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1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8/20 [14:25]

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1

임서인 | 입력 : 2015/08/20 [14:25]

한 손에는 구찌 가방을 한 손에는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는 여자가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살짝 웨이브가 있는 긴 머리에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 속에 또 다른 짧은 목걸이가 걸을 때마다 찰랑거렸다. 화장은 안한 듯 하나 아인라인으로 눈매를 강조하고 핑크빛 루즈로 밝고 발랄함을 강조한 얼굴은 선영의 동생뻘처럼 보였다.

몸의 굴곡이 확연히 드러난 황금색 원피스 아래 매끈한 다리가 매력적이다.  황금펄이 난 구두는 하얀 발이 무척이나 앙징맞았다. 가느다란 손목에는 구슬이 촘촘히 박힌 팔찌를 겹쳐 대여섯 개 차 귀엽고 발랄해 보였다. 왼손 약지에는 알이 큼직한 원석 반지와 메탈릭 반지 두세 개를 한꺼번에 끼어서인지 자유로운 보헤미안 분위기가 났다.

선영의 눈이 커지며 입을 벌리고 말하기도 전에 여자는 식탁에 과일 바구니와 가방을 올려놓으며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컵에 물을 따르더니 급히 들이켰다.

“누구세요?”

뒤따라온 선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자에게 물었다.

“기집얘, 8년 만에 보았다고 몰라보니? 나 죽었다고 소문났다며?”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단절되어 살고 있는지가 몇 해인데, 저 여자가 죽었다는 소문을 어찌 안단 말인가?

여자가 일어났다. 손가락을 끼며 사뿐사뿐 걸으며 집안을 들러본다. 걸치적거리는 물건은 발로 밀면서

“무슨 집이 이리 지저분하니? 치우고 살아라.”

낮게 중얼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잘산다더니 살림살이가 왜 이리 궁색해?”

깍지 끼었던 손을 풀며 두 손을 뒤로 둘러 깍지를 끼었다.

안방에서 나와 거실 옆의 베란다로 나갔다. 손을 풀고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려다본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대낮인데도 주차장에 무슨 차가 저리 많니? 한 집에 차가 두 대씩이나 되나보네.”

하고 중얼거렸다.

“여보세요? 누구신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입니까?”

선영이 거실 미닫이문에 손을 짚고 불쾌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여전히 궁색스럽게 그 놈의 무릎 나온 바지 못 벗고 사는구나. 귀 안 먹었으니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여자가 획 돌아서며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

“성공했구나. 역시 우리나라 성형의사들은 세계제일이야. 하하하하. 그렇다고 내 목소리로 못 알아듣니? 서운하다.”

그제서야 그녀는 여자를 몸에서 떼어내며 여자의 가슴을 여러 차례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 이휘향이다.

선영의 중학교 앨범 속에는 키는 크지만,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휘향의 사진이 실려 있다. 휘향이 결혼식 하던 날, 그녀의 귀에 “얼굴은 못생긴 게 몸매 하나는 죽여준다.”하고 속삭였었다.

휘향은 나름대로 결혼을 잘했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한 그녀는 몇 년은 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요술지팡이인지 친구들 머리를 만져주면 한껏 멋을 낸 어여쁜 처녀애로 만들어주곤 했다. 섬세한 손을 살려 번화가에 커다란 미용실을 차렸다. 그녀는 언제나 더 예쁜 머리, 더 세련된 머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바빴다.

그녀의 남편은 언젠가부터 유머가 없으며 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휘향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잘 웃던 남편이었다. 그녀는 그런 남편이 혹시 바람쟁이가 아닌가 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그런 남편을 칭찬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표현을 하지 않은 그녀를 오히려 질책했다.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얼굴이 굳어갔다. 친구들은 그런 남편에게 아기 하나 안겨주면 된다고 했으나 그녀는 아기를 원치 않았다.

회사에 다녀온 남편은 미용실로 와서 뒷마무리를 도와주는 자상한 면도 있었다. 남편은 직원들 중 착한 나영을 유달리 챙기고 그녀의 일을 잘 도와주었다. 집에 돌아와 나영을 칭찬하며 잘 챙겨주라고 당부도 했다. 그녀는 아직 연습생인 나영이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이 서툴러 남편이 부탁한 것이라 생각했다.

휘향은 미용실 여사장 치고는 수수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선호했다. 반지는 일할 때 걸치적거려 끼지 않았다. 가끔 손님들 중에는 그녀가 미용실 직원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녀의 단골들은 아름답게 꾸미라고 하였으나 그녀는 일하기 편한 옷차림을 고수했다. 이때만큼은 선영은 휘향과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옷을 입었었다.

가끔 손님들 중에는 머리를 말고 앉아서 진한 농담을 하곤 했다. 잠자리 이야기와 음담패설이 난무하면 휘향은 그 손님을 쫓아내버리기도 했다. 그녀는 쾌락을 멀리했다.

가끔 남편이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휘향이 표면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의외로 잔잔한 정이 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 말이 공허하게 들렸었다.

