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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김성태 2011/10/0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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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나 길게 왔다니
    리복재회장님 어떻게 된일이입니까?
    2008년대법원앞에서 통곡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습니다.
    전화드려도 받지 않으시니 더더욱 애가탑니다..
    식민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정신을 못차린 야바위꾼들만 드득실거리니 님같은 분들이 그많은 고초를 받게 되는군요.
    재판받으실때 전화라도 주시지 않구요.....
    혼자서 그통을 감내하시니 안쓰러워 미치겠습니다
    우리 언론인이라도 뭉쳐야 하지 않나요?
    플러스코리아 대표님도 바뀌셨군요.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졌으면 바랄게 없겠는데요...
    몸추스리시고 조만간 연락 주세요.
    애쓰셨습니다.
  • 바다사랑 2011/10/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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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파죽겠어여
    리회장님의 곧은성정을 이용하는세력이 많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게 이세[상을 사시는지 알만한사람다 안답니다..
    일제식민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
  • 바다사랑 2011/10/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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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서
    그들릉 단죄하지 못한 현실에서 마냥 울먹이며 서있는 민중들이 원망스러울테지요
    힘내세여
    한숨 내쉬고 긴 호홉가다쉬며 미래를 위해 가셨으면 합니다...]
    연락드릴께여
  • 의정부아줌마 2011/10/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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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가요
    정의를 세우시는 님이 계셔서 그나마도 좀 사는이유가 잇지요..
    2005년도부터 알게된 이복재 기자님...
    가진자보다는 소외되고 어려운사람을 위해 뛰셨던 기자님.
    알만한사람은 다압니다...
    심신이 고단하고 마음고생이 많으십니다..
    넷상에 올려 많은분이 보게 할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언제나제대로된나라가 될까? 2011/10/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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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분이천지를진동시켜라
    기가차 말이안 나오네
    어떻게 이런 나라 사법부 정의가 있나
    이현령비현령의 나라
    ]그래서 못같은 나라 이 사회가되었지
    속이 끓어 죽겠다 정말이지
  • j. hdsaer 2011/10/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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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요
    한국말은 잘못하지만 아름다운분이세요
    그리고 페이스북서 이복재 당신 생일 축하도 했어요
    Your Happy Birthday! Card
    I Created a Special Birthday Card for You!
    Happy Birthday!..
  • 만정 2011/10/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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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힘드시겠다
    도와 드리지도 못하고 참으로 세상이다 식민지란 나라가 ==
  • 백동 2011/10/3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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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무엇인지
    얼마전에 모 매국노의 유산을 국가가 환수함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법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몇푼의 돈에 침략의 원흉들을 미화한다면 민족의 자존감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법, 오호라. 가슴 아픈 법이여-.
  • 민의 2011/11/0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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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러운친일파놈들때문에 진정한 독립국가를 못이룩하는 나라
    우리는 친일파들이 보수의 탈을 뒤집어서고 벌이고 있는 저주의 굿판을 목도 하고 있다..



