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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재발견 천제단 '고인돌 벽화'

박종호 고문 | 기사입력 2016/09/11 [16:44]

고조선의 재발견 천제단 '고인돌 벽화'

박종호 고문 | 입력 : 2016/09/11 [16:44]


 

고조선의 재발견 천제단 '고인돌 벽화'

 

1). 위대한 단군 고조선의 재발견

2). 석팽(石棚) 단어의 발음 해석

3). 천부벽화와 천부사상과 유불선

4). 단군을 부정하는 역사단체

          

    

제11장 (내용요약) 

 

2007년 3월, 중국 요녕성 개주시 와방점, 석팽산문화재 [石棚山石棚(석팽산석팽)] 고인돌 古祭壇(고제단)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고인돌 고제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학자들도 천하제일의 고제단 고인돌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 고제단은 아름답고 웅장하고 다른 고제단에서 볼 수 없는 위용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중국지방정부 차원에서 ‘石棚 巨石文化(석팽거석문화)로 이미 지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석팽 거석문화 구조물 반자에 그려져 있는 천정벽화의 그림을 보고 일행은 더욱 놀랐다.

    

천정벽화의 그림은 하나의 神鳥(신조)로서 필자는 그를 천부벽화로 느끼어져 천부벽화라 이름을 지었다(명명). 이 고제단은 帝皇(제황)이 하늘의 대해 천제를 지내던 천단(天壇)으로서 그 규모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상징으로 보아 천부의 꿈과 뜻을 나타내는 천부(天符) 벽화로 추정하였다. 이는 고조선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사상과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종교적념원에서 이루어 낸 벽화로 볼 수 있다. 즉 오늘의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유··선이 분리되기 이전, 오직 하늘의 대한 경외감(敬畏感)이외에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지배자의 유일한 종교사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고제단의 덮개돌이 마석된 흔적으로 보아 고조선시대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중국학자는 전산자라는 구릉에서 金子塔式 피라미드적석총 정상부에서 청동을 제련했던 도가니 편이 발견된 점을 들어 홍산문화를 BC4000~BC3000으로 보고 있다. 북경과기대 한루빈 교수는 우하량에서 발견한 청동기제조 도가니, 슬래그 등을 근거로 이 시대를 홍산문화 중, 말기인 BC3500~BC3000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학자들은 하가점 하층문화권을 BC2400년 전후를 청동기문화권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보다 1000~1500년 앞선 것으로 고조선을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강단사학계의 그릇된 역사관으로서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의 상고사를 꼭 복원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독자들에게 연구의 도움이 될 가해서 취재(取材)했습니다. <본문 참고 요망>.

    

필자는 철기 문명에 대한 고증 자료는 고구려 벽화 5號墓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족오가 있는 태양을 떠 바치며 날고 있는 복희씨, 두꺼비가 있는 달을 떠 바치며 나는 여화씨, 소머리에 사람을 한 신농씨,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을 타고 우주를 날아오르고 있는 사신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불의 신 수인씨, 바퀴를 발에 달고 나는 제륜(製輪)의 신, 망치질하는 대장 쟁이신 고조선 이전 신시 배달국의 정신세계와 과학문명을 B.C 3500년 전에(배달국 환웅 태우의천황 때임이) 철물을 제련했다는 사실을 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청동기의 발명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문화혁명으로 고대사회의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창조와 발달은 청동기라는 금속문명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천단

    

 

 

1). 위대한 단군 고조선의 재발견 (天壇)

    

(1-1) 단군 고조선 천제단 벽화, (石棚巨石文化 고인돌), 天符벽화 (요녕성 장하현)

    

요령성(遼寧省) 와방점(瓦房店) 고인돌에서, 고조선 역사유적을 한 바퀴 도는 역사유적 답사반 일행 24명은 “우리교과서에 고조선 단군역사 편입”을 축하하는 현수막(파고다 공원에서 삼일절 행사에서 사용함)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역대 단군께 드리는 헌다식(獻茶式)을 거행하였다. 다음은 필자의 고조선 역사유적을 답사하고 얻은 영감(靈感)의 인상(印象)을 정리한 것이다.

 

 

 

1. 와방점 고제단(古祭壇)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묻는 돌무덤이 아니고 청동기초 탁자형(卓子形) 환형계단식(全還階式) 누각으로 하늘의 천제를 지내는 고조선 유일의 천제단(天祭壇)이다.

    

2. 단군 고조선시대에 하늘에 제를 올리는 초기 신전(神殿)에 해당하는 고제단인 듯하다.

 

 

 

3.. 바닥에는 별자리가 있는 돌 판을 깔고 그 위에 구조물을 세웠다. <고조선제국의 위상>.

    

4. 돌바닥 위의 삼면에는 돌 벽을 세워 돌 덮개를 받치고, 비바람을 피하고 석팽산 구능에 건립된 것이다.

5. 덮개돌은 천하를 제압하듯 더 넓고 웅장한 큰 돌 판으로 덮어 당당 한 고조선의 위용을 과시한다.

    

6. 덮개돌 천장벽화에는 태시(太始)의 창조신화, 신비한 현상, 신의 존재와 섭리를 담은 천부(天符)의 종교적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민속들의 혼이 연연이 이어진 변화무쌍한 벽화이다.

    

7. 상상의 동물, 태양의 불사신 삼족오, ‘불함문화권 백의사상의 始原’, ‘고조선 사람들의 정신세계’, 태양과 우주관을 담은 창세기의 창조관, 신들의 세계. 세계유일의 고제단(古祭壇), 천부벽화가 여기 있다.

 

 

 

8. 구름을 타고 천상을 힘차게 비상하는, 九만리 장천을 나르는 대붕 봉황, 고조선제국의 기상이다.

    

9. 요녕성 석팽 천제단 천부벽화는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우주를 나르는 사신도(四神圖)에 이어서, 안악의 ‘인물·행진·수렵·풍속도’ 등 뿌리를 생각하게 되는 벽화의 원형, 이 고제단의 천장 벽화는 우리겨레 초유의 것으로 학술적 연구 가치를 풍부히 함유하고 있다.

