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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7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6

제46대 보을(普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05 [22:14]

[홍익인간 7만년-17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6

제46대 보을(普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05 [22:14]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타임즈 천선태백] 서기전341년 경진년(庚辰年) 12월 번조선왕(番朝鮮王) 해인(解仁)이 연(燕)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니 오가(五加)가 다투어 일어났다.

 

[번조선왕 해인(解仁)이 연(燕)나라 자객에게 시해당하다]

 

해인은 번조선의 제68대 왕이며, 일명 산한(山韓)이라고도 한다.

 

연나라가 자객을 보내어 번조선왕 해인을 시해한 것인데, 이에 번조선의 오가들이 번조선왕이 되기 위하여 다투어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인의 아들 수한(水韓)이 서기전340년에 제69대 번조선왕이 되었다.

 

[연나라의 기습과 단군조선의 역습]

 

서기전339년 임오년(壬午年)에 연(燕)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 와서 안촌홀(安寸忽)을 공격하여 노략질을 하고 또 험독(險瀆)에도 들어오니, 수유 사람 기후가 자제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진조선과 번조선의 병력과 함께 협격하여 이를 대파하고, 또 한쪽으로 군사를 나누어 파견하여 계성의 남쪽에서도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므로 공자(公子)를 인질(人質)로 삼았다.

 

배도(倍道)는 서기전365년에도 요서(遼西)지역을 함락시키고 운장(雲障)까지 기습한 사실이 있다. 이때 번조선의 상장 우문언이 명을 받아 방어하였으며, 진조선과 마조선에서 군사를 보내어 복병작전으로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격퇴하고 요서의 모든 성을 수복하였던 것이다.

 

서기전339년에 연(燕)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寸忽)과 험독(險瀆)을 공격하여 들어왔는데, 안촌홀은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으로서 단군조선의 번한(番韓) 요중(遼中) 12성(城) 중 하나인 탕지(湯池) 지역이 된다. 안촌홀(安寸忽)은 “안 말 고을”이며 안시성은 “안 벌 재”로서 안시성은 안촌홀에 축조한 성(城)이 되는 것이다. 탕지 또는 안촌홀, 안시성은 패수(浿水)가 되는 지금의 난하(灤河)의 바로 서쪽으로 중류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한편, 험독(險瀆)은 당시 번조선(番朝鮮)의 수도로서 패수(浿水)의 동쪽에 위치하였는데, 번한의 요중(遼中) 12성의 하나로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성이 되며, 단군조선 초기에 번한의 수도로서 동경(東京)이 된다.

 

번한, 번조선에는 5경이 있었는데 이를 오덕지(五德地)라 하며, 동경(東京)은 험독(險瀆), 서경(西京)은 한성(汗城), 남경(南京)은 낭야성(琅耶城, 可汗城), 북경(北京)은 탕지(湯池), 중경(中京)은 개평(蓋平)이 된다. 개평을 안덕향(安德鄕)이라고도 하고 탕지를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고도 한다.

 

서기전339년 연나라의 침입 때 수유(須臾) 사람 기후(箕詡)가 자제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는데, 기후는 번조선의 읍차(邑借)이며, 이후 군사력을 기반으로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왕이 된다. 기자(箕子)의 후손을 수유족(須臾族)이라 하는데, 기자의 이름이 서여(胥餘)로서 수유(須臾)라는 말과 유사한 바, 서여를 수유라고 부른 것이 될 것이다.

 

계성(薊城)은 연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데, 서기전339년 당시 연나라의 수도는 북경의 서남쪽이 되는 곳으로서 지금의 탁수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읍차(邑借) 기후(箕詡)의 군사와 진조선과 번조선의 군사가 협공으로 연(燕)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한편으로 군사를 나누어 연나라의 수도인 계성의 남쪽까지 가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하려 하자, 연(燕)나라가 겁을 먹고 화해를 청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자(公子)를 번조선에 인질(人質)로 주었는데, 여기 공자(公子)는 후대 연(燕)나라 장수가 되어 번조선을 침략함으로써 28년간 인질로 잡힌 데 대한 복수를 한 진개(秦開)가 분명한 것이 된다.

 

[백두산 천지 물이 넘치다]

 

서기전338년 계미년(癸未年)에 백두산(白頭山)이 밤에 울고 천지(天池)의 물이 넘쳤다.

 

이때 아마도 백두산이 폭발하기 직전에 마그마가 끓어 오르는 상황이었던 것이 되며, 마그마가 천지에 분출되어 물이 끓어 오르면서 물이 밖으로 넘쳐 흐른 것이 된다.

