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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4회

임서인 | 기사입력 2016/11/04 [15:42]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4회

임서인 | 입력 : 2016/11/04 [15:42]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4회

 

정부의 한미FTA 쇠고기 파동 반대 촛불시위가 농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었다. 시민들은 광우병의 치명적인 위험성 때문에 촛불을 들었었다. 태진은 이 촛불을 몹시 못마땅했다. 종북좌파세력의 조직적인 선전선동에 시민들이 넘어간 시위라고 여겼다.

 

“앵초가 선택할 걸세.”

 

“앵초는 도시에서 잘 어울리는 여자입니다. 제가 상위 1%만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제 선배님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빈민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요. 과연, 앵초가 아직도 선배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그 사람의 존재만을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열고 나간다는 말도 모르십니까?"

 

태진의 조롱이 섞인 말에 해덕은 그만 태진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자네가 우리들의 나무를 죽였나?”

 

“우리들의 나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왜 나무를 죽입니까? 설마 그 나무들이 앵성마을과 흔랑부락을 부하게 한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유지앵소의 혈처가 있어서 잘사는 부락이 될 거란 말을 믿고 무모하게 나무를 그렇게 많이 심습니까?”

 

“부락이 아니고 마을일세?”

 

해덕이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하, 부락은 일본 천민의 집단거주지를 칭하는 말이 일제 때 건너와 일본인들이 우리의 마을을  비하하여 부르던 말이라 쓰지 말란 말입니까?”

 

“알면서 그러나.”

 

“그곳은 과부가 많은 부락입니다. 늙은이들만 사는 부락을 얼마나 일으켜 세우는지 보겠습니다.”

 

태진도 언성을 높였다.

 

“두고 보게나. 내가 이대로 쓰러질 줄 아나? 반드시 나무를 죽인 놈을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네. 하늘이 우릴 도울 걸세. 명심하게나. 큰 나무는 태풍에 쓰러져도 잡초는 다시 일어난다는 것도.”

 

해덕은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태진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마당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명치끝이 답답하고 하늘이 노랬다. 그는 술꾼이고 건달이고 성격파탄자였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런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그런 아버지는 그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은 과부가 된 어머니의 희생 없이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명창인 외할머니는 그에게 우리의 민요의 한과 흥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한을 흥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민족이다. 들판에 울려 퍼졌던 앵초 아버지의 부활과 한을 흥으로 승화시켜 우리소리를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외할머니를 위해서 반드시 사람들이 몰려오는 마을로 기필코 만들겠다고 외할머니와 약속을 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 그의 손이 거칠었다. 핸들을 급히 꺾어 그곳을 나온 해덕은 차의 속도를 높였다. 고부를 거쳐 영원면으로 향하는 도로는 어쩌다 마주치는 몇 대의 차량뿐이이다.  이평면의 집단농장은 기업인에게 최대의 이익이 갈 뿐이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결합 협력하는 신 사회를 그는 꿈꾼다.

 

분명히 나무를 죽인 자는 태진일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천만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은 말은 그에게 더 확신을 주었다.

 

해덕은 풍물놀이 CD를 넣었다. 여러 가지 악기가 어울리는 한마당이 신나게 울렸다. 분노로 일그러진 마음과 앵초에 대한 애닮음으로 잠시 썩어 타들어갔던 가슴을, 태진 앞에서 꾹꾹 누르고 눌렀던 가슴이 신바람 나는 풍물놀이로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가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그는 그의 눈을 의심했다. 아침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솔나리와 수국이 환장하게 웃었었는데, 막 피어난 타래난초는 쪼르르르 은방울 소리를 냈고, 초롱꽃은 그에게 잘 다녀오라 방울을 울려댔었는데 하늘말라리는 또 어떻고,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애기동자, 황금조팝은 어디 갔단 말인가?

 

차에서 내린 그는 망연자실하여 낫으로 꽃들이 살육을 당한 모습을 보고 기절할 노릇이었다. 외할머니의 늙은 손으로, 어머니의 주름 깊게 패인 손으로, 이웃집 노인들의 힘 빠진 손으로 꽃의 천국을 만들어놓은 동산을 망가뜨린 손이 누구란 말인가?

