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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길

꿈은 현실이 됩니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07/11/11 [03:59]

신념의 길

꿈은 현실이 됩니다

편집부 | 입력 : 2007/11/11 [03:59]






나는 신념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 해도 나는 이길을 갑니다.

내가 선택한 이길이 하늘이 이끌어 주시는 길임을

나의 혼이 알기 때문입니다.

가다보면 도와주어도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분별심이 관념의 한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진리의 빛을 보고 찾아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정한 사람입니다.

어떤 집착도 찰나에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큰사랑의 빛이 있기에 한 영혼이라도 밝히고

깨우쳐 주기위해 오늘도 이 순간도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늘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 하나 집착을 던지고 놓았을때

자유와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물질세계 이전에 정신세계 밝혀야 혼이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합니다.


한민족에게 내려온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인

천지인 정신을 전하고, 천부경의 천지기운으로

홍익인간 이화세계 이루고자 합니다.


소명의식의 간절함이 쌓이고 쌓여

사명이 되고,

비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천지기운이 되어,

민족과 인류와 지구를 구하고자 합니다.

모두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씨앗이 되어

이 땅에 온 사명을 다 합시다.


 


[배경음악:Sky Walker - Isao Sasaki]
 

 
▲ 식민사관과 30년간 싸워 승리한 민족사학자 윤내현교수     ©

 홀로 서기, 그러나 외롭지 않다
  
윤내현 교수의 글을 옮깁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정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자는 홀로 서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학자들의 할 일은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밝혀내거나 잘못 전해 온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학자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논문이나 연구 저서를 출간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거나 잘못 전해왔던 것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주장은 바로 동조자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오한 연구결과 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발표자가 그러한 결과를 내놓기까지는 깊고 오랜 연구를 거쳤기 때문에 그 결과에 동의하려면 그 발표자 정도의 이해 수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학자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한 뒤 그것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학자가 나타날 때까지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를 많이 하는 학자일수록 홀로 서기는 계속된다.
  

그래서 학자는 외롭다. 심오한 연구를 계속하는 학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은 학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낼 필요가 있다. 그를 안아주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라도 그것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협력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난의 성격을 지녀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 역사 연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역사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풍토가 아쉽다.
새로운 주장을 받아주는 아량이 부족하다.

학문을 벗어난 공격, 심지어는 인신공격 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가운데 하나겠지만 이래가지고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필자는 1980년대 초부터 우리 고대사에 잘못된 점이 많음을 지적해 왔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연구한 결과였다.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지적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발표를 하면서 학계에서 박수는 받지 못하더라도 함께 연구해 보자는 정도의 관심은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어느 학술 발표장의 청중들 앞에서 필자는 한 대선배 학자의 모진 질타를 받았다.

땅만 넓으면 좋은 줄 알고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그날 발표 내용은 중국 문헌을 검토한 결과 고조선의 영역이 종래의 우리 학계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는 견해를 발표했던 것이다.

지금은 고조선의 영역을 한반도와 만주를 포괄한 지역으로 보는 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처럼 되어있지만 당시 우리 학계에서는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아주 작고 미약한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에 대한 압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의 총장 앞으로 투서가 들어왔다.
필자를 학교에서 쫓아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 선배 학자의 학설을 따르지 않는 것은 선배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행동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학교 입장이 난처하다면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총장은 새로운 학설을 내놓는 것이 학자가 할 일이 아니겠느냐면서 오히려 필자를 격려해 주었다.  

그 뒤 어느 정보기관에서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다 기억하는 바와 같이 1980년대는 그러한 곳에서 전화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시대였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곤란하다면서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내용이었다.

필자가 북한 학설을 유표하면서 학계를 혼란하게 하고 있으니, 조사해 달라는 학계의 요청이 있어서 국장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북한이 남한보다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고 고조선의 영역을 더 넓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 넓게 잡자 이것을 북한 학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모함했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로 본 것은 신채호, 장도빈, 정인보 선생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제기한 바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


필자가 제기한 견해는 중국 고대 문헌을 검토하면서 얻어낸 것으로서 고조선의 영토를 넓게 본다는 점에서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나 북한 학자들의 견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일치한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역사 연구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므로 그것이 사실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과 일치한 연구결과는 모두가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필자가 우리 고대사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나 북한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중국의 사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그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를 느끼고 우리 고대사 연구에 착수하면서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북한 학자들이 부분적으로 나와 비슷한 견해를 이미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펴낸 《고조선 연구》와 《한국 열국사 연구》를 비롯한 여러 권의 단행본과 60편이 넘는 우리 고대사에 관한 논문들은 필자의 독자적인 연구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애써 외면하고 순수한 연구자를 “사상범”이나 되는 것처럼 음해한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필자를 비정통 역사학자인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을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로 분류하고 필자를 재야사학자에 포함시켰다.