<요녕성 고인돌에 사용한 돌 재료가 마석된 흔적으로 보아 고조선시대의 건립연대를 부정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고조선 B.C. 2333년 이전, 만주지역에는 B.C. 2400년 전에 이미 하가점 하층문화· 초원청동기문화권(草原靑銅器文化圈)에 진입한 것으로  중국학자들도 공식발표했다. >

   

 

 

11. 고인돌의 규모와 형태로 보아 하늘을 우러러 모시고 하늘에 제를 지내는 明, 淸 때 자금성도 이에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는 천구단(天丘壇)에 祭器나 茶器따위를 올려놓는 누각상이 있다. 이 제천행사는 나라를 대표하는 帝皇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며, 그 큰 덮개돌 천장벽화를 그려 덮을 수 가 없다.

<덮개돌을 뒤 집어 엎어 씌우는 작업은 현재 기중기로서도 힘든 작업이다>

    

12. 고제단 덮개돌의 규모는 세계최대 규모로 크고, 약 300톤 이상 중량으로, 벽화를 그려서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덮었을 듯한, 큰 집단의 권위와 국력을 상상할 수 있다.

    

13. 地神(땅의 신)을 모시는 지방제후로서는 있을 수 없고 불가능 한 일이다.

    

14. 바닥 돌의 별자리는 흔히 있는 일이나, 천장 덮개돌의 벽화는 이웃 개주 석팽곡 석팽(盖州 石棚峪石棚) 탁자형 에서는 볼 수 없는 벽화로 고조선시대에 벽화의 기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진흙에 백회를 발라 그림을 그려 놓은 듯 >

    

15. 하늘에 대한 천제(天祭)는 경천· 숭조· 애인· 나라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황(帝皇)만이 할 수 있다. 이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에 버금가는 규모의 문화재다.

 

16. 당시 지방을 다스리는 제후나 군장으로는 나라를 대표하는 천제를 지낼 수 없다.

   

 

* 위 창세기의 창조 천지조화 영감을 느끼게 하는 벽화, 고조선인 들의 생동감 넘치는 하늘의 섭리와 천지신명의 지고한 사상 천지조화를 한 폭의 벽화로, 살아 숨 쉬는 ‘천손·자손의 천부의 사상’,  우리역사를 실감케 한다.

    

이는 까마득한 옛날 대황조(大皇祖)님 때로부터 영성계의 깨달음과 단군 고조선 인들의 천부이념에 의한 정신철학의 근원이었으며, 시대를 흘러 최치원의 난낭비서에 현묘지도로 표현되기도 한 천부의 뜻을 담은 벽화로 볼 수 있다.

   

 

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학문적 연구이외에 우리겨레의 비전 단학의 용호비결(龍虎秘訣)을 통한 조식호흡법과 원상수련법(原象修鍊法)을 통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고 본다. 

    

<所在= 遼寧省 瓦房店 石棚山石棚 石棚巨石文化 고인돌. 天祭壇=天丘壇>

檀紀4340: 西紀2007.3.2∼3.8.

문정제책 회장 :

한얼 역사정신선양연합 총재

일손 박종호

 

 

1-2) 거석문화와 고조선고인돌 천제단과 벽화추론(推論)

    

고인돌은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이다. 지석묘와 같은 뜻이며 거석문화에 속한다. 유럽의 고인돌은 이집트 피라미드의 제작연대보다 약 1500년이나 앞서는 선사시대 B.C 2500년∼B.C 2000. 심지어 B.C 4000년대까지 올라간다 하며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B.C 4800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헌데 B.C 4000년∼B.C 3000년대에 이미 고인돌이 유럽 전역에서 축조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고 한다.

 

 

 

요녕성 와방점 천제단 고인돌은 세계 최대의 고제단 고인돌로(덮개돌의 길이 8m 60cm) 어느 때 축조되었는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유럽 전역에서 축조된 시기로 보아 고인돌의 종주국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는 선사시대 전후부터 최소한도 단군고조선 건국 전후로 추정 된다. 와방점고인돌은 삼면만 돌 벽을 세우고 앞에 마구리벽이 없고 돌방 안에는 제단이 갖추어져있다. 이 고제단은 지방제후가 아니라 한 나라의 천제(天帝)만이 할 수 있는 천구단(天丘壇)이다. 이는 청나라 때 개축한 자금성의 천구사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또한 고인돌의 대부분이 선사시대부터 “북방은 지상의 탁자식돌무덤(全還階式), 남방은 지하 돌무지무덤으로 구분되고” 거의 다 시신을 묻어두는 무덤이다. 그런데 와방점고인돌은 시신을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帝皇이 유일하게 하늘의 대한 천제를 지내는 제단이다.

 

 

생동감 있는 초능력적 천부벽화 감히 누가 300~350톤 이상이나 되는 세계최대 천하제일의 고제단(古祭壇) “국가 기원과 관련이 없는 돌무덤이 아니다.” 고인돌을 만들었으며 덮개돌작업을 할 때 “덮개돌 반자의 그림이 손상되지 않게” 어떻게 덮었는지 불가사의한 공법을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동북 아세아 최초의 국가기원을 상징하는 문화재다.

 

이는 고조선시대의 높은 정신과학문명을 짐작할 수 있다. 창조와 신화 신의 존재와 섭리를 담은 신비한 현상 높은 정신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접근 할 수 없는 신출귀몰한 화법과 무한한 우주를 꿰뚫어 보는 “무량광불 혜안(慧眼)” 더구나 고인돌은 인류가 남겨놓은 최초의 문화재로 취급되고 있다. 이제 거석문화학계와 고고학계 미술계 및 역사학계는 이를 밝혀 고조선의 실체를 나타낼 수가 있다. 고구려 문화재보다 앞서는 인류 최초의 유일한 문화재다.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일이다. 이 천제단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녕성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1-3) 고조선 고인돌 천제단 벽화 * 와방점 고제단 석팽

    

천제단 덮개돌 벽화는 고조선사람들의 하늘의 창조와 조화 공포와 신비에 대한 천부天符의 뜻을 엿볼 수 있는 천부벽화 우주를 향한 신조(神鳥) 비상飛翔 <내몽고문화출판사 간행 오한문물정화(敖漢文物精華) 24p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B.C 5000년전  원시종교적 신앙과 관련이 있는 신조(神鳥) 현조玄鳥(?) 영물문존형도기급문식전개도(靈物紋尊形陶器及紋飾展開圖) 또한 심백강교수저 황하에서 한라까지 243p에 신락(新樂)인들의 하늘의 태양을 승배하는 사상, 고古한국(옛 한국) 오환(烏桓)의 조이(鳥夷), 또한 예.맥족(濊. 貊族)사람들의 토탬 불함문화권(不咸文化圈)의 사상과 관련 여부, 이제 새롭게 부각되는 동북공정과 함께 요하문명권의 최초의 중심 국가였던 고조선 전 후의 백두산족문화권의 문물과 문화를 탐구 하여 밝힐 일이다.