 

해덕은 손을 하늘로 쳐들며 울부짖었다.

 

“하늘이시여, 내게 사랑하는 자를 떠나보내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하시고, 전 재산을 털어 일구어 놓은 나무와 꽃들을, 우리의 낙원을 망가뜨린 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시는 것입니까? 내게서 다 빼앗아 가시면 저더러 어찌 살란 말입니까? 이 땅에 희망이 있단 말입니까? 꾀꼬리 날아 노래하고 어여쁜 처녀들 노래하고, 아이들 웃음소리, 우는 소리 하늘로 울려 퍼지고, 꽹과리, 장구, 나팔, 징 소리 하늘로 울려 퍼지어 하느님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다가 본향으로 이끄시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나의 꾀꼬리는 어디 갔습니까? 차라리 무지하게 살다 가게 하시지 이 민족이 고리민족이며, 하늘과 마주보며 살고, 하늘의 소리에 순명하고, 하늘의 소리, 하늘소리울림쇠 고리를 달고, 곳고리는 천상의 옥음을 전하는 새라고, 하늘의 소리가 높은 곳에서 땅으로 전하는 곳고리의 지저귐이 땅의 세계를 조화롭게 한다고 왜 가르쳐 주셨습니까? 백제 고사부리현이었던 이곳이 곳고리 벌판으로 앵성리(鶯城里)는 글자 그대로  꾀꼬리 산성鶯城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앵성을 흔량, 흐냉, 흔앵이라고 부른 것은 하늘 꾀꼬리로 환앵으로 불리다가 일연이 불교 사찰 대웅전의 웅자를 붙여 하느님을 환웅으로 표시하고, 환웅이나 환앵이나 의미와 소리가 하늘새라는 뜻이 같다는 것을 왜 알려주셨습니까? 그냥 정치꾼들의 노리개가 되어 살게 하시지 이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으시고 곳고리 날아가고, 앵초도 날아가고, 날아가고, 날아가고……흑흑흑.”

 

해덕은 땅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앵초를 떠날 때 이리 서러웠을까? 빨갱이라고 낙인찍힐 때 이리 서러웠을까? 주정꾼 아버지의 매질에 이리 서러웠을까? 공사판에서 벽돌 등에 짊어지다 벽돌이 발등에 떨어질 때보다 이리 아플까? 앵초가 칼날같은 입으로 상처를 주었을 때도 이리 아팠을까? 사내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올라가네. 세 번 밖에 안 운다는 사내의 통곡이 하늘로 올라가네. 아버지 죽어 통곡한 사내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올라가네. 혼자 잘 살고자 했던 짓인가?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한 순이가 돌아오고, 신용불량자 철수가 돌아오고, 병든 영자가 돌아오고, 아비, 어미 잃어 고향마저 잃은 동무가 돌아오는 길 만들어 주려한 것인데, 것.인.데…….흑. 흑. 흑. 어이하나? 어이하나?

 

해덕은 날 저물도록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천만이 쫓아오고, 외할머니가 쫓아오고, 어머니가 쫓아오고, 마을 늙은 홀아비, 과부가 쫓아오고, 쫓,아,오,고…….다 쫓아오는데 앵초만 아니 쫓아오는구나. 해덕은 그 생각에 더 서럽게 울었다. 앵초가 그립다. 죽도록 보고 싶다. 앵초야, 나의 곳고리 나의 앵초야…….

 

해덕은 며칠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음식을 거부하고 술에 취하고, 또 취해서, 천만을 붙들고 운다. 앵초를 데려다 줘. 천만아. 앵초를 보고 죽으련다. 살기가 싫다. 앵초 한번만 보고 죽으련다. 살아서 무엇하랴? 가진 것 하나도 없는데…….대출받아 쓴 것은 어떻게 갚는단 말이냐? 해덕은 술에 취해 천만을 붙들고 앵초를 찾아내라고 울부짖었다.

 

보다 못한 천만은 온다 간다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천만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해덕은 더욱 망연자실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이 멎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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