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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단편소설> 초 록 반 지 (4회)
 
박종규 소설가

 

 

<박종규 단편소설> 초 록 반 지 (4회)

                       

  대학시절의 여름방학 병영훈련. 국제신사라는, 육군 장교 임관의 꿈을 안고 청량리에서 병영열차에 탑승한 우리 학생 군사훈련단은 새벽 두 시 경에야 이곳 안동 땅에 도착했다. 엘리트 의식에 충만한 우리였지만, 달이 중천에 떠 하얗게 내려다보는 안동역에서 덜커덕거리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졌고, 그 스산한 달빛 아래 보병 제80 사단 연병장으로 실려가 다시 짐짝처럼 부려졌다.

 

  “한 마리!”

  “두 마리!”

 

  휘영청 대보름달이 중천에 뜬 희부연 연병장에서, 군장 부딪치는 소리, 가쁜 동료의 숨소리만 들리는 안동 땅에서 처음 맞닥뜨린 군인들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개소리였다. 우린 그 시간부터 사람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 요리할 수 있도록 사육되어야 할 돼지들이었다.

 

우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리며 엉덩이를 걷어 채였는데 그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교관들이 우리의 ‘마릿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들은 구둣발 질과 욕설로 돼지들의 머릿수를 확인함으로써 우리의 충만한 기를 빼앗아 갔다. 그들도 사람이 아닌 개 같은 인간들이었다.

 

  군사훈련을 즐거운 여름캠프 정도로 낭만적인 생각을 했던 대학생들의 감상적인 기대치는 첫 새벽부터 송두리째 뽑혔고, 상상을 초월한 힘든 훈련이 진행되었다. 처음 적응을 못한 몇몇 학생은 후보생 사퇴까지 들먹였다. 푹푹 찌는 한낮의 더위에 죽지 않을 정도까지 얼차려를 주었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완전군장차림으로 달리고 달렸다. 물론 그 선봉에 구대장 김 중위가 있었다. 

 

  “우린 장교다. 장교는 모든 것에서 솔선해야 하고, 모범이 되어야 하고, 사병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훈련에서의 땀은 실전에서는 피다! 전장에서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를 외쳤던 시대는 지났다. 소대장이 적 앞에서 앞장서 나가야 한다. 이젠 ‘나를 따르라’이다”

 

  이 말은 듣고 또 듣는 말이라서 이젠 아예 외워버렸다. 그리고 외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전방에 소대장으로 배치되었을 때, 내 입에서는 저절로 ‘훈련에서의 땀은 실전에서의 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교관이라는 정원사의 가위질로 가지가 다듬어지듯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매사에 절도가 만들어졌고, 걸음걸이에도 절도가 붙어났다. 처음부터 입술이 튀어나와 불만만 되풀이하던 동료의 입술도 차츰 제자리로 돌아갔다. 소위 훈련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셈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웬쑤, 김 중위의 위세는 나날이 등등해졌다.

 

그가 우리를 팰 때 사용하는 도구는 M16 소총의 개머리판이었다. 그는 뼈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랄한 것은 잠을 안 재우는 기합이었다. 잠을 침범하는 행위는 동물적 본능에 대한 왜곡을 주문하는 채찍이었다. 그래도 우린 잘 참아냈다. 시간만 가거라. 못 배운 녀석이라 인간미도 없다. 훈련만 끝나면 저 인간 다시 볼일도 없어진다. 날이 저물면 새벽은 오게 마련이다. 그때, 쥐새끼는 쥐구멍으로 들어가리라.

 

  김 중위는 항상 깊이 눌러 쓴 모자챙으로 눈을 가려서 자신의 얼굴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키는 훤칠하여 모자챙 아래로 우릴 흘겨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표정을 감췄고, 후보생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움의 시선까지도 모자챙으로 막아내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다른 사람의 모자는 날아가도 김 중위의 모자는 끄떡없어서 모자 속에 아교를 붙였다는 말이 돌았는가 하면, 대머리라는 말도 있었다. 게다가 이따금 검은 선글라스까지 써서 피 교육생과의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했다.

