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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성겸 2009/05/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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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내용인 "丸都=北都"는 조작인듯!
    건필하세요...!

    얼마전까지, 저도 자전에 속고 삼국사기에 속았습니다.

    "移居于<{좌氵우尙}南><牛山>, 改爲<丸都>, 本<桂婁>之都也."
    "탕남{탕산 또는 탕하/탕수의 남쪽}"의 "우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환도"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시 "<계루>{옛 졸본국에 서남?접한 환나국}"의 도읍지였다.

    西都는 옛 북부여 侯國 黃龍 東都 터에,
    東都는 옛 북부여 侯國 卒本과 順奴의 중간 정도지점.
    고국원/고국천은 옛 북부여 侯國 順奴지경으로 잠시 沸流국에게 속하기도.
    고구리 초기 도성{동도}의 위치는 후세 通州 薊縣지경이라는 기록도...
    고구리 平壤城 위치는 동천왕의 평양성과 장수왕의 평양대성이
    같은 곳인지 아닌지도 궁금하며,
    저로서는 칠로도산맥 이서지역 또는 산서성 혹은 하북성의 어디인 것으로 보나 아직 오리무중이고,
    동천왕과 관구검 사이의 전사를 꿰뚫어야 할 듯한데 竹嶺에서 막혀있음...

    "河北"이라는 기록만 나오면,
    무조건 현금의 "河北城"으로 생각하는 것은 금기사항!
    무조건 黃河 북쪽을 쳐다보는 것도 금기사항!
    "서안평"은 옛 "안평국" 땅의 서부 또는 서방인 듯.
    옛 "안평국"의 위치는 현금 산서성 남부의 "안읍"지경 또는 "안택"지경이었던 듯!

    "{좌水우尙}"의 자전상 독음은 "탕"과 "창"
    "唐"의 자전상 독음은 "탕"

    "唐河/唐水" 또는 "唐山" 남쪽 "牛山城"으로 거처를 옮겨 密都로 삼고
    이름을 丸都城으로 바꾸었다는 말...

    北都는 尉那岩城 또는 國內城으로
    고구리의 西進기지{서역지역의 선비/흉노지역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읍지}
    장수왕의 평양대성은 남진{현금 산동 및 하남성 방향} 또는 남서진{현금 관중방향}을 위한 도성이었던 듯!

    오늘은 여기까지만 공부한 것을 옮깁니다....
  • 자료 2009/05/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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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단군조선~고구려

    고구려 선조들의 나라는 단군조선 제후국인 고리국-지금의 내몽골지역으로 지도에는 '구려'
    여기를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다
  • 고구려 2009/05/13 [20:05]

    수정 삭제

    올바른 고구려사
    http://kr.blog.yahoo.com/sppopsj/1361691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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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 天帝大日高大光輝於世界之中

    하늘님의 태양이 높게 크게 빛나는 세계의 중심

    *고 : 높을 고. 태양(解=해)이 높이 크게 비침.
    *구려 : 가운데 나라. 거우리-가우리 [가운데 땅] 

    -구려 : 서기전2333년 단군왕검의 둘째 아들 부소가 봉해진 나라
    -고리국, 고구려 : 해모수는 고리국 출신이므로 해모수의 북부여를 고구려라고도 부르고, 북부여시대 제후국으로 고구려후(고리군왕이라고도 함)를 두었음. 해모수의 둘재 아들 고진이 고구려후임.
    -고구려 : 고주몽이 서기전37년에 정식으로 국호를 고구려라 칭함. 고주몽은 고진의 손자인 옥저후 고모수(불리지)의 아들로서 해모수의 현손자임.

