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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14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7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04 [16:37]

[홍익인간 7만년- 14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7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04 [16:37]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지 천산태백] 서기전1286년에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가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부여(夫餘)의 신궁(新宮)에서 천왕으로 즉위하고서 사람을 보내 오므로, 소태 천왕은 선양(禪讓)하지 아니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은퇴하여 아사달(阿斯達)에서 평민(平民)으로 살면서 생을 마쳤다.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의 천왕 즉위와 소태 천왕의 선양(禪讓)]

 

색불루 천왕이 백악산(白岳山)에 도읍을 골라 세우니 여러 욕살들이 불가하다고 고집을 피우니,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 등이 조칙(詔勅)을 받아 그들을 설득하였다. 이에 모든 욕살들이 마침내 따랐다.

 

옥책과 국보는 단군조선 중앙조정(中央朝廷)의 국보급 귀중품을 가리키며 특히 천왕의 권한을 상징하는 국새(國璽)를 포함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선양은 진정한 선양이 아니며, 군사력을 내세운 강압적 선양에 해당된다. 즉 군신(君臣)의 도(道)가 무너진 것이 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군신(君臣)은 없어지고 부자(父子)관계만 존재하였다는 식으로 임금의 대가 164년간 끊어진 취지로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1122년까지 164년은 엄연히 색불루(索弗婁) 천왕의 대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며, 색불루 천왕은 자신이 선대 단군의 자리를 계승하였음을 하늘에 제(祭)를 올려 고(告)하였고, 그 뒤로 단군조선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164년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오해에 따른 것이 된다.

 

제왕운기는 은나라 기자(箕子)가 주무왕(周武王)에 의하여 조선(朝鮮) 땅에 봉해진 것을 단군조선 땅 전체에 봉해졌다는 취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되어 역사적 오류가 심하다. 이는 이미 춘추필법(春秋筆法) 나아가서 역사날조 방식으로 이어져 온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으로 말미암아, 후세인(後世人)들이 진실한 역사적 자료를 보지 못하여 역사지식에 한계가 있는 데서 기인한 것이 된다.

 

[기수(奇首) 서우여(徐于餘)의 서인(庶人) 강등과 군사적 반항] 

 

서기전1286년에 소태 천왕은 옥책과 국보를 색불루에게 전하여 선양하고서, 이전에 살수(薩水)지역의 기수(奇首)로 봉했던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인(庶人)이 되게 하였다.

 

이로써 서우여는 기수(奇首)도 아니며, 이미 해성(海城)의 욕살(褥薩)로 아닌 그냥 평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우여는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자 몰래 좌원(坐原)에 돌아와 군사를 일으켰으며, 이에 색불루 천왕의 신하이던 개천령(蓋天齡)이 토벌하러 가서 서우여와 전쟁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이러하자, 색불루 천왕이 몸소 삼군(三軍)을 이끌고 서우여(徐于餘)를 토벌하러 갔으며, 이때 먼저 사람을 보내어 서우여를 비왕(裨王)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며 다시 설득하니, 이에 서우여가 따르므로 전쟁을 그치고 서우여를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인 번한(番韓)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후기 단군조선의 번한(番韓) 시조는 서우여(徐于餘) 즉 전기 단군조선의 종실(宗室)인 한서여(桓西余)이다.

 

[소태(蘇台) 천왕의 아사달(阿斯達) 은거]

 

서기전1286년에 우현왕 색불루에게 천왕 자리를 선양한 소태 천왕은 아사달에 은퇴하여 일반인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아사달은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286년까지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이다. 이후 서기전426년까지 상춘(常春)인 백악산아사달이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된다. 상춘은 고구려의 초기 수도로서 눌현(訥見)이라는 곳이며, 지금의 장춘(長春)이다. 눌현(訥見)은 한자로 읽는다면 눌견으로 읽는 것이 맞으며, 이두식으로 “늘봄(常春)”이라는 말을 나타낸 이두식 표기가 된다.

