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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훔친 설인귀, 경기 '감악산'서 홍보?

'설인귀'가 이 고장 사람이라 버젓이 홍보하는 작태를 연출하나

한문수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09/11/04 [18:04]

고구려 훔친 설인귀, 경기 '감악산'서 홍보?

'설인귀'가 이 고장 사람이라 버젓이 홍보하는 작태를 연출하나

한문수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09/11/04 [18:04]
▲ 감악산 위치도    © 플러스코리아
고구려가 멸망하고 796년이 흐른 1464년 (세조 10년) 9월, 권남(權擥)은 감악산(紺岳山) 정상에 차려진 당나라 설인귀(薛仁貴)의 산신당(山神堂)에 병치례 치성 기도를 하며 설인귀와 대화를 이어 간다.

“신(神)은 당(唐)나라 장수이고, 나는 일국(一國)의 재상(宰相)이니, 비록 선후(先後)가 같지 않더라도 세(勢)는 서로 비슷한데, 어찌 서로 군박(窘迫)하게 굴기를 이와 같이 하는가?”하니 무당이 신어(神語)로 노(怒)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감히 나와 서로 버티는데 돌아가면 병이 날 것이다.”라 했다.

고구려를 초토화 시킨 주역이 조선의 산신령이 되어 이 땅 중신에게 접대를 받고 있음이다. 이 같은 사실은 길창부원군 권남이 하직하고 개성부에 가서 감악에 기도했다는 실록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권람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승정원 동부승지에 특진되었다.

세조는 '그를 보낸 뒤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경기 관찰사에게 치서(馳書)하여 후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공돈(供頓)하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면 권람의 위상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세조 3년에 내려진 고대사서 수거령에 보이듯, 중원을 지배한 천손민족의 기록 자체를 말살한 정황으로 보아 명나라에 대한 사대(事大)로 시작된 조선조의 한 단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감악산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1170년 고려 무신난 때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도망해 들어 간 곳이 감악산이고, 정중부 추격으로 잡혀 죽음을 맞은 곳이다. 이 시기의 고려의 영토는 하남성을 깃점으로 절강성까지 비정되어 있음을 볼 때 그 곳의 감악산이 한반도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1311년 고려사절요 충선왕(忠宣王 3년)조에 보면, 그때의 풍속이 귀신을 숭상하여 공경과 사대부와 서인이 모두 직접 감악산(紺嶽山)에 제사지냈으나, 이후 금지하였다고 썼다. 이 기록을 감안한다면 산신당은 이 때에도 이미 조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악’의 한자표기가 岳과 嶽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외에 고려조의 사료 어느 곳에서도 감악산과 설인귀와 연계된 기록이 없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권람과 설인귀의 대화는 조선 개국 이후 명나라의 속국 개념에서 세조 조에 산신당을 건립, 설인귀를 산신으로 격상시켜 안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같은 사실적 내용을 고구려의 대당 전쟁 기록에서 살펴 보자.

"강소성 염성에서는 연개소문과 당태종의 전투에서 당태종이 연개소문에게 쫓기다 우물에 숨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났는데 목숨을 건진 것에 감격하여 그 우물터에 몽롱보탑과 정혜사를 세웠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강소성 태주에 호국사가 있는데 당태종이 역시 연개소문에게 패하고 칠성장에 숨어 있다 살아나서 나중에 세운 절 이름이다.

강소성 숙천에는 고구려 연개소문 부대가 당나라 설인귀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유적이 남아 있는데 설인귀가 숨어 있었다는 장군동, 망을 보던 장대와 찬밥을 먹던 냉반대, 과광산, 오자산 등의 유적이 있으며, 고구려 군사가 주둔하던 청량원이 있다. 인근의 묘에서는 1996년에 투구와 철검 등이 출토되었다 한다.

강소성 비주에도 연개소문과 설인귀의 전투유적이 있다"


이상은 우리역사교육원 신완순 교수의 추적 기록이다.

바로 설인귀가 숨어 있었다는 장군동, 망을 보던 장대와 찬밥을 먹던 냉반대, 과광산, 오자산이 사대에 충실한 조선에 의해 한반도의 감색과 유사한 감악산으로 지명 이동한 것은 아닌가 한다.