    1. 동명성제 시대 : 서기전37년~서기전19년

    *서기전58년 졸본에서 북부여 승계
    *졸본은 상춘(장춘)의 동남쪽으로 동부여를 지나 동남쪽에 위치한다. 즉 장춘의 동쪽은 길림이고, 길림의 동남쪽에 졸본이 위치하게 된다.  동부여는 고두막한 북부여의 동쪽에 위치한다.
    *고두막한은 원래 졸본 출신으로서 서기전108년에 의병을 일으켜 동명이라 칭하였고 서기전86년에 상춘(장춘)에 있던 북부여 수도를 차지하고 해부루를 동부여 제후로 삼았다.
    *고두막한이 서기전59년에 붕어하자 아들 고무서단군이 졸본에 장사지내고 졸본을 수도로 삼았으며, 이때 동부여에서 탈출한 고주몽을 사위로 삼은 것이다.
    *동부여는 길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 되고 졸본은 돈화 또는 돈화와 백두산의 중간 지역에 있는 땅이 된다.

    -서기전37년 졸본에서 고구려를 건국함.
    -서기전28년 비류(沸流)의 송양(松壤) 정복하고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라 함.
    *비류는 옥저, 졸본 등과 함께 원래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음.
    *연호를 다물(多勿)이라 함. 송양을 다물후(多勿侯)로 봉함.

    -서기전27년 북옥저 멸망
    -서기전26년 수도를 눌현(상춘)으로 옮김.

    *유리왕 때 서기1년(또는 3년)에 국내성(집안)으로 수도를 옮김.

    2. 대무신열제 시대 : 서기18년~서기44년

    -서기37년 최씨 낙랑국 멸망 : 한반도의 평양에 있던 낙랑국(서기전195년~서기37년). 최리 왕 시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자명고 무대

    *낙랑(홀)의 세력가는 최씨인데, 서기전195년 최숭이 발해만 서쪽의 패수(난하)지역 낙랑(홀)에서 보물을 배에 싣고 한반도의 평양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워 낙랑국이 됨.
    *즉 원래의 낙랑(소위 한사군의 낙랑군 자리)은 요동지역으로서 원래의 패수지역인 산해관과 갈석산의 서쪽지역으로 요하(탕산과 북경 사이에 흐르는 강)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에 있는 요하는 서기980년경 거란 시대에 부른 강이며, 원래는 서압록이라 하였고, 그 상류는 구려하에 해당하고, 이 구려하 지역은 강이 갈래가 많아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 지역이 된다. 구려하는 단군조선의 구려국에 있으며, 지금의 요하문명권의 중심지인 적봉시가 소재한다.
    *한반도의 대동강을 패강(패수)이라 한 것은 아무리 빨라도 서기195년경 최숭이 이동해 온 후에 붙여진 이름이 될 것이다.

    3. 모본제 시대 : 서기48년~서기53년

    -요동 회복 

    *요동은 요하(탕산의 바로 서쪽과 북경의 동쪽으로 좀 떨어진 곳 사이에 흐르는 강)의 동쪽으로 난하를 포함하며 지금의 요하 즉 요동반도 서쪽지역을 가리킨다. 지금의 요동은 지금의 요하의 동쪽인 요동반도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쉽게 말하면 요동지역은 북경의 동쪽과 탕산의 동쪽으로 요동반도 서쪽 사이의 땅을 가리킨다.
    *북경의 서쪽과 천진지역은 요서지역이 된다.

    4.  태조 시대 (서기53~서기146)

    -옥저와 동예 복속
    *옥저는 백두산과 압록강(동압록)의 이북에 위치한 나라이다.
    *고주몽의 아버지 고모수(불리지)는 해모수의 증손자로서 북부여 시대의 제후인 옥저후이다. 서기전79년 고주몽을 낳고 얼마 안되어 사망하였고 유화부인이 혼자 길렀다.
     