 

[고죽군자(孤竹君子) 백이숙제(伯夷叔弟)의 은거(隱居)]

 

서기전1286년 소태 천왕이 강압을 받아 색불루 천왕에게 선양하고 아사달에 은퇴하자, 고죽국(孤竹國)의 군자(君子)이던 백이(伯夷)와 숙제(叔弟)도 나라를 버리고 동해(東海)의 물가로 피하여 살면서 밭갈기에 힘쓰며 자급자족(自給自足)하며 살았다.

 

고죽국(孤竹國)이라는 나라이름은 글자대로 외로운 대나무의 나라가 아니라, 이두식 표기로서 “곧 대 나라” 즉 “곧은 대나무 나라”로서 절개(節槪)가 곧은 나라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동해(東海)는 고죽국(孤竹國)의 동해로서 지금의 발해만이 된다. 고죽국은 지금의 북경(北京)과 천진(天津) 등을 중심으로 하여 발해만 서쪽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데,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이후에 봉해진 나라로서 하(夏)나라 이전부터 존속한 나라이며, 서기전1766년 은(殷)나라 시조 탕(湯)이 하나라를 멸하고 은나라를 시작할 때 고죽국의 임금이던 묵태씨(墨胎氏)가 은탕의 즉위를 축하하였던 것인데, 백이와 숙제는 묵씨(墨氏) 또는 묵태씨(墨胎氏)가 되는 것이다. 한편,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墨子)도 그 성씨가 묵씨로서 고죽국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서기전1286년 당시 고죽국에는 군자(君子)가 셋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백이(伯夷)와 숙제(叔弟)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형제가 된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중간 형제에게 양보하여 군(君)의 대를 잇게 하고 동해 물가로 피하여 숨어 살았던 것이다.

 

맏이 이름에 백(伯)을 쓰고 막래 이름에는 숙(叔)을 쓰며 가운데 형제의 이름에는 중(仲)을 쓰는데, 고죽국의 백이와 숙제 사이에 있는 형제는 중(仲)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백이(伯夷)라는 이름은 고대중국에 흔히 사용되던 이름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숙제(叔弟)는 그냥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서기전1134년경 주(周)나라 태공 여상(呂尙)이, 주문왕(周文王)의 3년상(年喪) 중에 있던 주무왕(周武王)이 행차하던 앞길을 막고 주무왕이 불충(不忠)과 불효(不孝)를 짓고 있다며 충효(忠孝)에 관하여 설파하던 백이와 숙제를, 의인(義人)이라 하며 두 노인(老人)을 부축하게 하였다는 고사(古史)를 보면, 서기전1211년생이며 서기전1073년까지 139세를 살았던 강태공은 이때 약 78여세가 되어 노인이나 다름없었는데, 백이와 숙제는 서기전1286년에 최소한 15세라 하면 이미 167세를 넘는 나이가 되어 강태공보다 약 90세정도가 많았던 것이 된다.   

 

여기서 군자(君子)는 공자가 말한 도(道)를 지키는 군자(君子)라는 의미보다는 군(君)의 아들(子)로서, 고죽국(孤竹國)의 임금인 고죽군(孤竹君)의 아들(子)로서의 뜻이 된다. 고죽국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일반제후국보다는 그 지위가 높은 나라이다. 즉 군(君),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순으로는 군(君)이므로 제일 윗자리가 된다. 단군조선의 본 임금은 천왕이니 단군조선의 제후가 되는 그 아래 군후(君侯)들은 각각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이 되는데, 고죽국의 임금은 곧 천군(天君)이 되는 것이다.

  

고대중국의 임금을 천자(天子)라 하는데, 곧 중앙 즉 천상(天上)의 나라가 되는 배달조선의 제후가 되는 지방 즉 천하(天下)의 왕(王)이 된다. 고죽국의 임금은 천군(天君)이며 은나라의 임금은 천자(天子)로서 위계질서를 따진다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리하여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등 고대중국의 기록처럼 고죽국은 은나라의 제후국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은(殷)나라는 단군조선의 일반제후(一般諸侯)가 되는 자국(子國, 子爵國)에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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