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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라리 5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09/21 [13:30]

[단편소설] 사라리 5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09/21 [13:30]

 [단편소설 ] 사라리

 

                            박종규

 

 

한기가 서성거리는 꼭두새벽, 아직 별이 한창인데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갯바위를 후린다. 모자 달린 작업복을 입어 얼굴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였어도 강씨의 볼은 바람 가시에 긁힌다. 그는 어둑새벽 물살을 밀어 배를 움직이나 시동은 걸지 않았다.

 

작달막한 키에 살이 적당히 붙어 마치 곰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움푹한 포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 돌출되어 나온 바위 언저리에 배를 대고 고개를 드니, 십여 미터 앞에서 허연 물체가 움직이며 점점 다가온다. 엷은 미소가 그의 도톰한 입 주위에 피어난다.

 

  “바람이 너무 센 디…….”

 

  나지막하게 톤을 죽인 여자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바람에 실리는데, 희끗희끗 드러난 여자의 목덜미에는 별빛이 내려 비쳤다.

 

  “얼른 타더라고. 많이 춥쟈?”

 

  여자는 쪽배에 폴짝 오른다. 무게 때문에 배가 한 쪽으로 기우뚱하자 여자가 강 씨에게 쏠리면서 목덜미의 별빛을 털어낸다. 여자의 뺨이 강 씨의 얼굴을 스치면서 온기가 사내를 자극했고, 살 내음은 사내의 음기에 불을 지핀다

 

  “이날을 많이 기다렸어야! 근숙이도 그라제?”

 

  사내는 입김을 하얗게 뿜어내면서 탁한 목소리를 여자의 목덜미에 쏟는다. 여자도 오늘따라 남정네 입에서 나는 막걸리 냄새가 싫지 않았는지 둘은 서로 안고 쓰러진다.

 

  “찜찜하요. 마눌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남자는 그녀의 입술을 덥석 물어 말을 막는다. 그는 여자의 입술을 애무하면서 가슴으로 손을 헤집어 넣는다. 바닷바람에 차가운 손길이 부드러운 속살을 거칠게 만지자, 여자는 선뜩하면서도 묘한 자극에 몸을 떤다.

 

강 씨의 까칠한 수염이 여자의 보드라운 젖가슴을 파고들었고, 여자는 신음을 내며 가슴을 좌우로 비튼다. 이윽고 남자의 혀가 여자의 유두에 닿자, 서서히 그녀의 아랫부분에 불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놀란 배가 좌우로 움칠거리면서 여자의 가슴처럼 출렁거리는 파도를 넘나든다.

 

남자가 거친 호흡을 쏟아내며 웃통을 벗어젖히자, 여자도 얼러맞추는 몸놀림으로 서둘러 알몸을 하늘빛에 내던진다. 그리고 남자의 대살진 살 냄새에 취해서 아랫도리를 꼬듯이 허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요분질을 해댄다. 파도의 규칙적인 오르내림은 두 남녀의 움직임과 장단이 맞아떨어져 닻을 내리지 않은 배가 떠내려가는 것도 몰랐다.

 

  여자의 욕정이 불처럼 타올라 사내를 받아 드렸을 때, 배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 가고 있었다. 여자는 막혔던 둑 터지듯 넘쳐나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자 위에 엎어져 는실날실 열기를 쏟아낸다. 강 씨는 행위에 빠져들수록 뒷골이 따끔거리는 증상을 느낀다. 아무래도 신 새벽 급히 마신 막걸리가 부담이었나 싶다.  

 

  “참말로 기다렸어야……. 잔 살살, 으메 나….”

 

  강 씨의 말투조차 자극적으로 들린다. 생각해 보면 다시는 꽃필 일 없는 겨울을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몸이 뜨거워 데일 것 같은 느낌으로 흐느적거린다. 여자는 몸이 달아오름에 따라 차라리 불이 되고 만다.

 

눈을 감아버리자 붉은 온통 불꽃으로 뒤덮인 바다가 보인다. 넓은 바다는 장밋빛으로 물들어버렸다. 장미꽃 바다다! 바닥부터 일어나는 불꽃은 마침내 전신을 사를 듯 기세를 뻗쳐오른다. 그 정점에서 화사하게 피어나 산화할 꽃봉오리에는 봄물이 가득할 거였다. 그 봄물이야말로 단 한 번 피워 낼 봄꽃을 예비한 여인의 모든 것이었다.

 

  불붙은 몸을 위로위로 끌어올리기만 하던 여자는 어느 순간부터 아래로 끌어내려 지는 묘한 느낌에 의아해한다. 아쉬움에 몸을 떨면서 더욱 강하게 남자를 끌어안는다. 바다에 깔린 붉은 꽃잎들은 문뜩, 광장이 붉게 물들었던 오월의 그날을 떠올린다.

 

누군가 선홍빛이 되어 자기 앞으로 폭 거꾸러졌다……. 예쁘게 맺힌 꽃봉오리를 이제 막 터트려 지고한 꽃잎을 하늘 아래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아직 잠재우지 못한 찬바람이 되살아난 것일까. 꽃을 피워내기 위해 준비된 봄바람은 아니란 말인가.

