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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통사(69), 만국평화회의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7/11/29 [12:55]

대한정통사(69), 만국평화회의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7/11/29 [12:55]
▲ 헤이그 특사의 할동을 알리는 1907년 7월 5일자 만국평화회의보     ©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안재세 칼럼]  헤이그에 도착한 밀사들은 곧 중심가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의 옥상에 태극기를 꽂은 후 러시아전권대사 넬리도프 백작을 찾아 가서 밀사들을 힘껏 도와주라는 내용이 담긴 러시아황제의 친서와 러시아외무대신의 소개장을 전달했다. 친서와 소개장을 본 넬리도프 백작은 협조를 약속하면서,

 

“만국평화회의 참석 자격을 주는 통첩을 발행하는 특권은 네델란드 외무대신인 후온뎃스씨가 쥐고 있는데, 현재 귀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간 것으로 되어 있어서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압니다마는 우리 다함께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보기로 합시다.”

 

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밀사들은 을사조약이 협박과 강제에 의한 엉터리조약이며, 황제폐하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모두 그에 불응하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그런 점들을 참고해서 밀사들이 꼭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기를 신신당부하였다.

 

 

 

밀사들의 열렬한 애국심에 감동받은 넬리도프 백작은 후온뎃스를 만나서 밀사들의 요구를 들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후온뎃스는 ‘대한국은 이미 외교권이 없기 때문에 밀사들에게 회의참석의 통첩을 발행하기 어렵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 넬리도프 백작으로부터 그 내용을 전달받은 밀사들은 넬리도프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라도 회의 참석을 관철하기로 하여 직접 후온뎃스를 찾아 가서 일제의 포악성과 그간의 실정 등을 낱낱이 설명하고, 통첩을 발행해 주기를 간곡히 요구하였다. 후온뎃스는 밀사들의 조리에 맞는 설명을 듣고 깊은 동감의 뜻을 표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밝히고, 밀사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알려주면서, 자신은 밀사들에게 가능한 한 협조해주겠다고 의례적인 인사치렛말을 하였다. 사태가 여의치 않을 것임을 눈치 챈 넬리도프 백작은 밀사들에게 친러시아적 성향을 지닌 저명인사로서 ‘국제친선신문’의 기자이기도 한 윌리암 토마스데트를 소개해 주고 함께 노력해 보기로 했다.

 

이 무렵 마침 가족들과 함께 5월 8일에 서울을 떠나 시베리아를 거쳐서 헤이그에 온 헐버트도 밀사들과 합류하여 국제협회와 국제신문을 통해서 대한국의 실정과 밀사들의 문제에 대해서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6월 15일에 마침내 45개국 247명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선서식과 개회사가 끝난 후 루즈벨트 대통령의 격려사가 이어졌고, 의장에는 넬리도프 백작이 선정되었다. 밀사들은 모든 일이 잘되어 갈 것으로 기대하며 환호하였다. 밀사들은 러시아 대표와 미국 대표에게 연락해서 광무황제께서 만국평화회의에 보내시는 친서와 밀사들의 공고사(拱告詞)를 제출하기로 했다. 친서와 공고사를 받은 넬리도프 의장은 황제와 밀사들의 열렬한 애국심에 다시 한 번 감동하여, 프랑스와 러시아의 유력한 신문들과 윌리암의 국제신문 등을 총동원해서 그 내용을 소개하며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러시아신문인 노우오레미야는,

 

“‥대한국은 독립국으로서 물론 이 평화회의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일본은 대한국의 보호자로서 대한국의 자주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대한국이 이 평화회의에 발언권이 있음을 찬성한다‥”

 

라는 내용의 우호적인 기사를 게재했으며, 윌리암 스테드(william T. Stead)가 주관하는 ‘꾸리에 드 라 꽁페랑스(Courrier de la Conferance;평화회의보’)는 6월 30일에,

 

“대한인 세 명이 27일부로 평화회의 위원들에게 보낸 공고사에 보면 그들은 만국평화회의에 특파위원으로 대한국황제가 파견하였음을 기록하였고, 다음으로는 일본이 대한국 황제의 의사를 무시하고 병력으로써 대한국의 법규와 관례들을 유린하였고 그 외교권을 탈취하였다. 이 결과 그 세 사람은 대한국황제로부터 파견된 특파위원임에도 불구하고 평화회의에 참여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회의의 사명인 ‘약자를 구제하고 위험을 도와준다’는 정신을 발휘하여 그 사신들로 하여금 만국평화회의에 참여케 하여 일본의 비행을 고소하게 하라. 대한국 밀사 세명의 이름은 이 상설·이 준·이 위종이다.”

