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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투쟁의 성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가다(3)

1930년 "5.30폭동"과 "8.1폭동"이 조선인들에게 끼친 참혹상

이용섭 역사연구가 | 기사입력 2015/11/11 [04:27]

항일독립투쟁의 성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가다(3)

1930년 "5.30폭동"과 "8.1폭동"이 조선인들에게 끼친 참혹상

이용섭 역사연구가 | 입력 : 2015/11/11 [04:27]

항일독립투쟁의 성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가다(3)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착 4일째인 1018일 창밖으로 아침햇살이 환하게 비춰온다. 참고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북경시간을 쓰다 보니 서울보다 한 시간 평양보다는 반시간이 늦다. 하지만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동경은 서울이나 평양보다 동경 7~8°정도 앞서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즉 자연의 원리에 따른 시차로는 15분 정도 빠르다. 연변 현지시간 아침 7시 반경에(이하 연변시간) 잠자리에서 일어나 반일 · 항일유적지에 대한 본격적인 답사준비를 했다.

 

오전 10시경 이송덕 선생이 도착을 하였다. 우리는 이송덕 선생과 오늘 답사일정에 대해 간단히 협의를 하였는데, 오늘은 답사 노정(路程)12일 일정으로 1018일은 안도현 일대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1019일은 반일 · 항일독립운동의 주 무대인 왕청현 유적지를 찾아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하였다.

 

답사일정을 협의하고 안도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오전 10시 반경 숙소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약 20분 정도 가니 연길시에서 주변 각 도시들로 떠나는 시외버스배차지(터미널)이 있었다. 우리는 안도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오늘 버스를 타고 가게 될 목적지는 송강(구안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을 한 시간에는 송강행 버스가 없기에 명월구에서 송강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로 하고 안도현성도인 명월구행 시외버스를 탔다.

 

오전 11시 우리가 탄 시외버스가 명월구를 향해 출발을 하였다. 버스가 출발을 하고 약 20분 정도 지나 연길시 외곽을 달리고 있을 때 이송덕 선생이 버스가 달리는 방향의 오른 쪽 마을을 가리키면서 저 곳이 바로 추수 · 춘황투쟁이 맨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소개를 한다. 추수 · 춘황투쟁이라고 하니 우리 독자들은 그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기에 아래에서 추수 · 춘황투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당시의 만주정세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1. 추수 · 춘황투쟁 발원지 연길시 투도구

 

▲ 1931년 가을 벌어진 "추수투쟁"과 1932년 2월에 있었던 "춘황투쟁"이 처음으로 시작된 연길현(당시, 현 연길시) 투도구마을 전경. 추수,춘황투쟁은 5.30폭동이나 8.1폭동과는 다른 양상으로 벌어졌으며, 성공한 농민대투쟁이었다.     © 이용섭 역사연구가

 

 

1930년은 만주의 정세에 있어 격랑에 휩싸인 해였다. 193051일과 530일 동만 각지에서는 노동자, 농민 등이 주축이 되어 대 폭동을 일으켰다. 뒤 이어 81일에도 또 다시 동만 각지를 휩쓰는 폭동이 일어났다. 이 폭동에 주축이 된 주민들은 대부분 조선인들이었다. 이 폭동으로 인하여 동만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일본과 만주당국의 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다쳤으며 감옥으로 끌려가는 대 참사를 빚었다. 설사 학살이나 감옥에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탄압을 피해 이곳저곳 도망을 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1. 5·1, 5·30 폭동

 

1929년 중반기부터 193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중국의 혁명지반이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붉은 혁명의 기치를 든 중국홍군의 적색역량이 지대하게 장성 강화되게 되었다. 홍군의 역량은 국민당군이 통치를 하는 지역까지 대중적 조직사업과 정치사업을 할 정도로 강화되었다. 이와 같이 홍군에게 유리한 정세가 조성이 되자 중국공산당은 전면적으로 대중무장폭동을 일으켜 국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여 적색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하였다. 아래에서 당시 상황을 정리한 자료를 보도록 하자.

 

이러한 중국 홍군의 계획에 따라 193045일 중공만주성위와 공청단만주성위에서는 “ ‘5.1’에 대한 사업결의를 채택하여 각지 당 조직들이 “5.1”절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폭동을 조직할 것을 요구하였다. 424일 중공만주성위에서는 “ ‘5.1’투쟁행동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국민당반동군벌정부를 타도하자!”, “고리대착취를 반대하자!”,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각 민족 빈곤농민들에게 분배하자!”, “토지혁명을 실시하고 쏘베트정권을 세우자!” 등 투쟁구호를 제기하였다.

