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5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12/08 [15:08]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5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12/08 [15:08]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5회 

 

                               박종규

 

김준구 사장은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84층에 있는 지사와 화상대화 중이다. 김 사장의 타원형 책상 왼쪽 모니터에 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자넨 두 눈에 보석이라도 박았느냐고 언젠가 말했던 김준구 사장. 그는 나의 눈빛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김 사장은 내 표정에서 미국시장의 반응을 읽었는지 얼굴색이 밝다.

 

사회가 다원화되어갈수록 보안의 필요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테러가 증가하면서 보안관련 업종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에 지사를 설립할 때 나는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하자고 제안했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세계무역의 심장부로 직접 뛰어들자고 역설했다. 그곳은 곧 나의 무대일 터였다.

 

미국은 최대의 보안 시장이다. 새로운 보안시스템은 석학 20여 명을 투입하여 개발한 제품이었다. 어디에 있든지 휴대전화 하나로 모든 보안시스템이 제어되는 신개념 시큐리티 시스템. 미국 내 구매자들에게 신제품의 성능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일이 첫 번째 과업이었다. 백여 명의 보안관련 종사자들이 초청되었고, 행사가 끝나자 제품에 대한 현지 기자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바로 어제저녁의 일이다. 나는 전화로 짧게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데 대해 흥분했다.

 

네 개의 모니터는 업무에 분주한 뉴욕 지사의 사무실 모습을 생생하게 비춘다. 금발의 현지인 여직원 도로시가 서류를 들고 일어나더니 3번 모니터로 들어와 내 앞에 놓고 화면을 떠나간다.

 

“사장님, 보고서를 화면에 띄워 드리겠습니다. 잘 보이십니까?”

 

나의 목소리는 항상 힘이 넘친다. 확신이 있든 없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에 힘이 시려야 상대방의 믿음을 살 수 있다. 나는 나의 말 에너지로 모든 사안을 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잘 보이네. 어디 천천히 보고해 보게나.”

 

서울의 화상회의실에 있는 김 사장은 입맛을 다신다. 잠시 있으면 한 이사가 차린 진수성찬이 화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런데 김 사장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진다.

 

“……?”

 

극히 짧은 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던, 그때다. 별안간 네 개의 모니터화면이 일제히 왼편으로 기우뚱한다.

 

쿠아앙 크르르……

 

순간, 무엇인가가 폭파되는 파열음에 모니터 화면이 진저리를 친다. 모니터 영상 속 사무실 전면 벽이 일시에 터져 오르면서 영상은 어둠 속으로 묻혀 버린다. 절대로 모니터의 이상으로 생겨난 화면굴절현상이 아니다.

 

그 짧은 순간에 김 사장의 망막에 남은 것은 넓은 사무실을 압도해 들어온 거대한 물체의 모습이다. 그것은 1번 카메라에서 4번 카메라 쪽으로 빛처럼 스쳤다. 벽면 함몰 순간과 함께 거대한 고래 등처럼 통째로 돌진해 들어왔던 것! 평생을 걸고 쌓아온 김 사장의 공든 탑이 함께 증발해 버린 순간이다. 뉴욕 사무실은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김 사장은 죽어 버린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혈류가 정지된 몸은 마네킹이 되어 그 자리에 우뚝 박힌다. 잠시 뒤 마네킹은 서서히 움직이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반쯤 채워진 물컵을 기울여 목을 축인다. 김 사장은 머리를 털며 넌더리를 치다가 허겁지겁 앞 테이블에 있는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켠다.

 

“이것은 지금 생중계 화면입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이 가공할 테러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국내 방송을 틀었는데 CNN이 직접 튀어나온다. 그는 입을 떡 벌린 체 망연히 서 있다. 모니터에 붙어 버린 시선은 가늘게 떨린다. 엄지와 검지로 허벅지를 꼭 꼬집는 김 사장. 현실일 수는 없는, 상상도 못할 일이 42인치 모니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너무 생생하고, 충격적인 그 화면은 급기야 70밀리 대형화면이 되어 김 사장의 망막을 가득 채운다. “아! 한 이사, 안 돼!”