 

라고 보도하였다. 그 외 다른 신문들도 대체로 비슷한 내용으로 보도하였다. 일제의 엉터리 선전에 의하여 대한국이 ‘자진해서’ 일제의 보호를 요청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차츰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대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서 동정하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대한국에서 밀사가 파견되어 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일제는 크게 경악하여 밀사들의 임무를 방해하려고 온갖 모략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였다. 일제는 네델란드 주재 공사 축도(築都:쓰쿠또)로 하여금 밀사들의 회의참석을 무조건 막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서울에 있는 통감 이등에게도 급전을 띄워서 대한국 황제에게 강경하게 항의를 하도록 연락을 취했다. 이에 축도를 비롯한 일제의 첨병들은 갖은 모략으로 밀사들의 회의참가를 방해하였고, 그에 따라서 막다른 입장에 처한 밀사들은 여러 열강국 대표들과의 개별접촉을 통해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통박하고 대한국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게 해 주도록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등은 거미줄같이 쳐놓은 밀탐꾼들의 보고를 통해서 헐버트가 대한국을 떠난 지 며칠 후에 이미 광무황제를 알현하고는 ‘황제께서 만국평화회의 참가를 위한 자금조달을 헐버트에게 의뢰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대든 적이 있는 만큼, 밀사들이 파견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내심으로는 그에 대응한 음흉한 계책을 꾸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동정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이 준은 ‘대한국 사정(事情)’이라는 책자를 발간해서 여론 환기에 힘을 쏟았고, 이 상설은 6월 27일에 만국평화회의에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제출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대표자격으로 대한국 황제폐하에 의해 특파된 전 의정부참찬 이 상설, 전 평리원 예심판사 이 준, 성 페테르부르크 주재 대한국 공사관의 전 서기관 이 위종은 우리나라의 독립이 여러 강국에 의해 (서)1884년에 보장되고 승인되었음을 각국 대표 여러분에게 알려드림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립은 여러분들의 나라에서 지금까지 인정해 왔습니다.

 

4240년(서1905) 11월 17일, 이 상설은 당시 의정부참찬으로 있었던 까닭에 일본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우리나라와 여러분들의 나라와의 사이에 당시까지 유지되고 있던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우리에게 강제로 단절케 한 일본의 음모를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인이 사용한 방법을 각국 대표 제위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인권과 국법을 침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명확을 기하기 위하여 본인은 우리들의 규탄 이유를 아래 3가지 경우로 분리하겠습니다.

 

1. 일본인들은 황제폐하의 재가없이 한일협상조약(을사오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2.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일본인들은 대한국의 조정에 대하여 무력을 행사하였습니다.

3. 일본인들은 모든 국법과 관례를 무시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이상 열거한 3가지 사실이 국제관례를 침해하였는지의 여부는 대표 여러분들의 공정한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간교가 우리나라와 우방국가 사이에 지금까지 존재하는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단절케 하고, 항구적인 극동평화를 위협하게 되는 것을 우리들이 독립국가로서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목적으로 한 황제폐하의 사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이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을 박탈당한 데 대하여 우리들은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출발하던 날까지 일본인들이 행사한 모든 방법과 범죄행위의 개요를 본 공한에 별첨하오니, 우리나라에 대하여 지극히 중대한 본 문제에 여러분들의 호의적인 배려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보충자료가 필요하시거나 또한 우리들이 대한국 황제폐하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자 한다면 우리들에게 이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대표 여러분들에게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영광을 갖겠습니다.

 

대한국과 우방국들과의 외교관계 단절은 대한국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나라의 권리를 침해한 결과라는 점에 비추어, 우리들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인들의 음모를 폭로하며 우리나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대표 여러분들의 호의적인 중재를 간청하면서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각국 대표 여러분! 우리들은 미리 감사드리며 높은 경의를 표합니다.”

(별첨 : 일제의 죄악상)

 

이처럼 밀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여론을 환기시키기에 노력한 결과 각국 대표들 중에서도 대한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상황이 대한국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감지한 넬리도프 백작은 솔선해서 미국전권 쇼트를 찾아가 만나서 협력을 요청했는데, 이미 헐버트를 통해서 대한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쇼트는 밀사들의 회의참석에 대해서 겉으로나마 찬동의 뜻을 나타냈다. 이에 세 밀사는 우선 쇼트를 만나서 광무황제의 위임장을 내어 보이며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받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 밤에는 미국과 러시아 두 전권의 주선으로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이태리 등이 중심이 된 각국 대표들이 만찬회를 열고 세 밀사를 소개하며 환담하였으며, 서양 각 국어에 능한 이 위종이 일어나서 불어로 인삿말을 하고, 역시 유창한 불어로 일장 연설을 하여 대한국의 현실을 알림으로써 각국 대표들은 더욱 밀사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문에는 각국 대표들이 밀사들을 초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어주는 등 분위기가 유리하게 고조되어 가면서, 네델란드 외무대신인 프레쓰는 각국 대표들의 권고를 받아 들여서 드디어 밀사들에게 회의참석을 허가한다는 통첩을 보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놀란 일제는 국제적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밀사들의 행동을 봉쇄할 양으로 더욱 간교한 농간들을 총동원하였다.