    

                              석팽 고천단앞, 역사유적답사반 일행

 

길림성 집안의 고구려고분벽화(사신도와 복희·여화·제륜신·대장쟁이신)들의 시원인 듯하다.

* 황해도 안악 고분벽화(인물·행진·씨름·곡예·무희·다양한 악기· 풍속도)등도 무관치 않다.

* 요녕성 와방점 석팽 탁자형 고인돌 천부벽화 고조선 제국의 국력을 추정할 수 있다.

단기4340년  서기2007. 4. 8

통일건국민족회 고문

한국통일문화진흥회 고문 

一巽 朴宗鎬

   

    

(1-4) 여명문화에 대한 중국의 함구와 고조선 천제단 벽화

 

여명문화(黎明文化)는 길림성에 사는 고고학애호가 李樹林에 의해서 장백산 서북의 광대한 지역에서 수백기의 취락 촌과 적석묘 군을 발견, 유적지를 여명문화로 지칭한 것이다. 고제단(古祭壇) 유적의 연대는 상한은 청동기, 하한은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여명문화(黎明文化)’와 ‘홍산문화(紅山文化)’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동북아지구의 고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길수교수가 역사NGO세계대회의 전시한 구구려 옛 지도 <요녕성 장하현에 천리장성 千里長城과 天壇(천단 : 천부벽화가 있는 곳)이 있는> 고구려지도 

    

1995년, 성도일보 보도 내용을 종합 분석한 우실하교수의 신간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에 의하면, 1. 기원전 4500년까지 올라가는 요녕성 서북의 ‘홍산문화’와 서로 연원 관계에 있으며 2. 발견된 ‘환형 계단식(全還階式),’ 환형 참호식(全還壕式)‘, ‘세 유형의 환영 제단’ 이 홍산문화만기(紅山文化晩期)(BC 3500∼BC 3000년) 우하량 유적지에서 발견된 제단·신전·적석총과 매우 흡사하여 우하량 홍산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3. 이 제단 유적을 건설한 종족도 고문헌에 나오는 맥족(貊族) 계통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와방점 석팽(石棚)고인돌이 일종의 환형 계단식, 탁자형으로 [()누각 팽, 사닥다리 팽,(팽은 표준어 붕은 속어 사투리)명문대옥편 488p 참고] 천제 고제단 구축 시기는 위에서 고고학애호가 李樹林이 지적하듯이, 여명문화와 홍산문화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시기로 추정할 수 있고, 와방점 석팽거석문화(石棚巨石文化) 고인돌제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 시기는 B.C 3500∼B.C 3000년 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발굴, 확인되어 ‘초국가단계에 진입하였다고’ 보는 홍산문화만기(晩期)의(중국학자들의 발표) 우하량 동산취의 제단유적지 여신묘(女神廟), 적석총 등의 발견된 시기와 같을 수도 있다. 또는 하가점 하층문화권 B.C 2400년 전후 초원청동기문화권으로 추정되기도 하다.

 

고대사회는 祭天의식이 최대행사이고 하늘의 대한 제천행사는 천자국의 천자만이 행할 수 있다. 그 대표적으로 나타난 것이 고조선의 중심지로 생각되는 요녕성 와방점 고인돌 천제단 이라고 추정된다. 그 예로 요녕성 주변일대에는 돌무덤이 아닌 수많은 누각형태의 고제단이 있다

 

한다. 이는 당시 각 지방의 제후국들의 고제단으로 생각되고, 그중에 와방점 석팽(石棚) 천제단 고인돌은 돌무덤이 아닌 고제단 천단(天壇)으로서는 세계최대 규모로 (죽은 자의 영혼을 보호하고 천지신명께 유택의 안녕을 기원하는 돌무덤 ‘괴석’과는 다른) 天帝가 하늘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고제단의 고인돌 개념으로서 거석문화계가 답할 일이다.

 

앞으로 단군고조선의 실체를 확인, 거석문화계와 미술계에도 새로운 장을 여는 고조선의 문화재가 되고 인류문화사의 또 하나의 자료로서 이는 마치 단군고조선 교과서 편입과 때를 같이해 발견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상고사를 재조명하는 데에 큰 수확이라 생각된다. 

 

    

 □ 백두산족문화권 고조선의 찬란한 문화, 다가오는 미래의 등불

 

이런 사실은 요하문명권에 있는 만주지역 고대사의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열쇠를 여명문화 유적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유적에 대해서 중국관계당국은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보안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 대제국(고조선)의 중심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제1회 역사NGO세계대회의 출품한 서길수 교수의 고구려지도 전시장에서 요녕성 장하현 (안시성 단동∼요양간의 삼각지대의 중간 지점) 석성(석팽?)의 천단(天壇)을 또 발견하였다. (또한 이종호 박사의 저서 “한국 7대불가사의” 32p에 있는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는 필자가 고조선의 천제단으로 보는 와방점 석팽산석팽 고조선의 천부벽화가 있는 동일한 장소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옛 고조선 제국의 역대 단군님들께서 천제를 올리던 천제단 임에 틀림없다고 보는 고증자료로도 충분하다. 이 天壇(천단: 석팽거석문화)을 고조선의 문화재로 국내문화재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고증을 받아 UN의 등록되기를 기대한다.

 

위에 지적한 이유에 대해서,  요녕성 와방점 석팽(遼寧省 瓦房店 石棚) 고인돌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다. 더구나 고인돌 덮개돌 벽화에 대한 중국당국의 연구 분석이 있었을 법한데 우리는 알 수 가 없다. 고인돌 천제단 벽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 답사반 일행이 심층 분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다행이 이번 고조선유적지를 한 바퀴 도는 역사유적답사반일행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천제단 벽화의 뜻이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杏村學術文化振興院 顧問

韓國丹學會 硏精院 顧問

민족중건총본부 총재 

一巽 朴宗鎬

    

    

                          ‣제1회 역사ngo게계대회(전시예정품)

 

    

                              제2회 역사NGO세계대회<전시품>

                                일시 2008. 10 8.~10. 13일

    

    

    

2). 서면질의: “石棚”의 발음에 대하여

     (석붕인가 ? 석팽인가 ?)

