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술 먹여 아들 잠재우고,
아내에겐 독극물 지니게 했다“
박씨 “38선 넘는데 6년…눈만 감으면 온통 머릿속엔 탈북생각뿐”
北 주민들, 남한은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고 싶은 희망의 땅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지난 510호에서 북한 인민군 간부 출신 탈북자 두 명의 증언을 통해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실상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들 탈북자들의 증언대로라면 사회주의라는 미명 아래 북한 주민들의 존재나 인권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60년 동안 오로지 군사시설 확충과 유지를 위해 모든 체제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1990년도 전후로 살길이 막막해진 북한 주민들이 살아온 터전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20년째 수많은 탈북자들이 제3국을 거쳐 또는 38선을 가로질러 목숨을 건 한국행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북한 고위지도층 인사들의 탈북과 망명이 잇따르면서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한 현실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건의내막>은 전 인민군 대위 출신 박명호(44)씨 일가족 4명이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기까지의 긴박했던 25시간의 리얼스토리를 생생하게 들어봤다.“어린 아들의 손에 단도(短刀)를 두 자루씩 쥐여줬다. 아내에겐 독극물을 지니게 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아들과 나는 끝까지 싸우다 죽을 것이고 아내는 북한 경비정에 발각되는 즉시 자결하기로 한 것이다.”
박 대위는 신라 병사들의 손에 처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어 직접 목숨을 거두고 전장으로 향했던 계백장군의 일화를 떠올리며 당시 자신도 같은 심정이었다고 피력했다. 탈북 당시를 회상하던 그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맴돌았고, 우리는 어느새 2년 전 황해남도 옹진군 서해리의 해안가로 향해 있었다.
성공하면 ‘자유’, 실패하면 ‘죽음’2006년 4월25일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박 대위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배에 올랐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6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날이 밝아오면서 눈앞에 경비정이 발견됐다. 박 대위 일가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단 몇 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는 그는 ‘일단 가족을 살리고 보자’는 결단으로 배를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악몽 같았던 그날의 탈북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다.
약 한 달 후, 기다리던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했다. 쉽게 걷힐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박 대위는, 예전처럼 바다 위에서 날이 밝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낮에 탈북을 감행하기로 했다.
5월24일 오후 1시, 점심시간에 노동자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간 사이 해안가는 고요했다. 박 대위 일가족은 또다시 준비된 배에 올랐다. 이번에는 두 아들에게 잠수복을 입혔다. 발각될 시, 두 아들을 바다에 던지고 자신과 아내가 배로 그들을 유인해 최악의 경우 아이들만은 살리고자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배에 올라 한 시간을 달렸을까, 전날 수리한 부분에 이상이 생겼는지 배에 조금씩 물이 차기 시작했다. 배를 운전하던 박 대위는 큰아들에게 물을 퍼내게 하고, 눈이 좋은 아내를 뱃머리에 세워 사방을 살피게 했다. 새파랗게 겁에 질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막내를 본 박 대위는 술독을 가져와 독한 술을 한 그릇 떠 막내에게 먹게 했다. 당시 14살이었던 막내아들은 술을 받아 마시고 12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안개를 뚫고 어디선가 큰 배가 나타났다. 단속함대였다. 물을 퍼내던 큰아들은 사지가 마비된 듯 얼어버렸고, 아내는 독극물 뚜껑을 열려고 했다. 박 대위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단속정이 약 500m 떨어진 배를 먼저 단속하던 틈을 타 최고 속력으로 주행했다. 재빨리 암초 뒤에 숨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 극도의 긴장을 달랬다. 그리고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바늘을 180도에 맞췄다.
다시 항해가 시작됐다. 아내가 겁에 질렸는지 눈앞에 시커먼 물체만 나타나면 방향을 돌리라고 손짓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박 대위는 초조함을 이겨내고자 출발하면서부터 10kg 가량의 술독을 들이켰으나 전혀 취하지 않았다. 북쪽과 멀어질수록 파도는 점점 거칠어졌고 생각지 못한 위기들이 닥쳐올수록 삶에 대한 희망마저 점차 사라져갔다.
나침반에 의지한 채 달려오다 새벽 2시경, 막내가 깨어났다. 막내는 어두운 바다를 두리번거리더니 ‘남쪽바다’라고 외쳤다. 박 대위는 술이 덜 깬 막내가 잠결에 헛소리를 한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 여기저기에 흩어진 흔적들을 보고나서 그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38선을 넘어 꿈에 그리던 남쪽에 도달한 것이다. 4명의 가족은 북을 떠나 14시간 만에 비로소 서로를 마주봤다. 박 대위는 나침반 바늘이 140도를 향하도록 힘차게 방향을 꺾었다.
시간이 흘러 날이 밝아올 무렵, 아내의 눈앞에 남쪽 해군함이 발견됐다. 박 대위는 아내의 손짓에 따라 재빨리 커다란 암초 뒤로 배를 숨겼고 시동을 끈 채 숨을 죽였다. 해군에게 발견되면 남한 땅을 밟아보기도 전에 그대로 북송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초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다시 위기를 모면하고 오전 11시, 나침반 바늘이 130도를 가리켰다. 암초들이 많아질수록 육지와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서서히 시동을 끈 채 노를 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탈북 24시간 만인 5월25일 낮 1시, 멀리 희미하게 산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