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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남편의 선물7
 
임서인

 
일주일 전

선영은 문을 고치고 있는 남자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능수능란하여 금방 문을 고쳐놓았다. 그녀의 눈이 남자의 손길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남자는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읽으며 말없이 문을 고쳐 나갔다.

“사장님, 문을 고치는 것처럼 인생의 문도 고칠 수 있나요?”

남자는 연장을 챙겨 가방에 넣다말고 그녀의 말에 손을 멈추었다. 그의 두툼한 손에서 문이 고쳐지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문이 부서진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며 고쳐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쎄요. 이런 문이야 손만 놀려 조금 수고하기만 하면 되겠지만, 부서진 인생의 문을 고치는 방법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잦아들 듯 가냘픈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의 흐린 시야에 부서진 문 저 너머로 황량한 광야가 보인다. 이정표도 없는 거칠고 메마른 길을 정처 없이 돌고 돌다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어있었다. 거칠고 고달픈 길이었지만 같이 걷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다. 황량한 광야 한가운데 홀로 남겨져 있다. 어둡고 축축한 기운만이 감도는 광야 한가운데 그녀가 길을 찾아 손을 내저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두컴컴하다. 무섭다.

남자가 망치를 가방에 넣는다. 그녀의 아득하고 먼 곳을 보는 듯한 눈동자에 남자가 기침을 했다.

“제게는 어두움만 보일뿐, 문들이 안 보여요.”

그녀가 기침 소리에 놀라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인생의 문은 항상 열려있지 않을까요? 어떤 문은 강철로 만들어져 아무리 용을 써도 열리지 않고, 어떤 문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수고를 하지 않아도 열리지요.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이라는 소설 읽어보신 적 있나요?”

“아뇨.”

“소설에 한 남자가 나옵니다. 그는 꿈을 가지고는 있지만, 문 앞에서 망설이기만 하지요. 문을 활짝 열고 싶지만, 그 문을 벗길 힘이 없다 생각하고 그 문을 열지 않죠. 문은 여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닐까요?”

선영은 남자의 말에 동조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은 옷이 야무진 몸매를 드러냈다. 큰 키는 아니지만 목소리는 굵고 시원했다. 두툼한 손만큼이나 얼굴도 살이 많아 마음조차 넉넉할 것만 같았다. 남편이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이 남자는 감성적일 것만 같아 그의 가슴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장님은 드라마를 보세요?”

그녀가 뜬금없이 문 이야기를 하다 말고 드라마를 보냐는 말에 남자가 문 앞에 앉았다.

“빠뜨리지 않고 봅니다만.”

“드라마를 보시면서 우신 적이 있나요?”

“네.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것입니까?”

“제가 만약, 연애를 한다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드라이버를 가방에 넣으려던 남자는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안 계신가요? 계시는 줄 알았는데요.”

“이혼을 할 겁니다. 문 이야기 고맙습니다. 제게 깃털처럼 가벼운 문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연애를 한다면이라고 하긴 했지만, 지금 심정은 절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사장님을 보니 감성이 풍부해서 아내에게 잘 해주실 것 같아 문득 부러운 마음에 물어보았습니다. 친절하게도 제 무례에 잘 대해주시네요. 남자와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이 처음입니다. 우리 남편과 이런 말을 주고받았더라면…… ”

그녀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가자 남자는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어 부서진 문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드라이버마저 가방에 넣고 문을 열고 나가자, 그녀는 외간 남자에게 마음을 보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남자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고친 문 앞에 앉아 남자가 말해준 문의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기고 있었다. 자신이 20년 전에 들어온 가정이라는 문을 열고 나가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부서진 저 문처럼 다시 고쳐볼까?

남편의 문은 닫혔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을 문이다. 그 문안에 다른 여자를 들여놓고서 그는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은 열린 문이다.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남편의 문은 그 여자를 향하여 열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볼 수가 없다.

속이 다 비쳐도 부끄럽지 않은 투명한 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문 안에 살면서 남편을 잘 알지 못했다. 물리적인 충격을 가하면 부서지는 저 문처럼, 그녀의 가정은 견고하지 못하다.

그녀의 앞에는 어떤 문이 있을까? 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 두 팔에 힘이 빠지고 손가락 끝으로 기가 다 빠졌는지 무력해졌다. 다시 광야의 황량한 광야가 보인다. 없어지다 보이고, 보이다 없어진다.

선영은 한참을 그렇게 광야에 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신발장위에 올려놓았던 책을 보았다. 벌떡 일어나 두툼한 책을 주워들고 앉았다. 그 책 사이에 인쇄하여 넣어 두었던 종이 하나를 꺼냈다.

반으로 접은 하얀 종이를 펼쳤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그 종이에는 시 하나가 적혀있었다.

            [ 미운 오리새끼 ]

역마다 낯선 길 떠나는 열두 명의 나, 일 년 열두 달 수천 번 전철 속에서 태어나지. 불 켜 논 상자 속에서 자라고 죽지. 숲 속처럼 고요한 그 속에서 잠들고 말지. 모래언덕에서 미끄러지는 백조엄마. 언덕에 버팅기고 서서 엄마를 굴려대는 오리 꿈을 꾸는 동안 백팔십 번 겨울이 왔어. 혜화역 2번 출구로 들어가는 동안 백팔 번의 봄이 갔어. 지하와 지상 사이를 들락거리는 동안 들켜 버린 나 좀 봐. 두꺼운 책 펼쳐 들고 졸고 있는, 관을 뚫고 날아오르는 새끼벌들처럼 자동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잠의 문.

                                            -권오영 - 안데르센 나의 안데르센중에서-


“잠의 문” 이라는 글자에 노란 형광펜이 그어져있다. 문중의 잠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행복할 것 같은데, 누군가도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가 “잠의 문”에 계속 눈을 고정하고서 넋을 놓았다. 한번쯤 그 문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문은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데 그녀를 다시 토해내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에 선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휘황찬란한 악세사리만이 눈에 보이는 여자 하나가 활짝 웃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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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14 [12:07]  최종편집: ⓒ 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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