    

一巽 朴宗鎬 선생님께 :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李익환 교수 드림

2007. 05. 09 

    

선생님의 글 중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우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 그렇다면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글 중 '석팽'으로 표기되어 있는 석팽(石棚)

을 우리말로는 '석붕' 으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지요?

이곳에 와 있는 중국동포 대학원 유학생 의견으로는 중국식 발음으로는 '

석펑'에 가깝다고 하면서 이것을 우리말로

표기할 때는 '석붕'이 좋겠다는 의견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더 권위 있는 분이시니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겠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U대학교 00대학장

李 00 교수님께

    

박종호 드림

               

좋은 질문이십니다. 明文大玉編(명문당발행)488p에 븡 俗音 , 붕 義同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붕은 지방 사투리고 팽은 표준어로서 저의 생각으로는 속어보다 표준어가 마땅하다고 봅니다. 옥편에 사닥다리 팽, 걸쳐놓은 다리 팽, 누각 팽, 시렁 팽,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년성 지역 와방점 석팽산석팽 거석문화 石棚山 石棚巨石文化(석팽산 석팽거석문화) 고인돌 고제단의 경우는 천제를 지내던 곳으로 누각 팽(신전 개념)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누각과 관련 있는 개념어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누각은 神의 전당으로 神殿(신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에서는 팽으로는 아니 되고, 붕 으로 찍어야 글자가 뜨기에 불편이 있습니다. 이번 답사반원 중에도 붕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고인돌 벽화와 더불어 논의가 많을 것 같습니다. 왜 그리되었는지는 한학자들의 몫입니다. 이는 인터넷에서 글을 추가 수정 보충해야합니다.

 

그리고 누각이란 개념을 상기하면 옥편대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저는 팽으로 부로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필요하다면 학계에 논의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참고로 : 우리 정신수련계에서는 천경(天經)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 천궁훈(三一神誥, 天宮訓) 구절에 階萬善 門萬德 (계만선 문만득)이란 단어와 棚(팽)자 및 李樹林의 全還階式(전환계식) 고제단설명의 階字(계자)와 棚(팽) 위의 사닥다리 팽으로 하늘 궁전으로 오르는 섬돌을 삼고, 하늘의 올라가는 개념도 생각이 나서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글자와 글의 의의를 비슷하다고 생각하다보니까 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하나 더]: 石棚山 石棚의 (석팽산 석팽의 팽자 )자는 종교적 개념, 당시 고대인들은 석팽산을 신성한 神殿(신전)으로 올라가는 蘇塗(소도)이상의 성역으로 보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는 고조선 사람들의 天地人(천지인) 天符(천부)의 정신사상에 뿌리를 두었다고 봅니다.

    

발음의 붕이든, 팽이든, 펑(조선족 발음)이든, 그 곳은 신성한 누각이 있는 영산 우리의 鷄龍山(계룡산)과 동일한 개념으로, 우리는 옥편에 의하면 됩니다.

明文堂=韓漢-明文大玉編 488p 누구도 주 해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 속어나 사투리는 표준어가 못된다고 생각됩니다.

    

일손 박종호

답신 드림

 

 

 

3). 천부벽화와 천부사상과 유불선

     (天符壁畵와 天符思想과 儒彿仙)

    

학술발표회 참관기:

2008년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올림픽파크텔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주관으로 작년에 이어 2차 역사ngo세계대회가 있었다. 이어서 10월 10일 올림픽파크텔 4층 모스코바실에서 위대한 단군 고조선 재발견, 천부벽화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30석의 좁은 자리는 만원이여서 나중에는 보조석까지 들여다 채우고 듣는 사람과 강의는 분위기가 상승되고 진지한 장소였다,

 

처음 보는 분들이 반수이상인데도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 생각되고, 강의시간은 오후 3시~6시까지였는데 질문과 답변 토론이 길어져서 6시20분까지 시간을 연장 하고도 아쉬움이 남아 헤어지지 않고, 대담 사교가 이루어지고 여흥이 벌어져 참석한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더구나 그중에 한분은 특별이 나의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 주면 원고를 편집 책으로 발간하겠다고 까지 하여 감사할 뿐이다.

    

□학술발표회의 주제와 토론: (와방점 석팽산석팽 천단 천정 천부벽화) 

    

1. 와방점 고제단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묻는 돌무덤이 아니고 청동기초 탁자형 누각으로 하늘의 천제를 지내던 고조선 전, 후 유일하게 남은 천제단 이다.

(主題語: 배달국 예족․맥족, 고불 전불 천교(濊․貊族, 古佛․ 前佛․ 天敎))

    

2. 고인돌의 규모와 형태로 보아 하늘을 우러러 모시고 하늘에 제를 지내던 고제단으로 제물이나 다기(茶器)따위를 올려놓는 누각상이 있다. 단군고조선시대의 하늘에 제를 올리던 초기 신전에 해당하는 제단인 듯하고, 큰 집단의 권위와 국력을 상상할 수 있다.

 

* 일설에는 후에 고운사(古雲寺)가 사용한 절터였다고도 함. 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불교 첫 도입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성문사 이불란사(省文寺와 伊佛蘭寺)다.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불화가 있는 것이 정상인데, 왜? 천부화가 있는 그 고제단(天祭壇)을 이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석가세존을 모셨을 고운사가 왜 천교(天敎 : 前佛. 古佛)사상에서 비롯된 천부벽화가 그려있는 곳 고제단을 절터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이 가지만 이는 박가범 아미타(거발환)를 모셨던 전불(前佛:古佛)사상과 현 세존을 함께 모셨던 것으로 추상된다. [참고: “아미타불 박가범 환웅 거발한(阿彌陀佛 薄伽梵 桓雄居發桓)]

 

아니면 세존 석가모니불을 모시던 사찰로 볼 수 있으나, 이유는 필자가 말하는 천부화가 있는 그 고제단(천제단)을 이용했다는 것과 그곳이 고조선 중심지였다는 것으로 보아 구조물 보다는, 현재 불가에서 모시는 불화나, 탱화가 아니고 천부화가 있는 곳에 절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간다.