    -서기55년 요서 10성 축조 : 안시, 석성, 건안, 건흥, 요동, 풍성, 한성, 옥전보, 택성, 요택(요하하류 진펄)
    *안시성은 개평(開平)의 동북 70리에 있다 함. 옛 탕지보 자리임. *탕지보는 단군조선의 번한 수도 중의 하나임. *개평은 지금의 당산(唐山,탕산)의 북에 있음.
    *석성(石城)은 건안성의 서쪽 50리에 있음.
    *건안은 안시성의 남쪽 70리에 있음.
    *건흥은 난하의 서쪽에 있음.
    *요동성은 창려 남쪽에 있음. *창려는 갈석산 지역임. 험독(險瀆)의 자리임.
    *풍성은 안시성의 서북 100리에 있음.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있음.
    *옥전보는 한성의 서남 60리에 있음. 옛 요동국 자리임.
    *택성(擇城)은 요동성의 서남 50리에 있음.
    *요택은 황하북류의 좌안에 있음. 이세민이 서기645년에 침입하여 오다 진흙에 빠진 곳임. *발해만의 침몰 등으로 강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봄. 요택은 요하하류의 진흙 벌지역을 가리키며, 난하의 서쪽이고 황하북류 하류의 동쪽이며 요하하류 지역에 해당된다.
    *요서는 요하의 서쪽으로서 난하(패수)지역의 낙랑(군)의 서쪽 강 건너 지역이 됨. 즉 지금의 북경 서쪽과 천진 지역을 가리킨다.
    *건흥성이 난하의 서쪽에 있다 하므로 요서10성은 모두 난하와 요하와 황하북류의 하류 지역에 있는 것이 된다.
    *상곡(上谷)은 대동부(大同府)(따퉁)임

    -서기57년 백암성, 통도성 축조
    *통도성은 단군조선 초기에 요중(遼中) 12성의 하나로 이미 축조되었던 적이 있는 성임. 고려진(高麗鎭)이라 하는데, 북경의 안정문(安定門) 밖 60리에 있음. 즉 통도성은 북경 근처 바로 동쪽에 있는 것이 된다

    ***번한의 요중 12성 : 험독, 영지, 탕지, 통도, 거용, 한성, 개평, 대방, 백제, 장령, 갈산, 여성
    -창려지역의 험독과 갈산(갈석산)은 고구려의 요동성 부근이며탕지보는 고구려의 안시성이고, 한성은 동일한 것이어서, 번한 요중 12성과 고구려의 요서 10성이 겹치거나 근처에 있는 것이 되며, 특히 통도성은 단군조선과 고구려가 동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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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105년~서기121년 : 현도군, 낙랑군 공격하는 등 요동 회복
    *현도와 낙랑은 요동의 일부지역에 해당함. 낙랑은 패수(난하)지역에 있고, 현도는 낙랑의 동북으로 진번과 대방의 서쪽에 있는 땅임.
    *진번은 진한과 번한의 사이에 있는 나라가 되며, 단군왕검의 셋째 아들인 부우가 봉해진 나라임.
    *대방은 대수지역의 땅으로서 대수는 요동반도 서쪽에 붙어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며, 서압록(지금의 요하) 바로 밑에 있는 강이고, 서쪽의 패수와 이 대수 사이의 땅이 패대지역으로서 요동의 중심지가 된다.
    *낙랑과 대방사이에 임둔이 소재하고 임둔의 북쪽에 진번과 대방의 서쪽에 현도가 소재한 것이 된다.

    5. 신대제 시대 : 서기165년~서기179년

    -서기168년 : 요동정벌

    6. 산상제 시대 : 서기197년~서기227년

    -서기197년 : 현도, 낙랑 멸망, 요동태수 공손탁 토벌하여 요동 평정
    *현도와 낙랑을 정벌하여 멸망시켰으나 다시 전쟁으로 뺏고 뺏기는 상황임.
    *현도는 진번의 서쪽에 해당하는 땅이며, 낙랑의 동북에 위치한다.
    *낙랑은 난하(패수)를 중심으로 서쪽의 탕산과 북경의 동쪽에 위치하는 땅이다. 

    -서기209년 제2환도성(통구)으로 천도
    *제2환도성은 국내성의 산위에 있음

    7. 동천제 시대 : 서기227년~서기248년

    -서기242년 서안평 공격
    *원래의 서안평은 난하 상류의 북쪽인 옛 구려하(지금의 서요하 상류) 지역에 있던 땅으로 거란의 서경 임황부임. 요하문명권의 적봉시 근처에 있는 땅임. 서안평은 요하(패수의 서쪽 강)의 상류 쪽의 동쪽에 있어 요동지역 중 서북쪽에 해당함.