 

3. 허물벗기

 

어릴 적에 사라졌던 보육원 형제들이 침통한 얼굴로 승합차에 오르고, 그 형제들 하나하나를 서류와 대조하는 사람은 노랑머리의 신사다. 원장 어머니와 민머리의 그 사람. 그들은 웃고 있다. 누런 봉투도 보인다. 형제들은 연구실 간판이 붙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멸균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제들은 흰 가운을 덮고 하나같이 침대에 누워 있다. 민머리는 그 빌딩을 나서고 있다. 빌딩 전면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생명공학 분야의 선두기업 RR사 마크가 보인다.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빌딩 28층에서 늘 보았던 민머리 그 사람! 그가 이번에는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에 들어온다. 혼자가 아니다. 원장 어머니는 왜 그와 같이 있을까? 나를 찾아오는 것일까? 그런데 원장의 머리는 왜 저리 커졌을까? 검은 먼지 구름이 그들을 휘감아 덮는다. 그뿐 아니다. 내가 알듯 모를 듯한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이곳은 아수라장인데 왜 이리로들 오는 것일까? 가만히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부풀어 기형이 되어 있다. 다들 똑똑이들인가? 큰 머리의 사람들은 먹구름 속에 묻혀들기를 반복한다. 하늘로 떠오르는 것은 자욱한 연기, 먼지, 파편과 불길뿐이다.

 

나는 아직 화염이 뿜어져 오르는 위에 공중부양상태다. 무거운 추 같은 것이 밑에서 잡아당겨서 날아오르고 싶어도 날개를 펼 수가 없어 버티는 형상이다. 내 망막에는 그 짧은 순간에 본 것들이 똑똑하게 재연되고 있다. 황금색 비행기 앞머리가 벽을 불쑥 뚫고 들어오던 믿을 수 없는 광경! 이어지는 불바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밖으로 튕겨 나갔다.

 

전 세계가 선망하던 두 개의 하늘 기둥은 전원이 꺼진 두 줄기 분수처럼 도시의 심연 아래로 사그라지면서 서 있던 공간을 먹구름으로 채워간다. 하늘로 솟았던 황금 탑은 땅 아래로 묻혀들고 그 잔재들만 부유하는 참혹한 현장, 그곳에는 색깔이 다른 미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괴물을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나는 괴물 속에도 있고, 괴물의 잔재가 만들어 내는 어둠 속에도 있다.

 

짙은 먼지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새어들어 빛 무리를 만들자 그 속에 수아가 홀연 나타난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예쁘고 가녀린 손길로 주변의 부유물을 밀쳐내더니 나를 옭매고 있던 허물의 더께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고 있다. 나를 겹겹이 감쌌던 것들이 풀려나가는데, 그것은 누에고치에서 실이 나오듯 수없이 풀리고 풀린다.

 

마지막 허물을 벗겼을까? 나는 훌쩍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맑은 마음이 눈을 대신하고 맑음이 내 육신을 대신하는 느낌이다. 온전히 물질에서 떠난 나의 존재는 비로소 참 내가 된다. 그때 수아가 나직이 속삭인다.

 

‘날아요! 이제 더 높이 날 수 있어요.’

 

내 허물이 벗겨짐에 따라 나의 귀는 차츰차츰 닫혀갔다. 이제 나는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되었으나 수아가 전하는 말이 맑은 파장으로 내 존재에 안긴다. 발아래는 아직 마그마의 잔재들로 끓어오르고 있지만, 그것들은 서서히 낮고 낮은 심연으로 묻혀들고 있다. 이제 그것과 다시는 섞일 수 없으리라.

 

“어서 날아오르세요. 높이 날아요.”

 

참 내가 눈 떴을 때, 주변에 신비한 빛이 일기 시작한다. 그 빛은 수아의 시신과 함께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것이다. 빛은 형형색색의 작은 입자들로 반짝인다. 수많은 빛 알갱이들이 중력 잃은 나를 살차게 감싸 돈다. 나는 그 빛에 휘감겨 서서히 위로위로 날아오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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