 

뜻이 있는 학자들의 천부화의 대한 심층연구가 있었으면 한다.

[참고]: 제주대 안창범 교수 연구발표. <천지인 사상과 한국 본원사상의 탄생>

    

3. 덮개돌 천장벽화에는 태시(太始)의 창조와 신화, 신비한 현상, 신들의 존재와 섭리를 담은 천부의 종교적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민속들의 혼이 연연이 이어진 변화무쌍한 벽화. 또한 古佛과 12지상을 연상케 하는 사람의 얼굴과 짐승 태초의 혼돈 신비한 그림. 고조선시대에 정신세계의 과학과 벽화의 기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4. 상상의 동물 태양의 불사신 태양새 삼족어? 불함문화권 백의사상의 시원(始原)인 듯한 ‘고조선 사람들의 정신세계’ 태양과 우주관 창세기의  창조관, 신들의 세계, 세계유일의 천부벽화.

    

5. 구름을 타고 천상을 힘차게 비상하는, 九만리장천을 나르는 대붕 봉황? 고조선제국의 기상. [에밀레종의 신선사상을 나타낸 범종의 신선들의 비천상飛天像, (古한국 ‘옛 한국’ 오한 조이 신조 현조(烏桓 鳥夷 神鳥 玄鳥)]?

    

6. 요녕성 석팽 천제단 천부벽화는 고구려벽화에서 볼 수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우주를 나르는 사신도에 이어, 안악의 ‘인물 행진 수렵 풍속 등 뿌리를 생각게 하는 벽화의 원형. 이 고제단 천장 벽화는 우리겨레 초유의 것으로 학술적 연구가치가 풍부하다.

    

□ 만주지역 초기 청동기 시대

 

이번전시회와 학술세미나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전시품내용은 요녕성 개주 경계선 와방점 지역에 있는 천단(天壇) 고제단(古祭壇)천정의 천부벽화 (天符壁畵)는 중국지방정부의 성급문물보호물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이는 BC2400~BC3000년대까지(중국학자들 발표)올라가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보인다. [석팽산석팽(石棚山石棚)‘ (棚)누각 팽, 사닥다리 팽,(팽은 표준어, 붕으로도 발음하나 붕은 사투리) 명문대옥편 488p 참고]

 

그런데 아직도 국내학자들 중에는 고조선의 건국을 대륙으로 보지 않고 한반도로 보고 청동기시대를 BC1500년~BC1000년으로 위축(萎縮)하여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의 건국과 전성기는 한반도가 아니라 요하문명권 북방대륙이고 그중심지는 요녕성을 비롯하여 몽골 등 동북삼성으로 보고 있다.

    

□ 천부경과 홍익인간이념 천부화

 

요녕성의 와방점 고제단 고인돌은 다행히 이종호박사 지음 “한국7대불가사의” 32p 중에 하나인 고인돌이다. 고인돌학회회장이며 모역사문화재단부총재인 이 박사는 고조선을 이제는 인정하면서 천부경과 천부의 뜻을 시시비비 아직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天符사상’ 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부(天賦)의’ 뜻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심지어 단군을 무당이라고까지 주장하며 못 믿겠다고 하였다.

 

천부는 “단군의 고조선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념의 ‘근원 이념’이 되고, 여러 가지 방증(傍證)으로 보아 ‘천부(天符)의 뜻’을 실현하는 ‘환웅의 개천이념’이 함축된” 이론으로 추론할 수 있는 ‘천부벽화’로 볼 수 있다. 와방점 고제단 고인돌은 고조선역사문화재단 세계최대의 와방점 제단 고인돌로도 소개되어 있다. 때 늦은 감은 있으나 다행한 일이다.  <고조선유적답사회 발간 제2호 고조선 문화 13p> 

    

[추론]: ‘홍익인간’ 이라는 개념은 환인 한배검이며 국조이신 대황조님의 이념이며 그 이념은 우리 배달민족 불멸의 혼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러한 홍익인간이념은 또한 천부(天符)의 뜻을 실현하는 환웅의 개천(開天)이념으로, 모든 이념을 융화시켜 대통합의 중추적 활력과 조화를 창출케 하는 본질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는 우리 겨레에게만 이어져 내려온 비전(秘傳)이다. 또한 이는 고조선과 임시정부의 건국이념이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이기도 하다.

    

□ 홍산문화와 여명문화와의 연관성과 고제단

 

여명문화(黎明文化)는 길림성에 사는 고고학 애호가 李樹林에 의해서 장백산서북부의 광대한 지역에서 수백기의 취락 촌과 적석 묘군을 발견, 유적지를 여명문화로 지칭하고 있다. 고제단 유적 “연대는, 상한은 청동기 하한은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는 것” 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여명문화’ 와 ‘ 홍산문화’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동북아지구의 고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실하 교수도 홍산문화만기 (BC3500~BC3000년)의 우하량 유적에서 발견된 제단. 신전. 적석총과 매우 흡사하여 우하량 홍산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제단 유적을 건설한 종족도 고문헌에 나오는 맥족(貊族) 계통으로 보고 있다.  또한 길림성 집안시 장천지구 제1호 고분, 전설에서 발견된 고구려 시대의 예불도(禮佛圖), 부처의 모습이 석가세존상과 전혀 다르다.

    

□ 천지인 사상과 아미타불과 전불시대

 

위의 요녕선 와방점 고제단에 있는 천부벽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먼저 거발한 환웅천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초의 단군은 대황조(한배검)님이시다. 수많은 단군의 열성조 분들이 대황조의 대의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렸다.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쉽게 이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환인 환웅 단군 고조선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제주대 안창범 교수의 천지인 천교사상에서는 환웅천황(BC3898년)을 거발환이라고 한다. 그는 인류를 교육시켜 지도하시고 깨우침을 주었고 종교(천교·天敎)를 창설하시여 백성들에게 무량수 무량광불이자 대성인으로 “세상을 밝히는 아미타불(阿彌陀佛)부처님으로서” 추앙 받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시다.

