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숨은 딸'-1] 딸의 존재를 모르다가 20년 후 만난 아버지감았던 눈 치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만나야 해,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문학=플러스코리아타임즈 리복재] 단편소설 ‘숨은 딸’은 소설가로 등단 후 처음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80년 광주민주항쟁. 전두환일당으로 부터 살아 남은 한 남자의 인생과 그 아픔을, 20년 후 딸을 통해 조명했습니다. 써 내려가다 보니 중편소설이 되었다가 단편소설이 되었다가 지렁이 꿈틀 거리듯, 제각각의 모습이 형상화 됐습니다. 눈물도 나고 짧은 머리털을 쥐어뜯어 보기도 해보았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처녀작인 것을. 동인지로 내다 보니 작가들 서로 일정 분량으로 나누었는데, 읽지 못한 지인들이 보내 달라고 하는데 드릴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단편소설 ‘숨은 딸’을 원작에 가깝게 기사로 연재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부디 혹독한 형벌은 면하게 해 주시기를 부탁도 해봅니다. 2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고맙습니다. <숨은 딸> 제1편 정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창경궁은 형형색색의 곱게 물들은 단풍들이 여민 바람에 팔랑 대고 있는 늦가을이었던 것이 한 달 사이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거기다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병진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종묘를 거쳐 도착한 창경궁 안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쓱 둘려 보았다. 비록 땅이 얼어붙었지만 아늑하고 포근했다. 오늘 오후 6시라, 그 아가씨와 약속한 시간이었다. 아직 약속한 시간은 20여분이 남아 있었다. 그보다 그 아가씨가 정말 나타날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병진은 마흔이 넘은 나이답지 않게 스무살 정도의 아가씨와 만난다는 기분에 많이 설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가씨가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남은 약속 시간을 다시 보면서 얼마 전에 이곳에서 만났던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 달 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회사의 엘리베이터지만 탈 때마다 내리누르는 중압감과 가라앉듯 졸아드는 압박감이 병진은 싫었다. 8층의 높이는 웬만하면 계단을 이용할 만큼 그는 엘리베이터에 거부감을 느꼈다. 스카이라운지 복도로 나온 그는 두텁고 투명한 유리문 앞으로 다가섰다. 소리 없이 자동으로 열린 문으로 들어서서 창가 쪽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오후4시쯤 도착할 것이다. 전화를 끊기 전부터 가벼운 흥분에 들떠있던 아내가 3시쯤 집을 나섰다면 번잡한 교통체증으로 얼마간 시간이 지체될지도 모른다. 병진은 잠시라도 무료함을 잊으려 주위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 순간 붙박아놓은 듯 그의 시선이 놀라 움직임을 멈추고 한곳에 고정되었다. 정면 테이블 앞,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예뻤다. “아!~” 소리 없는 탄성이 그의 뿌리 깊은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입가로 흘러나왔다. 8년 전 여름날이었다. 병진은 자신의 딸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한 중학생을 보았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친구들과 발랄하게 말장난을 주고받던 소녀는 뚫어지게 응시하는 병진의 시선을 의식하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소녀의 눈빛이 그의 마음을 불같이 사로잡았다. ‘미선과 꼭 닮은 소녀가 있었다니······’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선의 여고시절 때를 떠올렸다. 너무나 꼭 빼닮은 그 여학생. 그 미선이가 20년 후의 또 다른 낯선 여인의 시선과 마주쳐 가슴 한곳에 타인의 눈빛을 담아두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미선을 향해 맴돌던 그리움이 잔잔한 수면 아래로 잠겨내리긴 하였지만, 창백하게 빛나던 의문의 눈빛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의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다 두었던 것이 이렇게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암울한 침묵에 잠겨있는 아가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갓 소녀티를 벗은 듯한 새내기 여대생 같았다. 무엇인가 자꾸만 말아 갈무리하듯 안으로 휘감아 처져 내린 양어깨 위로 병진의 시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뚫어져라 바라보는, 와 닿은 그의 시선의 일부분을 의식했을까, 일어나다 우연히 마주쳤을까, 무표정한 아가씨의 시선이 그에게로 짧게 머물듯 스쳐지나갔다. 아! 처음 그녀를 발견했을 때, 소리 없이 터져 나왔던 놀라움과는 또 다른 낮은 탄성이 목구멍을 타고 길게 흘러나왔다. 아가씨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서 카운터로 향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그늘진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 그 맑고 고운 그녀의 눈물이 빛으로 날아와 그의 가슴에 사정없이 꽂혀 멍울멍울 아리게 파고들었다. ‘어떻게 미선과 닮을 수가 있을까·····.’ 그처럼 우연하게 마주쳤던 짧은 시선이 그토록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어 그의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흩어지지 않은 채 잔재로 남아 맴돌았던 의문은 그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속에 잠겨있던 깊은 수심, 반짝이는 눈빛 속에 가려져 미쳐 찾아 볼수 없었던 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울한 그림자 때문이 아니었을까. 병진은 감았던 눈을 치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만나야 해,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불쑥 치밀어 오르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순간적이고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그녀를 붙잡아야만 한다는 생각 이외엔 다른 무엇이 떠오를 수 없도록 앞서 치닫는 감정. 