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 조작, 지상 최대의 사기극?허상의 기독교에 점복당한 남조선의 민심을 되돌려야...필자는 지난 한해를 아쉽게 넘기면서 금년 기독교 성탄절(크리스마스)을 맞은 지구촌 수많은 사람들에게 뭔가 잘못 된 모순점에 대하여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용어상 '조선과 한국'을 분단된 상황에서 '남과 북'으로 정한 것은 하등의 무리가 없음을 알립니다. 필자는 우리 민족의 뿌리인 '조선'을 택하겠습니다.
필자 자신도 기독교적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자라난 남조선(코리아) 사람인바, 미 제국주의 제도권 하에서 자본사상에 때무친 인간쓰레기 중 한 사람에 불과하나, 나름대로 깨달은 바가 있어 오늘 여러분들께 그 모순 된 기독교 기만술에 대해 제 생각과 판단을 밝혀볼까 합니다. 먼저 남조선인 대한민국 코리아 땅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이 안타갑게도 기독교적 양키사상에 물드려져 우리 선조들께서 내려주신 고귀한 정신문화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민족주의 사상이 점점 매말라가는 현실이 너무도 개탄스러워 이렇게 고민하며 자초지경에 그 원이을 분석하여 봅니다. 우리네 조상님들께서도 그 전통신앙인 무속종교가 토착화 되었던 먼 옛날부터 각 고장의 지역별로 마을 마을마다 신앙문화가 형성되어 온 점에선 순수하게 평가 할 민속종교에 역사적 가치가 성립된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삼국 ~ 고려 ~ 조선에 이르러서 불교와 유교로 이어지는 종교 문화에 영향을 받아 왔지만,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사상에 별다른 혼란은 주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다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민족으로서는 커다란 종교분쟁 없이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종교사상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서 민족 전통의 무속신앙 또한 그 뿌리가 명맥을 이어나가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바,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문화는 무섭게도 우리 민족사상을 송두리체 어지럽히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회 기형적 풍토로 바꿔놓는 마치 황소개구리에 출현과 같은 전파력으로 전염병처럼 번져 온 백성을 서양문화 길드리기에 족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헛된 이상론에 휩쌓여가 민족성을 잃어버린 현상으로 나타나 오늘날 민족주의가 뿌리채 뽑힐 지경에 봉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그럼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로 뿌리내린 단일종교 국가들 중 기독교 국가라 자부하는 미제국에 경우를 보면, 다민족 국가로 국민의 약 90%가 기독교인이면서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약소국들을 침탈하여 강도질과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 살인만행에 대표적인 군사 강대국인 제국주의 살인마 집단들로 구성 된 미국입니다. 남조선 사회가 기독교인이 약1300만명을 육박한다는데, 이는 형식상 대한민국 독립국가이지 거의 미제국의 코리아주나 다름없는 식민지화 된 미제국에 제국주의 계략이 그대로 먹혔다는 필자의 판단인 바, 어찌 국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되는건지 그저 답답 할 따름입니다. 그 기독교에 근본인 성경 즉, 성서의 신빙성 문제를 살펴보면 ‘예수’라는 인물을 최대한 이용하여 온갖 체면술 같은 신비주의 사상을 환상적으로 묘사 해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마약처럼 전파시켜 온 이상주의 신화에 불과한 형태로에 엄청난네트워크 조직체를 이루는 집단화 되어간 모순점 중에서 그 중심인물 ‘예수’에 탄생의 비밀과 모순은 무엇인가! 객관적 실체를 추적하오니 그가 탄생 하였다는 성탄절(크리스마스)을 재 조명 해 봤습니다. 사형수로 처형당한 대 철학가 ‘예수’ 그분은 언제 태어났는가? “그리스도의 정확한 탄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고 초기 그리스도교 백과사전(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에서는 기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12월 25일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하지만 그 날짜는 성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는 정말 12월에 태어났습니까? 성서에 예수의 탄생일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분이 12월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는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또한 세속적인 증거를 살펴보면,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12월 25일이 채택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유다의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또한 같은 그 지방에서 목자들이 집 밖에 머무르면서 밤 야경 시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누가 2:4-8) 이러한 일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당시의 일상생활(Daily Life in the Time of Jesus)이라는 책에서는 “양 떼는 한 해의 대부분을 바깥에서 보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목자들이 추운 12월 밤에 양 떼를 데리고 바깥에 머물렀을 것입니까? 같은 책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양 떼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보냈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겨울에 있는 전통적 크리스마스 날짜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그때 목자들이 들에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뒷받침됩니다. “그 무렵,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포고령을 내려 등록하게 하였다. (이 첫 번째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었을 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등록을 하려고 각자 자기의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누가 2:1-3. 