 

7월 1일, 만국평화회의 개최 2주일 만에 비로소 밀사들이 회의에 참석하게 되자 회의장내에는 태극기가 걸렸고, 의장인 넬리도프 백작이 환영의 뜻을 표하자 각국 대표들도 함께 환영하였다. 그러나 일제 대표만은 밀사들의 참석이 위법이라고 항의문을 제출하였는데, 그 낌새를 눈치 챈 넬리도프 의장은 오히려 선수를 쳐서 ‘각국 대표들은 밀사들의 참석을 충심으로 환영한다’고 하면서 회의를 진행시켰다. 일제대표들이 ‘대한국의 외교권은 이미 일본에게 이양되었으므로 밀사들의 참석은 불법이며 따라서 퇴장시켜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자 밀사들도 그에 맞서서 일제의 불법무도함을 규탄하였고, 이에 회의장은 두 나라 대표들의 주장을 놓고 지지와 반대를 거듭하였다.

일제대표들은 밀사들의 친임장까지도 위조라고 억지를 부렸으나 의장이 그에 반박하여 위조가 아닌 것을 이미 확인하였음을 발표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대한국황제폐하에게 이 일에 대해서 전보로 조회하여 확정해야 한다’고 어거지를 썼다. 회의장의 분위기는 그러한 일제의 주장까지 물리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이 준은 각국 대표들을 향하여,

 

“그렇다면 조회해 보는 것까지는 좋으나,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저 일본의 압박과 견제가 심해서 어떤 답전이 올는 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부끄럽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황제폐하의 자유까지도 일본관헌들에 의하여 속박당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밀서를 받들고 오게 된 것이라는 점만은 각국 대표들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하고 대표들의 이해를 촉구했다. 그리하여 넬리도프 의장 명의로 대한국에 전보를 쳐서 사실여부를 확인토록 하는 한편, 이 위종은 유창하게 그간의 대한국사정과 일제의 악랄함을 폭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이 상설이 다시 일제의 죄악상을 폭로하는 등 회의에 참석한 밀사들의 활동은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밀사들은 일제의 간악한 협박과 속임수에 의하여 엉뚱한 답전이 올 것에도 대비하여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의논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삼단계 작전을 세웠다.

 

1. 이 상설은 전임 주영공사 민 영돈및 윤 진우와 프랑스신문인 ‘평화회의시보’를 이용해서 공개장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2. 이 준은 평화회의 석상에서 열변으로 토로하며,

3. 이 위종은 국제협회에서 유창한 불어로 공개연설을 한다.

 

이 세가지 계획안 중에서 7월 14일에는 먼저 이 위종이 국제협회에서 공개연설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갓 20세인 이 위종은 유창한 불어로 세시간 동안이나 열렬한 애국적 연설을 하여 참석한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이 위종의 열변에 의하여 보다 자세한 대한국의 사정을 알게 된 청중들은 모두 분개하며 밀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동정결의안을 국제협회 명의로 채택하고 만장일치로 가결하였으므로 밀사들은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역 수만리의 헤이그에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어 가고 있던 것과는 달리 넬리도프 의장으로부터 타전되어 온 전보를 광무황제가 아닌 매국노친일파들이 먼저 접수하게 된 대한국의 사정은 대단히 험악했다. 이미 일제외무대신으로부터 밀사들의 활동에 대하여 들어서 알고 있던 이등은 일대 모략을 꾸며대기 시작했다. 이등은 먼저 이완용을 불러서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완용을 시켜 광무황제를 윽박지르게 했던 것이다. 이등의 지시를 받은 이완용은 곧 전보를 들고 궁궐로 들어가서 황제에게 올리며 놀랜 표정으로 대들었다.

 

“폐하! 이게 어인 일이십니까?”

 

매국노 이완용이 들이 대는 전보를 받아 본 황제는 오히려 밀사들의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내심 흡족했다. 그리고 이완용이 ‘밀사들을 파견하신 것이 사실인가’고 묻자,

 

“그렇소.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었소? 밀사들이 아주 잘 하고 있는 모양이구려.”

