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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술 수필] 내가 겪은 현대사

조영술 수필가 | 기사입력 2022/11/08 [08:01]

[조영술 수필] 내가 겪은 현대사

조영술 수필가 | 입력 : 2022/11/08 [08:01]

 

 



내가 겪은 현대사

 

                                                   조 영술

 

진실이 없다.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 정도는 편의성에 따라 사실을 왜곡 또는 묻어 없애는 일이 비일 비재하여 객관적 정당성이 없다. 선이라도 그 수가 적으면 힘이 없고 악도 당을 이루면 그 힘은 세상을 지배한다.

 

1939년에 태어나서 일본 통치하에서도 살아보았다. 애들이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하면 울음을 뚝 그치고 순사를 먼발치에서만 보아도 달아나 숨었다.

 

그 순사는 칼을 차고 다녔으며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쌀을 수탈해가려고 창으로 여기저기 쑤셔대며 곡식을 찾고 쌀밥을 먹는지 밥그릇검사도하였다. 송탄 기름이나 다랫대 껍질 공출을 핑계 삼아 여인들이 물레 품앗이를 하는데 물레를 마구 부수는 것도 보았고 징병에 안 가려 방죽에 빠져죽는다는 소란과 일장기를 들고 전송하는 모습도 보았다.

 

해방이 되자 평화로운 세상을 살게 됐다고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해방의 기쁨도 누릴 겨를이 없이 조선 오백년의 왕정과 일제 36년의 식민통치에서 핍박을 받아서인지 지식인을 포함한 일부의 국민들이 다 같이 잘 먹고 잘살게 해준다는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소위 세포조직을 하며 세력을 키워가니 사회가 시끄러웠다.

 

 

밤에는 높은 산에서는 봉화불이 올라가고 소위 반란군이라 칭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지서를 습격한다든가 군인과 교전한다든가 하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마을에서는 친구 아버지가 경찰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옆집 아저씨가 좌익 활동을 하여 죽임을 당하고 집은 불태워지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때로는 북한에서 김일성장군께서 보내주었다며 책자도 갖다 주는 등 6.25남북전쟁 전에도 남로당의 암약으로 어지러웠다. 특히 높은 산 밑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심했다. 밤이면 밤손님이라 칭하는 반란군이 와서 곡식이나 닭 돼지 같은 가축을 빼앗아 가고 낮에는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하여 경찰에게 시달림을 받는 고달픈 삶을 살기도 했다. 또한 애국지사들의 암살소식은 출세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란 생각을 가슴에 새겼다.

 

1950625일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5 년 동안 전쟁을 준비하여 남한에는 한 대도 없는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서 밀고 내려왔다. 소위 남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북침이라 주장하는데 3일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 믿고 주민에게 일리지 않아 모르고 있었는데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원인을 제공한 남침은 제쳐두고 북침이라고 알려졌지 않나 싶다. (3일이면 민중봉기가 일어 끝난다고 한 박헌영은 후에 북한으로 달아났지만 이중간첩으로 몰려 북한에서 처형당했다고 들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3일 만에 서울도 함락됐다. 당시 남로당 당수인 박현영이 서울을 함락하면 민중봉기가 일어 바로 통일이 될 거라 했는데 봉기는 안 일어나고 유엔군이 들어오는 시간을 벌게 해준 꼴이 되었다. 뉴엔 안전보장상임이사국인 소련(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인 지금의 중국은 상임이사국이 아니고 지금의 타이완인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불참이 반대인 것으로 착각하고 회의의 불참으로 기권이 된 것이 다행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공산치하에 들어간 우리 마을에선 소위 의용군이라는 이름하에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어갔다. 세 사람이 갔는데 6촌 형님도 가게 되었다.

 

가기 싫어하는 형을 당숙모가 도시락을 쥐어주며 보낼 때 도시락을 안 받으려고 손을 뒤로 빼던 형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난다. 그 후 당숙모는 형 생각에 자살을 시도한 의심스러운 일도 있었다.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여러 장의 긴 주문을 한 번에 100 번씩 읽는 일을 나에게 두 번이나 시켰다.