아마도 아우구스투스는 인구 조사를 위해 이러한 등록을 명령하였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수집한 정보를 세금 징수 및 징병과 관련된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명령에 따르기 위해, 마리아는 아이를 가져 몸이 무거웠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인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약 150킬로미터를 여행하였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방 행정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던 통치자인 아우구스투스가 가뜩이나 반감을 품고 있는 백성에게 겨울에 그렇게 먼 거리를 여행할 것을 요구하였을 리가 있겠습니까? 주목할 만하게도,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성서 학자들은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톨릭 백과사전(Our Sunday Visitor’s Catholic Encyclopedia) 에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예수께서 12월 25일에 태어나시지 않았다는 데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예수가 죽고 나서 수백 년 후에 12월 25일이 그분의 탄생일로 정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역사가들은 연중 크리스마스를 지키게 된 시기가 사실은 '이교 축제'를 기념했던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異教)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축제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두산 세계 대백과사전에서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 대개 그러한 축제 기간에는 참가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을 하고 흥청망청 놀면서 소란을 피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목할 만하게도,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때에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실제 탄생일이 언제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분의 탄생을 기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품위 있는 방식으로 기념하기만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한 가지 적합한 방법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분명 성서 기록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 말하는데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갑자기 많은 천사들이 나타나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선의를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라고 외쳤다고 성서에서는 알려 줍니다. (누가 2:13, 14) 하지만 성서 어디에도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해야 한다는 암시조차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에는 그분의 죽음을 기념하라는 구체적인 명령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기록 된 바에 따르면 ‘예수’가 모체인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사 잉태 된 독생자로 마굿간에서 태어났노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기독교인들도 대부분은 속으로 인식하면서도 정작 그대로 믿어버릴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멘”으로 무조건 맹신하는게 신앙인줄 관습화 된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당시 사정으로는 마리아 뿐만이 아니라 사생아 출산을 하는 여성들이 깨 많았는데,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유대민족의 여성들에 인권은 아무런 보장이 없던 때이고 더구나 그 민족적 문화풍토 또한 사생아 출산을 무사히 넘긴다는게 어려웠을 때니만큼, 마리아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가족들과 측근들에 노력으로 ‘예수’탄생을 신비화 하는데 성공한 경우로 그 지방에선 흔히 생기던 미혼 출산인지라 한 시대 식민지 현상 중 여성들에 삶의 설움인 한 부분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는 누군가의 남성(정자)으로부터 임신을 하였고, 마굿간에서 출산했다는 점에는 크게 의구심을 갖진 않으나, 그 임태가 남성에 정자 숫태가 아닌 성령의 잉태라 함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 뿐만 아니라 우주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고, 기독교적 율리상 자연의 생태 법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생명탄생 원칙에 위배되는 억지를 “무조건 믿어라!” 하며 “믿는자에게 복이있나니” 한다면, 객관적 사실이라 하는데 추어도 한점 의심받지 않도록 분명한 설득력의 객관성이 갖추어졌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 현대인들은 서기 2000년 전 보다는 그동안 과학의 발전이 헐씬 진보되어 앞서 있어 더 분명하고 확실한 과학적 판단을 하리라 보는데 과거 추상적 판단이나 선지자들에 의하여졌던 믿음이나 절대적 결론은 이제 왠지 뒷떨어진 구 신화 같은 옛이야기로 남겨져야 하는게 더 현명하지 않은가! 하는게 필자에 의견입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세상을 속여 온 동물들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엔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항상 위선과 가식이 난모하는 사회상에서 서로 이익을 쫒차 아름답게 사냥을 하는 두얼굴에 동물로 살아가는데, 정작 거대한 먹이감 앞에선 조심스레 다가가 기회만을 엿보며 인내심도 발휘하기도 하다가 그 본성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익한 이기주의 사고로 숨겨져 내포되어 있는 척추동물인 점에 누구나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영위를 위해 온갖 술책으로 거짓도 꾀하며 천지 세상을 속이는 유일한 원숭이과 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땅에는 육지와 바다 그리고 산과 계곡이 있고 들에는 개울이 흘러 강으로 이어져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지구땅에 최초의 생명은 바로 바다로부터 자연발생 된 것으로 밝혀진 진화론에 근거하여 오늘날 그 생명의 신비로운 추적을 냉철하게 다시한번 점검하는 마음 자세로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현재까지 객관성이 인정되어지는 한도 내에서 우주의 신비로움을 인용한 토속신앙과 달리 기독교는 더욱 집단화 한 조직 형태로 발전하여 상품화 된 종교 사업가(재단 및 성직자)들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직업적 사고로 자리잡아 나간 것이 오늘날 인간들 사회에서도 꾸준히 응용되어지고 있다는게 현실입니다. 