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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9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6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4- (2) 구이(九夷) 중 자치국(自治國)으로 인정(認定)된 천후국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0 [01:07]

[홍익인간 7만년-19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6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4- (2) 구이(九夷) 중 자치국(自治國)으로 인정(認定)된 천후국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0 [01:07]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단군조선 건국시에 단군조선의 세력하에 놓인 구족(九族) 즉 구이(九夷) 중의 일부로서 자치세습국(自治世襲국)으로 인정된 천후국(天侯國)으로는 현이(玄夷), 백이(白夷), 견이(畎夷), 적이(赤夷)가 있다.

 

또 남선비를 봉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황이(黃夷, 北夷)에 속하면서 서기전5000년경 한국(桓國)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선비국(鮮卑國)은 자치세습국으로 인정한 경우가 된다.

 

그 외 백이(白夷), 견이(畎夷), 황이(黃夷)가 혼잡하여 산 것이 되는 지백특(티벳)이 있으며, 특히 적이(赤夷)에 속하는 남상(南裳)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1) 현이, 백이, 견이, 적이

 

구이(九夷) 중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남이(藍夷) 외의 현이(玄夷), 백이(白夷), 견이(畎夷), 적이(赤夷) 지역은 백이와 견이 지역에 여(黎)를 봉한 것 외는 특별히 따로 봉후국을 두지 아니하고 배달나라 시대부터 세습되어 온 대로 인정되었던 것이 된다. 즉 현이, 백이, 견이, 적이는 그 자체로 제후국으로 인정된 것이 된다. 천후국(天侯國)에 해당한다.

 

특히 견이(畎夷)는 서기전3897년경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개천할 당시에 견족(畎族)의 땅인 삼위산(三危山)으로 가서 제견(諸畎)의 가한(可汗)이 됨으로써 배달나라의 천자(天子)가 되었고, 이후 단군조선 구족, 구이에 속하였으며, 먼 후대에는 돌궐족이 되어 고구려와 대진국과 동맹을 맺어 형제국이 되었던 나라로서 지금의 터키(Turkey)라는 나라의 선대(先代)가 된다.

 

대대로 고대중국이 전쟁을 도발하거나 도(道)를 잃을 때, 주변에 있던 구이(九夷)가 정벌하거나 간섭이나 통제를 하였다. 주나라 춘추시대 이후 서쪽의 백이(白夷=西夷)와 견이(田犬 夷)를 서융(西戎)이라 부르고, 북쪽의 황이(黃夷)를 북적(北狄)이라 부르며, 남쪽의 적이(赤夷)를 남만(南蠻)이라 부르고, 동쪽의 남이(藍夷)를 동이(東夷)라 불렀다.

 

2) 남선비와 선비국

 

서기전1622년에 제15대 대음(代音) 천왕이 아우 대심(代心)을 남선비(南鮮卑) 대인(大人)를 봉하였는데, 그냥 선비(鮮卑)에 봉하지 않고 남선비에 봉하였으며 더욱이 한(汗)이 아닌 대인(大人)을 봉하였다는 것은 한국(桓國) 시대인 서기전5000년경부터 전해 내려온 선비국(鮮卑國)의 존재를 인정하였던 것이 된다. 즉 선비국을 자치세습국으로 인정한 것이다.

 

3) 지백특(티벳)

 

서기전1465년에 조공을 바친 것으로 기록되는 지백특(티벳)은 서기전2175년에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키자 단군조선이 정벌을 하였던 나라로서, 지백특은 단군조선에 복속한 나라이면서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에 존재한 나라로서 내려온 것이 된다.

 

지백특은 지리적 특성으로 백이(白夷)와 견이(畎夷)와 황이(黃夷)의 혼잡지역이 된다. 백이는 백인종 계통이며, 견이와 황이는 황인종 계통이다. 후대에 티벳지역으로 활동하였던 흉노(匈奴), 돌궐(突厥), 거란(契丹)은 각 황이, 견이, 황이이며 그 속에 백족인 백이(白夷)들도 있었던 것이 된다.