    친일파를 일거에 숙청할 기회는 해방 후에 있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은 통일민족국가 수립과 함께 민족적 과업이자 역사적 당위였다.
    그러나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일파는 우리들 사이에 시퍼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 안타까운 현실은 해방 후 우리역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결과이다.
    상해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이 염원이던 우리 손으로의 광복이 아닌 외세에 의한 광복의 결과물인 것이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족해방운동세력이 집권하게 마련인데,
    한국은 미국의 입맛에 맞는 이승만이 친일파들과 손잡고 정권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근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다고 본다.
    점령군으로 온 미국은 한국민의 염원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치안유지와 대소반공기지로써의
    한국의 역할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일제시대 관료, 경찰, 군인들을 고스란히 그 자리에 두었고
    친일파들은 재빠르게 반공주의자로 얼굴을 바꾸고 그들의 생존은 물론 나라를 팔아 이룬 부귀영화를 계속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친일파들이 숭미와 반공에 목을 맬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수있다.
    그들의 반공은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닌 해방후 친일파를 일소한 공산정부에 대한 심연 깊숙한 곳으로 부터 스물스물 흘러나오는 원초적인 두려움때문이리라....
    이런 맥락에서 숭미 또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할 필수조건인것이다.
    미국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다 아는 사실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이 시치미 뚝떼고 미국의 신민이 되기를 즐거이 하는 것은 그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들이 진정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건전한 보수우익이라면 지금과 같은 무조건적인 숭미가 아닌
    이나라를 위해 미국을 적당히 이용할줄 아는 용미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친일파문제는 한국사회의 원죄이다.
    해결없이는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친일파가 분단주의자가 되고 반북, 반평화, 반통일주의자가 되었다.
    그것이 그들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파 결코 옛 이야기가 아니다.
    그 후예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민족의 목을 조이고 민족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민족 최대의 현안인 것이다
    민족반역 행위가 실정법으로 다스리기 어렵다면 역사적 징벌을 통해서
    친일파를 모체로 한 냉전, 반통일주의자가 더 이상 생산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친일파 청산을 오늘의 우리마저 허지부지 지나쳐 버린다면
    선열에 대한 큰죄를 짓는 건 물론이고 민족의 정신문화를 나락의 길로 떨어지게 하는 것일 것이다.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이후 또 국란이 온다면 그 누가 나라를 위해 선열들이 그러했듯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조국과 민족의 뼈와살,피를 팔아 이룬 친일파들의 영달과 부가 60년 넘게 온전히 보전되고 또 세습되고 있다. 조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저 견고한 친일의성을 허물지 않고는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절은 없다.

  • 척결 2011/11/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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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들이 이길것 같지만....
    친일파매국역적들이 떵떵거리고 매번 이기는 이유는?

    답은 *돈*!!!!!!!!이 있기때문이다........

    또 그들이 이길수 밖에 없는 이유?
    정치권에 속속들이 친일파의 후손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승만시대의 정치인은 거의 모두 친일파였다.

    그러나 결국 리복재선생이 이기는 이유?
    돈은 없어도 양심과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의 역사를 알린다는 사실이다.
    너무 서러워 마시라
    훗날 당신은 위대할테니...
    건강하시고 힘내시지요?
    리복재기자님 시인님 선생님 언론협회장님
  • 정동진 2011/11/12 [11:11]

    수정 삭제

    가슴이 저립니다
    어찌 아프다하지 않겠는가~
    돕지 못한 제자신을 책망해 봅니다.
    리복재님같은 분들을 모르고 사는 세태가 비웃기라도하듯이 버젖히 떵떵거리고 사는 친일파들 미국파들
    정말이지 가슴아픈 민족이 되었소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광복절은 광복회원들이 기다리는 잔칫날이다. 대접받는 날, 민족해방을 경축하는 날, 얼마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날인가? 하지만 알고 보면 거짓 환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찬 날이다. 그래서 나는 안간다.”
  • 뉴스 2011/1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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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이 부끄럽다
    '광복절이 부끄럽다'국립묘지 안장 친일파 명단






    오늘은 66주년 광복절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억압과 고통을 받던 세월에서 독립된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오점 중의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같은 동포를 괴롭히며, 일본에 충성을 다했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해방되었지만, 오히려 친일파들은 권력과 부를 형성하여, 대한민국을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의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친일파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살다가 죽으면 다행인데, 이들의 후손은 친일의 대가로 받은 엄청난 재산을 다시 물려받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애국지사와 함께 버젓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애국지사 '김산'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 주인공으로 "현대의 지성을 소유한 실천적 지성"으로 격찬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가 일제에 의해 조작되어 일본 스파이 명목으로 중국에서 처형되었지만, 그동안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했었습니다.

    '김산' 같은 애국지사는 수십 년 동안 훈장하나 받지 못했지만, 친일파들은 떳떳하게 훈장도 받고 국립묘지에 당당하게 안장되어 있습니다. 오늘 광복절을 맞이해서 이런 비통하고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친일파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백낙준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예일대학을 거쳐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조선장로교 신도 애국기 헌납 기성회 부회장으로 친일에 적극적이었던 종교인 친일파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선임전보국단'이 도대체 어떤 단체인지 알아야 합니다.