다시는 우연히 만나지 못하리란 불안한 안타까움이 그를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튕겨 일어나게 했다. 그가 서둘러 라운지를 나왔지만 이미 엘리베이터가 그녀를 삼켜버린 뒤였다. 가슴이 철렁 절망처럼 내려앉았다. 성급한 마음에 허둥거리며 비상계단으로 다가가 도어를 비틀었다. 갇혀있던 서늘한 찬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문 안으로 확 끼쳐들었다. 계단을 뛰어내렸다. 투박하고 둔탁한 구둣발소리가 요란하게 퉁탕거리며 숨 가쁘게 울렸다. 1층 비상계단 입구에 도착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로비로 나와 현관 출입문 쪽으로 빠르게 시선을 던졌다. 출입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의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안도의 한숨을 거친 호흡으로 몰아쉬며 그는 그녀를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땅바닥을 내디디는 그녀의 발걸음이 힘없이 처져 내린 어깨의 버거움 때문일까, 왠지 무디고 힘겨워 보였다. 지하도로 내려가다 멈칫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천천히 내려갔다. 그녀의 하체와 상체가 지하도로 사라질 쯤 그는 지하계단 입구에 다다랐다. 그녀는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 그녀를 잡고 싶은 성급함이 물밀듯 치밀었지만 계단을 내려서는 두 발이 감정을 억누르며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가 맞은편 지상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에 첫발을 디디며 그녀를 찾아 시선을 들었을 때, 중간쯤 올라선 그녀 앞으로 무엇인가 나풀거렸다.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우중충한 회색빛 그림자가 낯설게 하늘을 뒤덮더니 고운 첫눈을 선사하려고 그처럼 모진 애를 썼는가보다. 계단을 밟고 올라와 밖으로 내려섰다. 제법 그럴싸한 눈발이 휘날렸다. 그녀는 종묘를 지나 창경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콘크리트 보도 불럭이 깔린 좌측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어깨 위로 포근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벌거숭이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벤치에 앉았다. 병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날 일념 하나로 정신없이 무작정 뒤따라 나온 그였지만 다가설 마땅한 이유나 명분이 없었다. 나이 사십이 넘어 하릴없는 불한당으로 매도당할지 모를 무모한 시도를 행해야만 할까. 병진은 깊게 숨을 들이 내 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보았다. 이대로 돌아서 물러날 수는 없다고. 그는 초점 잃은 멍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낮은 헛기침 소리를 내보았다. 늘어진 시선을 끌어당겨 흠칫 그를 보던 그녀의 고개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 그가 어렵게 첫 말문을 열어보지만 안으로 갈무리된 뒷말이 더는 이어져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힐끗 그를 보았다. 병진은 얼굴이 화끈 닳아 올랐다. 그 눈빛 속에 다분히 의식적인 경계의 빛이 그가 다가선 거리 안에 팽팽하게 느껴졌다.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싶은 맘을 한편으로 밀쳐놓았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어색하고 무뚝뚝하지만 용기를 내 그가 말을 이었다. 방금 전, 그녀의 시선 속에 가득했던 팽팽한 경계의 눈빛이 그 혼자만의 당황 속에서 생겨난 죄의식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낯선 사내의 접근에 몸을 움추리며 경계의 시선을 높여야 마땅하거늘 이상하리 만큼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냉랭한 무반응, 무시하듯 떨쳐 내리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접근할 수 없도록 벽을 쌓는 무거운 거리감을 묘하게 만들었다. 무언의 위압감에 억눌린 그가 움직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떨군 그녀의 귓볼이 파리하게 추위에 떨고 있었다. "혹시, 절."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초점어린 무표정한 아가씨의 시선이었다. 병진은 말할 수 없는 두터운 벽에 부딪힌 황당한 암울함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안타까움으로 온통 가득했던 그리움이, 맑고 투명했던 깊이를 알 수 없었던 그 고요한 눈빛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낯선 타인의 시선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동안 병진 그 자신이 치우친 감상에 젖어 부풀려 포장한 감정의 부피에 억눌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 절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 자신이 가꾸어온 감정의 울타리와 지금 그녀가 처한 감정의 덩어리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없는 동떨어진, 엄연히 다른 부질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그가 입을 열었다. "아뇨, 전혀." 그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입술을 들썩였다. “저를 따라온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유라기보다, 나에게 잊지 못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아가씨가 꼭 그 여인을 너무 닮아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따라 오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하시다면 저는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그 아가씨는 일어나 왔던 길을 걸어 나갔다. 