 

폭동을 지휘하기 위하여 투도구 방면 승지촌에 연변특별지부와 붉은 5월 투쟁지휘부성원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비밀거점을 내오게 되었다. 1930424, 승지촌 오원세네 집에서 “ ‘5.1’에 대한 사업결의를 집행하러 연변에 파견되여온 중공만주성위 특파원 박윤서와 마준, 중공연변특별지부 서기 왕경(일명 리완룡), 위원 이복해(伊福海), 조선공산당(엠엘파)동만도책임자 김근, 원 조선공산당 당원 김철, 엠엘파계렬의 고려청년회 동만도책임간부 등이 참석한 련석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서는 붉은 5월투쟁행동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고들었다. 우선 이번 “5.1”투쟁을 지도하기 위하여 연변당부와 본 특파원은 424“5.1행동위원회를 조직하였는데 책임에 김한봉(金漢峰, 전임 엠엘계 연변책임), 위원에 박xx, ()xx(전임 엠엘계 Y책임), 김평철(金平鐵, 폭파총지휘)2명의 중국동지(이름 미상)들로 구성되였다.”(김철수연변항일사적지연구)

 

본 회의에서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토지혁명을 실시하고 쏘베트정부를 세우자!”라는 구호들을 제기하여 향후 투쟁방향을 명확히 했으며 투쟁역량을 결집하고, 각지 주민들은 중공연변특별지부의 지휘 아래에 일제히 떨쳐 일어나 파업, 동맹휴학, 농민폭동의 형식으로 붉은 5월 투쟁에 참여 할 것을 결정하였다.

 

 

1) 5.1투쟁

 

19305, 중공연변특별지부와 “5.1투쟁행동위원회의 지휘아래 연변 각지의 농민, 노동자, 학생들은 반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높이 부르면서 파업, 동맹휴학, 시위행진 등을 격렬하게 진행하였다.

 

“5.1”투쟁은 육도구(용정) 노동자들의 파업과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시작으로 들불처럼 동만 각지로 번져나갔다. 당시 육도구에는 200여명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당시 5·1투쟁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200여명 전체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이들 노동자들은 철도노동자 30여 명과 양말, 인쇄, 목상(木商), 목공, 철공 노동자들이었는데 노동자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다. 일본사람들이 운영하는 중앙학교(원 보통학교)를 제외한 20여개 학교에서도 모두 동맹휴학을 하고 시위행진을 단행했다.

 

당시 벌어졌던 193051일의 붉은 5월 투쟁은 용정과 투도구 일대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개산툰 자동, 북하마탕, 연길현 팔도구, 돈화, 액목 등지에서도 벌어졌다. 527일 약수동과 부근의 군중들은 집회를 가지고 쏘베트정부의 창립을 선포하였다.

 

이와 같은 시위투쟁에 대해 중공만주성위 특파원 박윤서는 성당위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커다란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고를 하였지만 후일 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2) 5.30폭동

 

아래는 1930530일 벌어졌던 5·30폭동에 대한 자료이다. 인용하는 자료이니 원문 그대로 올려준다.

붉은5월투쟁이 심입됨에 따라 중공연변특별지부에서는 “5.30”참안을 계기로 대규모적인 폭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했다. 모든 행동은 계획대로 진척되였다. 하여 1930529일 밤, 삼도구충신장(지금의 화룡시소재지)에서 친일지주 로명화, 김주황의 집을 소각하는 것으로 폭동의 봉화가 지펴지였다. 폭동대오는 이날 저녁 평양려관에다도 불을 놓았다. 청파호부근에 파견된 폭동대오는 부근의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전선대를 찍어넘겼다. 삼도구지대의 폭동을 서막으로 투도구, 룡정을 비롯한 각지에서의 폭동이 료원의 불길마냥 타오르기 시작했다.

 

30일 밤에 룡정에서 대폭동에 들어갔는데 그때 상황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때는 왔다. 530일 밤 자정! 대륙의 도시 용정촌(龍井村)의 여름밤은 깊었고 만뢰(萬籟)는 고요한중에 순경의 칼날과 눈총을 피하여 가며 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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