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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195]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8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6- [삼한관경 외 제후국(天侯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2 [06:46]

[홍익인간 7만년- 195]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8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6- [삼한관경 외 제후국(天侯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2 [06:46]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제순(帝舜)]

 

서기전2284년에 순(舜)은 요(堯)임금을 유폐시키고 강압적으로 선양(禪讓)받아 천자(天子) 자리에 올랐다. 서기전2357년에 요가 제지(帝摯)를 죽이고 천자 자리를 찬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기전2280년에 제순(帝舜) 즉 순임금은 9년간 시간을 주었으나 치수(治水)에 성공하지 못한 곤(鯤)에게 그 책임을 물어 우산(羽山)에서 처형하였고, 곤의 아들 우(禹)에게 아비의 직을 승계하여 사공(司空)으로서 치수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후 사공(司空) 우(禹)는 치수에 모든 힘을 기울이며 서기전2268년까지 13년을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우는 자허선인(紫虛仙人)을 찾아 방법을 물어 태자부루(太子扶婁)를 뵙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우는 순임금에게 단군왕검 천제(天帝)께 상소를 올려 치수에 관한 도움을 요청하도록 간청하였던 것이 된다.

 

이때까지 단군조선의 신하로서 요를 토벌하는 데 파견되었다가 자신의 권력욕으로 불충과 불효를 저지른 순임금은 정식 천자(天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차에, 소원하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단군왕검 천제께 치수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이 된다.

 

이에 단군왕검 천제께서는, 신하로서 아비인 유호씨(有戶氏)의 훈계를 듣지 않고 불효와 불충을 저지른 순(舜)의 상소문을 읽고서, 자신만의 권력욕이 아니라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피기 위하여 천자(天子) 자리에 앉고 싶었다며 실토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글귀와, 치수(治水)에 관한 도움을 절절히 간청하는 글귀에서, 순의 진정성을 알게 되었던 것이며, 이에 순을 진정한 천자(天子)로 인정하시고, 진한(眞韓)으로서 섭정을 하던 태자부루(太子扶婁)에게 천하(天下)의 백성들이 물의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도산(塗山)으로 가서 치수법(治水法)을 전수(傳授)하고 오라 명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서기전2267년에 태자부루는 측근을 데리고 도산(塗山)으로 행차하여 가면서 번한(番韓)에 들러 반달간 민정(民情)을 청문(聽聞)하였으며, 그후 번한 낭야(琅耶)를 대동하여 도산으로 향하여 가던 중 낭야로 하여금 태산(泰山)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리게 하였다. 이후 태산에서 올리는 천제(天祭)가 고대중국의 역사에서 대대로 이어졌던 것이 된다.

 

순임금에게 치수에 관한 상소를 올렸던 사공 우는 그때부터 태자부루를 뵙기 위한 절차로서 100일간 목욕재계(沐浴齋戒)하였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백마(白馬)의 피로 제(祭)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서기전2267년에 도산(塗山)에 도착한 태자부루 일행은 미리 마련하게 한 회의장에 들러 착석하고, 태자부루가 회의를 주관하며 번한 낭야가 사회를 맡아 회의를 진행하였던 것이다.

 

이때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태자부루는 사공(司空) 우(禹)에게 치수법이 담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수하여 주었고, 치수에 관한 전권(專權)을 상징하는 천부왕인(天符王印)과 물의 깊이를 재는 자(尺)인 신침(神針)을 전수하였다. 또한, 순이 새로이 설치한 병주(幷州), 유주(幽州), 영주(營州) 중 병주는 그대로 두고 유주와 영주는 폐지하여 단군조선 영역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도산회의 이후에 사공 우는 구주(九州)를 돌아다니며 산과 물을 다스려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치수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재원을, 사람과 물자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왕권 또는 전권(專權)의 상징물인 천부왕인(天符王印)으로써 조달하였던 것이며, 물의 깊이와 둑의 넓이 등을 신침(神針)으로 측정하여 물을 빠지게 하고 둑을 축조하였던 것이고, 이러한 치수의 원리는 황구종(皇矩宗)이라는 황제(皇帝)의 큰 가르침인 홍범구주(洪範九州)라는 책에 있었던 것이다. 이 황구종 또는 홍범구주를 금간옥첩(金簡玉牒), 신서(神書)라고 부른다.

