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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광개토태왕비 동북공정의 포석인가

새로 출토된 고구려 비석은 위각(僞刻)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2/08 [14:17]

제2광개토태왕비 동북공정의 포석인가

새로 출토된 고구려 비석은 위각(僞刻)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2/08 [14:17]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중국 국가문물국(우리의 문화재청에 해당)이 발행하는 '중국문물보'  1월 4일자에, 지난해 7월에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 마선촌에서 고구려 비석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기사가 실렸는데, 이 고구려 비석은 소위 제2의 광개토황비인 수묘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장수제가 광개토황비를 세운 바로 뒤에 왕릉에 세웠던 비석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지 2013년 1월 23일자 필자의 中 집안서 발견된 고구려비는 '수묘비' 참조>
 
▲ 고구려 수묘비로 추정     © 천산태백

그런데, 이 새로 출토된 고구려 비석은 위각(僞刻)일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가 제기되었다. 중앙일보 2013년 2월 6일자 2종합 우측면에 실린 기사에서, 고대중국어 전문가 문성재 박사가 이 제2의 광개토왕비로 추정되는 고구려비가 중국이 고구려를 한나라의 지방정권으로 조작하는 증거로 만들어냈을 개연성이 크며, 비문 표현과 내용이 기존의 광개토왕비와 비교해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의 문물보가 이번 고구려비의 양식을 규형비(圭形碑) 라 규정하였는데, 규형비는 후한시대 시작된 것으로 제후를 봉하는 증거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바, 고구려가 한나라의 제후국 즉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이 비석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주입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문물보는 새로 발견된 고구려비는 한자 예서체이며, 이는 고구려가 한자 예서체를 정부 공식서체로 사용해 정책과 외교관계 등을 발포했음을 알려주고, 비석의 형식은 동한 이래 상용했던 규형으로 고구려가 중원 문화와 연계됐음을 반영한다라고 확대 해석하여, 고구려에 대한 한나라의 문화적 지배를 은연중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하여, 문박사는 이번 고구려비는 반듯한 예서체를 구사하고 있고 또 고구려 문장으로 보기엔 너무 매끄러운 한문으로 일관한 점도 의문이며,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忽本, 殘國, 奴客, 寐錦 등 알타이어나 고구려의 특색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어휘나 부자연스런 어투 등이 없고,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수묘(守墓) 부분만 중복해 써 놓은 것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며, 고구려 내정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은 물론 비석을 세운 주체에 대한 헌사조차 없고, 연호(煙戶)에 세웠음에도 오히려 석질과 글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점 등이 이해가 되지 않으며  의심스럽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박사는  또 이 비문에 천도자승(天道自承)이란 표현은 중국 초기 도교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중국 도교가 고구려 말기에 수용된 점을 감안하면 6~7세기 표현이 5세기에 사용된 것이 되어, 이 비석이 진품이라면 도교는 고구려 중기에 전래된 것이 되고, 위조된 것이라면 고구려가 한나라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비석을 고구려 스스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하고,  비석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함에도 뒷면만 완전히 훼손된 점도 이상하다고 말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학회 연구이사 윤용구 박사는 고대 유물의 진위는 한 번은 반드시 검토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이 고구려비에 대한 의문점은,
 
1. 전서, 해서, 예서 등이 혼합된 광개토왕비와는 달리 반듯한 예서체
2. 광개토왕비처럼 부자연스런 한문투가 아닌 완벽한 순한문체
3. 천도자승(天道自承)이라는 도교 관용구
4. 광개토왕비는 거대한 자연석인데 반하여 깎아 놓은 규형(圭形)
 
이라는 4가지가 크게 대두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필자는, 고구려가 비석에 글을 새길 때 예서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으로 보며, 다른 내용을 넣지 않고서 수묘 관련 부분을 중심으로 하였으므로 자연스런 한문투로 이루어 질 수 있다라고 보고, 천도자승이라는 도교적 관용구도 도교가 반드시 고구려 말기에 전래되었다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고구려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이미 유불선의 사상을 포함한 종교를 지니고 있었던 국가였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도교적 관용구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되며, 자연석이 아닌 규형의 비석을 사용한 것은 땅에 꽂기 쉬운 편리성도 있으므로 그러한 이유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완전한 의문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물론,  위 네가지의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고구려비는 위작의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위 네가지 의문점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으며 한편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발견된 고구려비가 다행히 진품이라면 비문의 내용에서처럼 광개토왕비의 내용중에서 수묘에 관한 내용을 중점으로 새긴 수묘비로서 장수제가 광개토왕비를 세운 뒤인 무오년에 해당하는 서기418년에 왕릉 또는 연호 부근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만약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위작이라면 고구려가 당시 한나라의 지방정권이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된다.
 
광개토황비 비문 훼손 시비에서 이번에 출토된 고구려 비석까지 위작 시비가 일어나니 이 무슨 역사전쟁이며 이러한 논란을 누가 야기한 것이란 말인가? 이참에 이 고구려비가 중국 문물보가 주장하듯이 획기적인 비석이 되려면, 동북공정과 무관하다는 뜻에서 당당하게 공개하여 외국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옳을 것이다.
 
 

통일코리아 13/02/08 [23:55] 수정 삭제  
  태양과 하늘을 중시한 농경.해양생활을 했던 오리지날 태양족은 마고족의 후예로 서남해 중심의 남한인들이다. 지나인들이 [산해경]에서 대인.군자국으로 기록한 지역이 서남해 지역이다. 우리말 해(태양)가 한자로 이니 이라고 불리우고 기록한 것이다.그래서 고대 동이지역 중 남한지역을 기록한 후한서 사료가 [한전]이다.







[후한서-부여전]을 보면 전한의 현토성(고구려의 옛 선조들의 땅인 고리국)으로 부터 1천리 떨어진 부여는 예족의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예족이란 강이나 바다를 생존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 간 우리 해민족으로써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에 이르는 어로-렵 해민족을 의미한다. 수렵생활을 했던 해민족은 맥족이라 기록했다. 고로 예맥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예맥족을 고대 지나문헌에는 숙이라 기록하고 있다. 곧 숙신은 주신,조선이다.



통일 코리아를 갈망하며 제사받기를 원하시는 광개토태왕



장수태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비문에서 태왕릉을 지키는 수묘인들은 만주와 한지역의 예인들과 남한지역의 한인들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광개토태왕께서 먼 훗날 수.당 200만 대군으로도 정벌할 수 없었던 고구려에 열등감을 가진 지나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려는 동북공정의 만행을 내다 보시고,





광개토태왕이 민족의 뿌리로 인식하고 있던 한반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릉을 지킬 것을 명한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선견지명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떤 정신나간 자들은 예인.한인들이 만주와 한반도인들이라는 기본적인 역사인식도 못하고 지나대륙인 사람들인양 착각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 역시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망국적인 민족사관이라 할 것이다.





지나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주장한다면 광개토태왕비문에서 지나인들로 하여금 광개토태왕릉을 지키도록 명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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