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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사랑도둑] 당당한 그녀 8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9/27 [17:34]

연재소설 [사랑도둑] 당당한 그녀 8

임서인 | 입력 : 2015/09/27 [17:34]

 


                                    

[사랑도둑 ] 당당한 그녀 8

                                   

                                임서인

 

 

오래 전에, 평수를 줄여온 자신의 미용실에 한 여자가 검고 칙칙한 얼굴로 들어와 머리를 손질 한 적이 있었다.

    

거울 앞 의자에 앉자마자 여자는 쉴 사이 없이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 쏟아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 것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이라고 열띤 목소리로 적개심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자신은 추하고, 뚱뚱하고, 늙고, 쓸모없는 여자라고 가족에 대한 적개심을 자신을 향해 쏟아냈다.

 

그 여자의 무엇인가를 상실한 우울로 가득한 행복하지 못한 얼굴을 떠올리니, 지금 자신의 얼굴이 그의 아내 앞에 행복하지 못한 얼굴일 것이라 생각하니 부끄러워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것에 대해 갖가지 변명과 구실을 거침없이 쏟아내면서도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리고는 손목에 그어진 흉터를 보여 주고 진정제 한 알이 더 추가 되었다고 투덜거렸었다.

 

“내가 왜 자살을 시도한지 아세요?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철저하게 의존했던 내 남편이 어떻게 다른 여자랑 그 짓을 할 수가 있어요? 원장님이 보시기에도 제 모습 눈뜨고 보기 흉하죠? 남들이 다 그래요.”

 

자신도 우울하고 사는 것이 행복하지 못한지라 그 여자에게 딱히 말해 줄 것이 없었다. 절망감으로 경직되어 남의 비관적인 말에 신축성을 가지고 너그러이 들어주지 못하고 그 여자에게 화를 내고 말았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감당해 내기가 버거운데, 자존심이나 긍지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려 그 여자에게 희망의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에  떠오른 태양이 맑지 않았으며, 불어오는 봄바람조차 향기롭지 않았었다. 자신에게조차 너그럽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가 없었다.

 

말마다 송곳이요. 허탈과 상실감 가득한 소리였다. 그녀가 서슴없이 첩년이라는 단어를 뱉어내는 것도 아직 우울의 늪에 있는 증거였다, 우울의 늪에 허우적거릴 때는, 떨어지는 낙엽만큼 눈물이 떨어졌고, 늦가을에 부는 바람을 맞는 것만큼 추었다. 명치끝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늘 체기가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 가슴을 후려치곤 했다. 가슴을 후려치며 입술을 깨물며 꺼이꺼이 울었었다.

 

“한번 해보죠”라는 말 속에 우울의 강에서 한발자국을 떼고 있었다.

    

저녁 으스름 달빛을 밟으며 그의 아내가 갔다.

 

그의 아내의 꼬리가 사라지자마자 휘향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흥부 집 마냥 드러누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가리는 뒷곁으로 맹자 아래 대문하고,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니, 동네 사람이 출입하다가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 하는 소리 듣는 것처럼, 휘향은 두 평도 안 되는 방, 거의 반평 되는 오두막 집 같은 집에서 살다 이 넓디넓은 아파트의 네모반듯하고 광이 나는 집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뒷짐을 지고 발걸음 통통거리며 눈을 위로 아래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집안을 구경했다. 실크벽지 윤도 자르르 나기도 해라. 방바닥은 보슬보슬 매끈매끈 파리 낙상하기 안성맞춤이요. 몇 년은 매일같이 사다 집어넣어도 차지 못할 것 같은 이태리가구, 이 집 나가는 날 등에 짊어지고 가리라 손으로 쓰다듬으니 벌써 부자가 되어 흡족하다.

 

쇼파에 날아 털썩 주저앉으니 포근하기도 하지. 앞을 보니 최신형 벽걸이 텔레비전은 그녀 몸이 그 속에 드러누워도 남을 만큼 큼지막하다. 휘향의 입이 귀에 오래도록 걸린다.

 

탁자에 있는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넣으니 화면에 가득 차는 영상. 극장이 따로 없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눈이 시원하고 귀가 또렷하다. 동물들이 나온다. 동물의 왕국인가 하고 호기심이 일어 리모컨을 옆에 내려놓고 본다.

 

미국 텍사스주 동물원에서 말라야 암컷 호랑이 세리와 수컷 우주이 이야기이다. 세리와 우주는 부부인데 이 동물원에 암컷 멜리가 이사를 왔다. 세 마리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면서 애정의 삼각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 우주이가 세리 몰래 바람을 피웠다.

 

이에 분노한 세리는 우주이의 급소를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이는 복수극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휘향은 우주이가 세리의 입에서 잔인하게 죽는 장면을 보면서 몸을 움츠렸다. 설마 그의 아내가 자신에게 저런 잔인한 짓은 하지 않겠지 하며 가슴을 쓰러내려 보았으나 가슴은 여전히 콩닥거려 그만 텔레비전을 껐다.

 

안방으로 들어왔다. 명품 아니면 돈 자랑을 못하나 집을 꾸미는 모든 것이 명품이다. 널찍한 침대에 벌렁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폭신한 것이 금방 잠이 들 것 같다.

