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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화약제조가 최무선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14 [17:07]

[조선력사 인물] 화약제조가 최무선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14 [17:07]

 

▲ 무기무장유물전시회장의 일부.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화약제조가 최무선

 

 

우리 민족의 력사에 기록된 명장들속에는 나라를 지키는데 크게 기여한 최무선도 있다.

14세기 후반기에 침략자들을 쳐물리치는 투쟁과정에서 화약제조법이 새롭게 발명되고 화약무기가 창안제작되였다.

최무선은 당시 고려에 끊임없이 침입하던 침략자들을 쳐물리치는데서 가장 위력있는 무기는 화약무기라고 생각하면서 화약을 만들어낼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 집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여러가지 방법의 실험을 거듭하여 화약의 기본원료인 염초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그는 화약무기도 만들어냈으며 그것들을 배에 설치하는 방법까지 고안해냈다.

화약무기를 대량생산할데 대한 최무선의 적극적인 제기에 의하여 고려봉건국가는 1377년 10월에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그를 제조관으로 임명하였다. 그의 책임밑에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포,2장군도,3장군도, 륙화석포, 화포, 신포, 질려포 등 여러가지 포들과 화전, 철령전, 피경전, 철탄자, 류화, 주화 등 불화살 또는 포탄들을 만들어냈다.

그때 만든 포들은 포탄을 포아가리로 재우고 포신을 60~80°로 세워서 화약의 힘으로 쏘았는데 그 모양은 포신의 길이가 짧은 절구모양이였다. 그후 포신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포탄들은 더 멀리 보다 더 정확하게 날려보낼수 있게 되였다.

최무선은 화약무기들을 배우에서 합리적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종래의 싸움배들의 구조도 개조하였다.

화포를 쏠 때에 배가 될수록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배전의 높이를 낮추고 갑판의 구조도 더 든든하게 하여 대포를 고착시켰으며 습기가 화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고안해냈다. 바로 이러한 창안들이 있었기때문에 고려의 싸움배들에서 쏘는 포탄들의 명중률이 매우 높았다.

1380년 8월 수만명의 침략자들이 500척의 대함대를 몰고 전라도 진포(금강하구)에 침입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서 100척으로 무어진 고려함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여 화포로써 적함대에 불벼락을 들씌워 적선 500여척을 몽땅 불태워버리고 커다란 승리를 이룩하였다. 그후에도 화약무기로 장비된 고려함대는 1382년 곤양(사천)바다싸움과 1383년 박두양(남해군)바다싸움에서 그 위력을 떨치였다. 이리하여 침략자들은 그전처럼 제멋대로 고려에 기여들지 못하게 되였다.

이처럼 최무선의 주동적역할에 의하여 만들어진 화약무기들은 전함들에 설치되여 바다로부터 기여드는 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큰 위력을 나타내였는데 화약무기를 함선에 설치하여 바다싸움에 리용한것은 세계에서 고려가 처음이였다.

최무선은 화약제조법을 기록한 책을 아들 최해산에게 넘겨주었는데 최해산도 화약제조법을 더욱 연구발전시키고 수많은 화약무기를 만들어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한것을 비롯하여 슬기롭고 총명한 민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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