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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동강,사진예술에 흠뻑 젖는다

2011동강국제사진제 7월22일부터 개최

사회부 | 기사입력 2011/06/25 [10:33]

영월 동강,사진예술에 흠뻑 젖는다

2011동강국제사진제 7월22일부터 개최

사회부 | 입력 : 2011/06/25 [10:33]
 

2011동강국제사진제가 7월22일부터 9월25일까지 강원도 영월 일대에서 열린다.

동강사진축제는 강원도 영월을 사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2002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다가 2009년에 이르러 세계적 사진 행사로 도약하기 위해 그 명칭을 동강국제사진제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동강국제사진제는 국내에서 개최하는 사진제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2011동강국제사진제의 주제는 ‘흐르는 시간, 멈춘 시각/Flowing time, Visual Awakenjng in Tranquility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동강국제사진제 걸어 온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사진 본연의 의미를 담아 오래 기억되는 사진제로서 또 하나의 자취를 남긴다는 게 주최측의 생각이다.

이번 사진제의 대표적인 행사로 ‘미국사진 반세기’展이 열린다. 미국사진 반세기전은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오늘날 미국사진의 기본틀을 일구어 낸 선구적인 미국작가의 작품 126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2011년 동강사진 수상자인 오형근씨의 ‘동강사진상 수상자展’이 함께 개최된다.

또한 미국 미주리대학교가 지원하는 POYi국제보도사진전이 열리며, 거리설치전,보도사진가전,적과의 동침전등 10개의 사진전도 함께 진행된다.

<미국사진반세전전 출품작가>     
▲ 언셀 애덤스  작  © 아트데일리
언셀 애덤스
미국, 1902~1984

피아노 공부를 하던 애덤스는 1916년에 사진을 처음 접했고, 1930년 폴 스트랜드 를 만난 뒤로 본격적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32년 f/64라는 그룹을 시작하면서 일생 동안 미국 사진계에 거대란 영향을 미쳤다. f/64라는 그룹의 회원들 중에는 이모진 커닝엄, 에드워드 웨스턴 그리고 윌러드 밴 다이크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세부적이며 깊이 있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후에 애덤스는 사진의 노출과 현상을 좀 더 정확히 만들어내는 ‘존 시스템zone system’이라는 체계를 만들었다. 애덤스는 특출 난 사진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미 국립공원들의 보존과 보호를 위해 헌신했으며, 그가 찍은 미국 서부 사진들은 그의 이러한 업적들을 잘 보여준다.

브렛 웨스턴
미국, 1911~1993

1904년,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사회문제를 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보고 사진을 시작했다. 1906년 국립 아동 노동 위원회 National Child Labor Committee(NCLC)의 위탁으로 공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인은 사진을 통해 어린이 노동 착취의 현실과 아동의 노동 조건, 상태 등을 고발하고, 아동 노동법의 변화를 촉구했다. 1920년부터는 기록 사진에서 방향을 바꿔 좀 더 개인적으로 상대에 접근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가 1930년에 찍은 유명한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건물 사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 루이수 하인 作     ©아트데일리
루이스 하인
미국, 1874~1940

1904년,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사회문제를 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보고 사진을 시작했다. 1906년 국립 아동 노동 위원회 National Child Labor Committee(NCLC)의 위탁으로 공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인은 사진을 통해 어린이 노동 착취의 현실과 아동의 노동 조건, 상태 등을 고발하고, 아동 노동법의 변화를 촉구했다. 1920년부터는 기록 사진에서 방향을 바꿔 좀 더 개인적으로 상대에 접근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가 1930년에 찍은 유명한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건물 사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워커 에반스  작    © 아트데일리

워커 에반스
미국, 1903~1975

원래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던 에번스는 1920년 말부터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해 방향을 전환했다. 초기에는 미국적인 18세기 빅토리안 건물들을 주로 찍다가 1933년 격동적인 반란이 일어난 쿠바를 찍었다. 이 사진들에는 에번스의 솔직한 기록과 개인적인 취향이 잘 나타나 있다. 1935년부터 도로시어 랭Dorothea Lange, 아서 로스스타인Arthur Rothstein, 벤 샨Ben Shahn등과 함께 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일원으로 대공황에 허덕이는 미국인의 삶을 프레임에 담았다. 정부의 보조를 받아 찍은 이 기록물들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규모가 가장 방대하고, 중요한 기록 사진일 것이다. 이동 농민들을 찍은 에번스의 사진은 미국 사진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표식을 남겼고, 에번스 사진의 특징적인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도로시어 랭 작    © 아트데일리
도로시어 랭
미국, 1895~1965

뉴저지 주 호보켄Hoboken 에서 태어나 인물 초상 작가 클라렌스 화이트 밑에서 사진을 배웠다. 191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해 초상화 사진관을 열었다. 1935년 FSA에 고용되어 미국 대공황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이동 노동자들의 궁핍한 상황을 그만의 시각으로 깊이 있게 찍었다.