그 기준은 알 수 없지만 필자의 주장은 비정통 역사학자의 주장 이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뜻을 담은 것 같다.

학문 연구를 하는 데 강단과 재야라는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러한 구분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역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공부도 했으며 현직이 대학교수인데 필자를 강단사학자에서 제외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또 필자가 일부 사학자들을 식민사관을 가진 학자라고 비난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남을 칭찬은 하지만, 비방이나 비난은 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서평 쓰는 것도 삼간다.

올바른 서평을 쓰려면 비판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직 필자가 할 일만 충실하게 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고대사의 중요성을 역설하거나 민족의 가치관과 민족의 정체성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모두 독재정권에 도움을 준 것처럼 매도하기도 한다.

독재정권이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정권유지에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나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말하면 모두 독재정권에 협력한 것인가. 역사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하고 그 중요성은 정권과 상관없이 강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이러한 모함을 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고대사 학자들을 민주화에 역행한 사람들인 것처럼 매도하여 새로운 고대사 연구나 그 결과에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 개인으로 말하면 역대 어느 정부나 정권 또는 기관이나 집단에서 연구비나 행정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말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정부나 정권 또는 기관이나 단체한테서 연구비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혜택을 많이 받아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요즈음은 우리 고대사를 논하거나 민족의 가치관 또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을 말하면 세계화의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 동질성 회복의 차원에서나, 우리 문화와 외래 문화가 접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우리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우리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필자는 우리 고대사 특히, 고조선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발표한 탓에 
선배교수에 대한 예의도 지킬 줄 모르는 놈,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놈, 남의 것을 베껴 먹기나 하는 놈, 역사를 정통으로 공부하지 못한 놈, 독재정권에 도움을 준 놈, 비민주적인 사고를 가진 놈, 세계화에 발 맞추지 못한 시대에 뒤떨어진 놈 등으로 매도된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매도에 필자는 한번도 변명을 하거나 반박을 해본 적이 없다.
묵묵히 연구생활에만 정진 하면서 논문과 저서를 통해 필자의 주장을 계속해 왔을 뿐이다.

필자가 그러한 자세를 취한 것은,

첫째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요,
둘째는 나 자신의 삶의 자세와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내 자신이 남을 모함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를 비방하거나 공격한 학자들에게 한마디 묻고 싶다.

필자가 고조선을 포함한 우리 고대사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기까지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 고대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지난날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침묵만을 지켜왔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서 필자가 새로운 주장을 한 뒤에야 그대들도 기존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바로 기존의 고대사 내용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지금 필자는 외롭지 않다. 그 동안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학자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필자를 매도했던 학자들까지도 요즘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로 넓게 보고 있으며 그 문화 수준도 지난날 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 고대사 특히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는 매우 기쁘다. 우리 민족사를 바로잡는 데 조금은 이바지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필자가 이렇게 그 동안의 사정을 밝히는 것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필자의 체험으로 알림으로써 정의롭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자는 뜻에서이다.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에서이다. 그래야만 우리 겨레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윤내현교수


▲ 세계최초로 배아줄기세포원천기술을 개발한 황우석 박사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견은 
 
뜻하지 않게 우연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 우연한 발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운 좋게 단 몇 번의 실험만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똑같은 실험을 하루에 몇 번씩, 몇 년에 걸쳐 수 백, 
 
수 천번 반복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발견할 확률과 끊임없이 싸워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실험은 
 
바닷가 넓은 백사장의 모래를 한 번에 한 줌씩 집어내는, 
 
그리하여 그 속에 묻힌 반지를 찾겠다는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전 팀원이 슬럼프에 빠진 채 혹은 몇 달이 흘러간다. 
 
그러다 또 뭔가 될 듯한 조짐이 보이면 
 
팀원들 모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말 못할 기대감에 부푼다. 
 
그러나 실패는 순식간에 또다시 찾아온다. 
 
반복되는 절망과 계속되는 실험...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여러 연구원들이 우리팀을 떠났다. 
 
우리팀은 마침내 누구나 만류했던 실험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 
 
팀원들의 가슴속에는 가장 큰 선물인 자신감이 자리 잡았으리라. 
 
