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박종규 단편소설> 초 록 반 지 (2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10/30 [14:16]

<박종규 단편소설> 초 록 반 지 (2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10/30 [14:16]

 

 

<박종규 단편소설>  초 록 반 지 (2회)

    

“체력이 달리면 포기해라.”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구릉을 지친 몸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황토색으로 벗겨진 고갯길은 뜨거운 열기로 흙을 달궜고, 한 발짝 한 발짝 땅을 밀어내며 오르는 몸뚱이는 소금에 절여진 오이처럼 늘어졌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낙동강 물줄기를 팔팔 끓여 강바닥이 드러나도록 태웠다.

 

지금은 해거름이라도 낮 동안 대지를 달구었던 복사열기가 후줄근하게 목까지 차오르는데 우리 대원들은 20킬로그램이 넘는 군장 차림으로 가파른 고갯길을 뛰어서 올라야 했다. 대열은 지쳐 흐트러졌는데,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누군가의 넘어지는 소리가 헉! 하고 들렸다.

 

  “내버려 둬, 군에서 낙오자에게는 앞날이 없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김 중위의 내장을 뒤집는 쉰 소리……. 자기 총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동료를 잡아 일으키려는데, 김중위는 전우애마저 가로막았다.

 

  “귀관들은…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다. 나도… 귀관들처럼 그래! 대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선택… 받지를 못했다. 좃 같은 세상은…  선택 받는 자들과 선택…  받지 못한 자들의 싸움판이다.”

 

구대장도 숨이 차 말을 더듬는다. 그래도 그는 계속 지껄여댔다.

 

  “귀관들은… 부모… 잘 만나 호강하면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여기…선 그게 안 통한다. 호강이고, 대학이고 다 개… 나발이다! 불공평한 짓거리들은…  사회에서나 통한다. 군대는… 오로지 계급이고, 오로지 명령이고, 체력이다. 체력으로 이길 생각을… 해라!”

 

  그냥 호각만 불든지, 구령만 붙이면 될 것을 꼭 저렇게 입으로 오장 육부를 비틀어야 하나? 그리고 걸핏하면 자기 대학 못 간 얘기를 끄집어내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완전히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유치하긴! 다이아몬드 두 개가 아깝다.

 

나이를 따져보면 비슷한 또래더라도 군대에서 훈련생과 육군 중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늘같은 계급이 주었으면 마땅히 그 계급에 맞는 소임을 다 해야 한다. 소나 돼지 취급을 하면서 비인간적으로 다뤄야만 군 지휘 체계가 지켜지고 교육 효과가 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의 왼 손가락에는 청색 장교 반지가 끼워져 있다. 청색 장교 반지, 예쁘기만 했던 청색은 구대장의 역겨운 행동거지로 인해 더욱 혐오스러운 색깔로 변신중이다.

 

  우리 육군에는 장교가 되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각기 출신을 표시하는 세 가지 색깔의 반지가 있다. 붉은색, 초록색, 청색 반지이다. 장교는 다 같은 장교 아닌가, 출신이 무슨 문제일까 마는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그런 부분에서 녹 녹 치 않다.

 

각 출신 간의 견제가 매우 심하여 특정 세력이 비대해지면 다른 세력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예 장교 임용 제도를 손질해서라도 세력의 확장을 견제하려 든다. 세 경로를 통해 임관한 장교들은 각기 출신별 특성을 유지하면서 군에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규 4년 과정의 장교와 2년 과정의 장교, 4년제 대학 재학 중 3년간 군사교육을 받는 학군장교로 구분된다. 물론 진급은 능력에 따른다. 그러나 2년제 출신의 장교는 별을 달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여서 장교 대부분이 영관급에서 옷을 벗는다.

 

  구대장 김 중위는 2년제 출신이다. 얼굴은 반반한 편이나 그의 지휘방법 때문에 학군장교 후보생들 눈에는 일거수일투족이 밉고 거슬렸던 것이다. 그는 체력이 달려 낙오하는 후보생들을 항상 그대로 버려뒀다. 온종일 훈련을 받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 구대만 10킬로미터 구보를 더 하는 중이었다. 다른 구대는 지금쯤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터이다.

 

이것은 배에서 기름기를 빼고 소화시키는 운동(구대장의 표현)이 아니라 고문이다. 여기저기서 부드득 부드득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좆같은 새끼! 일과가 끝났으면 지도 좀 쉬어야 할 것 아냐!”

 

  “야, 언제 저 치 혼내주는 방법이 없을까?”

 

  나와 몸을 부대끼면서 뛰는 유대관 후보생. 웃옷의 목 부분은 땀에 절여져서 하얀 백태가 끼었는데 숨이 목에까지 차오른 표정으로 옆의 동료와 씩씩거렸다. 난 그들 말에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대꾸할 기력마저 없었는지 모른다.

 

다만, 지금 군사훈련을 받는 후보생의 처지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다. 유대관 후보생은 몇 번 나를 쳐다보면서 눈을 흘기더니 구대장의 뒷모습을 향해 주먹을 서너 번 흔들어댔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 번은……. 꼭 매운맛을 보여주고 말 거야! 두고 보라고.”

 

준수한 용모에 덩치가 큰 편인 대관이는 고교 시절에는 유도로 몸을 단련했고, 바른말을 서슴없이 하는 스타일이라 정의파로 통하는 후보생이다. 그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구대장은 그를 소위 여론 주도형 후보생으로 찍고 있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024년 경북 봄꽃축제 화려한 막 올린다!
1/23
광고
박종규 소설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