존 쿠드만
미국, 독일 태생, 1905~1998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것에 비해, 구트만은 미국 사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에서 태어나 1933년 미국으로 이민 온 후1937년부터 1977년 은퇴하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 칼리지San Francisco College(지금의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가 찍은 대공황 시대의 사진들은 미국 사람의 평범한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을 실험적이며, 구도적인 관찰로 표현해 FSA다른 작가들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인다.

▲ 아스 로스스타인 작     © 아트데일리

아서 로스스타인
미국, 1915~1985

FSA가 출범할 때 가장 처음으로 공적 사진가가 되었고, 나중에 워커 에번스, 도로시어 랭, 벤 샨 등과 같이 일했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가난한 농민들이나 이주자들의 사진을 찍었고, 몬태나 주 목장 주인들의 문제를 기록하기도 했다. 1937년부터는 앨라배마 주의 지스밴드Gee’s Bend 라는 구역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당시 찍은 그의 사진에는 이곳 주민들의 결단력 있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FSA일이 끝난 후에는 중국에 머물면서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중점적으로 찍었다.

벤 샨
미국, 리투아니아 출생, 1898~1969

일찍이 벽화를 그리는 작가로 성공했던 샨은 1930년부터 사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워커 에번스에게 사사한 그는 에번스의 추천을 받아 1935년FSA에 가입했고, 그 뒤로 사회 평등, 내지 사회 정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화가로 시작했던 만큼 회화적인 방법을 많이 썼으며, 자신의 사진을 스케치나 드로잉의 바탕으로 쓰기도 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사회 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이상을 추구했다. 

▲ 루 스타우멘  작   © 아트데일리

루 스타우멘
미국, 1917~1991

사진과 영화라는 두 가지 매체를 동시에 이용한 사람으로 사진계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1939년 자신이 발행한 ‘종이 영화’, 50장의 사진을 20개의 시와 병렬한 『젊은이를 위한 제언 : 첫 번째 시와 카메라워크Speech for the Young: First Poems and Camerawork』를 발간했다. 시와 사진을 병합한 이 방식은 서술적인 사진의 새 장르를 개척했다. 1950년 들어서부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위지Weegee, 앨프리드 아이젠슈타트Alfred Eisenstadt같은 작가들의 면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엘프리드 스티글리츠
미국, 1864~1946

사진이 순수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한 사진 작가로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사진 미술, 즉 미술적 사진을 일찍부터 주장했고, 이러한 철학을 강조한 <카메라워크Camera Work>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1905년 ‘화랑 291’라는 갤러리를 열어 아프리카 조각 작품이나 유럽의 아방가르드 작품 등을 최초로 전시했다. 그 후 사진 미술 또는 미술 사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근대 예술의 특징인 단순한 선과 예리한 초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도시 생활의 풍경부터 인물 사진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에드워드 스타이켄 작    © 아트데일리

에드워드 스타이켄
미국, 독일 출생, 1879~1973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이자 큐레이터였다. 화가로 출발해 1895년 사진을 시작했으며,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같이 ‘포토세세션Photo-secession’ 그룹을 창설했다. 건축이나 인물 또는 정물화를 활용한 창조적인 사진 기법을 선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작가 생활을 했던 스타이켄은 뉴욕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MoMa)의 사진 담당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전이라는 역사적인 전시를 올렸다. 이 전시는 8년 동안 37개국을 돌면서 열렸으며, 68개국 273명의 작가들이 참가한 대규모 전시로, 전 세계 모든 인간은 결국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 

폴 스트랜드
미국, 1890~1976

루이스 하인 밑에서 사진 공부를 했고,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사진 작가들뿐 아니라 피카소, 세잔 같은 화가들에게서도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스트랜드는 일상의 평범한 물건이나 주제들을 자기만의 독특한 시점에서 찍었다. 그는 20세기 초반의 사진 작가들이 천착했던 미술 사진적 방법을 배제한 채 순수하고 뚜렷한 초점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그만의 특색인 풍부한 질감과 다양한 명암을 살려 인화했다.  