실패를 딛고 기적을 이뤄본 우리들은
 
이제 더 힘차게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 '황우석박사 일기' 중에서 -

▲ 일제에 나라을 침탈당하자 자결한 민영환 선생과 피어난 혈죽-피흘린 자리에서 갑자기 45개잎(민영환의 당시 나이)이 달린 혈죽이 뿌리도 없이 피어 민영환의 나라사랑과 절개를 하늘이 인정해주시다

 이천만 동포에게 드림(민영환 유서)

오호라,
나라와 민족의 치욕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생존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장차 어찌 될 것인가.

무릇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살아나갈 수 있으니,
이는 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다.

나 영환은 한 번 죽음으로써 황은(皇恩)을 갚고
우리 2천만 동포 형제들에게 사(謝)하려 한다.

영환은 이제 죽어도
혼은 죽지 아니하여 구천에서 여러분을 돕고자 한다.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여,
천만배나 분려(奮勵)를 더하여 지기를 굳게 갖고 학문에 힘쓰며,
마음을 합하고 힘을 아울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할지어다.

그러면 나는 지하에서 기꺼이 웃으련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우리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마지막으로 고하노라.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년(철종 12)∼1905년(광무 9).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시호는 충정(忠正), 본관은 여흥(驪興), 병조판서 민겸호의 아들.

1878년 고종 15년 문과에 급제.
미국 공사로 있다가 1896년 고종 33년 2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례.

군부대신으로 있을 때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신문명에 밝았으며,
처음으로 양복을 입어 사신으로 외국에 가는 사람의 변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귀국 후 참정(參政)에 올랐고 훈장조례를 처음으로 공포하였으며
사신으로 해외에 여러차례 나가서 공을 세워 훈 1등에 이르렀다.

외부·학부·탁지부 대신을 역임하여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 분투하였으나
독립당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대신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왕의 시종무관장으로 있을 때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는 형세에 이르니,
우정대신 조병세와 함께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1905년 11월 4일 새벽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로 자살하였다.

뒤에 시호와 함께 영의정을 받았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을 받았다.

위 유품 혈죽(血竹)은 충정공이

자결을 한 자리에서 피어난 대나무의 잎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자 일제가 베어내려 했으나 부인이 따로 보존하여 오다,

충정공의 종손인 민병기씨가 조모로부터 물려받은 유품들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 일제에 뽑힌 혈죽-가족이 보관해오다가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    
민영환이 자결하고 8개월이 지나자,
피묻은 옷을 간직한 방에서 청죽이 솟아올라 인심이 술렁이자 일제 날조.

민영환 어른이 자결한 후

피묻은 옷을 간직했던 마루에서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
김은호 화백, 김우현 목사 등 청죽을 목격한 분들이 많았다.

민영환의 피를 먹고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이른바 혈죽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1906년 7월 5일자 대한 매일신보(현 대한매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공의 집에 푸른 대나무가 자라났다.
생시에 입고 있었던 옷을 걸어두었던 협방 아래서
푸른 대나무가 홀연히 자라난 것이라 한다.

이 대나무는 선죽과 같은 것이니 기이하다'

신문 보도대로 민영환이 순국한 지 8개월 후,
피묻은 옷을 간직했던 방에서 청죽이 솟아올랐다.

대나무의 45개의 입사귀는 순국할 때의

나이와 같은 숫자여서 더욱 신기하게 여겨졌다.

혈죽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일제는 혈죽이 조작된 것처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은 대나무가 뿌리를 통해 번식한다는 점을 주목,
집주변에 대나무가 있는지 면밀히 조사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대나무는 찾지 못했다.

마루를 뜯어 내고 주위를 파내며
다른 대나무가 뿌리를 뻗어서 솟아난 것은 아닌가 확인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민영환의 손자 민병진씨는

"일제는 혈죽의 조작 증거를 잡지 못하자
대나무를 뽑았는데 쑥 뽑혔다고 한다.
만약 뿌리를 통해 번식했다면 대나무가 뽑혀 나올 리 없다"
고 말했다.

잊혀졌던 혈죽이 다시 세상에 얼굴을 내민것은 광복 이후,
일제가 뽑아버린 대나무를 고이 수습한 충정공의 부인 박수영 씨에 의해서다.

박씨는 자줏빛 보자기로 대나무를 싸고
폭 8센티 길이 50 센티 정도의 나무 상자 속에 넣어 보관 했다.

고이 간직해온 혈죽은 유족들이 1962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 옮겨지게 됐다.