 

4) 남상(南裳, 南掌)

 

서기전1412년에 남상인(南裳人)이 벼슬을 얻어 조정에 들어왔다라고 기록되는데, 이 남상(南裳)은 남장(南掌)으로서 양자강 이남의 적족(赤族) 즉 적이(赤夷)의 나라로서 단군조선의 천하 제후국인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3) 일반 제후(諸侯)를 둔 천자국(天子國) - 고대중국(唐虞夏殷周)

 

요임금의 당(唐), 순임금의 우(虞), 하(夏), 은(殷), 주(周) 등의 나라는 배달나라 시대의 황제헌원(黃帝軒轅) 이후 천자국(天子國)에 해당한다. 요와 순은 진정한 천자로 인정되었으며, 하우(夏禹)는 반역자로서 진정한 천자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은탕(殷湯)과 주무왕(周武王)은 단군조선으로부터 즉위 축하를 받는 등 진정한 천자로 인정받았던 것이 된다.

 

고대중국이 봉한 제후국은 그냥 제후국으로서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나라가 되고, 단군조선에서 봉한 제후국은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나라가 된다. 그리하여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의 삼한관경 외 제후국에 해당하며 단군조선 조정(朝廷)의 자작(子爵)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국)이 된다.

 

서기전2267년 태자부루(太子扶婁)가 태산(泰山, 岱宗)에서 제천(祭天)을 행한 이후 제천행사를 벌여 왔던 것이며, 서기전1122년경 태산이 주(周)나라 땅이 된 후에는 주나라 왕인 천자(天子)가 태산의 제천행사를 이어 천제(天祭)를 지낸 것이 된다. 이때 천자는 상제(上帝) 즉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상제는 곧 천제(天帝)로서 천신(天神)의 대리(代理)자이며, 인간의 몸을 빌은 화신(化身) 또는 인격신(人格神)이 된다. 다시 말하면, 천자(天子)는 인격신인 천제(天帝), 상제(上帝)에게 지내는 천제(天祭)를 지내는 것이 되고, 천제(天帝), 천왕(天王)으로서의 소위 단군(檀君)은 스스로 인격신이므로 자연신인 천신(天神)에게 천제(天祭)를 올리는 것이 된다.

 

1) 시조 및 연혁

 

고대중국의 역사서에서는 반고(盤固), 천황 지황 인황의 삼황(三皇), 유소씨(有巢氏), 수인씨(燧人氏),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를 거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나, 황제헌원이 고대중국의 실질적인 시조가 된다.

 

반고(盤固)는 실제로는 서기전3897년 배달나라 초기에 삼위산(三危山)으로 가서 모든 견족(畎族, 견이) 즉 제견(諸畎)의 가한(可汗)이 된 인물로서 배달나라의 천자인 것이며, 이 견족의 후예는 돌궐로서 고대중국의 역사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천황, 지황, 인황의 삼황은 곧 한국(桓國)시대의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한인씨(桓因氏)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 역사종주국인 우리 한국(韓國)의 정통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억지로 갖다 붙여 놓은 것이 된다.

 

유소씨, 수인씨는 배달나라 시대의 천자(天子)에 해당된다.

 

태호복희씨는 배달나라 한웅 천왕(天王)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며 우사(雨師)를 지낸 인물로서 서기전3528년에 산동지역의 진(陳) 땅에 진제국(震帝國)이라는 나라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염제신농씨는 웅족(熊族) 출신으로서 유웅국(有熊國)의 천자가 된 소전씨(少典氏)의 아들이며, 배달나라의 우가(牛加)를 지낸 인물로서 서기전3218년에 태호복희씨의 나라를 접수하여 산동지역에 염제국(炎帝國)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황제헌원은 유웅국의 왕이던 공손씨(公孫氏)의 아들 또는 후손으로서 배달나라의 운사(雲師)를 지낸 인물로 추정되는데, 서기전2698년에 공손씨의 대를 이어 유웅국의 왕이 되어 염제신농국이 쇠퇴하는 기회를 틈타 염제국을 병합하려 치우천왕에게 100여회의 전쟁을 도발한 전쟁광이었다.