 에드워드 웨스턴 
 미국, 1886~1958

20세기 미국 사진 작가들 가운데서 커다란 존재감을 지닌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20년 멕시코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많은 수확을 거둔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 있는 동안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트 오라스코 같은 혁명적인 화가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때부터 조형적인 형태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인체, 구름, 장난감, 채소, 조개껍데기 그리고 멕시코 풍경 등을 단순한 형태로 찍었는데, 이런 사진이 1930~1940년에 그의 독특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헤리 캘러핸
미국, 1912~1999

1938년 처음으로 우연히 사진기를 손에 넣은 후 독학하다가 1941년 언셀 애담스의 강의를 듣고, 아담스의 전시를 본 다음부터 적극적으로 사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학교 Institute of Design Chicago 에서 가르쳤고, 1961년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의 사진학과 과장이 되었다. 캘러핸은 일상생활의 조그마한 사물들 속에서 추상적 이미지 또는 도안을 찾아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에론 시스킨드
미국, 1903~1991

1930년부터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며 사진을 찍었다. 1932년 ‘영화와 사진연맹Film & Photo League’에 소속된 기록 사진가였다. 시스킨드는 ‘할렘 기록Harlem Document’, ‘막다른 길 : 바우어리 동네 Dead End: The bowery’ 그리고 ‘한 빈민 주택의 초상Portrait of a Tenement’ 같은 정치성을 띤 기록 사진 기획을 총감독했다. 1940 년대부터 그의 시각은 근대 표현주의 쪽으로 움직였고, 길거리 벽에 붙어 있는 찢어진 포스터나 낙서 등의 추상적이고 구조적인 면을 포착하는 방향으로 점점 변해갔다. 시스킨드는 1951년 해리 캘러핸의 추천으로 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학교 Institute of Design Chicago 에서 교편을 잡았고, 캘러핸이 학교를 떠난 뒤 그의 직무를 맡아 사진과 학장이 되었다. 1963 년에는 사진 교육 학회Society for Photographic Education의 창립 멤버로 단체를 설립했다. 그 후 다시 해리 캘러핸을 만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1976 년 은퇴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윌리엄 클라인
미국, 1928~

화가였던 클라인은 1954년 <보그> 잡지의 패션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들은 바로 그 시대, 그 순간을 감정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냈다. 1960년대에는 영상 쪽으로 관심을 가졌고, 1980년대 들어와서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뉴욕, 모스크바 그리고 도쿄 등을 찍은 연작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뛰어난 안목을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지
미국, 오스트리아 출생, 1899~1968

24세 때 애크미 뉴스 픽처라는 회사의 암실 기술자로 출발한 위지는 1935년부터 뉴욕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범죄, 화재 등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38년부터 뉴욕 상류사회로 관심을 돌렸고, 밝은 플래시를 이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범죄자든 상류사회 사람이든 준비되지 않은 위험한 순간을 포착했다. 

데니 라이언
미국, 1942~

뉴욕 브루클린Brooklyn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사진과 영화를 배웠다. 사진의 대상 속으로 자신을 몰두시키는 인상 깊은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1967년에 발간한 『바이크라이더스The Bikeriders』는 시카고 아웃로 모터사이클 클럽Chicago Outlaw Motorcycle Club 단원들의 일상을 기록한 것으로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두 번째 사진집은 1971년 텍사스 교도소를 중심으로 전체 6개의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의 실제 생활을 기록한 『죽은 사람들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the Dead』이다. 

브루스 데이비드슨
미국, 1933~

데이비드슨은 10세 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을 만난 뒤 사진에 전업했다. 1958 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매그넘 에이전시magnum agency의 회원이 되었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문제와 흑인들의 고통을 기록한 『격동의 시기, 인권 사진Time of Change, Civil Rights Photographs 1961-1965』 은 2002 년 발간된 사진집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의미 있고 심오한 작업이 담겨 있다.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정부로부터 NEA(National Endowment for Art) 보조금을 받아 뉴욕의 빈민가, 할렘의 한 구역을 찍은 ‘동부 100번가 East 100th Street’는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래리 클라크
미국, 1943~

13세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클라크는 1963~1971년에 그가 살던 도시인 오클라호마 주 털사 Tulsa에서 친한 친구들 또는 주위 사람들의 약물 복용, 문란한 성적 행동 등을 기록했다. 사진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의 초기 작품집 『털사Tulsa』는 젊은 이들의 방황을 잘 표현한 사진들로 당시 미국 시골에서 일어나던 지하 운동과 그들의 문화를 솔직하고 방관적으로 서슴없이 노출시키면서 기록 사진의 한계를 한층 올려놓았다. 

