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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단상.

"힘차게 발걸음을 내 딛어라,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레지나 | 기사입력 2007/03/08 [01:04]

입학식 단상.

"힘차게 발걸음을 내 딛어라,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레지나 | 입력 : 2007/03/08 [01:04]
3월은 새로운 계절, 즉 봄의 시작과 더불어 여러 곳곳에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입학식, 새 학년, 새 학기, 나의 직업 역시 이런 단어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나는  더불어 새로운 생활의 시작임에 새로움으로 몸과 마음을 단장한다. 사실 몸단장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겠지만.
 
▲Jacobs Dream     © 운영자

며칠 전에 첫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전의 주부반 학생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가 왔다.

두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 때 기억 나셔요?. 어떤 마음 가짐이셨나요?. 분명 다른 분들과는 다르셨을 것 같아요.저는 왜 이렇게 떨리지요? 잠이 안와요.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잘 할 거라 믿는데도 여러 감정들이 오고가네요. 원장님의 응원 부탁드려요.

요즘의 초등학교 입학생들이라야 어디 예전의 코흘리개 8살에 비할까? 나 어릴 적 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기억은 1학년생 아이들 거의 모두에게 가슴 앞자락에 옷핀으로 손수건이 걸려 져 있었다.
 
코 닦이용이랄까? 큼지막한 이름표와 함께. 엄마, 아버지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해보는 단체 생활에 대한 신기함과 두려움에, 초등학교 입학식은  커다란 의미의  행사로 다가왔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유치원을 졸업하고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의무 교육 화(?) 되었던 것이 아니라 한 학급에 서너 명 정도가 유치원 졸업생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변하고도 또 변하여, 이제는 생후 18개월의 아기 때부터 엄마 품에 안기어 학습을 강요당하게 되고, 3년 과정의 유치원 교육과정은 거의 필수처럼 되어왔다.
 
 그 외에도, 영어, 악기, 미술, 한자, 운동 등의 교육은 과외로 추가되어지고 있다.
 
이미 네 다섯 살 정도부터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는 곳으로 보내져서 생활하고, 한글은 물론 기본 수학, 과학 학습까지 선행 아닌 선행 학습을 하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양상태가 좋아진 관계로 아이들의 몸집 또한 커졌다. 도저히 예전의 나의 기억 속의 초등학교 입학당시의 우리들의 모습, 심지어 18년 전 내 첫아이의 입학식 때의 모습과는 신체나이도 정신 연령도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점점 옛것과 비교하는 습관이 생긴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먹어간다는 것이리라.    

1971년,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래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의 야무진 성격 때문에 한글은 떼고 들어갔다. 생전 해보지 않던 단체생활에 대한 호기심으로 초등학교 교문에 들어서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하나, 둘” “셋, 넷”하면서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사회생활의 첫 걸음을 내 딛었던 그 옛날에는 학교 가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설레 였던 지 모른다.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0리길의 먼 길을 걸어오는 아이들에게 조차 학교는 정말 가고 싶은 곳, 재미있는 곳,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여겨졌었다. 그 시절의 학교는 그랬다.

1996년, 나의 첫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자식은 유치원을 안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어쩔 수 없이 남들 하는 대로, 안 보내면 우리 아이들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  딸아이를 3년 동안 유치원에 보냈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르게 해보고 싶어 똑같은 유치원을 3년 동안 다니게 하지 않고, 매년 다른 유치원을 보냈다.
 
조금은 덜 지루하게 하고, 또한 매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미루고 미루다가 가을 학기에 군청에서 지원 운영하는 유아원에, 여섯 살 때는 사립 유치원에, 그리고  일곱 살이 되던 해에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는 그  병설유치원과 연결된 곳이 아닌 다른 초등학교로 보냈다. 읍내의 2,000명 규모의 큰 학교가 아닌 논밭이 보이는 총 12학급의 아담한 학교였다. 아이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걱정이라기보다는 대견함이랄까? ‘어느새 학교에 들어가네, 어이구 기특해라, 다 컸다’ 하고 등을 토닥여 주었던 기억 뿐. 딸아이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아름답고 멋지게 초등학교 6년을 잘 다니고 화려하게 졸업했다.  