 

헌원이 운사(雲師) 출신이라는 것은 서기전2697년경 이후 100여회의 전쟁을 치르는 중에,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청하여 헌원을 폭풍우로써 혼쭐이 나게 하였다는 산해경의 기록과 뒤에 황제헌원이 그가 둔 벼슬 이름에 운(雲)자를 붙였다라는 기록을 종합하여 추론한 것이다.

 

[황제헌원(黃帝軒轅)과 역대 천자(天子)]

 

후대의 역사를 고려하면 고대중국의 시조는 실질적으로 황제헌원(黃帝軒轅)이며, 독립된 세습왕조(世襲王朝)로는 하(夏)나라가 최초가 된다.

 

황제헌원은 서기전2698년 계해년(癸亥年)에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던 공손씨(公孫氏)의 대를 이어 천자(天子)가 되었는데, 처음 왕이 되어서는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을 먼저 평정한 배달나라 치우천왕(蚩尤天王)에게 10여년간 73회를 도전하고 합100회의 전쟁을 도발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유웅국(有熊國)은 웅씨국(熊氏國)의 하나로서 서기전3252년에 배달나라 종실(宗室)이던 소전씨(少典氏)가 강수(姜水)에 봉해진 나라이다. 소전씨는 소호국(少昊國)의 왕이된 소호씨(少昊氏)와 더불어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이며 웅족(熊族) 출신이 된다.

 

강수(姜水)는 처음 염제신농씨의 태어난 고향으로서 서안(西安)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황하에 합류하는 지금의 천수(天水) 지역이 되고 소전씨의 나라가 있던 곳이 된다. 서방에 있던 소호국의 나라를 백제국(白帝國)이라고도 하는데, 중앙에 소재한 헌원의 나라는 황제국(黃帝國)이라 한다.

 

공손씨(公孫氏)는 소전씨의 후손으로서 소전씨의 아들인 염제신농씨와는 방계(傍系)가 되며, 성씨의 글자에서 보더라도 공손(公孫)은 곰손 즉 곰의 후손이라는 말이며 웅족(熊族)임을 나타내고 있다. 황제헌원의 원래 성씨는 부계(父系) 성씨로서 공손씨이며 나중에 모계(母系) 성씨가 되는 희성(姬姓)으로 바꾼 것이 된다.

 

염제신농국은 서기전3218년 신농씨(神農氏)가 태호복희의 나라를 이어 산동지역의 진(陳)에 세웠다가 곡부(曲阜)로 옮긴 나라인데, 제8대 제유(帝楡) 즉 유망(楡罔)에 이르러 서기전2697년에 치우천왕에게 평정되어 유망의 아들 괴(魁)가 다시 공상(空桑)에 봉해져 단웅국(檀熊國)의 왕이 되었다. 즉 단웅국은 치우천왕이 봉한 나라로서 염제신농국의 후계가 된다.

 

뒤에 단웅국은 제5대 홍제(洪帝)에 이르러 서기전2334년 요임금의 침략으로 왕성을 잃고 홍제(洪帝)가 붕하므로, 당시 단웅국의 섭정이던 38세의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하여 구족(九族)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조선을 개국함으로써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단웅국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706년에 배달나라 제14대 천왕이 된 치우천왕(蚩尤天王)은 자오지(慈烏支) 한웅(桓雄)이라고도 하는데, 배달나라의 수도를 태백산(太白山)의 동쪽이 되는 산동지역의 청구(靑邱)로 옮기고 회대(淮岱)지역을 평정하였으며, 이어 탁록(涿鹿)에 수도를 두었던 헌원과 전쟁을 벌여 결국 100여회의 전쟁 후에 헌원이 굴복하여 신하로 삼았다.