 

여기서 금간옥첩(金簡玉牒)은 금판(金版)과 옥(玉)을 다듬어 만든 책에 글자를 새긴 것을 가리키는데, 이때 단군조선은 가림토38자를 정립하기 이전이므로 상형문자인 신전(神篆: 眞書, 참글)을 새긴 것이 분명하다. 신서(神書)는 신령(神靈)스런 책이라는 의미이다.

 

이리하여 서기전2288년에 발생하여 서기전2280년까지 물바다에 빠졌던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는, 사공 우의 노력으로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를 계기로 태자부루의 가르침을 받들어 치수를 마무리 하였던 것으로서, 22년 이상 걸린 것이 된다.

 

아마도 서기전2267년부터 본격적으로 치수에 돌입하여 최소한 1년 이상 몇 년을 걸려 완수한 것이 될 것이다.

 

이때 우(禹)가 백익(伯益)과 함께 돌아다니며 산천지리(山川地理)와 문물(文物) 등을 기록하는 임무를 이행하였던 것인데, 이때 만든 기록이 소위 산해경(山海經)으로서 서기전2267년의 도산회의에서 태자부루의 명을 받아 치수와 관련한 보고서 차원에서 실행한 것이며, 시기적으로 보면 서기전2247년까지 사이에 작성되었던 것이 된다. 서기전2267년 이후 서기전2247년까지 태자부루는 5년마다 한번씩 순임금을 감독하던 감우(監虞)라는 관청을 둔 산동반도의 현 청도 지역인 낭야성(琅耶城, 가한성)에 순시(巡視)하여 순임금으로부터 치수 등의 국정보고를 받았다. 이를 우공(虞貢)이라 하며, 사공 우가 그 임금인 순에게 보고하는 것은 우공(禹貢)이 된다.  

 

치수에 성공한 사공 우(禹)는 서기전2267년과 서기전2247년 사이에 남악(南嶽)인 형산(衡山)에 올라 그 봉우리에 치수기념비(治水記念碑)를 세우면서, 태자부루의 공덕(功德)을 새겼다. 우(禹)가 세운 치수기념비는 그 취지대로 이름한다면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禹治水記念扶婁功德碑)가 되는데, 비문의 내용에는 신(神)에게 정성으로 제(祭)를 올리니 홍수가 물러가고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하게 되어 평화가 찾아왔다라고 적고 있는 바, 여기서 태자부루는 삼신(三神) 상제(上帝)의 사자(使者)로서 천사(天使)이므로 또한 신격(神格)을 지니는데, 우가 제(祭)를 올린 신(神)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서기전2247년 이후에 순임금은 태도를 바꾸어 반역(叛逆)을 행하였는데, 태자부루가 단군왕검 천제께서 노쇠하여 순시를 하지 않던 틈을 악용하여, 서기전2267년에 단군조선에 의하여 폐지되었던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단군조선의 남국(藍國)의 인근에 다시 설치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240년에 단군조선의 제2대 천왕이 된 부루 천왕은 천자(天子) 순(舜)의 소행을 보고받고, 군사를 내어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여 각 제후를 봉하였으며, 이후 순을 제거토록 명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천사(天使) 유호씨는 작은 아들 유상(有象)과 치수에 공이 큰 우(禹)에게 명하여 순(舜)을 협공(協攻)하도록 명하였고, 결국 순은 남쪽으로 창오(蒼梧)의 들로 피하던 중, 서기전2224년에 우(禹)의 군사들에게 추격당하여 살해당하였던 것이며, 이때 순의 두 아내도 강물에 투신자결하였던 것이다.

 

[하(夏)]

 

서기전2224년에 순을 제거한 우(禹)는 처음에는 유호씨의 명을 대기하다가, 공백이 된 천자 자리를 탐하여, 몰래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보수하면서, 명(命)을 받지 않고 도산(塗山)을 수도로 정하여 스스로 하왕(夏王)이라 칭함으로써, 요(堯)임금의 제왕참칭(帝王僭稱)의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하우(夏禹)는 단군조선의 봉국제도(封國制度)를 흉내내어 마음대로 제후(諸侯)를 봉하여 조공(朝貢)을 받는 등 폭돌한 정치를 펼치자 수많은 백성들이 도망쳐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피하니, 이에 우가 국경을 봉쇄하여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다.