 

수십 년의 세월은 가고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가 있었다. 친구의 형도 의용군으로 갔는데 북한에 살아 있어서 만날 기쁨에 젖어있던 친구는 갑자기 세상을 떠서 친구부인이 만나고 왔다.

6촌 형도 살아서 북한에서 결혼도하고 애들도 있는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아마 당숙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정성과 주문을 읽어 기도한 덕이라 하실 듯싶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조카들은 어찌 사는지 궁금하다.

 

전쟁은 길어지고 남한에서도 징병이 시작되어 큰 형님도 군대를 가게 되어 친 형제가 남과 북에서 총을 쏘며 싸운 꼴이 됐다. 이 비극을 누가 만들었는가? 누구를 위해서.......

 

어려서는 일제의 핍박과 착취를 보았고 해방 후의 좌우사상싸움과 혼란 6.25전쟁과 인민재판 총부리와 대창의 공포 살아남아야 한다는 극한의 굶주림과 가난과의 싸움 여기에 장래에 대한 꿈은 생각만으로도 허황된 사치였다. 소풍 때에도 미국구호물자인 밀가루에 쑥을 쩌 버무린 쑥버무리를 싸가지고 가서 먹었다. 선생님이 이를 보시고 맛있겠다며 선생님 도시락의 반을 나눠 주시어 먹은 쌀밥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 지리산근처 시골학교에서의 선생님 정년퇴임 시 양복 한 벌로 늦은 인사를 치렀다.

 

80평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없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어떤 세상이 어떤 삶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귀천상하가 없는데 누가 누굴 속박하고 지배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자. 정치가나 영웅이란 자들은 정복이라는 구실과 나라를 핑계 삼아 무고한 살인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이러한 세상엔 희망이 없어 석가모니는 사후 극락을,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를, 공자께서는 인을 가르치며 열심히 살라했는지 모르겠다. 나라라는 것을 만들고 법을 만들어 인간을 다스린다면서 착취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열심히 벌어서 나라에 바치고(애국자인 자기의 돈으로 정치하지 당원도 아닌데 당을 위해서 정치인도 아닌데 나라를 위해서 돈을 내란다) 남은 것으로 자식과 허리띠 졸라매고 연명하며 살다가 떠나니 자자손손에게 어찌 눈물이 아니겠는가!

 

김일성장군을 신출귀몰하는 존재로 쇠뇌하다 시피 해놓고 일으킨 전쟁의 후유증은 반세기가 지나도 아물지 않고 남북관계는 긴장감만 지속되지 좋아질 기미도 안 보인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대치상황은 예측불가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4백만이라고도 하고 6백만이라고도 하는 6.25전쟁희생자가 문제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평생 후손까지도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을 누가 보상하고 끝내 줄 수 있냐는 말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정치낭인들의 총성이 지옥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상상을 초월하는 무기를 개발하고 대량살상을 왜 하는가?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이 가장 극악한 생물이 되었다. 진정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냉정하고 진지한 성찰과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가 앞장서는 전쟁, 신의 뜻이라며 공연히 남의 나라의 주민을 희생시키는 전쟁, 종파간의 피흘림, 지구 도처에서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누가 막으며 언제 끝날 것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천애고아처럼 기댈 곳 없어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아 개천에서 용 낳다 할 정도로 꿈을 이루며 흐트러짐 없이 살아왔다.

 

 

황혼의 오늘은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기이한 세상이 돼 옳고 그름의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온 인류의 소망인 자유와 평화를 바라만 보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프로필
시인, 작사가
한국 저작권협회 회원
현) 한국문인협회 국제교류위원
현)플러스코리아타임즈 기자
일간경기 문화체육부장 역임
현)인천일보 연재
현)대산문학 대표
현)대산문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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