    1941년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친일 단체가 모여 만든 조직
    이들이 내세운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충성 그 자체였습니다.
    ▷ 국민생활 쇄신: 철저한 황국신민주의 생활
    ▷ 근로보국에 의한 국민개로(國民皆勞) 완수: 일본 침략 전쟁을 돕기 위한 노동력 착취
    ▷ 국방사상 보급:일본 침략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미화
    ▷ 전시하의 국책협력: 일본 전쟁을 위한 모든 물자 및 노동력 동원 협력

    '조선임전보국단'은 일제 침략전쟁을 위해,일본군 강제 위안부와 학도병,강제 노역을 미화하는 시국 강연회는 물론이고,돈을 모아 일본 군용기 헌납 같은 모금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악랄한 친일단체였습니다.
    이종욱은 친일승려로 3.1 운동 당시에는 만세운동에도 참가했지만, 그 후 변절하여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일제 군용기를 위해 전국 사찰에 모금액수를 할당하여 징수하거나,일본의 승리를 위해 전국사찰에서 승리기원 법회를 여는 등 조직적인 친일행적을 벌였습니다.

    친일파 중에서 종교인의 타락은 일반인보다 더 치밀하고 무섭습니다. 이들은 종교라는 특성을 활용해서 조직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법회와 예배 시간에 적극적으로 일본을 찬양하며 자신들의 제자와 신도들을 일본을 위해 희생시켰습니다.

    백낙준은 1950년 이승만에 의해 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지만 친일 행적으로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재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백낙준은 전두환 국정자문위원과 문교부 장관이었다는 자격으로 국가유공자 묘역에,이종욱은 초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애국지사 묘역에 지금도 누워 있습니다.




    친일파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시대에 친일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냐? 그 당시 조선인은 모두 친일파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이나 반민특위에서는 명확하게 친일을 규정짓고 있습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말단 면사무소 서기나 주사 같은 하위직을 친일파라고 규정하지 않고 직급을 정확하고 세심하게 명기해서 고위급 이상으로 친일 행적이 뚜렷한 자를 친일파라고 칭합니다.






    일제강점기 공무원은 말 그대로 일본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수행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친일파라고 규정해도 무방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서는 고등문관 이상 고위직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엄민영은 일제강점기 고위공무원이 되는 엘리트코스인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해 조선총독부 임명으로 임실군수와 무주군수를 역임했던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당연히 친일파였지만, 주일대사로 죽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황종률은 일본 괴뢰정부 만주국에서 일본에 충성하는 인재를 양성기관인 대동학원 출신이었으며, 단순 대동학원 출신이 아닌 만주국 경제부 금융과 사무관으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종률도 충청북도 도지사와 체신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 재임중 사망했다고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선근이라는 인물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선근은 조선일보 입사 한 달 만에 사설을 쓰는 등 사실상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만주로 갔던 인물입니다. 이선근은 만주에서 만주국 협화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항일단체를 토벌하는 관동군을 지원하는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에서 일본에 적극적으로 충성하였습니다.

    만몽산업 주식회사 상무이사로 재직하던 이선근은 관동군에 군량미를 보급하면서 일본전쟁에 적극 참여한 친일파규정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입니다.

    이토록 이선근은 친일파로 살았지만, 해방 후에는 정치적 아부 수준을 넘어, 정권에 기생하는 지독히도 뻔뻔하고도 몰염치한 삶을 살았습니다.

    ○ 일제강점기
    “……대동아공영권의 가장 건실한 신(新)질서를 건설해야만 될 것은 유구한 인류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중대 사명으로 …… 좀더 솔직하고 좀더 용감하게 신체제 건설에 희생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 특히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활동은 …… 민족협화(民族協和)의 신흥제국(新興帝國, 만주제국 지칭)에 있어서 가장 솔직한 자기반성으로 이 운동의 광휘 있는 실천은 장래 선계(鮮系, 조선인)국민에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반드시 좋은 영향을 가져오리라고 봅니다……”―『삼천리』 1940년 12월호




    ○ 이승만 정권
    1947년 8월 대동청년단을 창단하여 이승만 총재로 추대,이선근 본인은 부단장 겸 기획위원장
    1947년 9월 서울대학교 학생처장으로 국대안 파동 수습
    1956년 문교부 장관으로 정,부통령 부정 선거에 적극 개입

