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4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9/04 [14:14]

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4

임서인 | 입력 : 2015/09/04 [14:14]
 


 

이튿날 오전 10시쯤, 그가 왔다.

 

병실에 들어오는 그의 얼굴이 환하다. 그는 병실 안 사람들에게 넉살좋게 인사를 했다. 그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하자 얼굴이 굳었던 환자들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그는 창문쪽에 있는 환자들에게 다가가 비닐봉지에서 검은색 손잡이가 달린 빨간색 막대 비슷한 것을 나누어주었다. 환자들은 엉겁결에 그가 내민 것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사람들이 물건에 대해 궁금해 했다.

 

“이것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최초로 개발한 손으로 부는 호루라기입니다. 어제 제가 여기를 다녀가면서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저 환자만 빼고 다들 얼굴이 고우셔서 호신용 호르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제 공장에 가서 가져왔습니다. 부디 사양치 마시고 받으셔서 잘 사용하시면 백골이 난망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환자들 몇이 깔깔대고 웃었다. 휘향은 그가 -저 환자만 빼고-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가리킬 때 기분이 상했다. 얼굴이 곱다고 치켜세운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아 웃어대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무리 봐도 누리퉁퉁한 것이 예쁜 것도 없건만, 무슨 놈의 손으로 부는 호르라기를 주나 싶은 것이 영 마뜩찮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기는 했지만 그는 그 호르라기를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

 

창문 옆으로 가더니 여자에게 호르라기를 내밀었다. “딸이 예쁠 것 같으니 가져다주세요.” 그 말조차도 그 여자는 듣기 좋은지 생글생글거린다.

 

“어서 준비하세요. 계속 이 자리에 누워있을 겁니까?”

 

어제 그리도 친절하게 말하던 남자가 표정을 확 바꾸며 절도 있게 또박또박 말하자 그만 휘향은 벌떡 일어났다. 손으로 부는 호르라기인지 손으로 휘두르는 호르라기인지를 여자들에게 주며 인심을 쓰며 웃던 환한 얼굴 대신 그녀에게 대하는 표정이 어제와는 영 달랐다. 그만 휘향은 그의 그런 태도에 얼고 말았다.

 

낯선 그가 그녀를 데리고 간다는 것에 대해 이미 왜 데려가느냐고 반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렸다. 오로지 그의 딱딱하고 사뭇 사무적인 태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이미 그녀는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이 병원 소식통이 그녀 옆 침대의 여주인이 밤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락가락 하다, 저승에 호적을 올렸다는 말에 기겁을 하고 어서 이 병실을 나가고 싶어 서둘렀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따라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마력에 끌려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는 병실 문을 나서기 전, 환자들에게 예의 보름달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후딱 이 병실을 뛰쳐 나가셔”하고 말하자 환자들이 -고맙다-는 인사와 -네-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휘향에게는 잘가라는 인사를 건네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없었다.

 

    

그의 이름은 정경환.

 

천안 부근에 손으로 부는 호르라기 공장을 하는 사장이다. 입으로 부는 호르라기보다 손으로 부는 호르라기를 경찰과 군부대, 도로에서 차량유도를 할 때, 공사 작업 시에, 자율방범대 기타 등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곳에 납품을 하는 공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만큼이나 공장은 날개 돋힌 듯 잘 나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미모의 아내가 있으며, 딸이 둘 있다.

 

그가 그녀를 데리고 간 것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였다. 3층으로 올라가 맨 끄트머리 호실 앞에 발을 멈추고 초인종을 울렸다. 문이 열리며 미모의 여인이 문을 열었다.

 

“여보, 청소 다했나요?”

 

여보라는 남자의 말에 그녀는 그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승처럼 우뚝 서고 말았다. 그녀가 그 자리에 서자 여인이 웃으며 그녀의 손을 이끌어 안으로 들였다.

 

집안은 산뜻하고 깨끗했으며 새로 산 물건으로 꾸며져 있었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와는 달랐다. 집안 살림보다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아내였다.