 

[황충(蝗蟲)과 흉년]

 

서기전327년 갑오년(甲午年)에 황충(蝗蟲)이 밭곡식을 다 먹어 버렸다.

 

황충은 메뚜기의 일종으로 밭곡식을 절단냈던 것이 되는데, 당시 벼를 논농사로 지었는지 밭농사로 지었는지 불명하나, 이양법(모내기)이 시행되기 이전이라고 보면 밭농사로 벼농사를 지은 것이 될 것인 바, 황충이 먹어 치운 것은 벼와 그 외 곡식이 될 것이다.

 

[읍차(邑借) 기후(箕侯)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다]

 

서기전323년 무술년(戊戌年) 정월에 번조선왕 수한(水韓)이 죽었는데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이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군령을 대행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는데, 이에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이때 연(燕)나라가 왕(王)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였으므로, 번한성에서 군령을 대행하던 읍차(邑借) 기후(箕詡)도 병력을 이끌고 험독성(險瀆城)에 입궁(入宮)하여 자칭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윤허(允許)를 구하므로,  보을(普乙) 천왕은 이를 허락하시고 굳게 연나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이때 연나라는 마조선(馬朝鮮)에 사신을 보내와 함께 기후(箕詡)를 치자고 하였으나 마조선왕(馬朝鮮王) 맹남(孟男)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번조선의 읍차 기후(箕詡)가 명을 받고 군령을 대행하던 번한성(番汗城)은 당시 번조선의 수도인 험독(險瀆)이 아니라 서쪽에 있던 번조선 5덕지(五德地)인 5경(京) 중에서 서경(西京)에 해당하며,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인 한성(汗城)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의 한성(汗城)은 고구려의 요서(遼西) 10성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된다.

 

읍차 기후가 번조선왕의 자리를 대신하여 군령을 대행할 때,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축하인사를 하였는데, 이는 연나라가 장차 스스로 왕이라 칭하려 하는 의도에서 같은 처지라고 여기며 축하를 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연나라는 서기전323년에 스스로 왕이라 참칭을 하였으나, 번조선왕이라 자칭한 기후(箕詡)는 보을 천왕께 사후윤허(事後允許)를 받았던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한편, 연나라는 마조선(馬朝鮮)에는 번조선을 치자며 유혹하였는데, 이는 연나라의 번조선 침공을 위한 전략전술에서 나온 것이 된다.

 

[주(周)나라 제후국들의 칭왕(稱王) -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는 서기전334년에 선왕(宣王)이 왕을 칭하였고, 진(秦)나라는 서기전324년에 혜문왕(惠文王)이 왕을 칭하였으며, 연(燕)나라는 서기전323년에 이왕(易王)이 왕을 칭하였고, 한(韓)나라는 연나라와 같은 해에 선혜왕(宣惠王)이 왕을 칭하였으며, 위(魏)나라와 조(趙)나라는 서기전320년경 위(魏)의 애왕(哀王)과 조(趙)의 무령왕(武寧王)이 각 왕을 칭하였다.

 

한편, 초(楚)나라는 서기전980년경 주(周)나라 목왕(穆王) 시절에 이미 왕을 칭하였다가 서기전741년 웅거(熊渠)가 본격 왕을 칭하였으며, 오(吳)나라는 서기전515년경에 합로왕(闔盧王)이 있어 이때 왕을 칭한 것이 되고, 월(越)나라는 서기전494년에 월왕 구천(勾踐)이 있었다.

 

위에서 왕(王)을 자칭한 연(燕), 제(齊), 진(秦), 한(韓), 위(魏), 조(趙), 초(楚) 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부르는데, 오(吳)나라는 서기전474년에 월(越)나라에 일찍 망하였고, 월(越)나라는 서기전334년에 초(楚)나라에 일찌감치 망하였다.

 

서기전770년부터 서기전403년 이전의 춘추시대에 패자(覇者)가 되었던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송(宋)나라의 양공(襄公), 진(晋)나라의 문공(文公), 진(秦)나라의 목공(穆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의 다섯 나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전국시대 초기에 진(晋)나라가 망하고 한위조(韓魏趙)의 세나라로 나누어졌으며, 송(宋)나라는 서기전286년에 제(齊)나라에 망하였다.

 

전국시대까지 존속한 작은 나라로 정(鄭)나라는 서기전375년에 한(韓)나라에 망하였고, 노(魯)나라는 서기전249년에 초(楚)나라에 망하였고, 위(衛)나라는 서기전240년에 진(秦)나라에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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