 

하며 대견해 했다. 그러자 이완용은 황제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따졌다. 그에 대하여 황제는 태연하게,

 

“나의 생각이 그르단 말이오? 아마 경의 생각이 그른 모양이요. 지금 밀사들은 답전을 고대하고 있을 터이니 평화회의 의장에게 ‘짐이 확실히 밀사들을 보내었고 을사조약은 일본놈의 협박으로 작성된 것이다’라고 평화회의 의장에게 답전을 치기 바라오.”

 

하고 지엄한 어명을 내렸다. 그러나 황제보다도 이등의 명령을 더 잘 알아 모시던 매국노 이완용은 뻔뻔스럽게도 감히 어명을 황제폐하의 면전에서 거역하고, ‘잘못하다가는 일본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오히려 광무황제를 위협하였다. 그러자 진노한 황제는,

 

“경은 국가대사를 말할 자격이 없으니 두말 말고 짐의 뜻대로 답전을 치도록 하오!”

 

하고 단호하게 명했다. 할 수 없이 물러나온 이완용은 송병준과 임선준등의 친일매국노들과 대책을 논의하고는 이등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제 풀에 화가 잔뜩 난 간적 이등은 무례하게도 칼을 찬 채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입궐하여 이완용과 함께 알현을 강청했으나, 황제는 ‘병이 있어서 못 만나겠다’는 뜻을 알렸다. 그러자 악착같은 이등은 안하무인격으로,

 

“방금까지 총리대신과 만나셨는데 이 외신(外臣:외국신하)을 천대하심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현을 촉구하며 다그치니, 궁내부대신 이 재극은 이완용과 함께 어전에 들어가서 ‘사태가 심상치않으니 잠깐만 만나주십사’고 애원하였다. 황제는 괘씸하게 여기면서도 할 수 없이 이등을 들어오라 했다. 어전에 들어 온 이등은 어조만은 간곡하게 답전을 취소해달라고 하며 황제의 심사를 괴롭혔다. 그러나 황제는,

 

“짐은 남에게 속임을 받는 일이 있을지라도 짐의 사랑하는 신하는 속일 수 없소. 사실을 어떻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겠소.”

 

하고 강경한 태도를 풀지 않았다. 그러자 난감해진 이등은 태도를 돌변하여,

 

“폐하께서 그처럼 강경하신 태도로 나오신다면 일본의 백만 육해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노골적인 협박을 가했다. 그러나 황제는 이에 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진노하며,

 

“일본 황제는 복이 많아서 저런 강신이 있고, 짐은 복이 없어서 약한 신하들만 있고나! 이등은 들으라! 경의 언사는 무례하고 무리하고 만부당한 말이로다! 경의 말 같을진대 그러면 천만의 육해군이 있는 나라가 있으리니 경의 나라는 어찌 될 것인가?”

 

하고 크게 꾸짖었다. 황제가 뜻밖의 강한 면모를 보이는 데 당황한 이등이 머뭇거리는 데, 이번에는 매국노 송병준이 칼을 빼어 들고 어전으로 들어 와서,

 

“폐하, 나라와 민족은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폐하 혼자만 사시려하십니까? 속히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하고 말도 안되는 뻔뻔스런 수작을 늘어 놓으며 감히 황제를 협박하였으며 이완용도 그 말을 거들었다. 황제는 역적배들의 하극상 행위에 기가 막히는 한편 더욱 더 진노하여,

 

“이것들이 무슨 짓이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짐은 모르노라. 짐의 마음은 조금도 변할 수 없다. 경등은 신하로서 어찌 그리 도리를 모르는가? 짐에게 그렇게 윽박지를진대 짐에게 물어 무엇할 것이냐? 경등은 이등과 같이 마음대로 할테면 하라!”

 

하고는 더이상 역겨운 꼴들을 보기도 싫어서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매국노들은 황제가 하도 기가 막혀서 내뱉은 그 마지막 한마디를 천하에 없는 칙명을 받은 것처럼, 황제가 이등의 간청을 들어 준 양 꾸며서 각의(閣議)에 공포하고는, 곧 넬리도프 의장에게 ‘짐은 특파위원을 밀파한 사실이 없다. 그리고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된 한일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라는 내용의 엉터리 칙명을 전보로 보내었던 것이다.

 

어차피 통신기관 자체가 일제의 수중에 장악되고 있었으므로 황제 혼자만의 저항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으나, 음흉한 일제는 곧 이어서 목숨을 걸고 강경하게 저항하는 광무황제를 퇴위시키려는 또 다른 음모에 착수했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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