2003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누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큰 아이가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 교육이 의무화되고 학교에 컴퓨터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IT산업의 강국으로서의 박차를 가하면서,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게 되고 전국적으로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어가면서, 이제는 학교가 그다지 재미  없는 곳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가끔씩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집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했다. 30여년 사이에, 불행히도 학교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왕따’ ‘폭력’ ‘시험’ ‘사교육 열풍’이라는 부정적 의미만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2007년, 초등학교 입학생을 데리고 한 학부형이 학원 수강 상담을 하러 왔다. 그동안 나름대로 집에서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시켜봤는데 이제 엄마가 한계에 부딪혀서 학원에 맡겨야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뚜렷한 자녀교육관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자식에 대한 자부심도 아주 강한 엄마였다. 영어 교육에 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다 마친 후에, 일어날 때 쯤 아이 엄마가 묻는다.

“학원 차량 운행해주시죠?”
“아니요. 저희는 차량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엥? 그러면 얘가 어떻게 학교에서 여기까지 걸어와요?”
“걸어서 15분 정도면 되는데요, 뭐. 빠르면 10분?”

“에구, 1학년짜리가 어떻게 그렇게 걸어와요. 신호등도 있는데...”
“어머나, 세상에, 그게 교육이죠. 신호등도 자기 혼자서 건너봐야죠. 15분 정도면 운동 삼아 걷기에 딱 좋은 걸요?

“그럼 내가 매일 태워다 줘야 겠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첫날만 손잡고 학교에서부터 학원까지 데려다 주세요. 그리고 학원에서 집에 가기는 더 가까우니까, 그것도 같이 한 번만 동행해 주시구요.”

“안되죠. 요즘 차가 하도 많아서...”
“강희야, 혼자 걸어 올 수 있지?

내가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대답 없이 배시시 웃으며 엄마에게 안긴다.

"그럼 나중에 보내셔야 겠네요 ㅠㅠ"

학습능력은 한도 끝도 없이 올라 있는데, 몸집도 신체나이에 맞게 건강한데, 이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요즘 엄마들은 거의 (나 빼고) 운전을 할 줄 알아서일까?
 
▲     © 운영자
아니면, 정말 세상이 너무 험악해져서 아니 보호 차원에서?
 
이건 아니다 싶다. 외동자식 가정이 늘고 많아야 두세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너무 자녀들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약하게 키워 앞으로 닥쳐올 세상의 모진 풍파를 어찌 뚫고 나가라고.

오늘의 여덟 살짜리 우리 아이들이 태교부터 영유아 영재 개발 교육, 3년간의 유치원교육, 또 다른 과외교육 등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그렇게 학습능력은 열 서너 살 정도로 키워놓고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행동은 여전히 품안의 아기로 키우려고 하는 엄마들의 문제 또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입학 전의 사전 교육 수준의 차이로 이미 심화된 학생들의 교육 수준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의  양극화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한글은 세 살 때부터 습득하고 영어 또한 원어민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한글도 모르고 영어는 접해보지도 않은 아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의 해결사를 학교에서 공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몫으로 돌리기에는 염치가 없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이다. 물론 큰 아이가 고2, 작은 아이는 중3이다. 이미 지나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보며 조바심내고 불안해하는 엄마들에게, 그리고 학습머리만 키워놓고 세상 살아가는 바탕 공부는 외면하는 후배 엄마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아이들은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가정에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어떻게 길들여 져 왔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의 행과 불행이 좌우된다. 가정, 학교, 사회 각각 교육의 주체 자가 있기에, 서로 월권하지도 말고 직무유기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땅의 입학식을 한 초중고 대학생 새내기들이여!
21세기의 한민족을 이끌어 갈 주역들이여!
힘차게 첫걸음을 내 딛어라.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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