    -서기246년 위나라 관구검에게 제2환도성 함락당함.
    -서기247년 평양 천도

    8. 미천제 시대 : 서기300년~서기331년

    -서기313년 : 대방, 낙랑군 축출, 현도정벌, 8,000명 평양 이송
    *대방은 진번의 남쪽에 있어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에 붙은 대수지역의 땅이 되고, 이 대수는 지금의 요하 남쪽 바로 밑에 있는 강이며 발해만 쪽으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낙랑군은 갈석산, 산해관을 중심으로 북경의 동쪽, 탕산의 동쪽에서 난하를 중심으로 하는 땅이다.
    *대방은 요동반도의 서쪽에 걸치는 지역으로서 대수지역이며, 낙랑은 패수지역으로서 발해만 서쪽에 해당하는 난하 지역에 있고, 현도는 낙랑과 대방사이에 있음.
     
    -서안평 점령

    9. 고국원제 시대 : 서기331년~서기371년

    -서기342년 전연(前燕)의 선비 모용씨의 칩입으로 제3환도성(집안) 함락
    -백제 근초고왕에게 한강에서 전사

    10. 광개토경호태열제 시대 : 서기391년~서기412년

    -후연 격파, 요동 확보
    *요동지역은 지금의 북경 동쪽, 탕산의 동쪽으로 요동반도 서쪽 지역이 됨.
    *즉 최대한으로 북경까지 확보하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읍루 정벌
    -한강 이북 점령
    -서기392년 백제 10성 점령
    -서기395년 백제를 패수에서 격파
    *패수는 난하를 가리키며 이때 백제는 요서군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임. 난하 서쪽에 있는 강 건너 지역이 요서임.

    -서기400년 왜 격퇴, 삼가라 복속
    -거란, 백제, 신라, 가락, 임나, 이왜 복속  
    -서기408년 북연과 수호

    11. 장수홍제호태열제 시대 : 서기412년~서기491년

    -동진, 송, 북위와 통교
    -북연, 실위, 거란 복속
    -신라, 백제 조공
    -서기427년 평양 천도
    -서기475년 위례성 함락, 개로왕 전사시킴
    -서기480년 신라 정벌, 죽령이북 점령
    -말갈 정벌
    -서기414년 아버지 광개토호태왕릉을 옮기고 광개토경호태열제 비 건립

    12. 문자호태열제 시대 : 서기491년~서기519년

    -서기493년 연나부 낙씨의 동부여 복속
    *연나부 낙씨는 동부여 대소왕의 사촌동생을 봉한 나라로 고구려의 서쪽지역에 안치하였으며, 이때 동부여가 완전 멸망한 것이 됨. 

    -서기501년 백제 동성왕 폐위 시킴
    -서기501년 제, 노, 오, 월 복속
    *제, 노, 오, 월의 땅은 중국내륙의 동쪽에 걸치는 땅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의 번한 관할에 속하며 청구와 남이(藍夷), 회이, 서이, 엄이, 래이, 개이, 양이, 우이 등 내륙의 8이와 적이(赤夷.남만)의 나라가 된다.

    -서기503년 백제의 요서와 진평 병합,  백제군 폐지
    *요서는 난하(패수) 서쪽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요동 요서 지역에 백제군이 있었으며, 원래 단군조선 시대 번한 땅의 요중(요동 요서)에 백제성(百濟城)이 있었다.

    13. 평강상호태열제 시대 : 서기559년~서기590년

    -서기576년 온달장군이 갈석산(碣石山), 배찰산(拜察山)의 적을 토벌하고 추적하여 북주(北周) 대파, 유림진(楡林鎭: 산서성 경계지역) 이동 평정
    *갈석산은 난하(패수)의 동쪽에 있는 산이며, 그 부근은 단군조선 시대 번한의 수도가 있던 땅이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고, 낙랑(홀) 지역에 해당한다.
    *온달장군이 다시 요동에 침입한 적을 토벌하고 북주를 대파하여 산서성에 있는 유림진의 동쪽을 평정하였다는 말임.

    14. 영양무원호태열제 시대 : 서기590년~서기618년

    -서기598년 요서 공격, 수문제 30만 침입
    *요서지역은 지금의 북경의 서쪽과 탕산의 서쪽 천진을 포함하는 지역이 됨.