혼자 가슴 가득히 부풀려 올렸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이라는 두터운 벽에 부딪쳐 부서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으면서도 부딪쳐야만 하는 그의 무모함이 여지없이 깨어지며 허전하게 꺼져 내렸다. “저어, 차라도 나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는 병진의 목소리를 듣고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섰다. “오늘은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으시면, 한 달 후인 12월 8일 이맘때인 오후 6시에 이 자리로 나오시구요.” 그렇게 해서 오늘 이곳에 나오게 되었다. 저녁 6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병진은 그 아가씨가 정말 나올까하며 그 아가씨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다. '속았다. 바람 맞았다. 바보 같고 쪽팔리다.' 그는 그녀를 믿고 여기까지 나온 자신을 원망하며 그가 자신도 모르게 허둥댄 말을 내 뱉고 일어섰을 때, 저만치 다가오는 긴 챙모자를 쓴 아담한 한 여인을 발견했다 그의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며 낮은 신음소리가 흘렀다. 어렴풋이 그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닮은 분위기. 점차 여인이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의 여지없는 20년 전 헤어진 미선이었다. 그녀가 분명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 정말 살아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정미선~' 병진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치밀어 오르는 감당 못할 감정을 어금니로 꾹 눌러 깨물었다.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윤기가 흐르던 긴 검은머리에 수채화처럼 티 없이 맑았던 예전의 그 모습과는 달리 귀밑 커트에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 산뜻한 모습이었다. 피부는 여전히 깨끗해 보였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늪처럼 헤어나지 못하던 그녀의 이슬 맺힌 눈동자 역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선이?” 희고 둥근 칼라에 잿빛 원피스가 그녀의 잘록한 허리로 세련된 곡선을 연출해냈다. 여인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기억의 파편 조각이 더 잘게 참담함으로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가슴께 명치를 톡톡 찌르던 전율이 점차 거세게 그를 참지 못할 고통 속으로 몰아붙였다. 누렇게 퇴색되어버렸을 색 바랜 추억의 그림자,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 속에 조각조각 흩어져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분간하기 조차 어려운 기억의 파편들이 어설프게 끼워 맞추어지며 어슴푸레 떠올랐다. “병진씨?” “으응.” 그는 추위에 전신이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거친 숨결을 토해내다 헐레벌떡 다가서는 그녀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 또한 병진의 가슴에 토라진 얼굴을 묻고 설디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의식을 찾은 병진은 자신의 가슴에 묻고 흐느끼는 미선을 발견하고 숨결을 고를 겨를도 없이 그녀를 보듬어 안고 등을 다독거려주었다. 병진과 미선은 앞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 좋은 찻집을 찾아 스며들듯 들어갔다. 그리고 과거를 연상시키며 창가에 앉아 겨울이 다가오는 삭막한 삭풍을 바라보며 왠지 쓸쓸하다며 슬픈 눈물을 일렁거리기도 했었다. 때로는 바람 부는 추운 겨울 바다를 거닐며 그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웃음 짓던 그녀였다. “여긴 어떻게 오게 된거야?” 그가 미선에게 물었다. “그냥 바람 쏘이려 나왔는데…… 병진씬 어떻게, 누굴 기다렸던 거야?” “기다렸던 것이 아니고, 나도 그냥.” 병진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마음은 약속한 그 아가씨를 떠올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있으면 나는 상관하지 말고 가봐.” “없어. 그렇다 해도 사랑했던 너를 20년 만에 만났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어.” “······” 침묵은 시시각각, 순간적으로 파래졌다 빨개졌다 변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동시에 무언으로 찻집 창가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기를 10여분, 미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하면 좋겠는데.” 그와 그녀는 가까운 선술집을 찾았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홀안은 조용했다.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술을 주문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병진이 좋아하는 민속주가 나왔다. 그녀는 병진에게 술을 권하며 침묵을 깼다. 언젠가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주던 그녀의 심장소리. 그토록 처절하게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갈망했던 그녀가 몸부림치며 파헤치던 아물지 못할 상처들, 진실이 어쩌면 바람에 할퀸 흔적 없는 흔적에 불과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며 똬리를 틀던 그들 두 사람만의 텃밭 위에 새로이 짙푸른 초원을 일구어 아픔만 안겨주던 과거였다. 그 과거들이 퇴색해버린 향기를 예전에 벌써 흔적 없이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과거의 아픈 상처가 빛바래 초라하게 뒹구는 추억이라는 멍울로 남아있다면,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든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미선은 무너져 내리는 깊은 한숨을 허탈하게 내쉬며 병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였던가. [이어서 '숨은 딸' 2편이 연재 됩니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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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별자리=笑山 李福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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