 

치우(蚩尤)라는 말은 치우(治尤)라고도 하며, 원래 치우(治尤)는 배달나라 시대의 군사담당으로서 국방과 관련하여 마가(馬加)의 병마권에 해당하는 일부 직책과 치안을 담당하던 구가(狗加)의 직책을 겸하는 것이 되는데, 아마도 치우(蚩尤)천왕은 치우(治尤)의 직을 담당하다가 천왕이 된 것으로 보이고, 우리말 “치우”는 갈아 치우다라는 말과 같이 개벽(開闢)을 의미하기도 한다.

 

헌원이 치우천왕에게 굴복한 과정은 100여회의 전쟁도발 끝에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부터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전수받아 도(道)를 닦아 깨달음으로써 배달나라의 진정한 신하가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헌원은 유웅국(有熊國, 熊國이라고도 함)의 왕으로서 오방위 중 중부(中部)의 최고책임자인 태상천자(太上天子)가 되어 황제(黃帝)로 불리는 것이다. 천자가 천자로서 가장 높은 자리 또는 높임말은 상왕(上王)이라는 말인 상천자(上天子), 태상왕(太上王)이라는 말인 태상천자(太上天子)가 된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를 후대에 태상천자(太上天子)라 부르기도 하였다.

 

황제헌원 이후에는, 소호국(少昊國) 백제(白帝)의 아들인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황제헌원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 황제헌원의 증손자인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제곡고신씨의 아들인 제지(帝摯), 제곡고신씨의 아들인 제요(帝堯)의 당(唐)나라, 단군조선의 환부(鰥夫)로서 직속신하였던 제순(帝舜)의 우(虞)나라로 이어지며, 이후 우(禹)의 하왕조(夏王朝), 탕(湯)의 은왕조(殷王朝) , 희발(姬發, 주무왕)의 주왕조(周王朝)로 이어진다.

 

황제헌원과 그 후손인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지, 제요 등은 성씨가 황제헌원의 모계성(母系姓)인 희성(姬姓)이고, 소호금천씨의 성씨는 기(己,또는 已라고도 함)씨라고 하는데 기(己)는 곧 태호복희 후손의 성씨로서 소호금천씨의 모계가 태호복희의후손이 되는 셈이며, 요임금은 성씨를 희(姬)에서 이기(伊祁)로 바꾼 것이 되는데  요임금 또한 풍이(風夷)라는 태호북희 후손이라고 하는 점에서 모계성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순임금의 성씨는 원래 아버지 유호씨의 유호(有戶, 또는 고(高)라고도 함)에서 모계성인 요(姚)로 바꾼 것이 된다.

 

하우(夏禹)는 원래 황제헌원의 후손이라 하므로 원래 희(姬)성이 될 것이나 또한 모계성으로 바꾼 것이 되는데, 그 모계성은 곧 태호복희씨의 후손의 성이 되는 사(姒)성인 것이다. 우임금을 남이(藍夷) 출신이라고도 하고 풍이(風夷)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남이는 원래 남족(藍族)으로서 산동지역에서 치우천왕의 중심 백성이 된 족속이며, 풍이는 풍족의 시조인 태호복희의 후손이 되는데, 사(姒)는 곧 풍족에서 나온 성씨인 것이다. 남이를 풍이라고도 한다. 이는 산동지역에 있는 풍족(風族, 풍이)인 태호복희 후손들이 치우천왕 때 남이(藍夷, 藍族)들과 함께 중심백성이 되었기 때문이 된다.

 

은탕(殷湯)은 자씨(子氏)인데, 제곡고신씨의 아들인 설(契)의 후손으로서 설(契)이 자(子)에 봉해져 자씨가 되었던 것이다.

 

주무왕은 제곡고신씨의 아들인 후직(后稷)의 후손으로서 황제헌원의 성인 희(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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