 

우의 소행을 지켜보던 유호씨(有戶氏)는 우(禹)에게 권사(權士)를 보내어 가르침을 주었으나, 우는 오히려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며 전쟁을 불사하였고, 이에 유호씨는 수천의 군사로써 우를 치니, 서기전2198년경에 우는 모산(茅山:회계산)의 진중(陣中)에서 죽고, 서기전2197년에 우의 아들 계(啓)가 왕이 되었는데, 계도 우매하여 가르침을 알지 못하므로, 유호씨는 하(夏)나라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서남(西南)의 제족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약30년간의 전쟁을 마감하고 군사를 물렸던 것이다. 서남의 제족은 서방 즉 수메르 등지의 백소씨족(白巢氏族)과 남방 즉 인도지역의 흑소씨족(黑巢氏族)을 가리킨다.

 

이후 하나라는 주변의 단군조선 자치제후국들의 간섭과 통제를 받았고 하나라 왕은 묵시적인 천자(天子)로서 예를 갖추어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하는 등, 서기전1767년까지 18대 458년간 이어졌다.

 

[은(殷)]

 

서기전1766년에 원래 하(夏)나라의 제후국이던 은(殷)나라의 제후 탕(湯)은 이윤(伊尹)을 재상으로 삼고, 단군조선의 군사적 원조를 받아 하나라 걸왕(桀王)을 쳐서 멸하고 은(殷)나라를 세웠다. 이해에 단군조선의 번한 사전(沙佺)이 고죽국(孤竹國)의 임금인 묵태씨(墨胎氏)를 파견하여 은탕의 천자(天子) 즉위를 축하하여 주었다.

 

이후 은나라는 간혹 전쟁광의 왕이 나와 단군조선의 영역을 침공하기도 하였으나, 단군조선의 천자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고 천제(天祭)를 도왔으며, 주왕(紂王)의 폭정으로 서기전1122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망하기까지 30대 645년간 이어졌다.

 

[주(周)]

 

서기전1122년에 원래 은(殷)나라의 제후국이던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단군조선에서는 숙신(肅愼)을 사자로 보내어 주무왕의 천자 즉위를 축하해 주었다. 이후 주나라 천자는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하고 천제(天祭)를 도왔다.

 

주(周)나라는 단군조선의 봉국제도를 본따 제후를 각각 봉하여 서주(西周)시대에는 대체적으로 안정적으로 다스렸으나, 제13대 평왕(平王) 때인 서기전770년에 이르러 각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기 시작함으로써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유명무실하게 된 춘추(春秋)시대가 되었고, 제32대 위열왕(威烈王) 때인 서기전403년 이후에는 제후국들이 전쟁을 일삼게 되어 전국(戰國) 시대가 되었으며, 서기전334년 이후에는 제(齊), 진(秦), 연(燕), 한(韓), 위(魏), 조(趙) 등 6국의 각 제후들이 왕(王) 즉 천자(天子)라고 모두 칭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주나라 천자(天子)는 무시당하였다.

 

결국 서기전256년에 주나라 난왕(赧王)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항복함으로써 주나라는 사실상 망하였으며, 서기전249년에 군반(君班)을 마지막으로 대가 끊기어, 주나라는 서기전1122년부터 서기전249년까지 합38대 874년간의 역사를 가진다.

 

소위 중화(中華) 또는 중국(中國)이라는 명칭은 주(周)나라 춘추시대 이후에 생긴 용어이며, 이는 동서남북에 주(周)나라를 둘러싸고 있던 단군조선의 자치제후국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뭉뚱거려 격하(格下)시키면서 스스로 높인 용어가 되는데, 다만, 동이(東夷)는 원래 구이(九夷)를 통할하는 단군조선 삼한(三韓) 본국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중국내륙의 동이(東夷) 또한 번한관경(番韓管境)에 속하므로 구이(九夷)의 중추(中樞)인 동이(東夷)에 해당한다.

 

중국의 기록에서 이(夷)를 본격적으로 야만족으로 취급한 것은 진한(秦漢)시대 이후가 된다. 그리하여 중국 스스로 그들의 뿌리(父)이자 하늘(君)이자 스승(師)의 나라인 이(夷)를 부정(否定)하고 멸시하고 야만시하고 심지어 진정한 역사(歷史)를 은닉(隱匿), 날조(捏造) 또는 왜곡(歪曲)함으로써, 조상과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꼴이며, 신(神)을 능멸하고 있는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이 되는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단군조선(檀君朝鮮)과의 관계역사(關係歷史)는 뒤 편에서 좀더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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