몰로 판단하고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집필한 천안함 저서 ‘스모킹건’(오른쪽)과 합조단 보고서. 사진=조현호 기자 




정신을 수습한 함장 등이 추후에 ‘어뢰 피격 가능성’을 판단하고 보고했지만, 매우 늦었으며 해군 내부의 지휘 계통에서 머물렀으며, 합참 등 상부로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

이 전 행정관은 특히 “최초 보고는 경황이 없어 좌초 등으로 보고했지만, 어뢰 등 외부 폭발에 의한 것임은 분명히 판단하고 있었다”며 “함장실에 갇혔던 함장이 구조된 후 간부들이 의견을 모은 결과는 전혀 달랐다. 좌현 함수에서 함장, 부장, 작전관 등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작전관(박연수)=‘함장님 어뢰 같은데요’. 함장(최원일)=‘나도 그렇게 느꼈어, 봐라, 함미가 아예 안보이잖아’. 부장(김 소령)=‘어뢰가 맞는 것 같은데요’”

이후 21시51분 통신장 허모 상사는 군용 휴대용 비상 무전기(PRC-999K)를 통해 대청도 기지의 이 모 상병과 ‘어뢰 피격 판단, 구조 요청’ 내용을 교신했다. 22시32분 함장은 직속상관인 22전대장 이원보대령에게 지휘보고를 했다. 이 발언과 보고사항은 이미 최원일 함장의 진술서와 합조단 보고서에 나오는 얘기로 이미 기존에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던 내용이다. 좌현 함수에서의 대화 대상자는 ‘최원일 함장, 박연수 작전관(당시 당직자), 부함장’ 등 세 명으로 좌초나 조난으로 보고한 김광보 포술장과, 정다운 전투정보관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전 행정관이 이를 간단히 정리한 계통도는 다음과 같다.

-21시28분~30분 ‘좌초·파공·침수 침몰중’ 포술장→2함대사→합참→주한미군→청와대
-21시28분~30분 ‘좌초·파공·침수 침몰중’ 2함대사→해경, 2함대사→옹진군청 관공선
-21시51분~22시30분 ‘어뢰 피격’ 천안함 통신장→대청도 레이더기지 통신병
-21시51분~22시30분 ‘어뢰 피격’ 함장→전대장, 해군참모총장→외교안보수석.


이 전 행정관은 “각각 보고자들이 사용했던 용어들은 사건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담은 것이기 보다는 급박한 상황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단순한 차이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경황이 없어서 잘못 말했다고는 하지만, 모든 보고체계와 구조 대응 시스템이 사고로 판단하고 이뤄졌으며, 최초로 보고한 대위·중위 등 위관급 장교들이 ‘좌초’의 의미도 모르고 그런 용어를 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전 행정관은 “이런 초기 상황 전파와 보고 과정의 혼선은 이후 천안함 의혹 세력이 악용하면서 의혹 주장의 근거가 됐다”고 해석했다.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 사진=’스모킹건-천안함전쟁실록’ 




한편, 군 스스로 여러차례 번복해 신뢰를 떨어뜨린 사고시각과 관련해 2함대사령부가 21시15분이라는 보고도 있었다고 이 전 행정관은 증언했다.

합참이 3월 27일 언론에 브리핑한 사고시각은 21시45분이었으나 이날 몇시간 후 2함대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로 서면보고한 사고시각은 21시30분으로 국회 국방위에 보고됐다. 또한 이틀후인 29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회에 9시25분으로 보고하자 이를 본 국방부는 즉시 21시30분으로 수정했다. 무엇보다 이날 오후엔 2함대 사령부의 정정요청에 따라 다시 21시15분으로 수정 발표했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사고시각이 21시15분까지 올라간 것이다.

‘21시15분’은 최초상황이 벌어진 시각이 아니냐며 가장 의문을 받았던 사고추정시각이었다. 이를 두고 이 전 행정관은 “21시15분은 해병6여단이 21시45분에 2함대로 보고한 ‘백령도 6여단 방공 진지의 소음 청취’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실제 해군작전사령부는 22시26분 합참지휘통제시스템(KJCCS)에 ‘백령도 서방 천안함 침수 상황(최초), 2010년 3월 26일 21시15분경 백령도 서방 1.2NM에서 천안함이 원인 미상(폭발음 청취)으로 침수되어 조치 중인 상황’으로 보고를 올렸다”며 “이런 해작사의 21시15분 수정 보고는 합참과 육군, 한미 연합사 및 해경 등에도 전파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전 행정관은 “해병 6여단은 상황 확인 절차에 따라 다른 장병에게 폭발음이나 포성 청취 여부를 확인한 결과 특이사항이 없어 종결 조치했다”며 “합조단이 4월 2일 다시 조사한 결과 이들은 ‘통상적인 포성이 아닌 일반적인 소음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합참까지 보고된 해병 6여단 방공 진지 폭발음은 천안함과는 무관한 일반적인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해경은 3월 28일 보도자료에서 26일 해작사가 합참에 최초 보고한 시각을 인용해 9시15분으로 명시해버렸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그는 본인이 연설비서관으로 있다가 사고직후인 3월 28일 국방비서관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도 사건 발생 시각은 잠정 21시30분으로 쓰고 있었다”고 전했다.

천안함 함미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436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672&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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