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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사랑도둑] 슬픈아침 1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6/01 [01:51]

연재소설 - [사랑도둑] 슬픈아침 1

임서인 | 입력 : 2015/06/01 [01:51]


벚꽃아래, 꽃비가 내리던 날이 화근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머리 하나 더 큰 남자가 홀로 의자에 앉아 꽃비를 보고 있었다. 옆얼굴을 훔쳐보다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 속에서 빛이 튀어나와 심장을 쳤다. 빛이 얼마나 심장을 세게 쳤는지 며칠은 그 두근거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 수상한 빛을 그 당시에 피할 수 있는 피뢰침만 있었더라면, 피뢰침을 발명한 프랭클린보다 더 존경했을 것이다. 사랑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말이 저주스러워지기까지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향희와 지혜 앞에서 사랑이란, 반해버리게 하는 전기를 막는 피뢰침을 발명해내어 수많은 눈멀고 귀멀어 버리는 청춘남녀들에게 판다면 돈방석 만들어 살 수 있을 거라고 떼를 썼었다. 되돌리고 싶도록 꽃비 내리던 날이 저주스러웠다. 그 날이 저주로 다가오고부터 벚꽃 구경을 가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랑의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짧은 벚꽃의 수명처럼, 비바람 앞에 속절없이 쉬 저버렸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보다 두 살 위이다. 김대근 이름만큼이나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지만, 좀생이 속알딱지였다. 이말은 지혜의 표현이다.  점점 머리 숱은 적어지고 배는 반달을 닮아가고, 그녀 몰래 무통박피를 하고 점을 빼버린 얼굴이 무슨 일인지 빛이 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권태롭고 불만스럽다고 비열할 정도로 그녀를 이 모든 원인의 제공자로 몰아세웠다.

한 달에 두어 번 그녀의 궁전문을 여는 것도 그녀가 보채 간신히 열고 들어왔다, 어느 날은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문턱에서  잠을 자지를 않나, 한마디로 말해 남편에게 욕을 해준다면 토끼보다 못한 놈이었다. 그제는  3개월만에 궁전문을 강제로 열고서는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거친 손길에 하마트면 노동의 댓가로 한송이 꽃을 피울 뻔했지만, 그마저도 아침이 되니 슬픔이 잉태되어 있었다. 

그는 쾌락의 노동을 혼자 맛보고도,  그녀의 작고 앙증맞은 두동산을 탓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계란후라이나 건포도 같다고 놀렸다. 사실 그녀의 두 동산은 주먹만한 공처럼 작고 예뻤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트집 잡으려고 하다 보니, 매번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속의 경멸을  느끼며 그녀는 부끄러웠다.
 
그녀는 향희에게 윗옷을 걷어올려  보이며 내 것이 정말로 작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면 향희는 그녀의 동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렇게 예쁜 동산을 탓하느냐며  자신의 작은 동산을 몇 번의 어둠속에 낳아오더니 제법 볼만했다.

어느 날 부터 그녀의 아침은 슬펐다.
 


        아침 이미지

            - 박남수 -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어둠은 노동의 시간을 즐기며 온갖 것을 낳는 동안 그녀는 슬픔을 낳았다. 그녀의 세포는 제멋대로 축늘어져 있었고, 눈은 허망했다. 

 두 동산의 꼭지는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그녀의 몸 어느 한구석 사랑을 받지 못해 낳을 있는 것이 슬픔밖에 없었다. 

선영이 바라볼 때 남편은 천하에 몹쓸 놈이었다. 전광석화처럼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매력은 온 데 간 데 없고, 뱀이 어린 생쥐를 잡아먹으려고 하듯 그녀와 아들의 간을 졸이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남편에게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생활비는 넉넉히 내놓고 있었다. 사립대학 서무과장인 그가 이만큼만 주어도 넉넉하다는 것이 그가 버는 것의 4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이지만, 그녀는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그녀가 옷을 사 입은 것을 알면 당장 생활비가 줄어들 것이 뻔했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번 돈을 썼다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그녀를 잡아먹을 판이었다.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 꼬아서 가계부를 적어 남편에게 한 달에 한번씩 검사를 받았다. 지출란에 그녀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사는 날에는 욕과 주먹이 날아올 것을 각오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향희와 지혜에게 옷과 신발을 얻었다. 향희는 유행에 지난 속옷이라고 가져오기라도 하면 선영은 좋아라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향희는 혀를 차며 당장 남편과 헤어지라고 닦달을 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무정했다. 준형을 배었을 때에도 흔한 딸기 하나 사들고 들어온 적이 없고, 태동이 있을 때에도 배에 귀를 대고 생명의 신비함을 느껴보려 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남편은 악마의 화신이 아닐까 하고 그녀는 의심했다.

만약, 부부가 동거를 하지 않고 따로 산다면 행복한 날이 더 많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남편의 비열한 말과 치욕스런 욕에 넌덜머리가 났다. 남편과 옥신각신 씨름하다가 왼쪽 엄지가 부러져 한동안 고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엠블러스에 실려 가는 창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전신 속에는 자유의 원소가 있어 날마다 세계관을 바꾸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침에 생각했던 것들을 저녁이 되면 느닷없이 무너뜨리고서 우울해했다. 오늘 남편으로 인해 기쁨의 세포들이 망가져버린 것을 한탄하다가도 다음날이면 옷을 갈아입듯이 자신에게도 행복의 날이 올 것이라 여겼다. 남편 몰래 느끼는 하나의 기분 좋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밤새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고 체념해 가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어둠속에서 그녀는 그것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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