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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조신성(趙信聖) 선생

권선민 기자 | 기사입력 2007/04/25 [07:10]

5월의 독립운동가 조신성(趙信聖) 선생

권선민 기자 | 입력 : 2007/04/25 [07:10]
▲  5월의 독립운동가 조신성 선생  © 플러스코리아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73년 평북 의주 비현역 근처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이 모두 불우했던 선생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근대적인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24세 되던 해 이화학당과 교원양성소를 졸업 교편을 잡고 28세 되던 해에는 이화학당 사감으로 재직하였다. 이 때 이준과 함께 한국 최초의 조선부인회를 조직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선생은 맹산독립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으며, 1920년 8월 단원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히자 이들을 달아나게 하여 공무방해죄로 징역 6개월을 언도 받고 1921년 다시 맹산독립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평원군 한천에서 사숙을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대동군 대평에서 취명학교를 운영하였다. 1928년에는 평양에서 근우회 평양지회를 조직하였으며 1930년에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근우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되자 선생은 평양에서 여성들을 위한 실업운동과 교육운동에 매진하였다.

1930년 12월 여성실업장려회를 조직하고 1932년에는 평양여자소비조합조직준비회를 개최하여 여성 경제기관을 설립하고자 하였고 취명학교와 고육원을 운영하면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교육운동에 힘썼다.

선생은 해방이 된 후 대한부인회 부총재를 역임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 1953년 부산 신망애 양로원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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