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년] 그녀. 쇼윈도 부부 1회

임서인 | 기사입력 2015/11/27 [13:21]

연재소설 [사랑도둑년] 그녀. 쇼윈도 부부 1회

임서인 | 입력 : 2015/11/27 [13:21]

 

 

 

연재소설 [사랑도둑년] 그녀, 쇼우인도우 부부 1회

 

                                        임서인

 

 

그 날 휘향은 선영의 이야기만 들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휘향이 돌아간 후에도 그녀가 흘리고 간 진한 향수가 온 집에 배여 있었다.

 

선영은 아이들이 시어머니한테서 당분간 머무를 수 있도록 짐을 밤늦도록 챙겼다. 짐을 싸는 순간순간, 잡다한 수다가 그녀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다.

 

그녀는 온갖 수다가 마음속에 떠오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예전처럼 그것을 억누르려하지 않았다. 이건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생각이야, 엄마로써 도저히 할 일이 아니야. 도대체 내가 올바른 여자인가? 따위의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원망스러우면 원망스런 생각을, 준형이 죽이고 싶도록 미운 생각도 어미라는 잣대를 대어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거실 구석에 짐을 옮겨다 놓고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그녀의 몸은 잠이 들었다. 그녀의 영혼만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와 곤히 잠든 불쌍한 여자를 내려다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쪼그리고 앉아 고민했다.

 

항상 아침은 신선했던 적이 없었다. 늘 몸이 무겁고 머리는 맑지 못했다, 때로는 화가 먼저 그녀의 몸보다 일찍 일어나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마음을 지배하곤 했었다. 무겁고 취급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잔뜩 쌓아놓은 것처럼 눈을 뜨는 것이 싫은 아침이었는데, 희한하게 이 날 아침만은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몸이 가벼운 것이 별일이었다.

 

새로운 날 같았다.

 

가벼운 깃털마냥 금방이라도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 휘향에게 자신의 고통을 죄다 털어놓았기에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어 휘향이 곁에 있는 양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야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어머니가 있는 정읍행 버스로 준형과 영준을 태워 보냈다. 영준이 절대 밥 굶지 말라는 걱정과는 달리 준형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영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냥 걸었다. 이제나마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시어머니가 고맙다,

 

내일 남편하고 이혼을 한다.

 

그녀는 이혼을 해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이혼을 해주고 그에게서 홀가분하게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아직도 갈팡질팡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 딱히 갈 만한 곳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길거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야탑역에서 단대동에 있는 법원을 가기 위해 51번 버스를 탔다.

 

아직 식지 않은 태양 열기로 인해 도로가 지글지글 끓고 있어서인지 사람들 얼굴이 더위에 잔뜩 찌푸려있다.

 

목소리 고운 얼굴 없는 안내양의 안내에 따라 법원 앞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 길 건너 보이는 법원 건물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사람이 만든 법으로 인해 사람들이 죄인의 굴레를 씌우는 곳의 위용은 위풍당당하다, 아무리 난다긴다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방망이로 세 번만 땅땅땅 하고 내리치면 영락없이 죄인 만들 수 있다는 거만한 모습으로 그녀의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간혹 심각한 표정으로 법원 건물에서 나오는 몇 사람만이 눈에 띄었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약간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길 건너편에서 보았던 거만한 모습보다 더 거만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녀는 그만 그 기세에 기가 꺾였다.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발을 멈추었다.

 

햇살이 늙은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었다. 손을 부채처럼 활짝 펴 얼굴을 가리었으나 여전히 할퀴는 햇살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을 찾아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요행히 나무 아래 의자가 있었다. 그녀가 앉아 주위를 살피자 옆의 나무 밑에 두 남녀가 앉아 있었다. 눈을 들어 더 멀리 바라보니 밖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도 보였다.

 

“아범아, 그만 용서해주거라. 미움이 길면 길수록 네 마음만 황폐화 된다는 걸 알아야지.”

 

짧은 숏트 멀리를 한 노인이 40대의 남자에게 말했다. 창백한 입술과 얇디얇은 피부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표정만은 온화하고 맑았다.

 

“어머니, 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아픈 어머니에게 그럴 수 있어요? 사람도 아니어요.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못해요.”

 

격앙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쩌렁하고 울렸다. 나무 이파리들이 움츠러들고 바람마저 숨을 죽이는 것을 보니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 깨달은 지혜가 있다면 용서다. 내가 진즉 그 인간을 용서하고 살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회한이 이는구나,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지만 용서하고 싶구나.”

 

“어머니! 법에 맡겨요. 그래야 저도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지요. 전 분하고 억울해서 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요.”

 

남자의 눈에 핏발이 서고 독기가 가득 오른 목소리에 나무들과 햇빛이 더 바짝 몸을 오그렸다. 두 손을 오므려 목을 조이는 시늉을 하는 그의 손이 허공에서 바르르 떨었다.

 

“아범아, 내 청춘이 시들어버렸다고 좌절하고 있을 때, 내게 삶의 생기를 주고, 청춘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여기게 해 준 사람이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난 영영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내 마음이 청춘이라고 여기자 내가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너에게도 처음에는 잘하지 않았니? 너도 아버지처럼 잘 따랐고. 네 마음 모르는 것은 아니다만 너는 젊잖니? 젊은 사람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봄날의 동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란다,”

 

노인의 힘없는 손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노인의 조언이 겨울 햇빛처럼 밝기는 해도 따뜻하지는 않은지 남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일어섰다. 이내 남자가 일어나 노인의 뒤를 쫓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대화에 궁금증이 증폭되며 그녀의 시선이 그들의 모습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따라갔다.

 

건물 입구에서 시선이 멈추고는 잽싸게 앞을 응시했다.

 

용서, 행복, 두 단어가 앞을 어른거렸다.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했는데도 질투의 마음은 전혀 일지 않았다. 그렇다면 용서할 명분도 없는 것 아닌가? 그가 밉다. 자신의 행복을 앗아가 버린 장본인이다. 그래놓고는 자신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그녀를 떠나겠다는 남편이 미웠다.

 

남자라는 동물은 모든 여성이 같은 얼굴, 같은 성격, 같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절대 부정한 짓을 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한 여인에게만 죽을 때까지 살게 된다.  불행히도 이 세상의 모든 여자는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남자들이 연애를 하고 부정한 행위에 탐닉하는 것이 아니냐며 누군가가 열을 올리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또한 치마 들린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한 여자에게서 여성 전체를 보고, 우주를 보는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했던 말도 떠오르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남편은 비록 집에서는 광폭하고 무정한 남자이지만 자신 한 사람만 볼 줄 알았다. 지극히 이성적인 남편이 바람을 피울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도 치마 들른 여자에게 사족을 못 쓰는 남자였던가?

 

법원에 오면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남편의 행위를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인이 진작 용서했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끝을 흐리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무의 그림자가 자꾸 짧아지며, 그녀의 눈을 농락했다.

 

선영은 일어났다. 아까보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녀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D대학 교수인 지혜를 찾아가기 위해 걸었다. 두어 정거장만 걸으면 되리라 하고 법원을 나왔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고역스러운 거리였다. 가는 도중에 지혜에게 휴대 전화로 전화해보니 다행히 학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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