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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언어학자 성삼문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5/26 [12:21]

[조선력사 인물] 언어학자 성삼문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5/26 [12:21]

 

▲ 언어학자 성삼문 초상화. 자료사진     © 이형주 기자

 

조선의 력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일제가 조작해 만든 조선사35권의 식민사관과 이병도일당이 조작해 만든 대국사관의 반도사관을 중심으로 한국사와 국사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반면, 북은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을 탈피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남과 북은 역사의 특징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지에서 "조선을 바로 알아야 통일이 가까워 집니다"라는 신념으로 북조선이 알리는 '조선력사'를 인터넷매체 조선의 오늘이 공개한 게시물을 여과없이 게재한다.[편집자 주]  

 

언어학자 성삼문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관료인 성삼문은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1447년에 실시한 중시(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다시 적용하는 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집현전 수찬, 례방 승지를 하였다.

박팽년(?-1456), 신숙주(1417-1475), 최항(1409-1474), 리개(?-1456) 등과 함께 재능있는 젊은이로 인정되여 세종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으며 궁중에 차려놓은 언문청의 성원으로서 적극 활동하였다. 그는 《훈민정음》창제에 참가하였으며 집현전 수찬으로 있을 때《훈민정음》해례의 편찬에 참가하여 1446년(세종 28년)에 이것을 완성하였다.

세종의 지시로 신숙주와 함께 료동에 가서 중국 한어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중국말과 한자음운학에도 정통하여 《동국정운》(1447년)을 비롯한 여러 운서를 편찬하는데 참가하였으며 《직해동자습》 서문에서는 조선한자음의 특성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내놓기도 하였다.

성삼문은 1456년(세조 1년)에 세조가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기도하다가 탄로되여 아버지, 동생과 함께 처형되여 사륙신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그의 저작으로는 《성근보집》, 《훈세평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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