    -서기598년 서부대인 연태조(淵太祚)가 등주 정벌
    *연태조는 연개소문의 아버지
    *등주는 산동지역에 있던 땅임

    -서기603년 연개소문이 조의선인에 선발됨(9세)
    *서기595년에 출생한 것이 됨. 김춘추는 서기603년 출생, 김유신장군은 서기595년으로 연개소문과 동년배가 됨.

    -서기612년 수양제 1차 침입 100만대군,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
    *살수는 한반도에 있던 강이 아니고 요동반도의 해성 남쪽에 있는 강으로서 남쪽으로 흐르며, 남해안이 지금의 황해이다. 지금의 압록강 서쪽과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고 요동반도 남쪽 끝으로 흐르는 강이다.

    -서기613년 수양제의 2차 침입 실패
    -서기614년 수양제의 3차 침입 실패
    -서기618년 수나라 멸망함

    15. 영류제 시대 : 서기618년~서기642년

    -천리장성 축조 : 부여현~남해부(부여성~비사성) : 요동반도의 서쪽 지역에 걸치는 곳임.
    *부여는 원래 하얼빈 서쪽의 부여가 그 시초이고, 상춘은 북부여에 속하고, 장당경은 중부여에 속함. 부여현은 상춘과 장당경(개원, 심양)의 서쪽에 해당하는 땅이 됨.
    *단군조선의 부여는 단군왕검의 네째 아들 부여가 봉해진 나라로, 부여의 수도는 상춘의 북쪽이며 하얼빈의 서쪽 지역이다.

    -서기642년 연개소문이 영류제를 폐하고 보장제 옹립

    16. 보장제 시대 : 서기642년~서기668년

    -서기644년 안시성 전투
    -서기645년 당나라가 1차 침입하자, 반격하여 산서, 강좌, 하북, 산동을 고구려에 복속 하기로 약정
    *산서성은 태원지역 등 서쪽을 가리키고, 하북은 북경을 포함하는 지역이고, 산동은 지금의 산동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이 된다.
    *강좌는 강의 왼쪽이라는 말인데, 강은 양자강을 가리킨다고 보면, 강좌는 양자강 하류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만약 강좌를 산서와 하북의 중간 지역이라면, 태원의 동쪽에 있는 황하의 동쪽을 가리키게 된다. 그리하여 태원을 포함하는 산서성과, 황하하류를 포함하는 강좌 하북 지역과, 산동지역을 보장제 때 고구려에 복속하기로 당나라 이세민과 약정을 하였다는 말임.
    *실제로 연개소문이 당 이세민을 쫓아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추격하여 굴복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음. 그리하여 장안의 동쪽에 해당하는 땅 모두(산서, 강좌, 하북, 산동이 됨)를 고구려의 땅으로 복속시키기로 이세민에게서 약정을 받은 것임.
     
    -서기648년 당의 2차 침입 실패
    -서기649년 당의 3차 침입 실패
    -서기657년 연개소문 사망
    *서기595년~서기657년 63세가 됨. 또는 서기665년경에 사망하였다 하는데 71세가 됨.

    -서기668년 1년 항전 끝에 평양 함락됨.

    =========================
    *이상으로, 고구려의 요동, 요서 정복활동으로 보건대, 요동 땅 중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요동반도의 서쪽에 해당하는 진번, 대방, 현도, 임둔 은 물론, 요동의 시작 지점인 지금의 북경 동쪽과 탕산의 동쪽의 낙랑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심지어 장안까지 추격하여 태원 등 동쪽의 땅을 고구려에 복속하기로 당 이세민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등, 요동과 요서의 격전지는 바로 발해만의 북쪽에 걸치는 지역으로서 북경, 갈석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된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서기980년경 요(거란) 시대에 붙여진 강 이름이며, 이 이전의 요동과 요서는 지금의 북경의 바로 동쪽과 탕산의 서쪽 사이를 흐르는 강인 요하를 기준으로 나눈 지역이고, 이 요하의 동쪽에 있는 강이 바로 난하로서 원래의 패수이며 원래의 낙랑이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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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독, 탕지보, 번한성 보완(아래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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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2009/05/13 [21:05]

    수정 삭제

    장수태제에게 감사할 일
    만약 고구려의 수도가 지금의 평양에 없었더라면, 지금의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이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기427년부터 서기668년까지 고구려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 되었다. 그리고 한때 서기247년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적도 있는데 이는 서기전246년에 위나라 관구검에게 제2환도성을 함락당한 때이다.