조선조는 개국 직후 스스로 제후국을 자임, 하늘제사를 폐지하고 명산 대천(名山大川)과 여러 산천(山川)에 당례악지(唐禮樂志), 문헌통고를 참고하여 국무당(國巫堂)과 감악산, 덕적산(德積山), 목멱산(木覓山), 삼성(三聖)에 기양제(祈禳祭)를 행하였다.

1400년 1월 정종이 술과 고기를 가지고 감악산(紺嶽山)에 제향하여 기도하였다는 기록과 1409년(태종 9) 적성현(積城縣) 감악산(紺岳山)의 신당(神堂) 남쪽 봉우리의 돌이 무너졌는데, 길이가 87척이고, 너비가 38척이었다는 사실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및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32.21cm를 1자(1척)로 했으나, 세종 12년 개혁 때에 31.22cm로 바꾸어 사용했다. 조선 초기 단위로 보면, 길이가 약28m, 너비가 12m로 신당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보여 준다.

세종도 1422년 3월 사람을 보내어 감악산의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1,500년 연산군은 감악산 신당(神堂)의 제청을 고쳐 짓는데 수군이 1백 40일의 역사를 하였고, 의정부에서 중지할 것을 건의하자 연산은 감악산, 마니산의 집 짓는 일은 이것이 성신(星辰)에 제사 드리고 신께 제사 드리는 곳이니, 정파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1531년 중종조에 보면, ‘예조가 경기 근방에서 비를 빌어 가장 영검이 있었던 곳‘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아 기우제(祈雨祭)를 거행하고, 기도처로도 활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감악산의 위치는 강원도 원주지역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양주군 남면을 비롯해 연천군 전곡읍에 걸쳐 있는 2개의 산 이름이다.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위 감악산은 경기 지역의 산이다.  산신당은 현재 보이지 않으며,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감악산비가 감악산 정상에 있다. 이 비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25번지에 있으며, 기단부, 비신, 객석을 갖춘 화강암 석비로 높이는 170cm, 너비 70~79cm, 두께 15~19cm의 규모이다.

▲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감악산비     ©플러스코리아

비문은 마모되어 확인할 수 없다. 이 비는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 따르면, 감악산 정상 부근에 설인귀 굴, 임꺽정 굴로 알려진 굴이 있는데 이 설은 고구려를 치러온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곳에 진을 쳤다는데 따른다고 했다.

 
▲ 감악산비 소개 안내판     ©플러스코리아
 
1,300여 년 세월을 넘나드는 설인귀의 끈질긴 집착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의 한 무당집에서 노랑색깔의 임금님 복장으로 감악산신령이 되어 지금도 이 나라 백성들을 맞고 있다. 당과 야합한 신라의 사대하는 귀신들과 함께 조선의 중신을 접견하고, 고구려 멸망 후 1,300여 년 동안 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이다.

감악산 자락에 자리한 한 지방 관청이 역사를 올바르게 계도해야 함에도 설인귀가 이 고장 사람이라 버젓이 홍보하는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천손민족의 뿌리 근원도 저버린 조선왕조의 사대 근성과 이에 부화뇌동한 조선 사대부의 행동, 그리고 오늘을 사는 넋 나간 공직자들의 행위가 오늘의 역사를 아프게만 할 뿐이다.
 

대한민국 09/11/05 [06:35] 수정 삭제  
  저런 설인귀비는 과감히 무너뜨리고 연개소문비를 세움이 지당하다 할 것이다.형상은 기운이다. 사대주의 기운을 받아 들일 것인가? 아니면 당당한 민족자주기운을 받아 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스 09/11/05 [17:26] 수정 삭제  
  통탄스러움 그 자체로고~~~~~
김성겸 09/11/06 [17:43] 수정 삭제  
  우리가 접하는 삼국사기는 읽다가보면
전쟁과 전쟁을
마치 와 의 입장에서 기록하였듯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지만,

의 출신지는 땅으로 나온다.

사서 원문들의 전쟁기록들을 읽다가보면,
이 땅은 추정하건대
현금 중공땅 산서성 서변에 남류하는 황하변 지경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人著奇服大呼陷陣所向無敵,我軍披靡.大軍乘之,我軍大潰,死者三萬餘人.帝望見拜
한심 09/11/06 [23:50] 수정 삭제  
  고구려를 능욕시켜버린 작자를 임금으로 왕으로 치켜세우는 저질
무속인과 지방관리들이 문제로세
박민창 09/11/08 [10:57] 수정 삭제  
  설인귀라는 사람을 대하드라마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소중한 자료에 감사히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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