    ○ 박정희 정권
    “…민족,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유신(維新)정신, 새마을정신으로 우리 동대(東大, 동국대)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동대신문(東大新聞)』, 1974년 7월 30일
    1978년 정신문화연구원 설립 ‘유신이념의 한국 사상사적 체계화’ 설파

    ○ 전두환 정권
    “전두환 장군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된다는 데 국민의 여망이 모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서울신문』, 1980년 8월 20일

    이선근은 친일파가 그대로 살아남아 어떻게 이 나라에서 살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라는 책을 저술하여, 친일파들이 어떻게 친일을 은폐하고,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시켰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인은 대한민국의 적군이었습니다. 독립군과 전쟁을 하는 군인 중에서 특히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친일파로 규정지어도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이응준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활약한 지청청과는 달리 일본군 장교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항일조직을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조선에 와서는 배속장교로 학생들의 군사 훈련 교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태평양 전쟁으로 19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징병제를 선전하며 지원병제도와 학도병으로의 참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다녔습니다. 이응준은 일본으로부터 훈4등 서보장,훈3등 서보장의 훈장을 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정 고문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김창룡은 계급으로 보면 친일파가 될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얼마나 지독하게 항일조직을 토벌하고 적발하고 다녔는지 헌병오장까지 특진했던 그의 성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지독한 친일행각은 아랫 글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韓國/시사] - 김창룡,일본과 독재의 앞잡이가 아직도 국립묘지에 있다니

    정일권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간도헌병대 대장으로 복무했습니다. 이 당시 헌병대는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간도헌병대 대장은 실질적인 그 지역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흔든 존재였습니다. 그 당시 정일권을 기억하는 중국인은 이런 친일파 인물이 어떻게 한국에서 버젓이 육군 대장까지 출세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일권은 자신의 모교인 광명중학교에서 '앞으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유망하고 현명한 길이다'라고 연설하며, 조선인들의 군입대를 독려했습니다. 그는 일본인도 가기 어려운 만주국 육군대학을 거쳤는데, 이 과정은 일본군 현역장교가 장군이 되는 최상의 엘리트 코스였습니다.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자신의 권력과 출세를 위해 일본에 충성을 맹세한 이런 사람이, 해방되고도 승승장구하여 대한민국 육군대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은, 나라가 망해도 목숨을 바쳐 구태여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증거를 우리 후손에게 알려주는 결과입니다.

    일본군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친일파라고 매도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조선의 독립을 막아냈던 이들이 과연 '해방 후에 한번이라도 민족을 향해 사죄 했는가?'라는 질문에 떳떳하게 답을 할 수 있는가의 명제입니다.

    [韓國/정치] - 일본특수부대출신 백선엽 장군이 한국의 영웅?

    백선엽은 죽기도 전에 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고 탄압했던 이들이 친일파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수장들이 되어서 민족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공을 말하는 자에게 왜 그들이 적으로 규정했던 애국지사 독립 투사에게 한마디 사과도 없이 그들 옆에 떳떳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는지, 어쩌면 이 사실을 아는 애국지사들은 무덤에서 하루빨리 도망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국립묘지는 신성한 민족의 성지입니다. 친일파가 당당하게 들어 올 자리가 절대 아닙니다. 광복절에 돌아가신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보다,민족의 반역자들을 독립 투사 옆에서 하루빨리 이장해야 할 것입니다."

    자료 및 참고 문헌: 구양근 (반민족문제연구소)<이선근,역대 부도덕한 정권의 밑받침이 되어 준 이론가>,정운현(오마이뉴스)<만주서 일본군 군량미 지원한 '유신' 나팔수>,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위키백과,국가정부기록원,반민족문제연구소,국립서울현충원 안장기록시스템,반민족연구소<청산하지 못한 역사>,문화재보존연구소.





    제가 조사한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 취소는 보훈처 자체가 친일파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쯤 이장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을 취소한 친일파는 이장을 추진해야 하지만 아직도 그대로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애국지사 묘역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한 영령을 모셔야 하는 숭고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일본의 성전을 위해 조선인들은 영혼까지 천황폐하에게 바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조선인을 죽음으로 내몬 친일파 인물들이 묻혀 있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일제강점기에 가서 고문과 투옥으로 고생하는 독립군과 애국지사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지금 당신을 고문하고 있는 자가 애국지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냥 편하게 친일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당신의 후손을 위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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