    장수왕이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은 후손이 되는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고구려의 역사를 지키는 데 든든한 방패막을 한 것이 된다.

    만약 고구려의 수도가 평양에 있지 않고 압록강 이북에만 있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아마도 한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마음대로 자기네 역사로 무단편입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이므로, 조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으로 하여금 더이상 역사를 조작할 수 없도록 고구려의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어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로 정립되도록 못을 박아 놓은 업적을 이룬 것이 된다.

    고구려는 북부여를 계승한 것을 천명하였고, 북부여는 단군조선을 계승하였으며, 특히 고주몽성제는 다물이라 하여 단군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고자 연호를 정하고 단군조선 진한의 땅을 회복하였다.

    고구려의 역사를 지킴으로써 우리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지킬 수 있고, 나아가 배달나라, 한국의 역사를 지킬 수 있다.

    신라도 물론 단군조선의 유습을 이은 나라이며,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단군의 단, 박달을 차용하여 성을 박으로 하였다. 박혁거세는 북부여의 거서간을 자칭하였고, 나중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몰리자 왕국을 자칭하게 되어 나라를 스스로 지키고자 하였다.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의 장군 대중상은 후고구려라 칭하여 아들에게 물려주니 아들 대조영은 결국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진국을 세웠다. 대진국은 남경(南京)을 한반도 땅에 두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와 남쪽의 신라, 백제, 그리고 대진국과, 남쪽의 신라는 남북국 시대를 이룬 것이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고구려가 당연히 우리 역사임을 알고 있으나, 단군조선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구려의 역사를 우리역사인지 중국의 역사인지 헷갈리게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에 둠으로써, 고구려 역사를 한국의 역사에 남도록 못을 박은 것이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을 탓할 것만은 아닌 것이다.

    ==================[고구려 수도이전

    *서기전58년~서기전26년 : 졸본 시대
    *서기전26년~서기1년 : 상춘 시대(늘봄, 눌견, 눌현)
    *서기1년~서기209년 : 국내성(집안), 제1환도성 시대
    *서기209년~서기246년 : 제2환도성 시대 *제2환도성은 국내성 산위에 있음.
    *서기247년~ : 평양 시대
    *서기 ~서기427년 : 제3환도성 시대
    *서기427년~서기668년 : 평양 시대
    ==============================
  • 남원윤 2009/05/15 [13:05]

    수정 삭제

    성훈님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애 쓰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언제나 응원할께요~ 아자~
  • asdfa 2009/05/15 [19:05]

    수정 삭제

    정신이상인 사람들 많네.
    계속하시기 바람.전 세계인구에게 병신인증 받을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람.
  • ASDFA 2009/05/15 [19:05]

    수정 삭제

    도대체 저 위치에 뭐가 ?
    며칠 전에 백제가 저위치에 붙어 있드만은 지금은 고구려가 되여 버리고 몇일지나면 신라가 되겄지.
    축하 합니다.매일 부동한 꿈으로 자위를 할수 있어서.
  • 대칸 2009/05/20 [17:05]

    수정 삭제

    구리넷의 산서성 고구려 영역으로 보기는 더욱 연구필요?에 대한 반박 글입니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가 특히...
  • 박상희 2009/05/31 [01:05]

    수정 삭제

    변화가 힘들죠?
    기존 배운 역사에 변화 하는게 힘들건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분들이 의심스럽군요. 한국인인지...
    윗글 보면 못느끼나요? 노력하신것을? 당신들이 저런 노력을 보이려면 죽어도 못할겁니다. 왜냐? 한국인이 다가지고 있는 근성과 자부심 노력이죠. 핏속에 쪽빠리 피가 흐르지는 않는지 족보 있으시면 뒤져보세요.ㅇ ㅣ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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