다른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 여러 남자를 사귀는데 반해 그녀는 남편이 오로지 첫사랑이자 첫 남자였다. 남자 경험이 많지 않은 선영을 좋아했으며 남성 편력이 많은 지혜를 욕하기도 했다. 쾌활하고 밝은 그녀의 모습은 일터에서만 그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자식을 낳아주지 않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못생긴 년이 임신도 제대로 못한다고 착하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그녀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6년을 넘게 기다려 준 남편의 입에서 그 정도의 말은 양반이라며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남편을 두둔했다. 차라리 이혼을 해주라는 시집 식구들의 성화도 빗발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두었다. 자식도 없는데 벌어서 무엇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절제하던 술도 매일 마셨다. 그녀가 일을 마치면 미용실로 어슬렁거리며 찾아와 금고에서 돈을 한웅큼 집어갔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월급을 못주게 되고, 임대료도 밀리는 일이 생겼다. 손님들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육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더 작은 가게로 혼자 남은 나영을 데리고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으면 남편은 술에 먹혀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왔다. 간혹 새벽에 깬 남편이 그녀를 안으면 냄새가 역겹다고 밀쳐버렸다. 남편은 노기가 충천하여 두 번 다시 그녀 곁에 오지 않았다.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서 자식을 낳겠다고 선포하고 별거를 선언했다. 그녀가  남편을 붙들고 엄마가 자신을 낳다가 죽어 아기를 낳는 것이 공포라고 자백을 했지만, 한번 돌아선 남편은 그녀의 애원에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혼만은 죽어도 할 수 없다고 그녀는 버텼다. 거짓말로 자식을 낳겠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에게서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고 누누이 당부하는 말을 되새기며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그녀는 이혼을 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잠자리에 누워 남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잊고자 노력했다. 점잖고 착한 남편의 입에서 “못생긴 년이 아기도 낳아주지 않는다.”라고 했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새기며 남편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녀 스스로 그 말을 되새기며 가슴에 상처를 내었다.

그녀의 미용실은 점점 손님들이 줄어들었다. 가끔 찾아온 남편은 그녀에게서 돈을 뜯어갔다. 돈이 모이지지 않자 가난의 굴레가 그녀에게 씌어졌다. 나영이도 그만 두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폭력을 휘둘렀다.
 
“네 년이 이혼을 해주면 나도 이런 짓을 하지 않아.”
 
하고 악다구니를 썼지만, 그녀는 이혼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가난한 옛날로 돌아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마시지 않던 술과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다. 술을 마신 끝에 오는 외로움 속에는 가끔씩 찾아오는 남편을 그래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고 울었고, 후하고 내뱉는 담배 연기 속에 남편의 손끝에서 자신의 온몸이 타올랐던 모습이 사라져가는 모습에 허탈했다. 그 생각 이후로 모처럼 돈을 가지러 오는 남편에게 나긋하게 굴어 잠자리를 할라치면 남편에게서 냄새가 나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미련도 없는 남편에게 이혼을 해주지 않는 그녀의 집착은 서로를 허물고 있었다.

하루는 손님을 한 사람도 받지 못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남편이 찾아왔다. 까칠한 수염, 꾀죄죄한 옷차림이었던 남편의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깨끗해진 얼굴은 살이 올라있었으며, 예전처럼 말쑥한 옷차림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돈을 주시게나.”

점잖고 예의를 다한 남편의 말에 그녀는 놀라 얼떨결에 텅빈 금고를 열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미안하구려. 그동안 당신을 많이 괴롭혔네. 공포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자네를 이해하지 못한 나를 용서하구려.”

순간, 휘향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죽을 것만 같은 공포였다. 남편의 성기가 자신 속으로 들어오면 몸이 뜨거워지며 남편의 몸을 힘껏 껴안고 사랑을 맘껏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임신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 몸을 사리고 자신 속에 내재된 원초적 본능을 발산하지 못했다. 본능에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댈 때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죽었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면 그녀의 몸이 차가워졌다.

그녀가 남편에게 이혼을 해주지 못한 것은 그 집 귀신이 되라는 할머니의 말은 핑계였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깊이 파묻어두고서 표현해 내지 못한 실수였다. 그것이 실수인지도 모르고 마냥 남편을 붙잡고만 있었던 것이다.

“나를 이제 놓고 마음 편히 살았으면 하네.”

남편도 그녀가 자신에게 미련이 있었음을 알았는지 어깨를 툭툭쳤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얹은 손을 거두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당신은 예뻐.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 것 같소.”

남편은 그녀를 쇼파에 앉히고는 떠나갔다. 황량한 바람이 불며 그녀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또 다른 공포가 엄습했다. 가끔 돈 가지러 오는 남편이었지만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었는지, 이제 그가 영영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자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정말 혼자였다. 철저하게.

의욕을 상실한 그녀의 못생긴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메마르고 건조한 목소리를 듣고 싶은 손님은 없었다. 간혹 여자들이 모여 사랑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녀의 신경은 날카로워 뾰족한 송곳이 되었다.

그녀의 뾰족한 송곳이 손님을 찌르는 사건이 생겼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연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UCC
오월이면 편지를 써요
조선영토 지도 대량 발견
2013년 12월 20일 범해외동포 불법 부정선거 1년 규탄 촛불시위 - 뉴욕 영상입니다.
비오는 밤
신문사공지
플러스코리아 법인이사 변경 등기완료 공지
주간지 플러스코리아 발행
플러스 코리아타임즈 제호 변경완료
뉴스레터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