 

그뿐만 아니라 환웅천황을 자의(字義)로 해석하면 “환웅”은 밝아 범을 의미한다. 밝아 범은 옛말로 표현하면 “박가범(薄伽梵), 바가바(婆伽婆)”로도 불리며 박가범은 부처님을 의미하고, 환웅천황의 다른 이름이 거발한(居發桓) 인데, 거발환은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는 뜻으로 부처님을 의미한다. 그러한데 그분의 교육과 종교 사상은 대황조님의 대의를 이은 천부(天符)의 뜻으로 유· 불· 선(儒彿仙)이 나뉘기 이전 “천일 지일 인일(天一 地一 人一) ” 천지인(天地人)의 천부사상에 근원한 시대적 배경이 배달국 후기 고조선 건국 전· 후 까지 이어져 내려와 당시의 하늘에 대한 천부사상이 일반 백성과 지도층에 팽창했을 거라 생각해 볼 수 있다.

    

□ 하늘에 대한 천부사상과 천부벽화

 

고조선사람들의 창세기의 창조 천지조화 영감을 느끼게 하는 벽화, 고조선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하늘의 섭리와 천지신명의 지고한 사상 천지조화를 한 폭의 벽화로 살아 숨 쉬는 천부의 사상 우리 역사를 실감케 한다. 고제단(천단) 천정의 천부벽화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벽화로 “현재 석가모니 세존을 모신 흔적은 없고 오환(烏桓)이나 조이(鳥夷) 또는 예족, 맥족 사람들의 토탬 불함문화권의 사상과 관련여부, 이제 새롭게 부각되는 동북공정과 함께 요하문명권의 최초의 중심 국가였던 고조선 전· 후의 백두산족문화권의 문물이라 생각된다.   

 

까마득한 옛날 대황조님 때로부터 영성계의 깨달음과 단군고조선인들의 천부이념에 의한 정신철학의 근원이었으며, 시대를 흘러 최치원의 난낭비서에, 현묘지도 실내 포함삼교(玄妙之道.實乃 包含三敎)로 표현되기도 한 천부의 뜻을 담은 벽화로 볼 수 있다.  

2008. 10. 15   민족중건총본부 총재   일손 박종호 

 

 

4). 단군을 부정하는 역사단체의 허구성

    

송암선생 안녕하십니까.

“天壇 壁畵(천단 벽화)”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송암선생이 아시다시피 지난 2007년 3월에 중국 동삼성 <만주>일원의 고조선역사유적을 한 바퀴 도는 ‘역사유적답사반’ 일행 24명은 우리교과서에 고조선 단군역사를 편입함’을 축하하는 현수막 (파고다 공원에서 삼일절 행사에 사용한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역대 단군님께 드리는 헌다식(獻茶式)까지 거행하고 “OOO역사문화재단”이란 단체까지 만들었습니다.

    

그 역대 단군께 헌다식을 거행한 그 ‘고제단(古祭壇)은‘ 중국 지방정부 차원에서 “석팽거석문화 (石棚巨石文化)”로 이미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은 다른 고제단(古祭壇)과는 달리 역대(歷代) 단군께서 하늘에 천제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 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고제단 덮개돌 반자에서 벽화를 발견하였습니다. 거석문화는 돌무덤과 고제단 고인돌로 구분되며, 이 석팽 고인돌 고제단은 천하제일의 규모이고 더구나 덮개돌 천장벽화는 고조선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이와 같은 귀중한 고조선문화재가 발견되고, 때맞추어 동북아역사재단 주관아래 “역사NGO세계대회”가 개최된다고 하여 OOO역사문화재단과 함께 필자의 작품도 공동으로 출품하기로 협의하여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OOO역사문화재단은 역사NGO세계대회에 공동으로 작품을 전시하기로 약속한 것을 어기고 준비가 완료된 벽화 전시물을 전시하지 못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설사 자기들 속뜻에 맞지 않는다 해도 공공단체로서 정정 당당하게 출품당사자 본인의 참석 하에 토론과 협의, 심의절차나 연락도 없이 학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고조선역사복원에 귀중한 역사적 사업을 자기들의 명예와 권위에 손상된다고 생각하고 비겁하게도 몇 사람이 임의로 처리하여 역사NGO세계대회의 작품 출품을 막아버려 방해하였습니다. 그 저의를 알만하지만 그 사실을 밝히고 규탄하는 뜻에서 다음 글을 올립니다.

    

  그 작품은 고조선문화재가 될 수 있는 고조선 벽화로서 역사NGO세계대회를 통해서 국내외의 널리 알리고 국내외적인 고증을 통하여 고조선시대의 문화재임을 알리고 고조선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재로 언잰가는 선택될 경우에 오늘날 열악하고 왜소해지고 자신감을 잃은 국민들의 정서에 새로운 희망과 자부심을 주는 벽화 전시물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민족정기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는 자신감을 생각해보세요. 현재 중국영토에 있는 문화재이지만 현재 우리는 국경을 초월한 역사문화시대의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문화재를 영토와는 관계없이 상고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역사에 대한 사관(史觀)은 남북통일은 물론이요 해외 동포 등 인근 여러 백두산족문화권들의 종족들, 천손자손, 단군이념의 한 뿌리 불함문화권(不咸文化圈:대동이권)의 새로운 연대(連帶)의 등불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 2007년 9월 12~16일(5일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계역사NGO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시청광장에서 개최된 제1회 역사NGO세계대회에서 <위대한 고조선 재발견 벽화 게시물 22점>을 (중국 요녕성 개주시 와방점 석팽산 고제단 고인돌 덮개돌에서 발견된 고조선 천제단 천부벽화를) 출품 전시 할 예정이었으나 李모박사(지리학, 河川 및 고인돌 전문)를 비롯한 소위 ‘OOO역사문화재단 학술회’ 라고 자칭하는 몇 사람에게 완전히 농락을 당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단군은 신화이고, 벽화는 더욱 믿을 수 없고, 고증이 안됐다는 구실이다.