고려대 박물관에는 혈죽과 1906년 7월 15일

일본인 사진기사 기쿠다가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 자료 제공자 : 김성호 sindo88@hanmail.net


▲ 민족시인-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수있도록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말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겠습니다


- 윤동주  -

▲ 본심즉 태양(천부경)-양심은 어둠과 혼란과 무질서을 비추고 정화시킨다  

양심은 생명과일이요,

비양심은 선악과다.

양심속에 바로 극락이 있고 천당이 있고

양심속에 행복과 영원이 있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양심은 하느님이요,비양심은 마귀며,

양심적이면 의학적으로도

피가 맑아지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

피가 탁해져 병의 근원이 되며

그 만큼 사망을 앞당기게 된다.

양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항상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웃집에 쌀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되면

몰래 부엌에 쌀을 갔다놓고 나오는,

이와 같이 양심적으로 살면 양심이 점점 강해지고

밤잠을 자지못하게하는

비양심은 양심에게 결국 지게 되는 것이다.

양심이 이기게 되니까 거짓과 뒤틀림의 비양심은

설 자리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속이기을 좋아하는 오만하고 교만한 자들은

순간은 속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고마니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요,

결국은 패망이며 사망이며,

인간사의 고통과 혼란과 무질서와

불행의 문제가 다 거기에 있다.

- 윤복현 -





 당신의 생각을 살펴보라!
 그 생각이 당신의 말을 만든다.
 
 당신의 말을 살펴보라!
 그 말이 당신의 행동을 만든다.
 
 당신의 행동을 살펴보라!
 그 행동이 당신의 습관을 만든다.
 
 당신의 습관을 살펴보라!
 그 습관이 당신의 인격을 만든다.
 
 당신의 인격을 살펴보라!
 그 인격이 당신의 운명을 만든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혼자의

   시간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침묵은 마음에 휴식을 주고
 마음의 휴식은 몸에 휴식을 준다.
 
 휴식은 내 생각을 돌아보게 하고
 내 마음과 내 영혼을 살펴보게 한다.
 
 생각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요,
 내 영혼의 힘을 기르는 것이요,
 나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최상의 열매가 맺히도록 순수하고

   좋은 씨앗만 심는 것,

   이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이다.
 
 - 작자 미상 -



 

▲ 사랑의 시인-용혜원     ©
우리들이 나눈 대화 중에
몇 마디 때문에
고민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랑을
한순간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이루어야 한다면
항상 기쁨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웃기만 하며
말도 별로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그대이지만
잔뜩 화가난 얼굴로
나에게 달려들 듯이
다가올 때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바다는 살아 있기에
성난 듯 파도도 치지만
많은 날들은
잔잔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봄바람은
꽃을 피우고
가을 바람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살아감 속에 아픔은
그만큼씩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 용혜원 -


      

천국이 여기있다 저기있다못하리니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양심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인류는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사람마다 양심이 있는데 양심은 인간의
본심본 태양이요 본심은 하나님이다.
우리 인간의 본심이 양심인고로 양심적으로만
살면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한 것이다.
본심에 의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하면
거리낌이 없는고로 불안감이 없고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만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마음이 불안하고 부끄러운데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속에 계시고 사람이 원래
하나님이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여지없이 용납을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한다.
양심에 따라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내속의 양심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양심이 강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속에서 강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 나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양심대로 살면
'나'라는 것을 기어이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양심대로 사는 것이 악령을 이기는
비결이요, 영원한 생명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양심을 따라 움직이게 되면 간사한'나'라는 것을
짓뭉개버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아니하는고로
'나'라고 하는 마귀영이 점점 약화되어 비로소
양심의 영인 하나님의 영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양심에 따라 움직이면 자신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요,
주위 사람들도 구원을 얻는 것이다.
우리의 양심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서
피가 점점 맑아진다.
피가 점점 맑아지는고로 병이 날수가 없는
몸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참신앙이란 하나님의 영, 즉 양심이 기뻐하는대로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이다.
양심이 기뻐한다는 것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면 내속의 양심이 기쁜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협력하면 양심이 기뻐하는 것이다.
그 기쁜 마음은 하루만이 아니요,
계속해서 기쁜 마음이다.
양심속에 천당이 있고 행복이 있다.
사람마다 행복을 추구하고 동경을 하지만
그 행복을 쟁취해보지 못하고 다 땅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욕망과 욕심은 악령인고로
악령을 따라 움직이면 악령이 점점 강하여
병들어 고통으로 신음하다 죽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죽음 속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신앙이 따로 있고 양심이 따로 있고
하나님이 따로 있음이 아니요, 하나님 자체가
양심이요, 양심 자체가 믿음이요, 믿음 자체가
곧 신앙인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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