 

  여자는 다시 몸을 움츠러들이면서 주춤한다. 이상하다. 언제부터인지 여자의 살결을 매만지던 손길은 툭 떨어져 나가고, 남자는 움직임이 없다. 여자도 한기가 들면서 발이 배 바닥에 얼어붙은 것 같다. 막대기 같은 손으로 옷가지를 챙기고 파카를 남자의 몸에 둘러 주지만,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몸을 뉜 강 씨는 온몸이 선홍빛으로 변하여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선홍의 빛깔은 그날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천지가 무너지던 날이었다. 따앙, 따앙, 따따, 따앙! 귀청을 때렸던 그 총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붉은 꽃으로 뒤덮인 바다는 이미 핏빛으로 물들여져 가고 있다. 발아래 강 씨는 아직 그대로다.

 

여인은 퍼뜩 정신이 든다. 더구나 배가 너무 멀리 떠내려 왔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강 씨의 얼굴과 가슴, 다리를 잡아 흔들어 보나 그는 눈도 뜨지 않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질 않는다.

 

  “아잡씨, 어디 아프요? 아니, 이것이 시방 뭔 일 이디야! 아잡씨, 어서 안 일어날라?”

  여인은 강 씨의 코끝에 손을 대고, 귀를 대 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와락 파랗게 변한 바닷물이 달려드는 것 같아 휘청한다. 

 

  “아잡씨! 아잡씨. 이 일을 어째사 쓰까!”

 

  겁이 덜컥 난 여인은 발을 동동 구른다. 우선 바지부터 추켜올려주면서 뒷일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두 남녀가 바다에 같이 있다가 남자가 죽어버렸다! 자기는 남자를 죽인 꼴이다. 사람을 죽여 놨으니……. 절대 오지 않을 허망한 봄이었을까. 봄이 왔다고 생각했으나 봄은 아니었다.

 

서러운 눈물이 마구 흘러내린다. 눈물 사이로 총을 든 군인들이 보인다. 갈피를 못 잡는 총구가 돌연 육박해온다.

 

  탕, 탕, 타당, 탕!

 

  붉게 여물은 꽃봉오리가 터지는 소리였다. 귓전을 맴돌던 총성. 총성! 그 총소리는 늘 리듬을 타고 들려왔다. 탕, 탕, 타당, 탕! 넌더리를 치게 하는 그 리듬은 그 뒤에도 느닷없이 귓가에 맴돌곤 했다. 때론 도마 두드리는 소리로, 때로는 둥, 둥, 두둥, 둥 고동치는 북소리로. 그 소리를 가슴에서 뛰는 고동처럼 언제나 안고 살아왔다.

 

  광주에서 만난 남편은 알고 보니 도피생활자였다. 세상에는 지은 죄 없이도 숨어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참 바른 사람이었는데 그해 5월, 도청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총성의 리듬에 맞추어 쓰러졌다. 그렇게 가버리면 안 될 일이었다.

 

뱃속에서는 둘만의 꿈이 영글고 있는데……. 남편을 보낸 그때도 광주의 하늘은 지금처럼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배는 점점 더 섬에서 멀어져 간다. 도시로 간 딸자식 생각이 번쩍 났다. 여인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강 씨를 내려다본다. 그는 뱃일 나온 차림이다. 여인의 눈빛이 별처럼 빛난다. 서둘러 배에 시동을 걸고 마을로 향한다.

 

포구 근처에 다가가자 엔진을 죽이고 정박 중이던 작은 배 한 척을 조심조심 끌어다 두 배를 붙인다. 뱃머리를 맞댄 두 배를 끌고 다시 강 씨네 양식장으로 향한다. 여인은 얼마 전 병석의 파카를 말도 없이 가져왔다.

 

강 씨와 밤에 몰래 만나려면 남장(男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인은 자기가 입었던 파카에서 무심코 끈을 풀어내 배와 양식장 부표를 묶어 연결해놓고 그를 바다에 밀어 넣는다. 바다는 강 씨를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아이고 이것이 뭔 일이요. 요케 보낼 수밖에 없소…….”

 

  강 씨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빨려든다. 그녀는 그동안 자기의 잃어버린 봄을 꽃피워 줄 사람은 강 씨뿐이라 믿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첫사랑이었다. 양쪽 집 부모들 사이에 불화만 없었어도 사랑은 결실을 맺을 거였다.

 

성급한 강 씨가 육지로 뛰쳐나간 것이 사단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어 남의 것만 같던 운명을 안고 살아오면서도 강 씨에 대한 첫 정은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세상을 등졌다.

 

바다 한가운데 사랑이 움텄던 그곳에서 언젠가 다시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여인은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강 씨의 흔적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강 씨의 배를 부표에 묶는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아지면서 뱃머리가 양식장 부표에 묶인 노끈을 끊지 못해 안달이다.

 

여인은 끌고 온 배에 옮겨 타 마을로 향한다. 세찬 바람에 실려 와 여인의 뺨을 후리는 물줄기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갔다. 붉은 파도가 산더미 되어 여인의 배를 후미에서부터 득달같이 쳐올린다. 얼른 이 배를 포구에 갖다 놓아야 한다. 다행히 포구에는 사람이 없었다.

 

여인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집에 들어가 옷가지를 챙겨서 마을을 벗어나 산을 헤쳐 선착장 부근까지 달음질했다. 그녀는 관광객차림으로 복장을 다시 꾸미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첫 배로 섬을 떠났다.

    

 

 

 

 

[박종규 소설가]

 

- 전 문학동인 글마루회 회장  /전 에세이스트문학회 회장 / 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현 한국문인협회 문협진흥재단설립위원 / 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바다칸타타),<꽃섬>  /소설집 <그날>  /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2>

 

플코 김태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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