그들은 고조선 역사문화 전시회라는 전시회를 열면서 표리(表裏)가 상반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 발굴은 존경하나 이는 민족과 역사학계를 왜곡 우롱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그들의 역사관과 속내는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의 고증은 사전적(辭典的)이며 기록문을 옮겨 쓰는 서지학(書誌學)에 지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나는 홀로 당당하게 그들을 물리치고 전시물 총22점 중에서 그들과 싸움 싸우듯 하면서, 전시물의 ‘고조선’ 글자를 지우는 조건으로 벽화 3점만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그들에게 검열삭제 당한 결과인가?) 그들은 역대 단군들 (歷代國祖)을 일제(日帝)가 가르친 대로 무당이라 호칭하고 멸시하면서 ‘고조선’ 역사를 발굴 복원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고조선 단군에 대한 역사관이니 이 두 가지 얼굴의 가면을 어찌 생각 하십니까. 그들은 천부경은 물론이요 한단고기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하고 일제가 가르친 한반도 식민지사관으로 단군고조선의 기원과 중심을 저 광활한 대륙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찾고 싶어 하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과거에 대한 이러한 사대주의적 종속적인 역사관과 역사의식은 마침내 중공으로 하여금 끝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일으키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시청광장에서 개최하는 ‘역사NGO세계대회전시장’ 현장설치를 담당하고 연락책임을 맡은 김 사무총장과 안 부회장은 갑자기 자리를 피하고 연락이 두절되어 더 이상 어찌 할 수 가 없었습니다. 명분상 내 주관 하에 주최 측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민족중건총본부가 할당받은 전시장 면적을 OOO역사문화재단은 자기들이 허가받은 면적인양 독점으로 차지하여 사용하는 파렴치한 작태들을 보였습니다. 나로선 현장실무 담당자가 없으니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작품은 나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적 사업으로서 고조선 재조명과 우리의 상고사를 복원하는 데에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개장 첫째 날 두 단체가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있는 탁자위에 단군 고조선 인쇄물을 놓는 순간, 李모박사와 李모총재는 이를 제지하며 그들의 속내를 드디어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탁자를 치며 나는 무당 같은 단군은 믿을 수 없어요!! 라고 큰소리 소리치며 이 인쇄물을 치우라고 소란을 피우며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옆에서 싸우는 것을 지켜본 주최 측(동북아역사재단)의 배려로 더 좋은 자리인 출입구에 한 자리를 할애 받고 또한 고맙게도 알미늄 삼단 게시물대 까지 주선 받았던 것입니다.

    

  실은 나도 그 OOO역사문화단체의 창설자이며, 소위 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민족중건총본부 총재로서 양 단체가 공동으로 전시하기로 되어 있었고, 양 단체 실무자가 공동 활동을 통하여 잘 진행되리라 믿었으나 실무자들의 잘못과 무능으로 역사NGO세계대회 출품자체를 방해받아 전체를 제거당해 버렸습니다. 공동으로 전시하기로 되어 있었던 나의 작품 <2건>의 내용은 <민족중건총본부 단독 출품하기로 한 <1건>인 ‘고조선 건국이념 12점’과, 민족중건과 OOO역사문화재단이 함께 공동 출품하기로 한 <2건> ‘고조선 천제단 재발견 22점’ 을 출품하기로 하였는데 출품자체를 방해해 전체를 제거해버렸던 것입니다.

 

전날만 해도 OOO역사문화재단 ㅇㅇㅇ총재가 출품작품 22점 전부를 전시하겠다고 전화로 나에게 특별이 다짐하고, 또한 ㅇㅇㅇ 부회장도 확인한 바로는 나의 작품을 추가로 몇 점 더 부탁하라고 까지 지시한 것으로 부회장에게서 확인 전화까지 왔는데 갑자기 정당한 사유 없이 남의 작품을 일언반구 말 한마디 없이, 다음날 전시장의 출품하기로 되어있는 작품게시물을 임의로 거절당하였던 것입니다.

    

그에는 단체내의 실세인 그들이 자신들의 거취(去就)를 놓고 이총재와 회의 중에 의견이달라 격론 끝에 결단을 지었다고 이총재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 동안 대상포진으로 경희의료원에 장기간 입원하였기에 진행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이 잘 진행된다고 하기에 잘 진행되는 줄 알았더니 두 사람 다 연락이 두절되면서 당했습니다.

 

내가 입장을 변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늘과 땅이 분노할 일입니다. 병원에서 나와 보니 지난번 고조선유적 한 바퀴 도는 고조선역사탐방 중에 고조선의 문화재가 될 수 있는 (요녕성 개주(盖州) 고제단 보다 격이 높은) ‘와방점 천제단(天祭壇) 천부벽화’를 발견하였고, 역사NGO세계대회에 필자인 내 이름이 있는 그 전시 작품을 그 단체와 공동 단체이름 (민족중건총본부와 OOO역사문화재단 고동출품)으로 출품하기로 합의 결정을 보았는데 약속을 어기고 전시를 방해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민족과 역사적 사업보다는 그들 개인의 체면과 명리, 시기(猜忌)가 앞서는 일제의 독버섯을 먹고 자라난 사람모양 반민족사관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우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천단(天壇)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발전 전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릴 것입니다.

    

그들은 작품에 대해서 왈가왈부 작품의 독창성을 무시하고 마치 문화재 검증위원이나 되는 듯 가관입니다. 그 행패는 남의 작품 내용에 대해 억지주장을 하면서<벽화가 불화라고 하지를 않나, 고조선 시대가 아니라느니 하며> 사안에 대한 관계자와의 충분한 토론과 의견도 듣지 않고 엿장수 인양 멋대로 가위질합니다. 그는 돌무덤과 고제단의 구분에도 용도를 구분하고 그 고인돌의 용도에 따른(돌무덤과 고제단) 각각의 크기를 大 小 구분해야 하거늘 두 분야 별로 구분도하지도 않고 혼동 하고 있습니다.

    

또 지구환경변화로 바다수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북극의 해빙으로 지구에 대한 경고입니다.) 과거 4~6000년 전 바다의 수면이 4~5m나 낮아, 섬이 높았을 때 구축한 제주도 하귀리해중 고인돌(수몰된 큰 괘석 고인돌)을 선사시대에 수중에서 건축한 고인돌인양 국내외에 선전 착각을 가지게 하며, 신기한 듯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주 요녕성에 있는 고조선의 무덤-강상, 누상 무덤도 문헌상 사자를 10여명 식 화장해 재를 함께 묻은 곳(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발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권 679p)이거늘, 수십 명을 함께 묻은 순장무덤(살아있는 산 사람을 함께 묻은 묘)이라고 주장합니다. 어이없는 주장이니 고고학계와 거석문화학계는 이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巨石文化는 고인돌로서 돌무덤과 고제단으로 구분됩니다. 돌무덤은 시신을 묻어두는 무덤의 하나이며, 덮개돌은 크고 웅장한 괴석으로 시신의 영혼을 마귀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제단 덮개돌은 괴석이 아닌 반석(盤石)으로 지방의 제후나 군왕이 제를 지내는 곳이고, 요녕성 와방점 천제단은 天子인 역대 단군께서 하늘의 천제를 지내던 곳입니다. 고조선은 고인돌의 종주국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고인돌은 인류가 선사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국가기원과 관련이 없다. 와방점 고제단인 천제단은 국가권력이 성립된 후 국위와 국력과 능력에 의해서 천제가 하늘의 제를 지내던 곳으로 돌무덤과 이를 구분하여야합니다.