이 지구땅에 처음으로 생명이 탄생하게 된 곳은 바다속에서부터라고 밝혀지면서 그 신비의 생명체는 눈에 보이지 않을정도에 미세한 세균(바이러스) 탄생이라 합니다. 그 세균은 지구땅에 온화한 환경속에서 점점 진화하여 여러 종자의 식물과 수충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러 바다물속 생물이 되는 놀라운 발전을 거둡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억만년이 지나오면서 그 생명체들은 제법 모양세를 갖춘 물고기와 해초류로 진화되어 등뼈동물로까지 성장하기 전부터 육지 식물시대를 거치며 바다에서 살아오던 생물들에 육지로의 대 변혁적인 진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접어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곤충 및 조류에 등장까지 온 지구땅과 바다 그리고 강과 숲지대 할것 없이 동.식물에 엄청난 진화를 거둡해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대자연이 장관으로 지구땅 곳곳에 펼처진 진화의 생명탄생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육지의 지상에서 척추동물에 진화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생겨나는 시대에 들어와 결국엔 인간과도 흡사한 원숭이과 동물은 여러 종자로 진화를 거둡하며 발전하다가 어느 시점에선 그중 가장 영리하고 뛰어난 종자가 집단서식하게 되면서 서서히 인간들처럼 사회성에 적응하는 동물로 진화된게 인간탄생 기간이 수천만년 ~ 수억만년 지나는 오랜 세월을 거쳐 탄생 된 척추동물인 일종에 불과하거늘, 인간들은 정작 자신들의 존엄성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하는데 억지를 쓰곤 신비주의적 사고와 우월 개념으로 이를 과장하여 마치 신을 통한 위대한 생명탄생 처럼 신비감에 빠진 엉뚱한 이상론을 꾸며 자연과 과학적 개념이 무시되는 신화론에 가까운 종교에 의지하려 함은 참으로 세상을 기만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섬겨 온 여러 종교들은 각각 그 주체적 대상은 다르나, 그 진행 방법에선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물질과 맹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시장이 형성돼 제도권에 굴림하며 직업화 되었다는 것에 과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친다는 건지 일맥상통 하는 운영 방식은 다단계식 네트워크 사업처럼 성황을 이룬점에선 다 마찬가지로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오늘날 수많은 성직자들에게 되묻고 싶은 부분입니다. 먼 옛날 각 민족들에 순수했던 토속적 신앙과 달리 현대 종교는 조직적 파워를 위세하여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위력을 행사함으로써 국가의 사법부나 정치가 통제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발위하는 집단적 조직구도로 자리잡고 있다는게 매우 우려스러울 만한 조짐이며 기형적으로 커진 정치성 집단주의 문화가 아닐 수 없다고 진단 하는게 필자가 비교 분석한 결론입니다. 도대체 구약 성서는 지구땅의 인간 최초 탄생에 대하여 기록하길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을 탄생케 하셨으며, 그 아담의 한쪽 갈비뼈를 떼어다가 여자 하와를 탄생케 하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도무지 그냥 ‘아멘’으로 응답하게끔 길드려진 맹신자들에겐 간단한 문제이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는 법, 수천만년의 탄생과 진화를 거둡해 온 우주과학과 대자연의 생태 연구에 근거한 사실적 판단은 진화론으로서 잘 정리되어 왔으나, 이러한 객관성을 무시하고 송두리체 배제한 기독교도들에 일방적 주장 즉, 성서의 기록 또한 인간들에 의해 기록 되었다는 사실을 가만하면 과연 무엇이 진정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현명하게 구분하여 판단할 수 있을거란 생각입니다. 지구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를 상대로 그 역사상 지상 최대의 사기글을 펼치고 있는 기독교 사기꾼들에 요람인 성서 즉 신약.구약 성서 합 성경 66권에 대하여 모두 불태워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 기만서의 근원을 조선민족이 과감하게 내쳐야만 잘못 된 지난 역사를 바로잡고 유린당해 온 민족성도 되찾아, 다가 올 통일조국의 주역이 될 후세들에게 때묻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새 역사 창조를 힘찬 희망으로 천년만대 이어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April / Deep Purple April is a cruel time Even though the sun may shine And world looks in the shade as it slowly comes away Still falls the April rain And the valley's filled with pain And you can't tell me quite why As I look up to the grey sky Where it should be blue Grey sky where I should see you Ask why, why it should be so I'll cry, say that I don't know 4월은 잔인한 달 태양은 환히 비출지 몰라도 세상은 어두운 그늘 속에 서서히 사라져버리는 듯 아직도 4월의 비는 내리고 골짜기는 고통으로 차고 넘쳐 내게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못해 저 잿빛 하늘 올려다보면 원래 푸르러야 할 저 하늘 잿빛 하늘, 당신 모습이 보여야 할 저 하늘 왜, 왜 그래야 하냐고 묻지 난 울부짖으며 모르겠다 하고 Maybe once in a while I'll forget and I'll smile But then the feeling comes again of an April without end Of an April lonely as they come In the dark of my mind I can see all too fine But there is nothing to be done when I just can't feel the sun And the springtime's the season of the night 어쩌면 나 가끔 잊고 웃음 지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다 다시 4월의 느낌 끝없이 되살아나 쓸쓸한 4월이 다가오는 느낌 내 마음 어둠 속에선 모든 게 너무 잘 보여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태양을 느낄 수 없어서 게다가 봄은 어두운 밤의 계절 Grey sky where it should be blue Grey sky where I should see you Ask why, why it should be so I'll cry, say that I don't know I don't know 원래 푸르러야 할 저 잿빛 하늘 당신 모습이 보여야 할 저 잿빛 하늘 왜, 왜 그래야 하냐고 묻지 난 울부짖으며 모르겠다 하고...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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