 

휘향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더듬었다. 한줌도 안 된다. 그의 아내가 돈을 주면 가슴부터 확대수술 해야지. 가슴을 더듬던 손을 옮겨 배꼽 주위를 더듬었다. 조금 밑으로 내리니 뼈가 도드라졌다.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이곳이 폭신해야지 뼈가 맞히면 아플 것이니 잘 먹어 조금만 살을 찌면 될 것이라 생각을 하며 손을 빼내고 눈을 떴다.

 

순간, 시커먼 물체가 휘향을 향해 돌진했다. 허리끈 푸는 쇳소리가 나고, 바지가 침대 밑으로 떨어지며 휘향의 아랫도리를 벗기고는 사정없이 그녀의 동굴 속으로 물건이 들어왔다. 외마디 소리도 못하고 휘향은 숨을 죽였다. 남자의 숨소리가 커지나 싶더니 물건을 그녀의 동굴에서 빼내어 배위에 사정없이 물총을 쏘아댄다. 다 쏘고는 휴지를 쏙쏙 빼어 물건을 닦고는 바지를 입고 거실로 나갔다.

 

휘향은 순식간에 당하는 일이라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옷 갈아입고 나오시오. 장롱을 열어보면 그대가 입을 옷이 있소.”

 

그의 목소리였다. 휘향은 분노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식으로 농락당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절차를 밟아 행위를 하고 싶었다.

 

“빨리 나오시오. 내가 집에 도착할 시간은 항상 똑같소.”

 

그가 보챘다. 휘향은 몸을 일으켜 장롱을 열고 옷을 갈아입었다. 부드럽고 고운 색상이 꽤 값이 나가는 옷이 여러 벌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그의 앞에 섰다.

 

“이건 경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겁탈을 당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대의 모습을 보니 견딜 수가 없었오, 왜 하필 손을 밑에 집어넣고 있단 말이요.”

 

“그렇다고 허락도 없이 어떻게! 당신 제정신입니까? 그리고 왜 배에 싸는 것입니까?”

 

“나 제정신 아니오, 그대가 아직 난관 수술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임신 공포증이 있다고 아내에게 들었소,”

 

휘향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분노를 삭이기가 힘들었다.

 

“간혹 불쑥 그대를 덮칠지 모르니 고정하시게나.  여러모로 내가 정액을 배출하게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그대가 할 일이오. 내가 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까 모습처럼 해준다면 고마울 것이오.”

 

휘향은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그의 아내와 같은 말을 남기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예쁘게 포장한 작은 상자 하나가 덩그라니 그 대신에 남아있었다. 작은 상자를 들어 열어보니 은으로 마든 귀걸이였다. 그녀는 귀에 걸어볼 생각도 없이 방으로 들어와 거울 앞에 놓았다. 거울 앞에는 그녀가 사용할 화장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의 아내의 세심함이 엿보였다.

 

그녀는 이 집안 가득 그녀가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다 갖추어 놓은 물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것을 주면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단지 그의 욕망을 배출할 수 있게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사과가 달콤함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하여 자신을 달콤한 사과로 만들기 위해 인간을 이용하는 욕망하는 사과이듯이, 휘향은 자신도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보리라 생각해본다.

 

욕망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보리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거울 앞에 앉아 한참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견적을 내고 있었다.

 

운명의 공동체인 배는 서서히 바다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휘향의 집에 왔다. 그의 아내는 전화로 휘향과 통화할 뿐, 그녀의 집에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차를 보내와 병원에서 만나 난관 수술을 시켜주고, 약속대로 그녀의 얼굴에 하나하나 칼을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성형에 대한 공포를 가지기는 했으나, 전남편의 ‘못 생긴 년이 애기도 못 낳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참아냈다.

 

그녀의 몸은 살이 올라 보기에 좋았다. 그의 아내와 같이 다니며 피부샾에서 가꾼 피부는 그녀를 요염한 여자로 만들어주었다. 사과가 달콤함을 만들기 위하여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듯이 그들을 이용한 휘향의 욕망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사업상 점심 때 그녀의 집에 오지 않은 날에는 그를 밤에도 끌어들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잠만은 집에서 재우라는 약속을 어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의 마음에  두 사람에 대한 불만이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의 아내가 몸이 편찮아 부부동반 모임에 가지 못하면, 그곳에 그의 아내대신 따라가겠다고 응석을 부렸다. 그가 망설이면 더 이상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협박을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그의 아내의 자리까지 탐을 내는 노골적인 욕심을 그에게 비추기도 해 간혹 다툼이 생겼다. 그와 그의 아내의 다툼이 잦아지고 그와 휘향의 다툼도 잦아졌다.

 

휘향의 마음에는 또 하나의 욕망이 생겼다.

 

그가 점심을 먹으며 그녀에게 자신이 이룩한 사업의 성과에 대해 말을 했다. 자신이 노력을 해서 부를 이루어냈다고 한껏 격앙된 어조로 자신을 추켜세웠다.

 

그녀는 안다.

 

머리를 하러 오는 여자들 중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의 부인이 와서 기업인들의 횡포를 분노 섞인 목소리로 성토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그를 비웃었다.

 

그들이 부를 획득했을 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뻔히 아는 그녀였다. 그녀의 전 남편도 노동자였었다. 달콤한 말로 그를 꾀어 자신의 통장에 부를 채워 넣기에 바빴다. 그런 자신의 행위는 고된 노동자들을 대신 복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름으로 변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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