    

거석문화는 선사시대의 문화적 유물입니다. 이는 인류가 남겨놓은 최초의 문화재로 단군 고조선시대 전후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로 평가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B.C 4800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거석문화에 분야별 대소도 구분 분간치 못하는 사람이 거석문화계의 회장입니다.

 

천제의 천부사상에서 비롯해 건립된 고조선의 정신세계를 부당하게 간섭, 더구나 평소나 다름없이 그날도 단군고조선의 천부벽화를 믿을 수 없다고 하니, 하기야 그들은 단군과 천부경을 못 믿겠다고 하는 단체장이니 그들에게 단체의 입장에서 검증 토론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벽화에 대한 거부와 자신들의 천부사상의 불신으로 민족 사관에 대한 학문적토론도 불응하는 역사철학과 역사인식에 대한 부도덕한 사람들로서 ○○역사문화재단은 모순과 갈등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민족역사단체라는 학계의 수준입니다. 이제 우리교과서에 고조선 단군역사가 편입 새로운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어 있는 이때, 즉 <고조선하면 ⇢단군이요, 단군하면⇢ 홍익인간이념이요, 홍익인간하면⇢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요 또한 임시정부의 건국이념이요, 대한민국교육이념입니다.>

    

이는 천부(천부경: 天符經)사상에서 비롯된 하늘의 뜻을 담은 배달국 거발환 환웅천황(BC3898: 아미타불, 무량광불)이 천문을 연 개천(開天)사상“에서 비롯된 ‘우리민족의 불멸의 혼과 정신’ 사상이거늘 단군의 천부사상(天符思想)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일제 때 식민지사관 강단 사학계의 독선적인 횡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제 깨우침이 있어 고조선 역사복원에 노력을 한다면 충심으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단군사상의 근본은 대황조 (대황조 대조신 大皇祖 大祖神 BC 7197) 한배검의 천부경사상 (홍익인간 이념)에서 시작되거늘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일본이나 중국도 역사적 사실여부를 떠나 조상에 대한 검증을 말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조상에 대한 실증여부를 논하기 전에 그를 거부할만한 논거와 확증을 내세울 수 있는 반증논리는 있는지? 그들은 그들이 아는 범위내의 검증을 요구하며 그들이 모르는 것은 검증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더구나 고조선역사를 탐구한다는 단체의 박사라는 사람들이 아무 이론과 근거도 없이 상고사나 역사정신, 역사의식이 얼마나 되는지? 박사학위가 천박하게 난무하는 이때, 박사도 각 분야가 있게 마련인데 겨레에 대한 민족 사관도 불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박사님들 실세(예로: 치과 박사가 법과의 대가 인양 전문분야도 못 되는데 남의 분야를 간섭하는 식의 실세들)에 밀려나다니 웃깁니다.

    

이렇게 2007년 제1회 역사NGO세계대회에는 작품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고 겨우 작품3점만 그들이 기피하는 용어 몇 자(고조선)삭제하는 조건으로 겨우 3점만 걸게 되고(아래 고조선이 테이프로 지워진 화면 참고) 위대한 단군 고조선 재발견의 인쇄물만 나 혼자서 전달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는 정정당당하게 역사와 민족을 위해 떳떳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 제1회 역사NGO세계대회에 함께 출품한 서길수 교수가 그의 고구려 전시장에 게시물 중, 고구려 역사지도 중에 요녕성 장하현(옛 이름) 석성(石城)의 天壇 현재 행정구역 요녕성 개주시 와방점 석팽거석문화(石棚巨石文化)로 중국지방정부에서 지정한 동일한 지점임을 우연히 발견, 이곳이 곧 고조선 중심지였던 고조선 천제단 천부벽화가 있는, 고조선시대의 단군님들이 하늘의 천제를 지내온 그 天壇이 있음을 발견, 확인하는 대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단군고조선 문화재로서 우리역사문화재복원에 급부상할 수 있는 고증 자료로서 사학계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천제단의 발견은 강화도참성단과 함께 고조선문화재로 크게 떠오를 것입니다.

    

    

 

이제부터 전문학계가 나서서 발굴 규명할 일입니다. 다행히 이종호박사의 한국7대불가사의 32p는 이를 나타내고 있으나, 벽화에 대한 문화적 가치로서의 설명이 불분명합니다. 그 구조물도 중요하나 그보다 천정에 그려져 있는 신조(神鳥)이든 또는 천부화(天符畵)이든 간에 천문, 지리, 역사, 인류문화사 등 고미술학계와 고고학계에서 그 시기와 그 당시 고조선사람들의 정신세계와 더욱 벽화의 뜻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익인간이념은 남북통일국가이념으로 세계에 정정당당한 중심국가로 격상하며, 온 세계에서 존경 받는 민족이념으로 부상하여 800만 해외 동포들에게도 자부심을 주고 국가이념으로 국제사회에서 크게 존경 받는 민족으로 동북아에 새로운 동이 틀 것을 확신합니다.

 

 

    

[참고: 더 이상 자세한 것을 알기 원하시면, 이 책 본문의 “제11장 천부벽화와 천단, 1)절 위대한 고조선의 재발견 (천단)”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얼 역사정신선양연합

총재 일손 박종호

 

一巽 朴宗鎬 先生 프로필

일손 문집 둘러보기. 티스토리(http://pjh24.tistory.com/)

 

∆ 홍익통일역사 신문 플러스코리아 상임고문

∆ (社)杏村(李嵒)學術文化振興院 顧問

∆ 한 얼 역사정신선양연합 총재

∆ (社)統一建國民族會 顧問 ∆ 韓國統一文化振興會 顧問

∆ 민족비전 삼금법, 조식호흡법 소유자

∆ 민족정기 확립과 장기적 교육대책으로 역사교과서 검인정제도 개선에 공헌

∆ 한겨레대연합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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