 

우아한 옷맵시에 상냥한 말투는 교양이 철철 넘쳐흘렀다. 흘러넘치는 그것을 휘향에게 나누어 주기라도 한다면, 하고 휘향이 부러움의 눈초리로 여자를 보았다. 자신의 모습을 그녀의 옆에 놓고 상상해 보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얼굴도 고운 것이 목소리도 고와, 목소리도 고운 것이 몸매도 좋아, 몸매도 좋은 것이 부자 남편을 가지고 있어, 부자 남편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도 고와 보였다.

 

그만 작아진 자신을 이 집 어디고 감추어 버리고 싶었다. 한껏 초라해진 자신을 왜 이들은 이 집으로 데려왔는지 휘향은 궁금했다.

 

“저, 저어 사장님…….”

 

자신을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할까봐 그녀는 한껏 나긋한 목소리로 정 사장을 불렀다.

 

“여보, 이 사람이 궁금한 모양이니 당신이 설명하구료. 난 회사에 다녀오겠소.”

    

그가 나갔다.

 

휘향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의 아내와 단 둘이 있게 되자 두려워졌다. 그의 아내로 인해 작아졌던 자신의 몸뚱어리가 커다랗게 커지며 거실 가득 차는 것을 느껴 몸들 바를 몰랐다. 숨구멍이 조금씩 줄어드는지 숨 쉬기가 곤란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길게 내뱉었다.

 

청순가련형 같은 그의 아내에 비해 그는 건장하고 단단해 보였다. 그의 단단한 품 안에서 그녀가 아늑하게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휘향은 단 둘이 남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나, 그녀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가려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휘향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그의 아내가 쇼파에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의 아내가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얼음장같이 차가움에 온 몸이 떨렸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 차가운 손, 한뺨 밖에 안 되는 허리, 순간 휘향은 가련한 연민의 정이 자신의 마음속에 차가움을 밀어내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손에 순순히 이끌려 쇼파에 앉았다.

 

그의 아내가 차를 내오겠다고 말하며 그녀를 혼자 남겨주었다. 그녀의 가는 눈이 온 집을 수십 번 훑으며 쇼파을 훑고 있자 그의 아내가 차와 과일을 내왔다. 그의 아내가 쟁반을 탁자에 놓고 그녀의 옆에 앉자, 또 다시 긴장감이 밀려오며 그녀의 세포가 쭈그러들었다.

 

앉는 모양새며, 찻잔을 그녀의 앞에 내놓는 맵시며, 포크에 과일을 쿡 찍어 그녀에게 건네는 솜씨가 아주 조용한 바람처럼 소리 없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그의 아내가 내미는 과일을 건네받으며 살짝 미소 지어 답례했다.

 

“이렇게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이곳에서 사시면서 마음 편히 사셨으면 합니다. 며칠은 몸보신을 하시고요.”

 

그의 아내가 나직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제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겁니까?”

 

“놀라셨죠? 궁금하실 겁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에 놀라지 마시고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 놀랄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남편이 나영에게서 자식을 낳는 일만큼이나 더 놀랄 일이 어디 있으며,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서 목숨을 건지고, 그를 따라온 것만큼 또 놀랄 일이 있단 말인가?

 

사스로 수많은 목숨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2001년 9월 11일에 위용을 자랑하던 빌딩이 한순간에 폭파되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이만큼은 놀라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사건도, 프랑스에서 살인더위로 12.000명이 사망을 했어도 지금보다는 놀랍지 않다.

 

그의 아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그의 아내의 눈을 보았다. 쌍커플진 눈이 여러 번 껌벅껌벅거린다. 그의 아내 눈이 슬픈 황소 눈처럼 슬퍼보였다. 눈빛이 아득해지며 그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머언 곳을 보는 듯 초점이 흐려진다.

 

휘향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을 때는 홀랑 벗고 때를 벗기듯, 자신의 영혼을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씻어내고 싶었다.

 

그녀가 영혼을 씻어내는 동안 그의 아내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고 있었다. 그 모습이 농염하며 매력적이었다. 향기 없는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게 놀라 그만 휘향은 과일 조각이 꽂힌 포크를 든 손을 허공에서 여러 번 내저으며 몸을 뒤로 제쳤다. 그의 아내와의 거리를 넓혀지기는 했지만 도로 몸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그의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되었다는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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