 

  입소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리는 그럭저럭 훈련에 적응하였고, 설렘으로 퇴소일자를 손꼽는 시점까지 오게 되었다. 그날은 온종일 비바람이 심했다. 계곡을 따라 들어선 교육장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가 진동하여 내무반 막사는 흡사 물 위에 설치한 천막 꼴이 되었다. 한여름 안동 땅이지만 엊그제까지의 후끈한 열기는 오간 데 없고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졌다. 교육일정에도 차질이 생겨 내무반에서 정신교육과 강당에서의 영화관람 등으로 모처럼 느슨한 하루를 보냈다. 비가 고마웠다. 더 내렸으면, 제발 끊이지 말고 이 막사라도 떠내려갈 만큼 내렸으면 했다. 

 

  쉽게 일과를 마치고 내무반에 들어와 내무사열을 끝낸 다음, 열 시 정각이 되자 취침에 들어갔다.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일정이 수월한 하루였다. 통상적으로 이런 날은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취침시간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그동안의 누적된 수면부족을 만회할 기회였다. 눕자마자 흙탕물고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속으로 빨려들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없어 허우적거리며 마냥 떠내려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렸다. 나를 구하려 오는 소리라는 생각에서 몸에 기를 쓰고 뒤트는데 이번에는 비상인지 기상인지 하는 소리가 들려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당번 후보생이 전달사항을 가지고 내무반 문을 와락 재치며 들어선 것이다. 그는 부동자세로 서서 목을 길게 뽑고 전갈사항을 크게 복창했다.

 

  “지금 즉시.”

 

  흙탕물 송이 아니었다.

 

  “뭐야, 또?”

 

  구시렁대는 소리와 모포 자락 걷는 소리로 고요하던 내무반이 일시에 부산해졌다.

 

  “2구대 전원.”

 

  “염병할~”

 

  “알 철모에 팬티비람으로 막사 앞에 선착순 집합! 이상 전달 끝.”

 

  “지겨워~”

 

  “그럼 그렇지!”

 

  “비가 너무 와 위험해서 깨운 거 아냐?”

 

  누군가 잠결인지 몰라도 철모르는 소릴 했다. 후드득후드득, 밖에서는 비바람이 막사를 후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자리에 들었던 구대원들은 후다닥 모포를 걷어 알 철모에 군화를 찾아 신고, 단독군장(간편 전투복) 차림으로 다투어 문을 차고 나갔다. 나는 짧은 시간동안에 꿈속에 흠뻑 빠졌던 때문인지 행동이 굼떴으나 다행히 앞자리에 설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서엇…”

 

  빗물이 흥건한 소대 내무반 앞 연병장에 검은 막대들이 도미노 세우듯 열을 맞추어 세워졌다. 벌써 인원점검이 시작되고 있었다.

 

  “2구대 집합 끝!”

 

  내무반장의 목청이 찌렁찌렁 밤하늘을 울렸다. 대원들 앞에 우뚝 선 것은 장승인지 유령인지 분간이 안 갔다. 유령의 오른손이 서서히 올라 거수경례를 받았다. 빗줄기를 후리는 드센 바람이 한바탕 연병장을 휘돌아 나갔다. 비바람 속에도 섬뜩한 김장이 흘렀다

 

  “개씨끼, 이 비 오는데 왜 집합시키고 지랄이야?”

 

  유대관 후보생이 나직이 구시렁거렸다.

 

  “야, 대관 후보생. 오늘 그냥 넘길 거야?”

 

  한영수가 돌아보지도 않고 혼잣말처럼 입술을 나불거렸다.

 

  “…….”

 

  “오늘이 바로 디데이가 되는 거야.”

 

  “…….”

 

  꿀을 먹었나? 녀석, 대답이 없다.

 

  “해산 한 뒤 10분이야, 알았지?”

 

  “좋아!”

 

  그때서야 대답하는 유대관의 눈초리가 알 철모 아래서 번뜩였다. 때맞추어 번개가 일고 천둥소리가 부대 막사를 진동시키더니 더욱 굵어진 빗줄기가 연병장을 후렸다. 몸은 이미 빗물에 흠뻑 젖었고, 막사가 이 비바람을 견뎌낼지 걱정이었다.

 

막사가 떠내려간다면, 모포도 다 젖는다면, 결국 우리 손으로 다시 짓고, 빨고, 말려야 한다. 그 고생을 어떻게 이겨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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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04 [16:04]  최종편집: ⓒ 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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