게리 위노그랜드
미국, 1928~1984

뉴욕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뉴욕에서 보냈다. 워커 에번스나 로버트 프랭크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도시를 관찰한다는 면이 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그의 주요 관심은 시각적으로 도시의 열기와 사람들 그리고 장소를 순간 포착하는 것이었다. 


<동강사진전 수상자-오형근>

2011년 제10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형근은 한국 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유형을 다루는 초상 작업을 일관성 있게 진행해 왔다. 그는 모델을 이상화하거나, 고상하게 꾸미려 하는 초상의 기법과 시도를 탈피해,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욕망과 이에 따르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기호들의 형상으로 인간의 얼굴과 외양을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투적 기법과 순응적인 태도로 인해 정체된 한국의 초상사진을 사회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2011년 7월 22일 개막하는 동강국제사진제는 동강사진상 수상자 오형근이 유학시절 미국에서 작업했던 <미국인 그들>부터 <이태원이야기>, <광주이야기>, <아줌마>, <소녀연기-少女演技>, <화장소녀-化粧少女>, 최근 작업한 군인 시리즈까지 모두 전시해 오형근의 초상사진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 화장소녀 오형근작     © 아트데일리

화장소녀 2005-2008
소녀시대와 화장소녀(化粧少女)

소녀는 욕망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대상이기도 하다.
평론가 백지숙씨의 흥미로운 소녀론(少女論)처럼, 나 역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소녀들이 가지는 욕망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사회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례로 수많은 삼촌과 오빠들이 2004년 이후에 출현한 다수의 섹시한 걸 그룹들 --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등 -- 에게 매혹을 느끼고 있으며 때문에 음반, 영화, 패션 등 연예 문화 전반의 마케팅이 소녀 취향으로 겨냥된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면 반론이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2004년의 내 전시 제목 <소녀연기少女演技>를 소녀시대로 부른다는 점이다. 사실 상, 소녀시대의 전 멤버들이 소녀연기의 전문가들인 점을 감안한다면 큰 무리도 없겠지만.) 또한 이 시대의 많은 민감한 소녀들이 이들에게서 소녀성(少女性) -- 대부분 옷차림이나 화장, 그리고 헤어스타일처럼 외모적인 면이 많지만 TV 토크 쇼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말투나 행동, 혹은 성격까지 -- 을 배우고 있으니 소녀연기시대(少女演技時代)임은 틀림이 없다. 때문에 2005 년부터 다시 거리에 나가 소녀들의 화장법이라는 주제 하에, 소녀 작업이 시작되었다.

동대문 밀리오레, 이대 앞, 신림동 순대 골목, 성신 여대 앞,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등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화장소녀들을 캐스팅했다. 소화법(소녀들의 화장법) 캐스팅 매니저로 불리어졌던 사진과 여대생 8명의 도움을 받아 약 500여명의 십대 소녀들을 섭외 할 수 있었고 이중에서 기꺼이 내 작업실을 방문해준 138명의 초상 작업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이 책에는 총 28 명의 핵심 화장소녀들이, 그들이 직접 행한 화장법과 함께 초상으로 실려져 있다. 여기서 핵심이라 하면, 작품 제목에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화장법과 패션 스타일을 보여 주는 사회적 보고서의 측면을 고려했을 때의 핵심이란 뜻이기도 하다. 사실 시각적인 드라마를 꿈꾸는 사진가의 입장에서 일본의 갸류족들처럼 짙은 화장의 소녀들을 기대했지만 2005년부터 한국의 소녀들의 화장법은 BB크림 위주의 자연스런 피부 톤의 유행에 빠져들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써클 렌즈나 컬러 렌즈부터 색조 화장과 매니큐어 그리고 페디큐어와 네일 케어를 포함해서 염색과 붙임 머리까지... 소녀들의 화장법은 생각보다 극적이었다. 더구나 보톡스를 이용한 쁘띠 성형과 쌍꺼풀 수술까지, 성인 여성들의 과감한 미용법을 보여주는 소녀들도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 (사실 17세 이하, 청소년들에 성형은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2009년까지 3년 동안 촬영이 이루어 졌고 촬영 내내 나는 한국이 화장 공화국처럼 느껴졌다. <작가 노트> 

원본 기사 보기:ar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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